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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유한숙씨 유가족과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상경한 밀양 주민들이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전력공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한전의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를 외치며 세상을 떠나신 고 유한숙 어르신의 죽음 앞에 한전과 정부는 사죄는 커녕, 고인의 죽음을 왜곡하며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며 "정부와 한전은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탈핵중심의 에너지정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 밀양 유가족 상경투쟁 고 유한숙씨 유가족과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상경한 밀양 주민들이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전력공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한전의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를 외치며 세상을 떠나신 고 유한숙 어르신의 죽음 앞에 한전과 정부는 사죄는 커녕, 고인의 죽음을 왜곡하며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며 "정부와 한전은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탈핵중심의 에너지정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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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꼭 이기적이기만 한 존재는 아니라고 믿습니다. 사람은 이기심도 있지만, 타인의 고통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존재라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회는 정말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밀양 송전탑 문제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한 현실

작년 1월에 경남 밀양에서 70대 농민이 분신자살을 했습니다. 참혹한 일이었습니다. 2005년부터 시작된 밀양 송전탑 문제는 2011년 나무를 베어내는 벌목작업이 시작되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송전탑 공사를 위해서는 먼저 벌목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겨울에 돌아가신 분을 포함해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벌목을 막기 위해 산에 올라 나무를 껴안고 버텼습니다. 그러다 젊은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끌려나오기를 반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온갖 욕설을 듣고 조롱을 당했습니다. 폭력 앞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 분들이 느꼈을 모욕감, 절망감, 무력감이 얼마나 컸을까요?

그래서 70이 넘은 농민이 "내가 죽어야 문제가 해결 되겠다"라는 말씀을 남기고 자살을 하셨습니다. 그 후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재개되는 과정을 반복하다가 지난 10월에 다시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2월 6일 또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맹독성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송전탑 때문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절망이 있었기에 스스로 목숨을 버렸을까요?

그런데 경찰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고인의 죽음을 왜곡했습니다. 송전탑 때문에 자살을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인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경찰의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서는 고인의 유족이 사실을 밝혔습니다. 아래는 고인의 장남이 쓴 글입니다.

"밀양경찰서에서 경찰 3명이 초동수사를 하러 와서는 신음하고 계신 아버지에게 휴대폰을 들이대며 '어르신 왜 이렇셨습니까?' 하고 물었고, 그때까지 눈만 꼭 감고 계속 토하시던 아버지가 눈을 뜨고 경찰관을 똑똑히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송전탑 때문에 그랬다. 송전탑 때문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경찰들이 얼마나 당황하며 휴대폰 녹음기능을 껐는지 저는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기어이 조사결과를 음주, 가정불화, 신변비관으로 언론에 발표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으로서 할 일입니까? 여전히 정부와 한전은 공식적인 사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 버린 정부와 한전

정부와 한전은 죽음 앞에서 최소한의 예도 갖추지 않고 있습니다. 한전은 고인이 돌아가신 후 후에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공사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밀양 주민들은 "제발 살려주이소"라고 호소합니다. 지금처럼 공사가 강행되다가는 제3, 제4의 죽음이 나올 수 있는 상황입니다.

돌아가신 두 분은 반대운동에 앞장서시던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조용히 후원하고 조용히 참여하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걱정스럽습니다.

정부와 한전은 저같은 사람을 외부세력이라고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밀양 주민들과 연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외부세력이라고 부른다면 저는 외부세력입니다. 저는 작년 1월 돌아가신 어르신의 죽음을 통해 뒤늦게 밀양 송전탑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저는 밀양 송전탑 문제의 근원을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이런 일이 발생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밀양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밀양 주민이 17일 서울 중구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 앞에서 열린 '안녕들하십니까' 성토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밀양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밀양 주민이 17일 서울 중구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 앞에서 열린 '안녕들하십니까' 성토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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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절차적 문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전원개발촉진법'이라는 법률이 있습니다. 이 법률에 따르면 한전이 일방적으로 송전선 노선을 확정하고, 주민들이 말을 안 들으면 땅을 강제수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송전선이 진짜 필요한 것인지를 검증하는 과정도 전혀 없이 절차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한전이 필요하다고 하면, 필요한 것으로 되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주민설명회 같은 것을 하지만, 극히 형식적입니다. 법 자체에서 주민들의 의견은 무시할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밀양 송전탑의 출발점인 고리-신고리 원전의 문제였습니다. 밀양 주민들도 처음에는 송전탑만 반대하다가, 이미 원전의 문제점에 눈을 뜬 상태였습니다. 새로운 원전을 마구 지어대지만 않아도 밀양 송전탑은 필요가 없습니다. 수명이 끝난 고리1호기만 폐쇄하더라도 밀양 송전탑은 필요가 없습니다.

고리-신고리 원전단지에는 지금 6개의 원전(고리1,2,3,4호기와 신고리1,2호기)이 가동중입니다. 정부와 한전은 지금 짓고 있는 신고리3,4호기가 가동되면 지금 있는 송전선(현재 3개의 345kV 송전선이 고리-신고리 원전단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으로는 부족하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한전 자료로도 신고리3호기까지는 기존 송전선으로 송전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고 신고리4호기가 들어오더라도 고리1호기 하나만 폐쇄하면 기존 송전선으로 송전이 가능합니다.

추가로 신규원전을 짓지 않으면 밀양 송전탑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정도 후면 수명이 끝나는 고리2,3,4호기를 폐쇄한다면 송전선은 남아 돕니다. 밀양 송전탑은 낭비일 뿐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밀양 할머니들은 원전반대운동에도 적극 나섰습니다.

밀양 송전탑은 민주주의 문제

밀양 송전탑 문제에 관여하면서, '우리에게 전력계통을 잘 아는 전문가가 있다면'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전문가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송변전공학'이라는 책도 사서 보고, 미국의 송전공학책도 구해서 보았습니다. 알기 힘든 숫자와 그림, 용어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제가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전력 분야에는 민주주의라는 게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책이 잘못되지 않으려면 비전문가들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합니다. 전문가들은 자기들끼리 결정할 것이 아니라, 비전문가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발전-송전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모든 국민들과 관련이 있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전문가들만이 참여해서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돈과 이권으로 엮여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에서는 독립된 전문가를 찾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고위관료와 일부 정치인들, 한전이 이런 '영혼 없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그동안 발전-송전정책을 마음대로 주물러 왔습니다. 이들은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를 바닷가에 마구 짓고, 초고압송전선을 전국 곳곳에 건설하는 방식을 고집해 왔습니다. 이 와중에 지역주민들의 의견도 듣지 않았고, 국민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이들은 대기업들에게 특혜를 줘 왔습니다. 1개 짓는데 3조 원이 넘게 들어가는 원전건설 공사도 대기업들이 수주해 왔습니다. 1년에 수조 원의 돈이 들어가는 송전탑 건설로 돈을 버는 기업들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민간 대기업들이 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비싸게 사 줘서 이중삼중으로 이익을 줍니다.

반면에 밀양 같은 곳의 시골주민들은 철저하게 무시하고 짓밟아왔습니다. 거짓말과 비도덕적인 일들도 서슴없이 저질러 왔습니다. 국무총리와 장관이 거짓말을 해댔습니다. 위조부품 때문에 가동이 불가능한 신고리3,4호기를 빨리 가동해야 한다면서 지난 10월에 공사를 재개했습니다. 그러나 공사가 재개되고 불과 2주 정도 후에 '신고리3,4호기는 위조부품 때문에 언제 준공될지 모른다'고 정부 스스로 발표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들이 한 거짓말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공사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보면 밀양 송전탑 공사는 정말 필요 없는 일이고 정의와 도덕관념에 반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밀양 주민들은 '너무 억울하다'고 얘기합니다. 평생 농사짓고 자식을 키워온 마을과 땅을 한 순간에 강탈당한 심정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국가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우리가 양보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주민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한전은 밀양 송전탑이 꼭 필요한 것인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TV에서 '맞짱 토론'을 하자고 하면,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게 정부가 할 일입니까?

문정선 밀양시의원이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전력공사 본사 앞에서 정부와 한전의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 중단을 요구하며 사옥 진입을 시도하다가 경찰들에게 저지되자, 고 유한숙씨의 영정사진을 들어보이며 오열하고 있다.
이날 고 유한숙씨 유가족과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상경한 밀양 주민들은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를 외치며 세상을 떠나신 고 유한숙 어르신의 죽음 앞에 한전과 정부는 사죄는 커녕, 고인의 죽음을 왜곡하며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며 "정부와 한전은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탈핵중심의 에너지정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 한전 면담 거절에 오열하는 문정선 시의원 문정선 밀양시의원이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전력공사 본사 앞에서 정부와 한전의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 중단을 요구하며 사옥 진입을 시도하다가 경찰들에게 저지되자, 고 유한숙씨의 영정사진을 들어보이며 오열하고 있다. 이날 고 유한숙씨 유가족과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상경한 밀양 주민들은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를 외치며 세상을 떠나신 고 유한숙 어르신의 죽음 앞에 한전과 정부는 사죄는 커녕, 고인의 죽음을 왜곡하며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며 "정부와 한전은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탈핵중심의 에너지정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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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 가슴 아픈 것은 밀양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밀양 관련된 기사들이 나오면 "자기들은 전기 안 쓰느냐"는 식의 댓글들이 달립니다. 이런 댓글들을 보면, 밀양 주민들이 얼마나 상처받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밀양 주민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 필요

밀양 송전탑은 밀양에서 쓰는 전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765kV, 345kV 이런 초고압 송전선들은 발전소와 소비지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건설하는 송전선들입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765kV 송전선 2가닥은 서해안 당진의 화력발전단지와 동해안 울진의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건설한 것입니다. 밀양을 지나가는 765kV 송전선은 고리-신고리 원전단지에서 생산된 전기를 대구 등지로 보내기 위한 것이라는 게 한전의 설명입니다. 이렇게 발전소와 소비지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초고압 송전선이 필요하고, 송전선 건설과정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시골 주민들이 떠안게 되는 형국입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전기 안 쓰느냐"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더 근본적으로 보면 5천만 인구가 가정에서 쓰는 전기 때문에 이렇게 발전소와 송전탑을 많이 건설하게 된 게 아닙니다. 전체 전기소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전기소비가 싼 전기요금 때문에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발전소도 많이 짓고 송전탑도 많이 짓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대도시의 대형건물들이 쓰는 전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수혜자는 큰 공장들, 그리고 전기 많이 쓰는 대도시의 건물들인데, 피해는 시골주민들이 보는 것입니다. 수혜자부담, 수익자부담이라는 원칙은 여기에서는 적용이 안 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정의롭지 못한 일입니까?

그래서 밀양 주민들은 너무나 억울해 합니다. 그러면서 '제발 관심을 가져 달라고, 제발 살려 달라'고 호소합니다. 그 심정에 공감할 수 없을까요?

밀양의 송전탑 경과지 마을들은 조용한 산골, 농촌 마을들이었습니다. 송전탑만 없다면 너무나 평화로울 마을들입니다. 이 분들에게 일상을 돌려줘야 합니다.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게 해야 합니다.

조금만 이 분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주십시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 주십시오. 오늘도 밀양은 울고 있습니다.


태그:#밀양, #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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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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