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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공원의 습지에 논을 만들어 토종벼를 심었다
 선유도공원의 습지에 논을 만들어 토종벼를 심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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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선유도공원의 습지에 크기와 모양이 제 각각인 토종벼 여러종류를 심었다. 모내기할 때만 해도 모두가 가을에 알찬 수확을 기대했었다. 그 믿음처럼 한강물이 흘러가는 습지논에서는 토종벼가 쑥쑥 자랐고 공원을 오가는 사람들은 익숙치 않는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다양한 모양의 토종벼가 신기한듯이 들여다봤다.

토종벼는 일반벼에 비해서 키가 훨씬 크다. 그중에서도 조금 더 큰 것들은 올 여름에 태풍은 없었지만, 유난히 잦은 비와 강바람에 시달리다 여물기 시작하는 낱알의 무게를 받들지 못하고 활처럼 휘어져 벼이삭이 논물 속에 쳐박히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쓰러진 벼들을 끈으로 묶어서 일으켜세워줄 때만 해도 불청객의 방문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느날 텃밭수업을 하는 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으면서 아차 싶은 불길한 징조는 시작되었다.

"선생님 선유도 논에 다녀왔는데 참새들이 볍씨를 먹고 있어요"

모내기 할 때부터 공원을 배회하던 한 무리의 참새떼를 볼 때만 해도 이곳이 참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는구나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습격이 시작된 것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겠느냐는 속담처럼 논으로 나가보니 쓰러져서 묶어준 벼다발 위에 참새들이 앉아서 볍씨를 까며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쫒아내도 그때만 잠깐일 뿐, 근처의 나무 위로 날아가서는 언제라도 다시 내려오겠다는 듯이 짹짹거렸다. 이렇게 된 마당에 쓰러진 벼이삭 정도의 양이면 양보할 수 있겠다는 마음을 기꺼이 내주기로 했다. 물론 이런 훈훈한 마음을 알아줄리 없는 참새들이겠지만.

 여든여덟번의 손길이 가야 쌀을 수확한다는 벼농사
 여든여덟번의 손길이 가야 쌀을 수확한다는 벼농사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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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토종벼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토종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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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종류의 토종벼는 같은 날에 심었지만, 익는 시간은 다 제각각이었다. 참새는 익은 낱알만을 골라서 먹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때마다 양이 많지 않은 익은 벼만을 골라서 수확을 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아직은 피해가 크지 않았기에 이제부터라도 대책을 세우면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햇볕에 반짝거리는 은박줄을 길게 늘어뜨려 논에 매달아주고 막대기 허수아비도 세웠다. 그러나 참새의 눈을 어지럽게 해서 막아보겠다는 의지는 그때뿐, 며칠후 기대감을 가지고 찾았간 논에서는 통통하게 살이 올라 눈사람처럼 배불둑이가 된 참새들이 제 집 드나들듯이 날아다녔다.

"열심히 농사 지은 것을 참새들이 다 뺏어가네. 요즘 참새들은 반짝이줄에는 안 속아"

공원 관리하는 아저씨의 말처럼 햇볕을 반사시키는 은박줄은 무용지물이었다. 종류별로 조금씩 익을 때마다 야금야금 까먹은 벼들이 절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대로 뒀다가는 한 톨도 거두지 못 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 그렇다고 덜 익은 벼를 수확하는것도 소용이 없다. 속은 타고 있었지만, 반짝이 은박줄보다 더 강력한 방어대책을 마련하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

반짝이는 은박줄과 허수아비도 소용없었다
 반짝이는 은박줄과 허수아비도 소용없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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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논 두 곳 중에서 한 곳은 그야말로 쌀 한톨도 남김없이 싹쓸이 되었고, 남은 한 곳도 아직 덜 여문 벼들만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일단 며칠후에 벼베기를 하기로 하고 습지의 물을 빼달라고 공원관리소에 부탁했다. 그러나 하필 벼베기로 한 날에 비가 내렸다. 하늘도 무심하지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이런 일 저런 일 때문에 처음 벼베기로 한 예정일로부터 열흘이 넘어서야 숫돌에 박박 갈아서 날이 선 낫을 들고 학생들과 벼베기를 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깨끗하게 낱알을 싹쓸이 할 수 있는지 참새들이 참 얄미웠지만, 내년에도 참새들은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선유도에서 토종벼 농사를 통해 몇가지 깨달음을 알게 해준 것이 쌀 대신 얻은 수확이라고 위안을 삼기로 했으며 전통방식으로 탈곡을 해보겠노라고 농촌에서 어렵게 구한 홀태(벼를 탈곡하는 전통 농기구)는 내년에야 쓸 수 있게 되었다. 내년 농사에서는 싹쓸이 당하지 않을 단단한 대책도 생각해두었다.

논바닥에는 참새가 까먹은 왕겨(쌀껍질)가 떨어져있다.
 논바닥에는 참새가 까먹은 왕겨(쌀껍질)가 떨어져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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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할 때 부터 수확때 까지 근처를 떠나지 않은 참새떼.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모내기 할 때 부터 수확때 까지 근처를 떠나지 않은 참새떼.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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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토종벼, #쌀, #선유도공원, #텃밭,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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