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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엔 대학생도 2박 3일 동원훈련을 받아야 한다.
▲ 훈련장으로 향하는 예비군 내년엔 대학생도 2박 3일 동원훈련을 받아야 한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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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저 내년에 동원훈련 가야 돼요."

수화기 너머 들려온 후배의 목소리는 불만이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취업때문에 졸업까지 미룬 상태였다. 그런데 10일 오전 느닷없이 국방부가 대학생 예비군을 대상으로 내년부터 동원 훈련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그것도 후배처럼 졸업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 '졸업 유예자(4년제 대학 9학기 이상 등록)와 유급자만 대상'이라고 했다. 후배는 깊은 한숨을 쉬며 "표면상 2박 3일에 불과하지만 취업준비생에겐 2년 3개월 같은 부담"이라고 말했다.

국방부가 이날 밝힌 정책 변화의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째로 '형평성'. 예비군은 현재 군대를 제대하면 익년부터 4년 동안 매해 2박 3일의 동원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대학원생 포함)은 제외됐다. 학습권 보장을 위해서다. 하루 8시간 군사교육으로 대체됐다. 하지만 이로인해 '학업과 생업', 경중을 따질 수 없는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했다. 동원 훈련에 참여하는 대부분이 자영업자거나 중소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졸업한 취업준비생인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로 동원훈련에 참여하는 예비군의 감소를 들었다. 재밌는 사실은 이 정책이 정확히 43년 전, 1971년 박정희 유신시절에 처음 시행됐다는 점이다. 물론 당시만 해도 대학 진학률은 8.4%에 불과했다. 이후 80년대 16%로 증가했고, 2009년을 기점으로 80%를 넘었다. 대학생의 비율이 늘어난 만큼 동원훈련에 제외되는 대학생 비율도 증가했다. 올해만 약 56만 8천명, 전체의 약 20%에 해당된다. 국방부가 2011년부터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대학생 예비군 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한 까닭이다.

바뀌지 않은 것들, 꼼수만 늘어난 국방부

이 식사를 어찌 잊을까
▲ 예비군 동원훈련 식사 이 식사를 어찌 잊을까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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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가지 묻고 싶다. 정말로 '형평성' 때문에 혹은 '예비군 부족'으로 지난 43년 동안 훈련에서 제외됐던 대학생을 포함시킨 것일까? 진짜로 대학생만 동원훈련에 포함되면 반세기 동안 이루지 못한 '국방개혁'이 시행되는 것일까?

답을 구하기 전에 놓치지 말아야할 사실이 있다. 한 번이라도 동원훈련에 참여해 본 예비군이라면 안다. 훈련장에서 먹은 식사며 지급받은 물자, 2박 3일 동안 진행된 형식적인 훈련 내용 그리고 생업을 포기하고 받은 여비까지. 과연 단 한 번이라도 만족해본 적 있었던가?

지난 늦가을, 기자 역시 예비군 동원훈련에 참여했다. 이미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장교 복무로 군생활을 오래한 탓에 예비군 3년차에 불과하다.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돈 셈이다(참고로 장교·부사관의 동원 훈련은 6년). 하지만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저 한 가지 눈에 띄는 놀라운 변화만 있었다.

바로 '예비군 측정식 합격제'. 예비군의 훈련태도를 바꾸겠다며 국방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계획이다. 훈련 상위 20%를 우수자로 뽑아 2시간 일찍 귀가시키는 제도다. 동원훈련장에 새로 생긴 상대평가로 보면 된다.

성과는 상당했다. 사격 시간 집중력이 높아졌고 무엇보다 훈련 자세가 달라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옆 사람보다 2시간 먼저 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효력은 정확히 하루 지속됐다. 2시간의 유혹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했다. 예비군 사이에 경쟁심만 부추겼을 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동원훈련까지 경쟁에 내몰린 예비군들은 금세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부실한 밥, 부족한 물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사용했던 헬멧과 수통, 6·25 때 사용한 칼빈소총, 반세기 동안 반복된 군사기초훈련, 놀라울 정도로 낮게 책정된 여비까지. 국방개혁의 목소리만 높았을 뿐, 국방부의 꼼수는 여전했다.

누구를 위한 예비군 증가인가?

누구를 위한 증가인가?
▲ 정예화된 예비군 누구를 위한 증가인가?
ⓒ 예비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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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이 시점에서 국방부는 지난 43년 동안 시행하지 않은 '대학생 예비군 동원훈련'을 부활하려는 것일까.

내년도 국방예산을 살펴보면, 국방부의 진심이 뭔지 알 수 있다. 내년 총 국방예산은 35조 8001억 원이다. 전년대비 4.2% 증가했다. 세세한 내용 속에는 병사 월급 15% 증가(상병 기준 11만7000원→13만4600원), 신병증식비 100% 인상(500원→1000원)이 눈에 띈다. 하지만 '대폭'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증가분을 강조하기엔 미미한 수준이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전년 대비 5.8% 증가한 10조6천억의 '방위력개선비'였다. 바꿔 말하면 '무기 사는 돈'만 증가한 셈이다. 지난 10월 14일, 국회 국방위 소속 송영근 의원도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내놓았다. 2013년 '예비전력예산'은 전체 국방 예산의 0.4%에 불과했다. 내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국방부는 구호로만 '정예화된 예비군'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마치 국방개혁의 핵심이 '예비군 증가'에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이다. 예비전력을 위한 예산이 이를 말한다. 예비군을 위해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고, 변한 것도 없다. 국방부 의지는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과연 누구를 위한 예비군 증가인가? 누구보다 국방부 자신과 지금까지 훈련받아 온 300만 예비군이 알고 있다. 전 국민이 '진짜 사나이'가 될 필요는 없다.


태그:#예비군, #대학생, #동원훈련,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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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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