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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다. 이제 열흘 남짓이면 대통령 선거를 치른 지 만 일년이 된다. 국정원과 군인, 경찰 등 모두가 대선에 불법적으로 개입됐을 거라던 추측이 억측이 아닌 사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전 국정원장과 경찰청장이 청문회에 불려 나왔지만,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로 선서도 하지 않고 버티는 그들의 모습에 국민들은 허탈했다. 이런 와중에도 가을엔 자전거를 타고 사대강변을 달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모습이 출현했다.… 대한민국,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관심을 가져줘야 좋을지 알 수 없는 부조리의 총화가 되고 말았다.

대형서점 한복판, 눈에 잘 띄는 곳에 <마음에서 마음으로>가 진열되어 있다. 가볍게 읽을 거리를 찾고 있던 중에 잘 됐다 싶어 골라 잡았다. 칠순을 바라보는 작가 이외수는 소통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수도(修道)의 내공이 연륜과 맞물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거리낌 없는 대화가 가능하다. 직접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만 아쉬운 마음을 그의 저서로 달래보기로 했다.

생각하지 말고 느끼기, 알려하지 말고 깨닫기
▲ 마음에서 마음으로 표지 생각하지 말고 느끼기, 알려하지 말고 깨닫기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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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서 마음으로>는 작가 하창수가 이외수 선생과 허심탄회하게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예술, 인생, 세상, 우주 등으로 주제를 나누어 서로의 인생 경험담, 읽은 책, 저자나 학자 등으로부터 받은 영향, 세계관을 소개한다.

나는 학창시절 <칼>이나 <들개> 정도를 읽고 더 이상 작가 이외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작가가 언급한 이제하의 소설 <파조압충>을 예로 든 것 처럼, 내용이 엽기적이고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소문으로 들었던 그의 기벽과 소소한 일탈들도 좋아 보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예술이나 종교나 우주의 본질은 모두 사랑으로 동일하다.

이 책에서 이외수가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심안(心眼)과 영안(靈眼)이다. 육안(肉眼)이나 뇌안(腦眼)과 달리 심안과 특히 영안은 사람이나 사물을 깊이 사랑하다 보면 저절로 뜨이는 눈을 말하는데, 저자는 이것을 자연과의 교감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애정을 가지고 자연을 들여다 보면 자연이 전하는 메시지를 알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예술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깨달음과 관련한 메시지가 이외수를 이해하는 키(key)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왜 소설을 쓰는가?"라는 하창수 작가의 질문에 이외수는 문학관 안에 씌어 있는 말을 소개한다. "내가 소설을 쓰는 게 아닙니다. 문학이 나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외수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작가들은 누가 있을까. 김동인, 이상, 이제하, 김승옥 등을 꼽는다. 외국 작가들로는 보들레르, 로트레아몽, 에드거 앨런 포, 세르반테스, 다자이 오사무 등을 소개한다. 그들의 반어(反語), 부정, 저항의식에 반했다고.

'문학의 위기'라는 말에 대해서는 잘못된 표현이라고 지적한다. '문학으로 장사하는 자'들에게 닥친 위기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는 것.

가슴 안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많은 것으로부터 사랑 받을 수 있고, 많은 것을 사랑할 수 있는 가슴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 말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런 게 있을까?'에 대해 3천년전에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의 입을 빌려 한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경우든 인간은 아름답지 않은 것을 사랑할 수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덧붙인다.

젖먹이 때 친모를 잃은 이외수는 할머니의 젖 동냥으로 생명을 부지했다고 한다. 대여섯 살 소쿠리를 들고 밥 동냥을 다녔다는 그는 대학시절에도 쌀 대신 값싼 양파로 밥을 지어 먹으며 눈물을 흘려야 했을 만큼 가난했다고. 당연히 극한의 궁핍은 그의 작품 속에 녹아 들었을 것이다. '나는 인생의 반을 굶고 살았다. 이제 나머지 반을 잘 먹고 사는 데 대해 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여전히 하루 한끼 식사만 하고 있다는 그가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엔 세명의 대통령이 있다. 하나는 청와대에 살고, 하나는 화천에 살고, 나머지 하나는 텔레비전에 산다. 내가 진짜 부러운 대통령은 텔레비전에 사는,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대통령 '뽀로로'다. 이왕 대통령 소리를 들을 바엔 사랑 받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 – 본문중에서 -

이외수의 트위터 팔로어는 16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트위터 대통령'이다. 선거철만 되면 후보자들이 그를 찾는 이유다. PC통신 '채팅방'시절부터 소셜네트워크를 이용해 독자들과 소통해 왔으니 트위터 대통령이란 별명은 투자한 세월만큼의 내공이 내놓은 결과다. 서민들의 애환이나 민원을 트윗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치매노인 찾기, 희귀혈액 찾기, 사회단체의 좋은 아이디어 알리기, 정부기관의 부탁 등을 트윗으로 해결하기도 한다고.

"국민들은 이렇게 소통이 잘 되는데, 정부가 끼어들면 왜 소통이 더디거나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정부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말로만 소통해봐야 소용이 없다." 자신의 멘토가 '물'이라는 트위터 대통령의 걱정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걱정스러운 오명을 안고 있다. 우울증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에 대한 방비로 이외수는 세가지를 권한다. 첫째, 자연을 가까이 하자. 흙에 씨앗이라도 심어서 싹이 돋고 열매가 맺히는 것을 지켜보자고 한다. 둘째, 예술을 자주 접하자. 셋째, 종교를 갖자. 종교적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마음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북한의 개성공단 문제 얘기가 나오자 이외수는 아주 구체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가 과거 남북 긴장완화를 위해 애썼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대북한 지원을 '퍼주기'라고 몰아붙이는 데는 불만이다. 남의 나라가 도우면 지원이고, 같은 민족이 도와주면 퍼주기가 되는 논리로 어떻게 미래의 후손들에게 통일된 조국을 선물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우리가 경색이 되면 좋아지는 건 주변국가들 아닌가. 당연한 논리다. 어떻게든 남과 북이 화해하고 협력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걸 뜯어말리려고 한 게 그들이다. 그들에게 좋은 일 시켜놓고 이제 와서 지난 정부의 잘못이니 과오니 하면서 몰아 세우는 건 논리의 비약이다.'

이것은 이외수 만의 진단이 아닌 듯 보인다. 일본이나 중국이 북한의 주요지역을 자신의 생산기지로 만들려고 하는 움직임을 포착한 기사들이 이런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시사IN> 324호 34쪽을 보면 '북한 쫓던 한국 중국 지붕만 쳐다본다.'라는 경제기사가 그렇다. '중화권 국가가 북한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0%를 넘으면서 북한이 중국의 하청기지로 전락하고 있다. 남한이 북한을 고립시킨 결과다.'라는 설명이 기사제목에 따라붙은 설명이다.

<시사IN>은 또, 323호에서는 일본의 '원산프로젝트'를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있다. 기사의 제목은 '아베는 왜 한국을 어리석다 했나'이다. 일본의 기계, 화학공단을 북한에 옮기는 것이 원산프로젝트의 골자다.

북한의 원산이 일본의 기계 화학 등의 산업기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담은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있다.
▲ 시사인 323호 북한의 원산이 일본의 기계 화학 등의 산업기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담은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있다.
ⓒ 정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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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한 것은 세상을 위해 써야한다.

이외수는 아픈 아내를 위해 집을 사는 과정에서 미리 돈을 구하고 작품을 쓴 일(그렇게 태어난 작품이 <칼>이다.)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세상, 우리, 사회, 우주를 위해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공부의 본래 뜻을 거슬렀기 때문에 괴로워한 심정을 소개한다. 저자가 공부의 본래 뜻에 맞게 살기 위해 몸부림쳐왔다는 역설에 힘이 실리는 일화다.

저자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종교를 권하는 걸 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의 정체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표한다. 신의 전지전능함과 절대선(자비)에 대해서다. 전지전능하고 선(善)하다면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를 왜 그냥 놔두는 것일까. 신이 전지전능하지만 선하지 않던지, 선하지만 전지전능하지는 않던지 하다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사실 종교적인 삶을 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고민이 수렴되는 지점이다.

신비로운 초자연현상

천리안, 타심통, 공중부양, 유체이탈 등의 초자연현상에 대한 이외수의 견해는 '공부를 하다 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다만 이러한 초자연현상은 공부(수행)을 하는 과정에 일어나는 현상들이지 그 자체가 공부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한다.

19세기 인도의 '자가디스 찬드라보스'라는 과학자가 '금속도 생각한다'는 이론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형상기억합금 개발의 이론적 바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외수가 소개한 물질과 정신의 조화로운 결합이 빚어낸 결과의 예다.

채널링

이외수는 문하생의 의식을 달로 보내 달에 사는 지성체와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가 벽에 젓가락을 던져 꽂는 장면은 동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또 천리안이니 유체이탈이니 하는 것도 개인적 경험으로 인정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주인과의 채널링은 너무 황당했다. 그래서 읽고 또 읽어보았다. 그가 말한 바와 같이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사실이고, 채널링의 경험이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데 부정하려고만 들어도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에는 중국인구 정도의 지성체가 살고 있다고 한다. 주로 지하에서 살고, 극미량의 수분을 섭취하고, 그들은 '존재 자체가 행복'임으로 예술과 정치가 필요치 않다고 한다. 또, 달에 사는 지성체에게 성별의 구분이 없고, 종족보존은 포자로 생겨나게 한다고. 달 친구는 '이성이 깃대라면, 감성은 깃발'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이 달 친구들은 의식과 물질을 섞어서 동력(에너지)으로 쓴다고 하는데, 만약, "그리움도 동력이 된다."는 그들의 표현이 실제로 적용될 수 있는거라면, 시인이나 작가들은 인류를 위해 무한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쉽게 다가 오지는 않지만 흥미로운 표현이다.

그가 채널링을 통해 알아낸 바로는, 태양계안에 지성체가 존재하는 행성은 금성, 지구, 달, 화성 네 군데라고 한다.

욕망하는 자의 꿈은 이루어질 수 없어도, 소망하는 자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

이외수가 문학지망생들에게 하는 충고는 기본에 충실하고, 솔직하고,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고, 그리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또 꼭 해보고 싶다는 일탈에 대해서는 며칠 동안 동네 잔치를 하고 싶다고 한다. 닷새 밤낮을 즐기고 춤추고 노래하고 싶다고. 단, 광란은 아니라고 한다.

누군가 뺨을 때리면 자신은 상대방의 양쪽 뺨을 때려주겠다는 이외수는 "나는 외수지, 예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우리시대의 소통의 아이콘 이외수는 책의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하작가와의 대화 내내 '내 마음을 좀 알아달라'고 말하는 듯했다.

'부친은 6.25전쟁에 참전했고 자신과 아들도 군복무를 마쳤으니 가끔 자신에게 따라붙는 '종북'딱지는 가당치 않다'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공부를 하는 이유는 나만이 아닌 우리를 위해 쓰기 위해서'라는 것도 그렇다.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작품을 위해서는 자신의 방에 문대신 철창을 달아놓는 것도 절절한 자신의 염원을 실천하기 위함이다.

대학생, 교수, 각 종교 단체들 모두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이젠 먹고 사느라 바빴던 서민들도 서서히 현 정권의 정체를 알기 시작하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대 지지자들이었던 노인들과 여성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기사가 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권이 대선 당시의 불법적인 사건들에 대한 사과는 고사하고, 손바닥 뒤집듯 공약들을 흐지부지 만들고 있는데다가 종북이니 좌빨이니 하는 프레임을 자꾸 써먹으니 국민들이 피로를 느끼는 것일 수 있다.

이러다가는 국민들이 내보내는 에너지가 뭔가 만들어내고야 말 것이다. 제발 정치하는 사람들이 공부한 것을 우리와 사회와 세상을 위해 써먹기를 바란다. 이외수 선생이 말하기를 공부의 원래 뜻이 그렇다는데 아직 우리의 위정자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선거 때 이외수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어디에 마음을 쏟고 계신가.

덧붙이는 글 |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외수 지음, 하창수 엮음, 김영사, 2013년 10월 31일 초판1쇄 발행



마음에서 마음으로 - 생각하지 말고 느끼기, 알려하지 말고 깨닫기

이외수 지음, 하창수 엮음, 김영사(2013)


태그:#인생, #예술,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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