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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뽑힌 몸으로"



1980년대 당시 전두환에게 서울대에서 해직 당한 한완상 교수가 쓴 <뿌리 뽑힌 몸으로: 한국과 미국을 다시 생각한다>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동안 다정한 '산타 할아버지'로만 생각했던 미국이라는 국가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냉철한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서 또 내가 느낀 것은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 즉 인간의 뿌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가라는 것이었다. 하다 못해 비둘기나 연어도 '귀소본능'이 있다. 특히 연어는 뛰어난 귀소본능으로 유명하다. 연어는 산란기가 되면 강을 거슬러 올라가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가 알을 낳는다.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쳐 돌아오는 길은 연어에게 목숨을 건 여정이다. 산란기가 가까워지면 연어는 먹이도 입에 대지 않고, 그 상태로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고 때로는 폭포도 뛰어 넘다 생명을 잃는다.



뿌리를 찾고 싶은 연어의 욕망도 이런데 하물며 고등동물, 인류문명을 건설한 인간의 '귀소본능'은 연어나 비둘기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뿌리가 절단되고 출생기록이 세탁된 해외입양인들이 한국에 돌아와서 자신의 친부모 찾기 여정은 결코 쉽지 않다.



한 해외 입양인은 대부분 입양기관들이 입양인들에게 출생기록을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내게 하소연했다. 입양기관들이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출생기록 분실, 기록의 부정확 혹은 기록보존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여간 입양기관들이 기록보존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를 내세울 때, 많은 '귀소본능'을 가지고 입국한 해외입양인들은 희망을 잃고 친가족 찾기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



독일 입양인 정미영씨도 그런 귀소본능 때문인지 해외입양 보내진 지 30년 만인 지난 2008년 처음 한국을 방문한 이래 거의 매년 올해까지 5번째로 친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 5일 '뿌리의집'에서 만난 정미영씨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정미영씨 입양 보내지기 전
 정미영씨 입양 보내지기 전
ⓒ 정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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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영씨는 지난 1978년 11월 7일 오후 8시 35분 서울 관악구 봉천동 '이정자 조산소'에서 태어났다. 그 다음날인 11월 8일부터 다음 해인 1979년 3월 26일까지 정씨는 서울 삼양동에 있는 위탁시설로 보내졌다. 정씨는 자신의 이름 정미영은 친모 이름 '박미영'을 따라 입양기관에서 지어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후 1979년 3월 27일 정씨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해외입양 보내졌다.



정미영씨 모친 이름은 '박미영'씨로, 정씨 출생 당시 모친은 35세 부친은 40세였다. 지금 그녀 부모가 생존해 있다면 모친은 70세 부친은 75세로 추정된다.



정씨 부모님은 당시 딸 다섯이 있었고 정씨는 여섯 번째 딸로 출생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정씨 모친은 가정주부였고 부친 직업은 확실하지 않다. 정씨 입양기록을 보면, 정씨 부모는 당시 딸 다섯을 이미 양육하고 있었고 "아들을 갖고 싶은 욕망에서 출산을 원하였지만 늘 딸이었다"로 되어 있다. 하여간 아들이 아닌 딸로 태어난 죄 때문인지 아니면 친부모의 생활고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나 생후 4개월 만에 정씨는 독일로 해외입양 보내졌다.



"한국정부, 미혼모 적극 지원해 줘야"


 
ⓒ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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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영씨의 입양부모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대학과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던 독일 중산층 부부였다. 정씨는 현재 독일에 있는 직장에서 홍보분야 일을 하고 있다.



정씨는 지난 2008년 가을, 모국인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래 거의 매년 지금까지 5번째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정씨가 한국을 매년 방문하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친부모와 5명의 언니들을 만나고 싶어서다. 정씨는 6명의 딸들 중 자신만이 입양 보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친부모와 언니들을 언젠가 만날 날을 대비하여 정씨는 지금 서강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정씨가 친가족을 만나고 싶은 이유는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자신이 아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부모님과 언니들에게 알리고 싶어서다.



"그러니 부모님이 저를 입양 보낸 것에 대해서 미안해 하시거나 부끄러워하실 필요는 전혀 없어요. 다섯 분의 언니도 너무 만나고 싶습니다. 언니들의 외모와 행동이 나와 비슷한지도 너무 알고 싶군요."



정씨는 중산층 독일 가정으로 입양 보내졌고 해외입양인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편안한 삶을 살았지만 한국정부에 대해서는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한국정부는 미혼모들을 적극 지원해 줘야 합니다. 결국 미혼모에 대한 인색한 지원으로 생활고 때문에 미혼모들이 사랑하는 자녀를 입양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세계 10위권 세계경제대국인 한국이 아직도 해외입양 세계 3-4위 국가라는 것은 아주 부끄러운 일이지요."



* 정미영씨는 2014년 2월까지 한국에 머무르면서 친부모를 찾으려 하고 있다. 혹시 정미영씨를 알아보시는 분은 '뿌리의집'(3210-2451)로 연락 바랍니다.
 

태그:#정미영, #입양, #김성수, #뿌리의집, #미혼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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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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