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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평마을의 담장 벽화. 옛날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던 선비들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금평마을의 담장 벽화. 옛날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던 선비들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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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었다. 로마가 세계 최강이었을 때의 얘기다.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이었다. '비단길'로 불리는 실크로드도 있었다. 이 길은 중국과 서역을 이어준 교통로였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모든 길은 서울로 통했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했다. 국제행사도 서울에서만 열렸다. 비중이 큰 시험과 면접도 서울에서 행해졌다.

옛날 과거시험도 한양에서만 봤다. 하여, 한양이 아닌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머나 먼 길을 몇날 며칠 동안 걸어가서 과거를 봐야 했다. 차별이나 불평등이란 얘기도 꺼낼 수 없던 시절의 얘기다.

동천 둔치의 홍살문. 순천 과거관문길의 사실상 출발점이다. 고속국도 변에 자리하고 있다.
 동천 둔치의 홍살문. 순천 과거관문길의 사실상 출발점이다. 고속국도 변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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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을 따라 한양으로. 옛날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던 길을 따라가는 순천 과거관문길은 천변길과 마을길, 산길을 따라 이어진다.
 동천을 따라 한양으로. 옛날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던 길을 따라가는 순천 과거관문길은 천변길과 마을길, 산길을 따라 이어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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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과거관문길은 옛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길이다. 열심히 걸으면 보름 남짓 걸렸다고 하니, 대장정의 첫날 여정인 셈이다. 길은 순천시청에서 가까운 서문 성곽 터에서 시작된다. 1400여 년 전 순천읍성이 있었던 자리다. 지금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있다.

사실상 출발점은 서면 강천마을이다. 동천변 둔치에 세워진 홍살문에서 시작된다. 그 길에 섰다. 지난 11월 24일이다. 홍살문으로 들어서니 길손의 마음도 과거 보러 가는 선비로 변한다. 뭔가 비장한 각오라도 다져야할 것 같다. 시험공부는 열심히 했는지 되돌아보는 길목이다.

금평마을의 담장벽화. 마을 안길을 따라 그려져 있는 벽화가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금평마을의 담장벽화. 마을 안길을 따라 그려져 있는 벽화가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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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과거관문길. 북쪽으로 천변을 따라 가던 길이 마을길을 지난다. 담장벽화가 그려져 있는 금평마을 안길이다.
 순천 과거관문길. 북쪽으로 천변을 따라 가던 길이 마을길을 지난다. 담장벽화가 그려져 있는 금평마을 안길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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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관문길은 동천변 둔치를 따라 청소골로 올라간다. 왼편이 동천이고 오른쪽으로 마을이 펼쳐진다. 둔치로 이어지던 길이 금평마을에 이르러 마을안길로 접어든다. 마을 담장에 그려진 벽화가 눈길을 끈다.

과거시험을 주제로 한 벽화다. 봇짐을 메고 바쁘게 먼 길 떠나는 선비의 모습이 재밌다. 어찌나 발걸음이 빠른지, 선비의 무명 두루마기에서 스치는 바람소리가 나는 것 같다. 마을 어귀까지 배웅 나온 가족과 강아지의 모습도 보인다.

고즈넉한 마을길을 따라 걸어가니 과거 시제를 내리고 답을 써내려가는 선비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말을 타고 금의환향하는 선비의 모습도 보인다. 장원급제의 꿈을 이룬 뒤의 그림이다.

담장 벽화가 이야기 한 편이다. 흥미진진하다. 벽화를 보며 길을 걷는데 금방이라도 상투를 틀고 갓을 쓴 선비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방자를 앞세운 암행어사도 등장할 것 같다. 과거관문길이라는 걸 실감케 해주는 벽화다.

남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 옛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던 길이다. 천변길과 마을길을 지나 청소골 계곡을 건넌다.
 남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 옛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던 길이다. 천변길과 마을길을 지나 청소골 계곡을 건넌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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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한량처럼.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옛 선비들도 청소골 계곡의 물빛에 반해 하늘거리지 않았을까.
 때로는 한량처럼.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옛 선비들도 청소골 계곡의 물빛에 반해 하늘거리지 않았을까.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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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평마을에서 지본마을까지는 마을과 천변 둔치를 번갈아 걷는다. 길이 콘크리트로 포장돼 있다. 노은마을을 거쳐 판교마을까지는 흙길이다. 왼편에 끼고 걷는 동천이 잠시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진다. 오솔길도 예쁘다.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몸과 마음이 상쾌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활력이 솟는다.

판교마을에 들어서니 충의문과 경의문이 있다. 충의문은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켜 용감히 싸운 박성무 장군의 충성심을 기려 세운 것이다. 경의문은 일제 때 마을에 서당을 열어 후학을 가르친 이응구 선생을 기리고 있다.

추동마을의 공암. 옛날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이 반드시 거쳐 갔던 바위문이다.
 추동마을의 공암. 옛날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이 반드시 거쳐 갔던 바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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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 정혜사 대웅전. 순천 과거관문길에서 만나는 유일한 절집이다.
 계족산 정혜사 대웅전. 순천 과거관문길에서 만나는 유일한 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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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마을을 지나서 만나는 추동마을은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의 첫 번째 관문이다. 마을 앞으로 난 길에 무지개 모양으로 뚫린 바위가 우뚝 서 있다. 공암(孔岩)이다.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바위문이다.

이 바위문을 거쳐야만 과거급제를 한다는 속설 때문이다. 옛 선비들이 과거 보러 갈 때 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추풍령'과 대나무처럼 미끄러진다는 '죽령'을 피해 문경새재를 넘어갔다는 얘기와 흡사하다.

추동마을을 지난 길은 청소골을 거슬러 올라간다. 오른편으로 계족산 정혜사로 들어가는 오솔길이 보인다. 과거관문길에서 만나는 유일한 절집이다. 정혜사는 신라 경덕왕 때 보조국사가 세웠다는 설과 혜조국사가 세웠다는 설이 전해지는 오래된 절집이다.

대웅전이 보물 제804호로 지정돼 있다. 대웅전 계단 위에 용머리 모양의 조각이 독특하다. 계단 아래에는 태극무늬의 소맷돌이 남아 있다. 고즈넉한 산속의 절집 풍경 그대로다. 겨울 동안 두고 먹을 김장을 채비하는 보살들의 손길만 분주하다.

도로변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 순천 과거관문길은 천변길과 마을길, 숲길을 지나 한양으로 간다.
 도로변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 순천 과거관문길은 천변길과 마을길, 숲길을 지나 한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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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맑은 청소골. 순천 과거관문길이 거슬러 올라가는 계곡이다. 순천시내를 흐르는 동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물 맑은 청소골. 순천 과거관문길이 거슬러 올라가는 계곡이다. 순천시내를 흐르는 동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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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골의 물도 맑다. 청량한 계곡물에 속세의 번뇌와 고통이 하나씩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싱그러운 숲내음을 맡으며 마시는 물 한 모금이 향기롭다. 내 마음결까지 보드라워진다.

심원마을은 청소골의 끝자락이다. 해발 400m의 산간마을이다. 순천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동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여기에. 옛날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이 하루 쉬어가던 주막이 있었다.

마을에 관풍정이라는 우물이 있었다. 가뭄 때도 시원한 물이 솟아났다는 우물이다. 옛 선비들도 한양으로 가는 길에 이 물을 마시며 급제를 기원했다고 한다. 그만큼 효험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있다. 마을 노인들은 이곳을 '관풍쟁이'라 부르고 있다.

심원마을은 여러 해 전 산촌체험마을로 탈바꿈했다. 산세 좋은 계족산 자락에서 도라지, 더덕, 산야초 등을 채취하며 활쏘기, 전통놀이, 삼림욕을 체험할 수 있다. 산속 마을의 빼어난 풍광과 호젓한 정취도 좋다. 산막에 앉아 봇짐을 풀던 옛 선비 흉내를 내보는 것도 재밌다.

순천 서면 심원마을. 옛날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던 선비들이 하룻밤 쉬어가는 주막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산촌체험마을로 변했다.
 순천 서면 심원마을. 옛날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던 선비들이 하룻밤 쉬어가는 주막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산촌체험마을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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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서순천나들목으로 나가 왼편으로 17번국도를 타고 광양 방면으로 간다. 이 도로에서 840번지방도를 타고 청소골·정혜사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굴다리를 지나자마자 강변둔치에 홍살문이 보인다.



태그:#과거관문길, #청소골, #공암, #정혜사, #금평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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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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