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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우편함에 우편물을 넣고 있는 집배원 A씨의 모습.
 아파트 우편함에 우편물을 넣고 있는 집배원 A씨의 모습.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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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주 짧은 거리도 달렸다. 오토바이에서 내려 아파트 출입구까지 달렸고, 또 다른 출입구로 이동할 때도 잰 걸음으로 뛰다시피 움직였다. 다시 오토바이로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오토바이를 타고 움직인 곳은 바로 아파트 옆 동. 그는 다시 내려 같은 움직임으로 몇 개 출입구를 오갔다. 오토바이에서 내릴 때마다 그의 양손에는 흰 봉투의 우편물이 가득 들려 있었고 돌아올 때는 빈손이었다.

지난달 29일, 수도권 인근의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집배원 A씨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번개같이 빠른 손이다. A씨가 우편함 앞에 서면 오토바이에서 한가득 들고 내린 우편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의 담당구역인 이곳 아파트 단지에는 3000여 세대가 산다. 아파트 출입구마다 각 호수 별로 30~40개의 우편함이 설치돼 있다. TV에서나 본 적이 있는 집배원들의 빠른 손놀림을 실제로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우편물을 빠르게 우편함에 넣으면서도 계속 무언가를 신경 쓰고 있었다. 바로 출입구 안쪽 엘리베이터의 위치다. 그는 눈으로 우편물의 주소를 보고, 귀로는 엘리베이터 위치를 쫓았다. 한참 우편물을 분리해 넣고 있는 동안 누군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오면,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일반 우편물이 아닌 등기우편물을 직접 전달하기 위해서다. A씨는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도 아깝다"고 말했다.

A씨는 집배원 일을 늦은 나이에 시작했다. 올해로 5년차. 그 전에는 택시운전을 했다. 택시로 생계를 꾸리기 어렵겠다고 느낀 그는 집배원 시험에 응시했다. 그렇다고 우체국(우정사업본부)의 정직원이 된 건 아니다. 무기계약직인 상시집배원이다. 이들은 정규직에 결원이 생기면 경력을 인정 받아 정규직 집배원이 되기도 한다. A씨 역시 그걸 기대하고 있다. 현재 정규직집배원은 1만1000여 명 정도이고 A씨와 같은 상시집배원이 2200명가량 된다.

"집배원 업무량 많으면 우편 서비스 질은 떨어진다"

현장에서 지켜본 집배원들의 모습은 '시간과의 싸움', 그 자체였다. A씨의 담당구역은 3000세대, 세대당 3, 4명이 산다고 가정했을 때 그가 책임져야 하는 우편물의 주인만 1만명 정도가 된다. 그들에게 매일 우편물이 오는 건 아니지만  하루에 최소 2000통 가량을 처리한다. 선거철이나 명절이 되면 그 업무량은 몇 배로 늘어난다. 조금이라도 여유를 부렸다가는 그날 돌려야 할 우편물을 처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수가 없으니 퇴근시간만 늦어진다.

"선거철, 명절이 바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평소에는 여유롭냐? 전혀 아니에요. 요즘은 매일 매일 똑같이 힘듭니다. 최소한 오후 5시까지는 그날 물량을 다 처리해야 돼요. 그래야 우체국으로 들어가서 다음날 물량을 분류할 수 있으니까요. 5시에 들어가도 분류작업하고 나면 8시가 넘어요. 최소 8시에 퇴근하는 게 목표인데 잘 지킬 수가 없네요. 겨울에는 해도 짧아져서 우편물에 주소도 잘 안 보여요. 그러니 무조건 '빨리빨리' 할 수밖에 없어요."

A씨를 오전 11시부터 2시간가량 쫓아다녀봤다. 아무리 세대수가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파트라면 조금 더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넓지 않은 지역에 많은 세대가 모여 있으니 아무래도 이동거리가 짧아 보였다. 그러나 생각은 금방 달라졌다. 우선 A씨의 움직임이 따라다는 것만으로도 살짝 숨이 가빠졌다. 2시간도 안 되는 시간동안 A씨는 아파트 7개 동을 돌았다. 때맞춰 엘리베이터가 가까이 있으면 탔지만 다른 층에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계단을 뛰어 내려오기도 했다.

"아파트가 일하기 조금 쉬워 보이지만 다 나름의 어려움이 있어요. 특히 제가 일하는 이런 오래된 아파트 단지는 '오지'라고 불려요. 세대수가 워낙 많고 등기나 택배도 많아서 힘들어요.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집배원이 가장 힘든 건 인력대비 해야 하는 업무량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계속 같은 지역을 담당하고 일에 숙련도가 늘면 빨라지기야 하겠지만, 그게 거의 사람이 할 수 있는 한계까지 가야 그나마 좀 일이 되거든요. 인력에 여유가 없으니까, 누가 사고가 나거나 일을 빠지면 다른 사람들이 감당할 수가 없을 정도죠."

편지는 그나마 쉽게 처리하지만 등기와 택배는 무척 번거로웠다. A씨는 "한 지역을 오래 맡다보면 등기나 택배가 온 집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대충 알 수 있다, 중요한 등기가 뭔지도 알게 된다"며 "원래는 본인에게 직접 전달해야 하지만, 그러려면 몇 번은 와야 한다, 일을 제시간에 마치려면 그냥 경비실에 맡겨야 할 때도 많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제대로 제때 전달하는 게 우리 역할인데,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죽는다"며 "집배원들의 업무량이 너무 많아 우편서비스의 질 자체도 떨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퀵서비스, 음식배달보다 사고 많이 당해

우체국 집배원의 상징은 빨간 오토바이. 오토바이 사고로 재해를 입은 집배원의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우체국 집배원의 상징은 빨간 오토바이. 오토바이 사고로 재해를 입은 집배원의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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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의 점심식사는 오후 1시를 넘어서 시작됐다. 보통 우체국으로 돌아가 구내식당을 이용하지만 이날은 밖에서 먹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상가지역에 들어가자 그는 순댓국집에 오토바이를 대고 들어갔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주문을 했다.

"순댓국 두 개 주세요."

이날 A씨를 만나러 온 것은 최근 이어진 집배원들의 사망 소식 때문이다. 지난달 18일 충남 공주에서 근무 중인 집배원이 어지럼증과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후송됐지만 사망했다. 이어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지난 달 24일에는 경기도 용인에서 우편배달 도중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뇌사에 빠져 있던 집배원이 세상을 떠났다. 이 두 죽음을 기점으로 집배원들의 높은 노동 강도와 장시간 노동의 문제가 제기 됐고,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A씨를 찾아왔다. A씨도 사고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다.

"죽음은 정말 다른 거예요. 그냥 다치거나 아프면 나중에 볼 수 있잖아요. 근데 죽으면 이제 더 볼 수가 없어요. 작년에 저도 후배 하나가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어요. 원래 성격이 급한 녀석이었는데…. 일 빨리 끝내고 싶어서 수당도 안 주는데 아침 6시에 나와서 편지를 돌려요. 그날도 일 빨리 끝내려고 가다가 신호를 위반해서 사고당했죠. 신호위반을 한 건 본인 잘못이지만 이 일이 그렇게 급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면 어땠을까…,그런 생각을 하긴 합니다."

A씨 역시도 오토바이 운전으로 인한 사고위험, 장시간 서서 근무하면서 생긴 고통을 토로했다. 그는 "며칠 전 밤에 자다가 오른쪽 다리에서 쥐가 났는데, 아내가 자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 주물러줬다"며 "그렇게 주무르면 좀 나아져야 하는데 그날은 좀 나아졌다가, 또 쥐가 나고 그랬다, 일어나서 칼끝으로 피를 좀 빼고 나니까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우편물을 들고 넣는 작업이 계속 반복되면서 생긴 어깨통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업무중사고를 당하는 집배원 숫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0년 216명에서 2011년 300명으로, 2012년에는 350명으로 늘어났다. 절반 이상의 집배원들이 배달도중 사고를 경험해봤으며 이는 퀵서비스나 음식배달업보다 높은 수치다. 조사 대상자 246명 가운데 74.6%는 요통이나 어깨 결림 같은 근골격계증상을 호소했고, 이 가운데 43.4%가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의 상태였다. 또 어깨(68.5%), 허리(62%), 다리·무릎(65.4%)의 통증 정도가 높게 나타났다.

일주일에 100시간 근무하기도... "내가 안 나가면 다른 사람들 고생"

수도권 지역에서 일하는 집배원 정씨의 지난 9월 근무 시간. 추석연휴를 앞두고 하루 15~16시간씩 일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휴일이 많은 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9월에만 300시간을 넘게 일했다.
 수도권 지역에서 일하는 집배원 정씨의 지난 9월 근무 시간. 추석연휴를 앞두고 하루 15~16시간씩 일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휴일이 많은 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9월에만 300시간을 넘게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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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이러한 사고 위험이나 업무성 질환의 원인으로 장시간 노동을 꼽았다. "아무리 빨리 움직이고 쉬지 않고 일해도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근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자체적으로 출퇴근 시간을 기록한 자료를 꺼내 보였다.

추석을 앞두고 그는 보통 오전 7시 전에 출근을 했다. 퇴근시간은 오후 10시 30분에서 11시까지였다. 하루에 평균 15시간 많게는 16시간을 일했다. 추석같이 특수한 날이 아니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0월 한 달 동안 그는 휴일 이틀을 포함해 23일 출근을 했고 총 316시간을 일했다. 법정 근무시간인 주 40시간으로 따졌을 때보다 2배 가까이 일한 것이다. 하루에 보통 12~14시간을 일했고 9일은 15시간을 넘게 일했다.

"뭐 일 말고 다른 걸 하면서 살 수 있는 시간이 아예 없어요. 연가가 있기는 하지만 내가 안 나가면 다른 사람들이 더 힘들게 일해야 하는데, 눈치가 보여 다 쓸 수도 없고요. 누가 사고라도 나면 난리가 나요. 집배 일이 특수한 상황이 많거든요. 하던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가면 아무리 오래 일한 집배원이라고 해도 알 수가 없어요. 분류도 할 수 없고요. 한번은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한테 밤에 우편물 들고 가서 분류해달라고 시킨 적도 있어요."

노동자운동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집배원들은 한 해 평균 3379시간을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평균보다 훨씬 많이 일하는 일반 노동자들(연간 2200시간)보다 훨씬 많이 일하는 것이다. 명절이나 청구서가 몰리는 폭주기(매달 14~22일)에는 주당 평균 85시간을 일했으며 100시간을 넘게 일했다는 응답도 있었다.

"이건희도 쪽방촌 할아버지도 똑같이 담당 집배원 있다"

식사를 마친 A씨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에 들어온 지 30분 정도가 지났을 시점이었다.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더니 식당 밖으로 나가면서 주인에게 말을 했다. A씨는 카운터 뒤에 걸려 있는 벽시계를 가리키며 "저거 시간이 늦다, 시계가 빨리 가는 건 괜찮지만 늦게 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벽시계를 보고 다소 여유를 좀 갖다가 깜짝 놀란 모습이었다. 다시 담당구역으로 돌아가기 전 그는 다른 집배원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우리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가 나서야 하는데, 패배의식을 가진 동료들이 많아요. '어차피 안 될 거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는 말을 많이 해요. 그럼 아무것도 안 바뀌겠죠. 우리나라 모든 국민은 다 자기를 담당하는 집배원이 있어요. 정말 한 명도 빼놓지 않고 한 명씩 담당 집배원이 있어요. 그게 이건희든 쪽방촌 할아버지든 집배원은 무조건 한 명씩 사람들의 우편물을 책임져요. 우리가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잘 못해요. 우리가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말해야죠."


태그:#우체국, #집배원, #이건희, #우정사업본부, #오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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