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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와 함께 산 채로 파묻히는 / 소와 돼지를 보고
눈물 흘리는 것도 / 사람의 착한 마음이지만
실상을 알면 / 참으로 미안한 눈물이다

그 소들이 살았으면 / 그 돼지들이 살았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 좁은 우리 칸막이에 갇힌 채
외국산 인공조합사료 먹고 / 소는 30개월 / 돼지는 200일
경제성이 꼭지점에 달하면 / 구제역이 아니라도 천만의 말씀
도축장으로 화물처럼 출하된다

내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 아니 소와 소고기는 전혀 별개의 물질
소는 소고 소고기는 소고기 / A, A뿔, A투뿔, 한우, 수입육
계층 따라 등급별로 / 소고기 등심 기름소금에 찍으며
흐뭇하게 상추쌈에 배를 두드리는데

생의 고리와 순환은 / 오래전에 끊어진 채
이제는 전혀 별개의 일 / 눈물도 인정도 / 사양할 일이다
아무 실감도 없이 / 소는 차라리 라면 한 봉지만도 못하다

-'소는 차라리 라면 한 봉지만도 못하다' 전문(<썩은 시> 윤재철, 솔, 2013. 8. 12.)

동물복지는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자비이며 예의

지난 11월 24일 서울대공원 호랑이 사육장에서 먹이를 주던 사육사가 호랑이에게 물려 중태에 빠지는 사고가 났다. 사고의 원인은 안전 관리 소홀에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호랑이의 스트레스라고 보는 게 동물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이번에 사고를 낸 호랑이는 짝인 암컷 호랑이가 새끼를 낳아야 해서, 격리되는 과정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격리된 서식 공간도 좁은 여우 우리를 임시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시베리아 너른 대지를 달려야 하는 맹수를 좁은 동물원 우리 안에 가두어 놓은 것 자체 말고 달리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사람과 동물이 함께 행복한 세상을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동물복지의 모든 것
▲ <돼지도 장난감이 필요해> 사람과 동물이 함께 행복한 세상을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동물복지의 모든 것
ⓒ 슬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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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안타까운 현실은 박하재홍이 쓴 책 <돼지도 장난감이 필요해>(슬로비)에서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은 동물복지에 관한 책이다. 동물복지는 쉽게 말해서 '사람의 통제로 살아가는 모든 동물들이 기본적인 안정을 누릴 수 있도록 규칙과 제도를 정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덧붙여서 동물복지는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자비이며, 인간을 돕고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야생 돌고래는 칭찬에도 춤추지 않는다

이 책에는 지난 7월에 고향인 제주 바다로 돌아간 제돌이 이야기가 있다. 제돌이는 멸종 위기종인 남방큰돌고래로 한국에선 제주해역에만 100여 마리 정도 서식하고 있다. 제돌이는 2009년 5월, 그물에 걸려 어민들에게 포획되었다. 남방큰돌고래는 국제보호종이므로 잡는 것 자체가 불법인데, 제주의 한 돌고래 공연 업체에게 오랫동안 매수당한 어민들이 제돌이를 포함해 총 11마리를 팔아넘긴 것이다.

해양경찰청에서 이 어민들과 업체 대표를 붙잡아 법정에 세웠지만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6마리나 목숨을 잃었다. 재판이 진행되어도 잡혀온 돌고래는 공연에 투입되었고, 연중무휴에다 하루 4차례나 계속되는 강행군이라 사망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제돌이는 마침 서울대공원에서 전문적인 조련사가 돌보아주었긴 했지만, 야생에서 수십 킬로미터를 다니는 돌고래에게 좁은 수족관은 고통스러운 공간일 뿐이다. 돌고래는 특히 소리에 민감하여, 물 밖에 있는 임신부의 태아 심장 소리를 물 속에서 들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관객들의 박수소리, 환호소리, 수족관 기계소리는 돌고래에게 얼마나 참기 힘든 소음일까. 그래서 돌고래 대부분이 스트레스성 위궤양을 앓고 있어서 조련사들이 늘 위장약을 준비해둔다고 한다.

나는 문득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조련사의 칭찬에 돌고래가 정말 그렇게 춤을 추고 좋아했을까. 반대로 고미숙은 칭찬은 고래도 멍들게 한다고 함으로써 칭찬의 폐해를 지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춤이든 멍이든, 이는 다 결국 인간의 관점일 뿐이다. 과연 제주 앞바다를 장엄하게 유영하는 야생의 돌고래가 인간의 칭찬 따위에 연연하여 춤추고 좋아하며 더 열심히 하려다가 멍들겠는가 말이다.

코끼리의 탈출, '부활'의 김태원이 응원하다

이 책은 또한 쇼에 동원되는 코끼리의 고통도 보여준다. 조련사는 '따거'라고 부르는 뽀족한 갈고리를 가지고 귀 뒷부분처럼 연약한 피부를 찌르면서 조종하며, 콘크리트 바닥은 관절에 무리를 주어 발을 상하게 한다고 한다. 묘기를 가르치기 위해 매질을 강하게 하거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심지어 전기 충격을 가하기도 한다.

코끼리가 반항을 멈추고 무력감에 빠져야만 쇼에 나간다. 힘든 공연을 감당하다가 가끔 눈을 크게 부릅뜨기도 한다는데, 이는 참을 수 없는 스트레스가 밀려올 때 그렇다고 하니, 관객들의 즐거운 환호성에는 코끼리의 고통스런 비명도 함께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마침내 코끼리가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2005년의 일이다. 인천 송도유원지에서 공연하다 서울어린이대공원으로 옮겨온 코끼리 여섯 마리가 멀리 옮겨올 때 이미 심리적으로 불안해진 상태에서, 충분한 휴식 없이 바로 공연을 투입되어 하루 5번씩 강행군을 했다. 돌고래처럼 자아를 인식할 줄 아는 코끼리는 저자의 표현대로,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4월 어느 날, 우리 밖에서 행진하던 중 느닷없이 코끼리 한 마리가 도망쳐나갔고, 다른 코끼리들도 용기를 내어 따라갔다.

이 코끼리 탈주극은 시시하게 끝났다. 본래 겁이 많은 코끼리가 대범하게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탈출한 지 몇 시간 만에 다 잡혀 들어왔다. 그 일로 9일간 공연은 중단되었지만 대공원측은 속죄의 의미로 하루 5번 공연 중 첫 번째 아침공연은 무료로 개방하여 많은 관객을 모았다. 코끼리의 고통은 계속되었지만.

록 밴드 '부활'의 리더 김태원은 코끼리 탈출 뉴스를 듣고 영감을 받아 연주 음악을 작곡했다. <4.19. 코끼리 탈출하다>라는 곡이다. 김태원은 탈출을 시도한 코끼리들을 응원하고 싶어서, 자유에 대한 갈망과 환희를 전자기타의 선율로 웅장하게 표현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제 동물을 괴롭히며 즐기는 오락문화는 그만 하자고 호소한다. 이미 오스트리아, 코스타리카, 이스라엘, 싱가포르 등의 나라에서는 야생동물을 이용한 쇼를 금지하였다고. 다행히도 2013년 6월 한국의 첫 '동물원법'이랄 수 있는 환경부의 법률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동물복지가 실현되어 거만한 지배자가 힘없는 피지배자를 가둬 놓고 희희낙락하는 정서는 동물원에서 영영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육식은 동물들의 불행을 함께 먹는 것

이 책엔 전시동물의 열악한 복지실태와 함께 공장식 축산으로 고통 받는 농장동물, 반려동물, 실험동물, 그리고 웅담 채취용 보신동물 등 오직 인간의 탐욕과 오락을 위해 희생되는 무수한 동물들의 처참한 처지를 함께 보여준다.

가수 이효리는 유기견인 순심이를 입양하고 채식을 하는 연예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효리는 그동안 자신이 육식을 하지 않는 이유로 공장식 축산을 들었다. 지나치게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길러진 동물들의 고기는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번에 이 책에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항생제에 관한 것이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비좁고 더러운 축사환경 때문에 발생하는 전염병을 예방할 목적으로 사용하였는데, 사용하고 보니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사료 1톤에 항생제 2, 3kg을 섞었더니 돼지, 소, 닭의 성장 속도가 50%나 증가했다는 사실! 이것이 1950년의 일이고 그 이후로 항생제만 한 위력을 지닌 물질은 여태 개발되지 않았다. 이쯤 되면 항생제란 놈은 무시무시한 괴물인 게 분명하다.(본문 26쪽)

항생제는 단순한 항생제가 아니라 엄청난 성장촉진제였던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저자에 따르면 2002년 한 해 축산물 1톤에 항생제 910g을 사용했는데, 이는 세계 최고 수준. 2위를 차지한 일본보다 2배, 스웨덴에 비해 30배나 되는 양이라고. 2006년 조사에서도 호주의 37배에 달했고, 공장식 축산으로 악명 높은 미국보다도 2.5배나 높았다고.

세계적인 아이스크림 다국적기업인 베스킨 라빈스의 상속자 존 로빈스는 상속을 포기하고 육식 반대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의 책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인간이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은 고기만 먹는 것이 아니라, 그 동물의 불행도 함께 먹는 것이다.

동물에 대한 감수성은 곧 인간에 대한 감수성

또 하나는 가수 이효리의 순심이 입양이 주는 메시지다. 즉, 반려동물을 기르고 싶으면 사지 말고 입양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유기동물의 수가 2011년 공식 집계로 9만6천 마리가 넘은데다, 애완동물 판매 시장의 과열로 '강아지 공장'이 생겨나 어미 개를 가둬놓고 쉴 새 없이 새끼를 낳아 팔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입양한다는 것은 수많은 유기견들을 구제하면서 '강아지 공장' 같은 애완산업을 물리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스페인에 투우 경기가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2004년 3월에 바르셀로나에서 투우를 금지하는 법률이 통과되었고, 2011년 9월, 마지막까지 경기를 고수하던 투우장도 문을 닫게 된다. 전통문화라는 세계적 명성도 동물복지라는 보편 가치 앞에 허물어진 사례인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읽고 한국의 소싸움과 보신탕이 민속경기, 전통음식문화라는 이름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걸 떠올렸다. 이미 닭싸움과 개싸움은 금지되었지만, 아직 소싸움이 남아 있는 것은 민속경기라는 이유 때문인데, 스페인 투우 금지조치를 우리도 배워야 할 것이다. 보신탕 문화 역시 동물복지라는 관점으로 다시 한 번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돼지도 장난감이 필요해>의 저자 박하재홍은 래퍼이다. 동물에게 친절한 인류를 꿈꾸는 래퍼. 책 중간 중간에 동물과 관련된 랩 가사도 실려 있다. 심각한 문제이지만, 동물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떠올리게 하며, 깊은 정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다양한 사례들과 통계자료들이 동물복지의 거의 모든 것을 다 담고 있으면서도 딱딱하지 않고 따뜻하게 읽을 수 있다. 최재천 교수도 추천사에서 '가뭄에 단비 같은 책'이라고 했으니.

"한 국가의 위대함, 그리고 도덕적 수준은 그 나라의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일찍이 간디는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동물에 대한 감수성은 곧 인간에 대한 감수성이 아닐까. 동물들과 일상적으로 접촉하면서 사는 지금, 동물은 우리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가 인간답게 잘 살기 위해서는 동물도 잘 살 수 있도록 일상적으로 배려해야 한다.(본문 213쪽)

덧붙이는 글 | <돼지도 장난감이 필요해>, 박하재홍, 슬로비, 2013년 10월 28일, 1만 5천 원



우리가 알아야 할 동물복지의 모든 것 - 돼지도 장난감이 필요해

박하재홍 지음, 김성라 그림, 슬로비(2013)


태그:#동물복지, #제돌이, #코끼리 탈출, #김태원, #반려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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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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