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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셋, 아들 둘?
▲ 가족계획 딸 셋, 아들 둘?
ⓒ 꺽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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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나 오늘 늦어. 데리러 안와도 되니 먼저 집에 가."
"회식이야?"
"아니 그냥… 강제성이 숨겨진 자발적 야근."
"너무 늦지 않음 전화해. 데리러 갈게."

그날따라 이상하게 마음이 삐뚤어져 월급쟁이들은 마치 '무제한요금제' 같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매달 월정액을 지불하고 무제한으로 일을 시키는 회사.'

월급쟁이는 가족계획도 보고서로 제출해야 돼?

실은 점심 먹고 노곤해질 때 즈음 부장으로부터 황당한 안타를 맞았다.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옆 팀 여직원이 "부장님~ 저 둘째 가졌어요"라며 비음 잔뜩 섞인 목소리로 쑥스럽다는 듯 몸을 배배 꼬다 갔다. 여직원의 임신을 친정 부모처럼 들떠 기뻐해주던 부장은 그 여직원이 나가자마자 반색하며 나에게 무미건조하게 이야기했다.

"이대리, 아직 임신할 때 아닌 거 알지? 일 좀 해놓자?"

당시 나는 임신 계획이 없었음에도 부장의 말이 대포알이 되어 가슴을 뚫어놓았다. '무제한요금제같은 월급쟁이는 가족계획도 보고서로 제출해야 돼?'라는 생각을 하루 종일 머리, 가슴에 품고 미간에 인상을 쓴 채 앉아있었다.

그에게는 '강제성이 숨겨진 자발적 야근'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실은 그냥 '자발적 야근'이었다. 이런 기분으로 집에 들어갔다가는 그와 불필요할지도 모르는 다툼을 치러야 할 것 같아서다. 동료직원들과 저녁은 먹는둥 마는둥, 일은 하는둥 마는둥, 애꿎은 메신저 창만 내렸다 올렸다 하다 보니 어느새 오후 10시가 훌쩍 넘었다.

마음이 아직 풀어지진 않았지만, 집에 가야했다. 그가 나를 데리러 왔고 나는 여전히 미간에 주름이 져 있었다. 그는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았지만, 그에게 부장이 내게 던진 말을 고스란히 전해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아직 가족계획에 대해 이야기도 해보지 않았고, 그는 어떠할지 모르지만 나는 당분간 자녀계획이 없었다. 원수같은 부장의 말이 화근이 되어 그와 내가 가족계획을 운운하는 다툼 따위는 만들어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기싫은일은 정말하기싫어싫어(어느새,도롱뇽中)
▲ 평화 하기싫은일은 정말하기싫어싫어(어느새,도롱뇽中)
ⓒ 꺽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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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꺼.워?"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오전 2시 즈음이었다. 온몸에 식은 땀이 흐르며 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매일 오전 7시면 출근을 하는 피곤한 그를 이 정도 일로 구태여 깨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침대에서 내려온 순간 눈앞이 깜깜하고 머리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내 몸도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오빠!!!"

다급하게 부르는 내 목소리에 깨어 보니 나는 방바닥에 반쯤 쓰러져 앉아있었다.

"뭐야, 어디 아파? 왜이래!"
"모르겠어. 춥고 배도 살짝 아픈 것 같은데… 그것보다 너무 어지러워서. 매스꺼워."
"???!!! 매.스.꺼.워?"

아마도 그는 나보다도 드라마를 많이 본 것 같다. "매스껍다"는 말 한 마디에 나를 쳐다보는 눈빛은 "혹시…"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니거든. 일단 나 좀 세워봐."
"병원 가야는 거아냐? 약은 좀 먹기 그런데…."

나는 1시간 내내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저녁에 먹었던 음식물을 고스란히 뱉어냈고, 몸의 한기는 더해갔다.

"야야, 병원가자. 얼굴 좀 봐. 하얗게 질렸다고!"

나는 그의 등에 업혀 집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 나는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웠는데 그의 등에 업혀있는 동안 너무 웃음이 났다. '아직 살아있긴 하네. 이 추운 날 맨발로 업고 뛰는 것 보니'부터 시작해서 '대학병원 응급실? 있어 보인다. <그레아나토미>같은 풍경이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병원에서는 열이 너무 높아 급하게 해열제를 놓아주었고 그 추운 날 이불도 못 덮게 했다.
그는 간호사에게 "응급실에선 오래 일하셨나봐요?"에서부터 시작해서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못했다.

"오빠, 창피해. 그러지마 좀. 어련히 알아서 해주겠지."
"야… 요즘 응급실에서 의료사고가 얼마나 많은 줄 아냐? 그리고 이 시간엔 닥터들도 자다 일어나서 비몽사몽이라 더 위험해."

그는 정말 드라마와 뉴스를 너무 많이 봤다.

"아프지마... 심장이 철렁했어"

나는 피검사, 소변검사, x-ray까지 찍어보았지만 별다른 원인을 찾아볼 수 없었고,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슬쩍 바랐던 '임신'도 아니었다.

"큰 이상은 없어 보이네요. 혹시 댁에 돌아가셔서 또 이런 증상이 있으시면 그때는 외래로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우리는 오전 3시부터 11시까지 병원에 있어야했다. 그런데 다섯 걸음 정도 걸었나. 그의 진술(?)에 따르면 나는 눈에 초점을 잃은 채 얼굴이 정말 A4용지처럼 하얗게 질려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고 한다.

나는 해열제 부작용이 있는 '여린 여자'였던 것이다. x-ray 찍으러 갈 때 어지럼증이 있었는데 아픈 것 때문에 어지러운 것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때 의사를 불렀어야 했다.

그대로 나는 또 응급실침대에 누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손끝에서 그의 따뜻한 체온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보호자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 사람이 흐릿하게 보였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 그는 의사와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성격을 고려해보건대, '해열제 부작용 있는 사람에게 해열제를 놔주면 어쩌냐. 처방이 잘못된 것 아니냐. 앞으로 부작용 증상이 있으면 어쩔 거냐' 등이었을 것이다. 과거력이 없었던 나였기에 의사들이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텐데….

졸고 있는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서로 애절했던 시간들이 그의 얼굴 위로 필름처럼 지나간다. 그는 결혼 후 좀 나이들어 보이는 것 같다.

'참 많이 사랑했던 사람인데… 나는 지금도 누구 못지않게 그를 아직 사랑하고 있을텐데….'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죽 한 그릇을 사고 짜장면을 한 그릇 배달시켰다. 어제부터 토해내느라 속이 텅 빈 나에게 그는 인심 쓰듯 간이 되지 않은 죽을 주었고 그는 윤기가 빛나는 수타짜장면을 후루룩 소리와 함께 먹었다.

부끄러운지, 짜장면에게 얘기하는 건지, 고개를 숙인 채 그가 말했다.

"아프지마. 너 아픈 거 보고 있으니 심장이 철렁했어. 그리고 내 짜장면 자꾸 먹고 싶다고 쳐다보지마. 밀가루 먹고 또 아프면 내가 또 너 업고 뛰어야하잖아. 실은 좀 무거웠어."

미우나 좋으나 검은머리 파뿌피될때까지..
▲ 언제나신혼 미우나 좋으나 검은머리 파뿌피될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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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결혼,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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