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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모과나무
 우리집 모과나무
ⓒ 최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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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자그마한 마당에 있는 모과나무 한 그루. 올해도 제법 노란 모과 몇 개가 주렁주렁 열렸다. 저절로 떨어진 모과를 주워 현관 입구 선반에 올려놓고, 들락날락하면서 코를 호강 시켰다. 모과 향기를 맡으니, 내 유년시절의 잠깐 행복했던 때가 떠올랐다.

국민학교 2학년때, 동네 친구들 중에 아주 큰, 일본 가옥에 살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 집 대문을 들어서면 커다란 모과나무가 우리를 맞이했다. 아름드리 모과나무는 떠억 버티고 서서 아홉 살짜리 꼬마 계집아이들을 아래로 내려다 봤다.

우리는 그 아이 집, 멋진 일본식 정원에서 뛰어 놀거나 일본식 다다미방에 들어가 소꿉놀이를 했다. 넓은 다다미방에 큰 방과 작은 방을 꾸미고, 어설픈 서울 말씨를 흉내내며 엄마 아빠놀이를 했다.

하지만 그 친구네 집에는 엄마가 없었다. 언제나 할머니가 친구와 남동생을 챙기고 있었다. 가끔 우리가 어스름할 때까지 놀고 있으면, 덩치가 크고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한 남자가 약간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들어오곤 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제풀에 놀라 인사고 뭐고 후다닥 뛰쳐나와서 집으로 내달렸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형사라고 했다.

난생처음 본 샌드위치

샌드위치. 네모난 샌드위치.
 샌드위치. 네모난 샌드위치.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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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 친구가 자기 엄마 집으로 놀러가자고 했다. 나는 왜 엄마 집이 따로 있는지 이상했지만 친구가 하자는 대로 졸래졸래 따라갔다. 우리 걸음으로 30분 정도의 거리였다. 친구 엄마는 무척 반가워했다. 젊은 엄마는 우리를 방에 앉혀놓고, 처음 보는 음식을 내왔다.

곱게 접은 헝겊냅킨에
반짝반짝 빛나는 은빛 포크에 
눈부시게 새하얀 접시에
네모 난 샌드위치!

나는 그때 난생처음 샌드위치를 맛봤다. 멋진 현대식 엄마를 둔 친구가 정말 부러웠다. 큰 밥 그릇에 보리밥 꾹꾹 눌러 담아주시던 우리 엄마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이혼해서 각자 따로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혼자 사는 우리 엄마가 꽃무늬가 있는 앞치마를 두르고, 근사한 샌드위치를 만들어줄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오니 그날 저녁도 우리 집 밥상에는 시커먼 보리밥과 쉬어빠진 김치와 매일 먹는 맛 없는 반찬뿐이었다. 나는 입이 삐쭉 튀어나와 "안 묵어!" 하고 숟가락을 내려놨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째려보시고, 동생들은 들은 척도 안하고 각자 숟가락을 들기에 바빴다. 엄마가 한 마디하셨다.

"입이 밥 빌러 가지 밥이 입 빌러 가냐? 안 물라카모 묵지마라! 가시나야!"

나는 바로 집을 나와 동네를 한 바퀴 배회했다. 하지만 금방 배가 고파져서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 말대로 입이 밥 빌러 간 것이다.

살결이 하얗고 부끄럽게 웃던 내 유년의 친구. 멋지고 세련돼 보이던 친구 엄마.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지낼까. 얼마 전, 오십 중반 나이에 어린 시절 그 동네에 가봤다. 넓은 정원이 있던 일본식 가옥이 보였다. 마등 가운데 시멘트 담이 생겨 두 집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문득 친구가 떠오른다. 친구야! 가을이 달아나도 외롭지 않는 모과향기처럼, 늘 엄마와 함께 오래 오래 건강하기를 행복하기를.


태그:#일상, #추억,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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