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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전북 고창 선운사에 단풍 나들이를 갔습니다.
 부부가 전북 고창 선운사에 단풍 나들이를 갔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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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구경 가요. 단풍을 봐야 한해를 보내는 거 같아."

지지난 주말, 젊은 날에 경북 운문사의 청아하고 찰랑찰랑한 여승의 독경소리와 경기도 광릉수목원의 고요를 사랑했던 아내의 요구가 있었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눈치 주는 아내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약이 잡혀 있어 어쩔 수 없는 상황. 그래서 지난 주말에 가기로 예약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도록 콕콕 찜했습니다.

드디어 지난 일요일(11월 10일), 아내와 부부 단풍 구경을 가게 됐습니다. 부부 여행이지만 아이들에게 한 차례 권한 다음, 아이들의 거절 후 바로 단념하고서. 장소는 매년 갔던 전북 고창 인근으로 잡았습니다. 내장산·선운사·강천사 등 유명 단풍 명소가 많아 쉽게 합의됐습니다. 고창은 무슨 이유인지 끌리는 매력이 많은 곳입니다. 아마, 정신적 위안을 받기에 충분했나 봅니다.

부부의 단풍 여행은 올해로 3년째입니다. 4년 전엔 저희 가족과 지인 가족이 함께했는데 그때의 느낌이 너무 좋아 부부만의 단풍 여행을 기획하게 된 것입니다. 부부만의 단풍 여행 계기는 큰 아이가 중학교 들어 간 후부터 아이들에게만 시간 쏟지 말고 부부도 서로 챙기며 살자는 의미였습니다. 부부의 사랑은 본디 이래야 하는 것 아닐까, 싶어서요.

룰루랄라~, 음악을 켜고 선운사로 향했습니다. 부부, "♩♬ 오빤 강남스타일 ♪♬~" 흥겨운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몸을 흔들며, 기분을 맘껏 높였습니다. 더불어 낭만 가득한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까지 들으며 연애시절 기분을 되찾으려 노력했습니다.

"남자와 함께 있으면 가슴 설레야 하는데, 설렘 대신 편안함이 남은 이유는 뭘까?"

아내의 물음은 제게 위안이었습니다. 한편으로 미안했습니다. '사랑'이 '의리'로 자리바꿈된 결과랄까요. 지금은 연애 시절처럼 가슴 떨린 풋풋한 사랑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층 성숙해진 사랑 탓에 "여보 사랑해"라는 말 대신 손만 잡아도 의리가 팍팍 통하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시죠? 의리는 배신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걸….

"은행잎은 다 떨어졌네, 좋긴 한데 너무 아쉽다!"

은행잎은 거의 떨어지고 나무는 벌거숭이로 변했습니다. 대신, 땅에 노란 단풍물이 들었습니다. 살신성인의 정신이 깃든 은행 잎 길을 걸었습니다.
 은행잎은 거의 떨어지고 나무는 벌거숭이로 변했습니다. 대신, 땅에 노란 단풍물이 들었습니다. 살신성인의 정신이 깃든 은행 잎 길을 걸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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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은 색이 어울려야 제맛이 납니다. 빛나는 사람은 사람 속에서 더 빛나는 것처럼. 그래서 성인들이겠죠.
 단풍은 색이 어울려야 제맛이 납니다. 빛나는 사람은 사람 속에서 더 빛나는 것처럼. 그래서 성인들이겠죠.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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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은 아이들도 뛰어 놀게 합니다. 그래서 자연이겠죠.
 단풍은 아이들도 뛰어 놀게 합니다. 그래서 자연이겠죠.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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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입구부터 마지막 단풍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단풍의 끝물이란 말이 어색할 지경이었지요. 매표소에서 표를 사는데 만 원권 등 지폐가 엄청 어지럽게 놓여 있더군요. 수많은 단풍 인파가 다녀간 결과였습니다. 잘 가꾼 자연이 이렇게 인간에게 보답한 것입니다. 자연과 그 자연을 사랑한 인간의 상부상조 '보시'였습니다. 역시, 자연은 배신하지 않습니다.

"노란 은행까지 같이 보러 왔는데, 은행잎은 다 떨어졌네. 좋긴 한데 너무 아쉽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은행 단풍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대신 은행을 주웠습니다. 부부가 함께 걸으며 같은 곳을 같은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니까요. 우리는 단풍이 뚝뚝 떨어진 울긋불긋 선운사 길을 걸었습니다. 아내가 팔짱을 꼈습니다. 보통 손잡고 걷는데 팔짱을 끼니 또 다른 기분이었습니다. 부부의 사랑은 언제나 행복!

단풍 인파가 많은 대로 좋았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만큼 많이 늘어난 거라 여겼습니다. 땅에 떨어진 단풍조차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이 계절. 낙엽 밟는 소리 바스락거림이 좋았습니다. 낙엽을 밟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낙엽 밟는 소리는 잊었던 감성과 심금을 되살리는 선율로 다가왔습니다.

"여보 사진 찍어 줄까?"
"아니. 내가 찍으면 단풍 버려요."
"그 무슨 소리? 당신 찍는 순간, 아름다운 그림이 될 거야."
"역시 자연은 색이 모여야 더 아름다워!"

자연과 하나 된 아내 얼굴은 갑작스런 추위에도 화사했습니다. 자연 속에 파묻히니 자연이 된 것이죠.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여인이었습니다. 언제나 갖는 생각 하나. 내 인생 최고로 잘한 선택은 아내와의 결혼이었습니다. 아내는 살면 살수록 감탄 자아내게 하는 그런 여인이었습니다.

"♩♬~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

"곁님이 곁에 있을 때 잘하시게, 후회하지 말고!"

선운사의 청초하고 깊은 단풍이 물 속으로 뜩뚝 빠져 들었습니다.
 선운사의 청초하고 깊은 단풍이 물 속으로 뜩뚝 빠져 들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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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내려 앉자, 물은 드디어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풍이 내려 앉자, 물은 드디어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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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가슴 시린 단풍을 가슴에 새기다니...
 이토록 가슴 시린 단풍을 가슴에 새기다니...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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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여기서 한 부부를 만났던 게 생각 나네요."

선운사에 서면 자연스레 한 부부를 생각합니다. 산을 넘어오던 그 부부를 단풍 속에서 발견하는 순간, 서로 웃음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의 예기치 못한 만남은 반가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는 그녀가 남긴 사랑을 곱씹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언제나 하는 말은 애틋합니다.

"곁님이 곁에 있을 때 잘하시게. 후회하지 말고!"

이 말을 새기며 삽니다. 그러나 잊기 일쑤입니다. 단풍은 추억을 되살아나게 하는 무언의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설까, 매년 부부 단풍 여행을 하게 됩니다. 이제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던 단풍도 사라져 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남았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힘내고 살아갈 의무가 우리에겐 있습니다. 단풍은 또 한해의 삶을 지탱하는 힘입니다. 잠시 도종환님의 시를 떠올렸습니다.

단풍 드는 날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도종환 시인의 단풍과 마찬가지로 부부의 사랑도 그렇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인 집착을 아낌없이 버리고, 삶에서 진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때,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가장 숭고한 사랑으로 물드는 날이 될 거란 걸….

단풍이여, 이 여인을 영원히 사랑하게 해주소서

선운사는 단풍이 불타는 중이었습니다. 부부의 마음도 다시금 사랑으로 불타게 했습니다.
 선운사는 단풍이 불타는 중이었습니다. 부부의 마음도 다시금 사랑으로 불타게 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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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도 단풍은 단풍입니다. 나이들어도 사랑이 사랑이듯...
 떨어져도 단풍은 단풍입니다. 나이들어도 사랑이 사랑이듯...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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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은 삶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단풍은 삶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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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가을을 붙잡아 돌려 세워 억지로 얼굴을 본 느낌이랄까! 이제 깊은 가을 단풍을 봤으니 됐어요."

선운사 단풍을 본 아내의 소감입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이 나오는지 감탄입니다. 결혼 후, 두 아이를 낳아 기르느라 정신없이 살다보니 아내의 감성을 잊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반성이 뒤따를 수밖에…. 그렇더라도 아내의 한 마디를 기다렸습니다. 그 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둘이 저녁 먹으면서 물었습니다.

"당신, 단풍 보고 온 소감이 어때?"
"아까 말했잖아. 같이 해줘서 고맙다는 말이 듣고 싶어? 그래도 안 하고 싶어."
"왜?"
"고맙다는 말을 하는 순간 고마움이 단풍처럼 떨어질까 봐."

우문현답(愚問賢答)이었습니다. 남자들이란…, 꼭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사랑은 확인하고 받는 것보다 그저 원 없이 바람 없이 주는 게 행복인 것을…. 단풍이 한 인간을 철들게 합니다.

'단풍이여, 이 여인을 영원히 사랑하게 해 주소서!'
 
단풍 지고 나면 또 싹이 나겠지요. 사랑과 윤회의 이치가 단풍에서 나온 듯합니다.
 단풍 지고 나면 또 싹이 나겠지요. 사랑과 윤회의 이치가 단풍에서 나온 듯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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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단풍, #선운사, #사랑, #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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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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