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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시골학교 독서모임 교사들이 펴낸 <선생님의 책꽂이(작은숲)>.
 청양 시골학교 독서모임 교사들이 펴낸 <선생님의 책꽂이(작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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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글쟁이 교사 최은숙 선생에게 새로 나온 책 한 권을 받았다. 최 선생과 함께 충남청양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독서모임 교사들이 2006년부터 매달 한 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여 글로 옮긴 <선생님의 책꽂이>(작은 숲 출판사). 만 칠천 원짜리 책을 그냥 받기가 미안해 틈틈이 주워 모은 산밤을 선물로 준비하고 육천 원짜리 들깨수제비를 샀다.

<선생님의 책꽂이>는 독서모임 교사들이 8년 동안 읽은 책 중에 100권을 골라 단 한 권으로 압축한 책이다. 이 <선생님의 책꽂이>에는 교육, 치유, 철학, 문학, 사회역사, 생태, 건축, 청소년 등 8개 분야의 책들이 꽂혀 있다. 강수돌 교수(고려대, 전 마을 이장)가 책 겉장에 적고 있듯이 <선생님의 책꽂이>에는 책만 꽂혀 있는 것이 아니다.

"책만 꽂힌 게 아니다.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끈질기게 묻는 샘들의 고뇌도, '지금, 여기서' 실천하는 모습도 꽂혀 있으며 무엇보다 샘들 자신의 예사롭지 않은 '삘'들이 꽂혀 있다."

회칙이 단 한 줄도 없는 독서모임 '간처치'

독서모임 교사들은 최은숙 선생을 제외한 대부분이 책 속에 글을 처음으로 올리는 교사들이다. 거기다가 19명의 회원 중에 국어 선생은 3명이 전부, 대부분 문과가 아닌 이과를 전공한 교사들. 한 권의 책을 원고지 10여매로 압축해 담아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짧은 글 속에서는 영혼의 울림과 올곧은 관점으로 현실 사회를 꿰뚫어 보는 혜안이 담겨있고 때로는 글의 맛은 다소 떨어지지만 에둘러 말하지 않는 투박한 진정성이 담겨있다.

그동안 학생들과 오순도순 살아가는 이야기를 모아 산문집 <세상에서 네가 제일 멋있다고 말해주자>, <미안, 네가 천사인줄 몰랐어>, <성깔 있는 나무> 등을 펴낸 글쟁이 최은숙 선생은 글쓰기에 익숙지 않은 교사들의 글에서 오히려 감동을 받을 때가 많다고 말한다.

독서모임 간서치 회원들 19명 중에 글쟁이 교사 최은숙 선생을 비롯 국어교사는 3명이 전부. 대부분 이과 전공 교사들이다.
 독서모임 간서치 회원들 19명 중에 글쟁이 교사 최은숙 선생을 비롯 국어교사는 3명이 전부. 대부분 이과 전공 교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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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임에는 국어 교사가 별로 없어요. 이과 전공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시죠. 저는 청양신문 독후감쓰기에서도 국어를 전공하지 않은 선생님들의 글에서 감동을 받을 때가 많아요.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 얼마나 책을 속속들이 팠는지, 얼마나 성실하게 썼는지, 흔적이 느껴져요. 그런 글쓰기가 자기를 성장시켜 준다고 생각해요. 국어 교사가 글을 더 잘 쓸 것이다. 국어교사가 독서지도를 잘할 것이다, 하는 생각은 근거 없는 오해예요."

잡무에 시달리면서 어떻게 저 많은 책을 읽고 토론하고 또 글까지 쓸 수 있을까? 독서 모임의 이름은 간서치(看書癡). 간서치는 '책만 읽는 바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 '책만 읽는 바보들', 독서모임 교사들의 면면이 궁금했다. 때마침 지난 일요일(11월 3일), 충남 공주에서 독서 모임이 있었다. 모임 장소는 독서모임 교사인 김현식 선생의 사과밭이다.

간서치 독서 모임은 아주 사적이고 느슨한 모임이다. 회칙이 단 한 줄도 없다. 언젠가 "책을 읽자"라는 1조 1항만 만들자고 농담이 오고가기도 했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 모임이 있는 날이 돌아오면 가까운 공주는 말할 것도 없고 천안이나 아산으로 발령나서 떠난 선생님들까지 한 시간이 넘는 길을 달려온다.

그렇다고 독서모임 교사들은 '책만 읽는 바보'들은 아니다. 교육현장에서 참교육을 실천하고자 하는 전교조 교사들이 대부분이다. 독서모임 간서치 회원 19명 중에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전교조 교사들이다. 보통 학교 수업을 마친 월요일에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과 따는 재미를 곁들여 야외 모임을 가졌다.

풀들이 무성한 김현식 선생의 사과밭
 풀들이 무성한 김현식 선생의 사과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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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선생이 ‘기적의 사과나무’를 키워내지 못하고 결국 최소한의 농약을 쳐야만 했던 현실처럼 독서 모임 교사들은 비교육적인 경쟁교육 속에서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김현식 선생이 ‘기적의 사과나무’를 키워내지 못하고 결국 최소한의 농약을 쳐야만 했던 현실처럼 독서 모임 교사들은 비교육적인 경쟁교육 속에서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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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선생이 사과농사를 시작한 지 10년, 한동안 관행농법으로 사과농사를 짓다가 <기적의 사과>를 읽고 3년 동안 농약 한 방울 안 치고 화학비료조차 주지 않은 '기적의 사과'를 꿈꾸었다. 하지만 소득은 제로에 가까웠다. 100여 주의 사과나무에 맺힌 사과는 30개 정도, 그 중에 열다섯 개 정도를 건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2년 전부터 다시 농약을 치기 시작했다. 그것도 남들이 열 댓 번 농약을 칠 때 다섯 차례 농약을 친 것이 전부라고 한다.

김현식 선생뿐만 아니라 독서모임 교사들 중에는 바쁜 시간을 쪼개 짬짬이 농사를 짓는 교사들이 더러 있다.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황영순 이훈환 부부 교사는 채소 꾸러미를 만들어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저는 <밥상 혁명>을 읽고 시골에 산다는 것이 그저 전원주택 짓고 잔디를 가꾸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로컬 푸드, 텃밭, 식량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자급자족에서 더 나아가 나눔을 고민하게 되었어요. <기적의 사과>를 읽고 나서는 사과가 아니라 사과나무를 처음 생각하게 되었죠.

그저 먹을거리로만 보다가 사과나무라는 한 생명에 대한 느낌을 갖게 되었달까. 그래서 시어머님 댁에 사과나무 100그루를 심었어요. <기적의 사과>를 쓴 그 분은 사과나무를 살리기 위해 10년을 기다렸잖아요. 제가 읽는 책을 모방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보려고 해요. 단순히 읽기만 하는 건 저에겐 의미가 없어요."

저농약 사과밭을 닮은 독서모임 교사들

독서모임 교사들 중에는 바쁜 시간을 쪼개 짬짬이 농사를 짓는 교사들이 더러 있다.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황영순 이훈환 부부 교사는 채소 꾸러미를 만들어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검게 병든 사과는 '기적의 사과'를 꿈꾸고 있는 황영순 이훈환 부부교사가 농사지은 사과다.
 독서모임 교사들 중에는 바쁜 시간을 쪼개 짬짬이 농사를 짓는 교사들이 더러 있다.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황영순 이훈환 부부 교사는 채소 꾸러미를 만들어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검게 병든 사과는 '기적의 사과'를 꿈꾸고 있는 황영순 이훈환 부부교사가 농사지은 사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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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스럽게 매달려 있는 사과를 따다가 문득 풀들이 무성한 김현식 선생의 사과밭은 우리의 교육 현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현식 선생의 사과나무들은 다른 사과밭의 사과들에 비해 어딘가 모르게 거칠고 모나 보였다. 상품성이 떨어져 보였지만, 사과 맛은 아주 좋았다. 농약을 덜 친 만큼 깊은 맛이 났다.

교육현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다수확을 위해 농약을 치듯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밤늦게까지 죽어라 문제 맞추는 공부를 시키게 되면 아이들의 시험 점수는 잘 나올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농약을 많이 친 사과밭처럼 겉으로는 멀쩡해 보일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병들어 갈 것이다. 농약으로 토양이 죽어가듯 경쟁 교육으로 세상은 메말라 갈 것이다.

<선생님의 책꽂이>에 소개된 책들은 단순히 교양을 쌓기 위한 재미거리로 읽는 책들이 아니다. <선생님의 책꽂이>에 꽂혀 있는 대부분의 책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고민들을 담아내고 있다.

김현식 선생이 '기적의 사과나무'를 키워내지 못하고 결국 최소한의 농약을 쳐야만 했던 현실처럼 독서 모임 교사들은 비교육적인 경쟁교육 속에서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교사와 학생 사이>(하임G,기너트)에서 최은숙 선생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그래도 교사는 교사다.' 이 말이 책의 맨 끝에 있었다. 교사가 맞닥뜨려야 하는 교육 현장의 모든 상황과 절망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학생들이 교실 바닥에 함부로 침을 뱉고, 약한 아이들을 집단으로 괴롭히고, 수업을 방해하고, 교사를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대할 때, 그것이 단지 아이들이 가진 개인의 문제만은 아이니라는 점에서 교사는 절망하고 무기력해진다. 아이들의 문제 행동은 그들이 지르는 비명이라고 봐야 옳다.

밤이 되어도 양계장처럼 교실의 불이 꺼지지 않는다. 어떤 선한 목적이 있다고 해도 사람의 몸과 마음을 가진 아이들을 이렇게 온종일 가두어 놓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 아닌가? 아이들은 어른들을 거역할 힘이 없어서 견디고 있는 것뿐이다. 우리는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평가'라는 이름의 일제고사를 막지 못했고, 싫다는 아이들을 억지로 앉혀 놓고 수업하는 일을 여러 가지 정황 때문에 거부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이 가진 각각의 처지와 고통을 세밀하게 살필 겨를도 없다. 학교가 나아가는 방향은 사람을 기르라는 게 아니라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점수를 만들어 내라는 것이다.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 마음이 병드는 것은 몸이 아픈 것보다 훨씬 심각한 일이다. 몸이 아프면 고치려고 애를 쓰지만, 마음이 병들면 삶을 포기할 수도 있다. 절망과 무기력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진실하게 사는 교사가 아닐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그래도 교사는 교사다'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지은이 하임G,기너트는 교육현장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모든 노력 중에서 교사의 태도와 역할에 집중했다. 교사도 학생이나 학부모와 마찬가지로 한계를 가진 존재이다. 교실에서 학생들을 대하는 교사의 역할이 공교육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할 것처럼 읽히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것은 교사로서 나를 좀 더 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수많은 나를 만나게 된다. 특히 좋은 책일수록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내 안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참 마음을 만나게 해준다. 모두가 부처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하듯 그 어느 누구든 사람의 마음자리는 작가나 독자나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한 좋은 책을 접하게 되면 그 내용에 동감하여 무릎을 쳐가며 감동한다. 하지만 그 책 속에는 현실에서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 나를 일깨워 주는 불편한 진실이 담겨져 있기도 하다.

불편한 진실이 담긴 책 극복하기

독서모임 교사들은 ‘책만 읽는 바보’들은 아니다. 교육현장에서 참교육을 실천하고자 하는 전교조 교사들이 대부분이다. 독서모임 간서치 회원 19명 중에 한명을 제외한 모두가 전교조 교사들이다.
 독서모임 교사들은 ‘책만 읽는 바보’들은 아니다. 교육현장에서 참교육을 실천하고자 하는 전교조 교사들이 대부분이다. 독서모임 간서치 회원 19명 중에 한명을 제외한 모두가 전교조 교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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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서 읽을 책들은 대부분 최은숙 선생이 책을 선정하고 있다. 최 선생은 교사들과 함께 읽기 위한 책 한 권을 고르기 위해 처음에는 세 권, 네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책을 선정할 때 처음에는 회원들의 '저항'에 부딪쳤다.

글쟁이 최 선생이 선정한 책들은 일반 교사들, 그것도 이과 교사들이 읽기에는 어렵고 부담스러웠다. 다양한 책들을 접하지 못한 교사들은 특히 불편한 진실이 담긴 책들을 읽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회원들은 최 선생이 선정한 책들을 두고 불만을 쏟아냈다. 좀 쉽고 재미있는 책을 읽지 않고 왜 이렇게 무겁고 우울한 책을 읽나 반항도 했다.

"선생님들로부터 한 세 번쯤 책이 재미없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세 번 듣자 속이 꽁했어요.(웃음) 그래서 이야기 했어요. 책을 재미로만 읽느냐, 그러려면 작자 집에서 재미있는 것을 읽지 뭣 하러 모임을 하느냐고요. 선생님들이 "그래, 잘났다. 맘대로 해 봐라" 하셨어요. 끝까지 같이 놀아주신 거죠. 생태, 역사, 영성이 있는 교육, 철학, 문학, 등등 현재 우리가 선 자리를 균형 있는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줄 책들을 쭉 읽어 왔어요. 선생님들께 허락해 주신 '독재의 힘'으로 가벼운 베스트셀러나 자기 계발서 같은 것들은 제외했어요"

독서모임 교사들은 수많은 책들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불편한 진실이 담긴 책들이 어렵다고 느낀 것은 그동안 많은 책들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자각을 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생각, 살아온 방식과 책의 메시지가 부딪치면 갈등이 생겼지만 그 불편한 진실을 감수하고 온 몸으로 읽었다. 이제는 어렵다는 책을 읽어도 크게 부담이 가지 않는다. 그렇게 독서모임 교사들은 8년에 걸쳐 다양한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모임에 대한 애착과 열정, 서로를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싹텄다.

그런 의미에서 이현주 선생은 자신에게 독서모임은 아주 특별하다고 말한다.

"선생님들 한 분 한 분 책을 읽고 오셔서 얘기하시는 내용들이 보석 같아요. 학교와 국가의 정책 사업도 쭉 가지 못하는데 작은 독서 모임 하나가 이렇게 기쁨과 행복을 주면서 사람을 오래 이끄는 힘이 뭘까, 저는 계속 질문해요. 그 힘을 배우고 싶어요. 독서 모임은 제 삶의 활력소이고 제가 발견한 보석이에요. 전도사가 되고 싶어요. 제가 사는 아파트, 우리 교회, 우리 나이 또래의 아줌마들, 또는 우리 반 학부모님들, 그리고 머잖아 마을에서 농사를 조금 지으며 살고 싶은데 그 때 우리 마을 분들과 이런 행복한 시간들을 공유하고 싶어요."

독서모임 교사들은 독서를 통해 행복한 시간만을 꿈꾸지 않는다. 독서는 그들에게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눈과 귀를 열어 주고, 아픈 세상을 바로 보게 한다. <선생님의 책꽂이>에서 <9월이여, 오라>(아룬다티 로이)를 소개하고 최은숙 선생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작가라면 늘 아픈 눈을 뜬 채로 있어야 한다. 날마다 창문 유리에 얼굴을 바짝 대고 있어야 하고, 날마다 추악한 모습들의 목격자가 돼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낡아 빠진 뻔한 것들을 새롭게 이야기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9월이여, 오라' 중에서)

아, 얼마나 성가신 말인가, 작가들이 무슨 죄를 지어서 저렇게 날마다 창문 유리에 얼굴을 바짝대고 세상의 온갖 추악한 몰골에 참견해야 한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4대강 사업, 천성산 터널, 밀양 송전탑, 강정마을 해군기지, 이런 문제로 마음을 괴롭히면서 '이건 옮지 않은 일이라고 우리가 말해야 한다. 이건 우리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다. 우리가 나서야 한다.' 이런 말들을 지겹게,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귀를 다시금 기울일 만한 새로운 표현, 새로운 방식으로 바뀌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가?

'작가'라는 낱말을 '교사'로, '기자'로, '군 의원'으로 '영향력을 가진 지역 인사'로, '존경 받는 어른'으로, '이웃의 아픔에 무심하지 않는 사람'으로 바꾸어 읽다 보면 결국 모두가 저 문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책 읽기의 결론은 교육현장

독서모임에서 11월에 선정한 책은 송건호 선생의 발자취를 담은 ‘나는 역사의 길을 걷고 싶다’.
 독서모임에서 11월에 선정한 책은 송건호 선생의 발자취를 담은 ‘나는 역사의 길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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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 회원들 중에 누구는 쌀을 안친 전기밥솥을 통째로 가져오고 또 누구는 직접 재배한 채소며 김치, 사과밭에 주변에서 뜯어와 즉석에서 미나리를 무쳤다. 거기다가 삼겹살과 새우 등 저마다 한두 가지씩의 먹거리를 가져와 푸짐한 저녁상을 차렸다.

저녁상을 물리고 사과밭의 농막, 컨테이너에 모여 독서 토론회를 가졌다. 11월의 책은 송건호 선생의 발자취를 담은 <나는 역사의 길을 걷고 싶다>. 독서모임에서는 방학을 이용해 종종 책과 관련된 현장 답사를 떠난다. 지난 여름 방학 때 충북 옥천에 있는 정지용 생가를 찾아갔다가 송건호 선생의 생가를 만났다. 개장수가 사용하고 있는 송건호 선생의 처참한 생가에서 11월의 책 읽기 모임 주제를 정했던 것이다.

교사들은 <나는 역사의 길을 걷고 싶다>를 읽고 느낀 다양한 소감을 내놓았다. 독재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을 지켜온 송건호 선생. 회원들은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꽂꽂한 언론인으로 살아온 송건호 선생의 '공부가 깊으면 타락할 수 없다'는 말을 깊이 새겼다. 그러면서 기생충처럼 권력에 빌붙어 온갖 기묘한 수법으로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사이비 언론들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서는 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아 나갔다.

"어떤 방송에서 전교조가 법외노조를 선택했다고 보도하고 있더라. 전교조의 입장은 선택한 것이 아닌 법외노조에 대한 수용을 거부한 것인데 마치 전교조가 법외노조를 선택한 것처럼 방송하고 있었다. 법외노조를 니들이 선택했잖은가. 비전교조 교사들도 그런다."

사이비 언론에 휘둘리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책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되었다는 회원들도 있었고, 또 어떤 회원은 소설도 아닌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빨려 들어가듯이 읽었다고 말한다. 늘 그래왔듯이 독서 모임 교사들의 결론은 교육문제로 모아진다. 교육현장에서 교사로서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 할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았다.

"진실에 접근하려면 책을 읽고 토론한 산물인가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통한 산물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요즘 시골 아이들은 부모들이 구독하고 있는 조선, 동아는 알고 있어도 한겨레신문을 아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 간혹 기독교 집안 아이들은 국민일보 정도를 알고 있다. 아이들의 생각은 부모를 통해 얻어진 산물이다.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에게 말해주곤 한다. 현실을 바라보는 니들 생각이 어디서 온 것이냐, 독서 토론에서 얻은 생각이 아니면 니들 생각이라 할 수 없다고."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가장 좋은 위치가 교사다. 어떤 진실을 전달하는가는 교사들에게 달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진실이 담긴 다양한 책들을 읽고 끊임없이 토론해야 한다."

"책을 많이 읽는 만큼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에게 해줄 말도 많아진다. 아이들은 교사들이 독서모임을 한다는 것을 신기해한다. 교사들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 책을 읽고 싶어 한다. 선생님들도 책을 읽고 공부하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온갖 행사와 영양가 없는 잡무처리에 시달려야 하는 교사들이기에 책 읽기가 쉽지 않은 것이 교사들의 현실이다. 류지남 선생은 그 안타까운 현실을 말한다.

"학생들이나 교사가 책을 여유롭게 읽을 수 없는 학교 현실이 안타깝다. 다들 너무나 바쁘니까 책을 읽고 있으면 눈치가 보인다고 한다. 교사가 책을 읽지 않으면 앞으로 학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사람은 읽는 대로 만들어 진다'는 말이 있다.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고 좋은 교사가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작은 것에부터 시작된다. 온갖 잡무에 시달리고 있는 시골 학교의 평범한 교사들의 독서 모임이 8년 동안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독서모임 교사들은 그것은 책의 힘, 책에 담긴 메시지가 주는 감동과 자신을 성장시켜 주는 기쁨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교사들의 감동과 기쁨은 곧바로 교육현장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고 또한 세상으로 번져나가게 될 것이다. 가르치는 것은 끊임없이 배우는 것임을 일깨워 주고 있는 <선생님의 책꽂이>를 통해 그 감동과 기쁨을 함께 할 수 있다.

<선생님들의 책꽂이>에는 또 다른 볼거리가 있다. 낯설면서도 의미심장한 컬러 사진들이 책의 이미지를 잘 담아내고 있다. 또한 책 후반부에 가면 시골학교 교사들이 어떻게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좌담이 실려 있고, 책 읽기 만큼이나 재미있고 맛깔스럽게 독서모임 교사들의 면면을 소개하고 있다.

김현식 선생이 사과밭의 농막으로 쓰고 있는 컨테이너에서 독서 모임을 갖고 있는 교사들.
 김현식 선생이 사과밭의 농막으로 쓰고 있는 컨테이너에서 독서 모임을 갖고 있는 교사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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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리브로 홍대점에서 12월 7일(토) 오후 4시에 <선생님의 책꽂이> 북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다.

<선생님의 책꽂이> - 시골학교 선생님들이 온몸으로 엮은 독서록 100 | 청양교사독서모임 간서치 (지은이) | 작은숲 | 2013년 10월



선생님의 책꽂이 - 시골학교 선생님들이 온몸으로 엮은 독서록 100

청양교사독서모임 간서치 지음, 작은숲(2013)


태그:#선생님의 책꽂이, #시골교사 독서모임 간서치, #불편한 진실이 담긴 책, #전교조,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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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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