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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이벤트 MC 일을 하면서 직접 경험하고, 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일을 토대로 사람들이 그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회자에 대한 인간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홀홀단신 무대 위에 올라야 하는 이벤트 MC에게도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기 마련이다. 무대 위에선 언제나 즐겁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지만, 무대를 내려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무표정한 모습으로 돌변하곤 하는데, 이를 가리켜 일명 '가면성 우울증'이라고 한다. 겉으로는 밝은 모습의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에 가면 안에서 벌어지는 우울한 모습을 상대방이 볼 수 없다는 말이다.

방송인 김나영씨도 한때, 자신이 '가면성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이야기할 만큼 대중 앞에서 무대를 이끌어가야 하는 대다수의 이벤트 MC들은 알게 모르게 우울증을 앓고 있다. 이는 평생에 단 한 번 있을지도 모르는 회사 행사나 가족 행사를 원만하게 이끌어 가야만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자의 길을 택해 살아가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웃고 떠드는 모습에서 삶의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대가 끝나고 자신에게 호응해준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가 버리면, 일종의 허무함과 허전함을 선물받는다. 어쩔 수 없이 사회자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다.

다음은 이벤트 MC를 맡으면서 경험한 씁씁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을'인줄 알았는데 거기도 '을'... 게다가 장소측 텃새까지?

행사를 만족스러운 분위기로 이끄는게 사회자의 중요한 역할이다.
▲ 무대 위 이벤트MC의 모습 행사를 만족스러운 분위기로 이끄는게 사회자의 중요한 역할이다.
ⓒ 곽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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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업체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야구경기를 보기 전 OO경기장에서 장애인 학우들을 대상으로 레크리에이션을 1~2시간가량 진행해 달라"며 '세부 진행프로그램'을 정리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원래 사회자 섭외는 프로필이나 진행 영상 정도만 확인하고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다. 세부 진행프로그램은 사회자가 확정된 상태에서만 보내드릴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걸 보내줘야 확정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갑'과 '을'의 관계 속에서 을의 의견이 쉽사리 통할 리가 없다. 업체의 요청대로 그날 밤 자정까지 행사에 대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짜서 이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1주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중에야 그들도 대행 업체라는 걸 알았다. 전반적인 기획과 MC 프로그램을 만든 후, 행사 주최 측에 제안서를 넣고 결정되길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섭외 요청할 때만 해도 100% 거의 확실하다는 식으로 말하더니….

이처럼 대다수 업체가 행사기획·진행에 필요한 MC를 사전에 섭외만 해두고 진행 확정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된다는 식으로 여긴다. 그러나 대개 행사 계약은 구두로 진행되는 만큼 일방적인 행사 취소 통보를 당할지언정 사회자가 보상받을 만한 근거는 미비한 상태다.

돌잔치 사회를 보는 경우엔 괜한 텃새로 마음이 상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돌잔치를 준비하는 엄마들은 몇 달 전부터 장소 섭외에 골머리를 앓는다. 일단 장소가 정해지면, 예약 담당자로부터 돌상 패키지(돌상/포토테이블/성장동영상/빔프로젝트/사회자 묶음서비스)라는 서비스를 권유 받는다.

이때 자신만의 특별한 돌잔치를 준비하고 싶은 엄마아빠들은 직접 돌상·포토테이블을 준비하고 나같은 프리랜서 사회자를 따로 섭외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과정에서 은근히 많은 업체들이 텃새를 부리곤 한다.

올해 초 나에게 사회를 부탁한 엄마아빠가 돌잔치를 얼마 남기지 않고 장소 측에서 고용한 사회자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음향시설(앰프·마이크) 일체를 제공할 수 없다고 통보받았다고 알려왔다. 덕분에 울며 겨자먹기로 급하게 음향기기까지 대여를 하게 됐는데, 대여비를 누군가에게 전가 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참으로 답답했다(원래, 음향기기를 사회자가 준비하면 별도의 금액이 추가된다). 외부 사회자라도 실력있는 서비스를 보인다면, 잠재고객들이 더 많은 예약을 할텐데, 그건 생각하지 못하고 연결된 업체를 통해 수수료만 챙기려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기업 행사는 나름 원하는 형식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 정해진 내용 그대로 하길 원한다. 어떨 때는 대사 한 마디라도 틀려지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행사기획 담당자가 사회자 바로 옆에서 멘트를 지시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글이 아닌 말로 전달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행사의 흐름이 뚝뚝 끊기는 건 물론이거니와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말을 내뱉어 실수가 생길 위험이 크다. 약간의 실수라도 매끄럽지 않은 진행을 한 것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오롯이 사회자의 몫이다.

마이크도 안 잡았는데... "어린 사람이 무슨 사회를... 나가요"

약간의 실수라도 매끄럽지 않은 진행을 한 것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오롯이 사회자의 몫이다.
 약간의 실수라도 매끄럽지 않은 진행을 한 것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오롯이 사회자의 몫이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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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사회자 외모로 인한 불만도 있다. 아는 분의 부탁으로 총동창회 사회를 맡았을 때의 일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현장에 도착해서 행사 총책임자를 만났는데, 대뜸 나를 보자마자 하는 말이 "사회자가 너무 어려 보이는데?"라며 그냥 돌아가라는 식으로 말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행사를 준비하는 다른 분(섭외 담당자)께 "아니, 어떻게 이렇게 어린 사람을 우리 행사에 데리고 온 거야? 생각이 있는 거야?"라는 식으로 호통을 치셨다. 바로 내가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화는 누그러질 줄 몰랐고, 나는 곧 그 자리에서 쫓기듯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날의 행사 준비를 위한 노력·시간·차비 등 그어떤 보상조차 받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실력이 아니라 외모로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은 그날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가장 가슴 아프게 자리잡고 있다.

이외에도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슬픈 일화는 이정도로 해두고 싶다. 혼자서 일을 하다 보니 간혹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 부딪혀 일을 포기하고 싶은 적도 많았다. 부당한 일을 당해 법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오히려 소문이 좋지 않게 퍼져서 일이 끊기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함부로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는 게 현실이다. 유명한 방송 MC가 아닌 이상, 제대로 된 처우조차 못 받는 게 사회자의 슬픈 뒷모습니다.

하지만 이벤트 MC 곽연범으로서 무대에 올라가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주는 모습을 보면, 마치 자이로드 드롭을 탄 것 같은 짜릿함과 희열감을 느끼곤 한다. 부디, 이 글을 통해서 천편일률적인 '갑'과 '을'의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가 서로를 인간적인 대상으로 이해하고 처우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하여 앞으로는 무대 위에서만 웃는 사회자가 아닌 무대 밖에서도 웃을 수 있는 사회자가 많아지길 바란다.


태그:#이벤트MC, #방송MC, #사회자, #가면성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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