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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씨가 바닷가 고구마 밭에서 트랙터로 고구마를 수확하고 있다. 시뻘건 황토밭이 온몸을 풀어헤치며 묻혀있던 고구마를 땅위로 드러내고 있다.
 김용주 씨가 바닷가 고구마 밭에서 트랙터로 고구마를 수확하고 있다. 시뻘건 황토밭이 온몸을 풀어헤치며 묻혀있던 고구마를 땅위로 드러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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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두둑 한 번 보세요. 아이를 낳아 쭈글쭈글해진 어머니의 배 같지 않습니까? 그 어머니가 누워 있는 모습이요."

지난 달 28일, 수확을 위해 트랙터가 파헤치고 지나간 고구마밭의 두둑을 본 이정옥(59·전남 무안군 현경면)씨의 말이다. 그녀는 "아이 같은 고구마들이 주렁주렁 달려 나오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해산할 때 맛보는 고통과 희열을 다 맛본다"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산파의 심정일까. 이씨가 금세 숙연해졌다. 아무 말 없이 주기만한 땅에 대한 고마움이라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고구마밭의 이랑과 맞닿은 바다도 어머니의 품처럼 드넓고 잔잔하게 보였다.

이정옥 씨가 방금 캐낸 고구마를 들어보이고 있다. 튼실하게 키운 보람이 얼굴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이정옥 씨가 방금 캐낸 고구마를 들어보이고 있다. 튼실하게 키운 보람이 얼굴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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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토양에서 자란 행복한 고구마. 유기농으로 키운 건 생김새가 예쁘지 않다는 편견까지도 없애준다.
 건강한 토양에서 자란 행복한 고구마. 유기농으로 키운 건 생김새가 예쁘지 않다는 편견까지도 없애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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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맨몸을 드러낸 고구마들은 모두 토굴 저장고로 들어간다. 저장고는 지형을 이용해 황토벽으로 만들어져 있다. 고구마가 자라는 환경과 같은 조건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저장기간 고구마의 스트레스를 최소화시켜 이듬해 6월까지 맛을 유지하는 게 비법이다.

"고구마는 상온에서도 얼어요. 냉장고에 넣어두면 모두 변해버리잖아요. 흙 속에 있는 상태와 최대한 비슷하게 해줘야 합니다."

이씨의 남편 김용주(60)씨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수확한 고구마는 종류와 크기에 따라 노란 상자에 나눠 담겨 저장고에서 겨울잠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부부가 수확한 고구마는 '행복한 고구마'다. 여느 땅보다 좋은 조건에서 자라 고구마가 행복하다는 의미다. 이렇게 가꾼 농부도 행복하고, 소비자도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를 담았다. 

김용주·이정옥 씨의 고구마 밭에서 수확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황토밭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김용주·이정옥 씨의 고구마 밭에서 수확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황토밭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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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씨가 트랙터를 몰아 고구마밭을 갈아엎자 땅속에서 몸집을 키운 고구마가 온몸을 드러내고 있다. 땅속에서 행복하게 자란 덕분인지 고구마도 모두 건강해 보인다.
 김용주 씨가 트랙터를 몰아 고구마밭을 갈아엎자 땅속에서 몸집을 키운 고구마가 온몸을 드러내고 있다. 땅속에서 행복하게 자란 덕분인지 고구마도 모두 건강해 보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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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군 현경면에 사는 김용주·이정옥씨 부부는 '유기농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1980년대엔 기독교농민회에 참여해 농민운동을 했다. 수입농산물 저지운동에 앞장서다 감옥살이도 했다.

유기농업을 시작한 건 1980년대 중반부터였다. 지금껏 고구마밭에 새로운 황토를 넣고 유기질 퇴비를 써서 땅심을 높여 왔다. 퇴비도 멸치액젓에서 추출한 부산물에 쌀겨, 깻묵, 숯 등 천연 자재를 섞어 뿌려준다.

병해충은 천적을 이용해 막는다. 날씨가 추운 1월에 밭을 깊이 갈아엎는 것도 굼벵이를 막기 위해서다. 재배법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인증하고 있다.

재배조건도 최적이다. 바다의 갯벌과 맞닿은 밭은 해풍이 실어다 주는 미네랄이 풍부한 지역이다. 바닷가여서 일교차도 크다. 땅도 황토로 건강하다. 게르마늄을 듬뿍 담고 있다. 산성(PH 4.2∼8.3) 토양으로 고구마 재배의 조건을 다 갖춘 셈이다. 예부터 무안고구마가 맛있다고 소문 난 이유이기도 하다.

김씨 부부는 이 토양을 건강하게 관리했다. 땅의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했다. 비온 뒤 바로 땅을 파헤쳐도 흙이 고슬고슬한 건 그 덕분이다. 땅이 건강하자 고구마 활착이 잘 됐다. 가뭄과 장마에도 잘 견뎌 결실도 풍성했다. 고구마를 쪼개면 하얀 진물 같은 게 유난히 많은 것도 이런 연유다.

방금 캐낸 고구마. 속이 단단하고 겉모양도 예쁘다. 맛과 영양도 으뜸이다.
 방금 캐낸 고구마. 속이 단단하고 겉모양도 예쁘다. 맛과 영양도 으뜸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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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이정옥 씨가 정성을 다해 키운 고구마. 아낙네들이 모여 황토 위로 드러난 고구마를 노란 상자에 담고 있다.
 김용주·이정옥 씨가 정성을 다해 키운 고구마. 아낙네들이 모여 황토 위로 드러난 고구마를 노란 상자에 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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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배과정에서 이들이 가장 신경 쓰는 분야는 고구마 종순 생산이다. '모종이 고구마 농사의 절반'이라고, 그해 작황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최고급 고구마만을 종자용으로 쓰고 튼실하게 키운다. 밭의 두둑도 크고 높게 만든다. 온도변화에 잘 적응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쌀겨와 골분, 천연칼리, 물을 섞은 고구마 전용 미생물도 만들어 뿌려 준다.

"농작물도 아이들처럼 보살피고 어루만져줘야 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밭에 나가 잘 잤는지 묻습니다. 밤새 별일은 없었는지 이야기도 하고요. 그렇게 밭에 나가면 작물이 보이더라고요. 작물도 더 건강하게 자라고요."

김씨의 말이다. 심을 때부터 거둘 때까지 고구마와 교감해야 맛과 영양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이들의 영농 철학도 확고하다. 농부는 양심적으로 안전농산물을 생산하고, 그 농산물이 소비자의 건강을 지켜줘야 한다는 믿음이다.

그런 만큼 값도 정당하게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의 자연 생태계도 살아나 온 국민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이정옥·김용주 씨가 방금 캐낸 고구마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씨는 신지식 농업인, 김 씨는 유기농 명인으로 지정돼 있다.
 이정옥·김용주 씨가 방금 캐낸 고구마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씨는 신지식 농업인, 김 씨는 유기농 명인으로 지정돼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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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는 김씨를 '유기농 명인'으로 선정했다. 이씨는 신지식 농업인에 선정됐다. 이들의 고구마 재배면적은 20여㏊(6만 평)에 이른다. 생산한 고구마는 보랏빛 자색고구마와 주황색의 호박고구마, 노란색의 밤고구마 등이 있다.

이 고구마는 이미 품질과 맛으로 인정받으며 명품 고구마의 반열에 올랐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를 통해 팔리고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직거래도 한다. 일반 고구마보다 2배가량 비싸게 팔리고 있다. 이들 부부가 정성껏 농사지은 첫 번째 보람이다.

김용주 씨가 고구마 수확을 위해 밭의 비닐을 걷어내고 있다. 바로 앞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그의 땀을 식혀준다.
 김용주 씨가 고구마 수확을 위해 밭의 비닐을 걷어내고 있다. 바로 앞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그의 땀을 식혀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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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용주, #이정옥, #무안고구마, #행복한고구마, #유기농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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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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