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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릉~~."

오늘(10월 22일)도 그녀의 오토바이는 바쁘다. 수년 전부터 마을 일하랴, 농사하랴, 면사무소에 가랴 바쁜 그녀가 택한 발이 바로 오토바이다. 운전면허가 없어 차마 차는 타지 못했다. 죽산면사무소는 차로도 한참을 가야 하니 오토바이라도 있어야 이장 노릇을 할 수 있다. 경기도 안성 용설리 한실마을의 정선영(61) 이장 이야기다.

올해로 61세인 그녀는 마을 이장일 하랴, 농사지으랴, 살림 살랴 바쁘다. 그녀가 이런 일을 모두 신속하게 잘 해내려면 오토바이는 필수다. 어느덧 오토바이는 그녀의 애마가 되었다.
▲ 정선영이장 올해로 61세인 그녀는 마을 이장일 하랴, 농사지으랴, 살림 살랴 바쁘다. 그녀가 이런 일을 모두 신속하게 잘 해내려면 오토바이는 필수다. 어느덧 오토바이는 그녀의 애마가 되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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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얼떨결에 이장이 되다

2년 전 마을 총회에서였다. 정선영씨는 늘 하던 대로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이 불렀다, 잠시만 회의하는데 나와 보라고. 영문도 모른 채 그녀가 나왔다. "이장 후보로 추천 받았으니 인사해유"라는 주민의 말. 얼떨결에 "맡겨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고 했던 그녀. 속으로는 '설마 남자분들도 있는데 내가 되랴'고 생각했다.

그 '설마'가 사람 잡았다. 덜컥 이장이 되고야 말았다. 주민들의 뜻이었다. 처음엔 고사하려 했다. 할 수만 있으면 하지 않으려고 했다. 남자분들도 있는데 여자가 이장하면 설친다고 할까봐, 잘난 척 한다고 할까봐 마음이 쓰였다.

처음엔 모든 게 어색했다. 솔직히 부끄러웠다고 했다. 여성이 이장한다는 게 죄 지은 것도 아닌데 왠지 죄송스러웠다. 처음 1년은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어떤 때는 여성 이장이라고 외지에서 온 이주민이 얕잡아 볼 때면 속상했다. 이장 초창기엔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그만 둘까, 제대로 하는 걸까.

"12시 전에 자 본 적이 없어요"

2년 차에 접어든 정선영 이장은 이젠 당당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장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는다. 이 나라의 대통령도 여자고, 나도 여자 이장이라며 당당하다. 쓸데없이 딴죽을 걸어오면 딱 자른다. 면전에 대고 할 말은 한다. 여자 이장이라고 말랑말랑하고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선영 이장의 집은 바로 호수가 이층집이다. 그녀의 집에서 내려다본 용설호수가 멋있다. 용설호수는 이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이자, 소중한 마을 자산이다.
▲ 용설호수 정선영 이장의 집은 바로 호수가 이층집이다. 그녀의 집에서 내려다본 용설호수가 멋있다. 용설호수는 이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이자, 소중한 마을 자산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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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기까지는 남편의 외조(?)도 한몫 했다. 말로야 "집에도 늦게 들어오고 바빠서 살림도 제대로 못하는 이장을 뭐하려고 하느냐"고 타박도 주는 남편. 하지만, 이장이 겨울에 트랙터로 마을 눈을 치워야 할 때, 남편이 다 치워줬다. 정 이장 남편도 10년 전에 마을 이장을 했다. 아내의 힘듦과 속상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정 이장은 낮엔 콩, 감자, 고구마, 고추 등 농사를 한다. 물론 면사무소에 일이 있으면 갔다 온다. 마을이 농촌체험마을이라 체험이 있으면 또 바삐 움직인다. 농사만 지어선 힘들기에 1년 전부터 캠핑장을 시작했다. 기자가 찾아간 날은 캠핑장에 나무를 심느라 바빴다. 일꾼들 점심 대주고, 간식 대주고, 일하도록 만들어 주느라 정신이 없다.

이렇게 바빠도 저녁엔 또 살림을 살아야 한다. 빨래, 청소, 설거지 등이다. 낮엔 이런 저런 일을 하고, 밤이 되어야 살림을 하게 된다. 덕분에 밤 12시 전에 취침하기가 힘들다. 요즘 몇 시에 일어나느냐고 물었더니 "늦게 일어난다"며 "6시"란다. 헐! 6시가 늦은 시간이라. 여름엔 5시가 기상시간이라 했다.

마을 미션 "농외 소득을 올려라"

처음 마을엔 '골말'과 '용바우' 마을이 있었다고 했다. 수십 년 전, 용설저수지가 생기면서 골말이 없어졌다. 마을이 수장되는 바람에 거기에 살던 50여 가구가 평택, 수원, 안성 등으로 이주했다. 골말 사람들은 겨우 3~4가구가 남았다. 골말 사람 몇 가구와 용바우마을 사람이 합쳐서 한실마을이 되었다.

'한가한 마을'이라 한실마을이라는 이곳은 논농사와 채소 농사를 조금 짓는 게 다다. 특수농작물을 기르거나 농외소득을 올릴 만한 건더기가 없다. 한마디로 가난한 농부 마을이다. 이런 마을이 농외 소득이라도 얻어 보겠다고, 5년 전 인근 4개마을과 함께 용설호 문화마을 권역사업을 시작했다.

농민들이 시작한 사업이라 눈에 보이는 성과는 부족하다. 주민들은 캠핑장을 한다, 체험을 한다, 식당을 한다며 소득창출을 위해 힘써보지만, 그리 녹록치 않다. 농민들의 힘으로는 돈 버는 게 만만치 않은 형편이다.

한실마을은 겉에서 보기엔 호수가 있는 멋있는 마을이지만, 원주민들 입장에선 별 실속이 없는 형국이다. 마을엔 53가구가 등록되어 있지만, 실제로 원주민 가구는 반 정도이며, 그나마도 외지인 중 전입만 해놓은 경우, 별장으로 사용하는 경우 등을 감안하면 실제 거주인구는 더 적다. 외지인은 전원주택을 지어 조용히 쉬려고 왔기에 마을 일에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원주민과의 화합 문제도 쉽지 않다.

용설 호수 건너 편에서 바라본 한실마을의 전경이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한실마을. 거기엔 정선영 이장과 한실마을 사람들이 농외소득을 올려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땀이 배어 있다.
▲ 한실마을 전경 용설 호수 건너 편에서 바라본 한실마을의 전경이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한실마을. 거기엔 정선영 이장과 한실마을 사람들이 농외소득을 올려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땀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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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모 시집살이 끝나니 마을 시집살이 해유"

시아버지를 33년간 모시고 살다가 5년 전에 여의었다는 정선영 이장. 그녀는 "시부모님 시집살이 끝나고 나니, 마을사람들 시집을 사네유. 호호호호호"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회관서 설거지하는 이장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며 힘을 북돋워 준다.

정선영 이장은 "이장은 마을 심부름꾼"이라며 강조하고 다닌다. 소소하게 하는 일, 하지만 중요한 마을 일을 놓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게 모두 여자 이장이라 가능하다며 웃었다. 가로등 설치, 분리작업 시설 설치 등 자신이 해놓은 성과를 보면 그리 뿌듯할 수가 없다고 했다. 육순 할머니 이장 정선영씨의 오토바이가 바쁜 이유다.


태그:#용설호수, #한실마을, #정선영이장, #여성이장,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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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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