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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의 환영선물, 코딱지

 

우리는 버스에서 내렸다. 많은 사람들의 체취와 뿌옇게 일어난 매캐한 먼지 냄새가 섞여서 코에 스며들었다. 2년 동안 그리워하던 이집트의 그 냄새다. 반가움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실제로 카이로 상공에서 바라본 카이로는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뿌옇게 대기를 덮은 매연과 스모그 그리고 흙빛 건물이 어우러져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혀오는 도시다. 그래서 3년 전 처음 이 곳에 왔던 날 기내에서 카이로를 내려다 보고선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충격 속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잠시 후 숙소에 들어가서 코를 풀면 새까만 코딱지가 잔뜩 나올 것이다. 카이로의 지독한 대기오염이 주는 기념품이랄까.

 

처음 이곳에 도착해서 우연히 발견했던 이 까만 코딱지는 내겐 신선한 충격이자 큰 웃음을 주었다. 세상에, 얼마나 공기가 더러워야 코딱지가 까매질 수 있지? 정말 상상초월이구나 싶었다. 이집트는 코딱지로도 나를 웃기는구나. 내가 잔뜩 신이 나서 "신기하지 않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면 대부분은 "내것도 까맣긴 한데 그게 웃긴 일이야?" 하곤 내게 되물었다. 

 

하긴, 코에서 걸러낸 것들이 이 정도라면 몸 속에 쌓인 먼지는 더 많을 테니 마냥 웃고만 있기엔 건강이 걱정이긴 하다. 이보에게 코딱지 얘기를 했더니 그조차 날 빤히 쳐다보더니 "소피 넌 나보다 더 최악이야" 하고는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음, 내가 이상한 거야?

 


 


버스에서 내렸더니 아홉 시간 동안 정이 담뿍 들었던 살라피 아저씨들이 앞서 내려서는 그들의 보따리들을 짊어진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좁고 복잡한 이곳에서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을텐데, 고작 아홉 시간을 함께 한 슈퍼 제트에서 유일했던 외국인 일행에게 내어준 그 마음이 너무도 귀하다. 이보는 차례로 그들과 악수를 나누고 포옹을 했다. 나와 나흘라는 진심이 담긴 웃음과 가슴에 올린 오른손으로 감사를 대신 표하며 작별 인사를 고했다.

 

넓은 대도시 카이로에서도 다운타운으로 가야 하는 우리는 터미널을 빠져나와 바글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왔다. 큰 배낭을 멘 나는 그들의 눈에 여행자일 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긴장 모드를 취해야 한다는 뜻이다. 겨우 하던 이집트식 암미야(아랍어 사투리)조차 가물가물하다.

 

저 앞에 보이는 택시기사에게 가기 전까지 희미한 기억을 최대한 끄집어내 낮게 중얼거리며 연습을 해본다. 그곳에 가니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들이 흥정 가격을 부르느라 바쁘다. 하지만 혁명 이후로 더욱 나빠진 경제 사정에 기꺼이 택시를 잡아타는 로컬들은 보기가 힘들었다. 보나마나 외국인 여행객인 우리 셋은 하루 종일 그 자리에서 승객을 기다렸을 택시기사들의 먹잇감이 될 것이 뻔했다. 하지만 기꺼이 그들의 밥이 되진 않으리라.

 

이집트에는 두 가지 종류의 택시가 있다. 검은 택시와 하얀 택시. 까만 택시는 오래된 차들이 주를 이루는, 쉽게 말하면 미터기가 없는 택시였다. 물론 이집션들 사이에는 암묵적으로 정해진 적정한 가격이 존재하겠지만, 외국인이 검은 택시를 탄다면 꼭 택시를 타기 전에 택시기사와 가격 흥정을 해야 한다.

 

반대로 흰 택시는 대부분 에어컨도 갖춰져 있는 깨끗한 차에 미터기가 달려있어, 억척스럽고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택시기사와의 흥정에 힘을 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대체로 검은 택시보다 가격이 높았다.

 

교통체증의 지옥인 카이로에서 여행자 차림으로 미터기 달린 택시라니, 말도 안 된다. 당연히 우리는 검은 택시를 탈 생각이었다. 주변을 보아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은 나세르 시티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중심지역인 마디나 타흐리르 광장까지 가는데 우리가 최대한 낼 수 있는 돈은 60파운드라는 결론을 냈다. 뚝 떨어져버린 물가를 감안해서라도.

 

 

우리가 다가가자 택시기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주변을 에워싼다. 그중 가장 앞에 서 있었던 택시기사에게 마디로 가려면 얼마를 내야 하느냐고 물었다. 망설임 없이 150!이라고 부른다. 한국돈으로 2만6천 원 웃도는 돈이다. 헐. 말도 안 되는 가격이다. 헛웃음이 났다. 누굴 속이려고! 옆에 있던 기사들에게도 차례로 물었지만 그들은 담합이라도 한 듯 같은 가격만 제시했다.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이집트에 오니 또 괄괄한 내 모습이 나오기 시작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저 멀리 경찰이 보인다. 이보와 나흘라에게 짐을 맡겨두고 그에게 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안녕하세요. 수고가 많으시네요. 저 좀 도와주시면 안돼요?"

"그럼, 무슨 일인데?"

"우리가 지금 택시를 타고 마디로 가려고 하는데 저 택시기사들이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부르지 뭐예요. 아니 글쎄 여기서 마디까지 150파운드가 말이나 돼요? 근데 다들 미리 짜기라도 했는지 전부 하나같이 150이래요. 내가 여기 살아서 물가를 얼마나 잘 아는데!!!!"

 

어떻게든 이 부조리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열정에 감동이라도 하는지, 내 뇌는 내가 화가 났을 때만 속사포처럼 외국어를 뱉어내곤 했다. 잔뜩 골이 나서는 따지고 드는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한참을 빤히 쳐다보던 경찰 아저씨가 마침내 한 마디 한다.

 

"너 근데 아랍어 어디서 배웠어?"

 

이제껏 내가 한 말을 들으시긴 한 걸까. 한숨만 나온다. 미치겠다 정말.

 

거짓말? 그게 왜 나빠?

 

결국 나는 아저씨를 택시가 있는 곳까지 끌고 오기 위해 내 소개부터 다시 해야 했다. 그렇게 일종의 신고식이 끝나고서야 경찰 아저씨는 택시가 서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보와 나흘라는 각자의 방법으로 택시기사와 씨름 중이었다. 나흘라는 유창한 아랍어를 무기로 '내가 이집트에서 살고 있는데 웬 거짓말이냐'며 따지고 들었지만 그녀의 아랍어는 요르단 암미야(사투리)였으므로 금방 들통이 나버렸다. 아저씨가 한 마디 던진다.

 

"거짓말, 이집트에서 사는 거 아니면서."

 

아저씨의 예리한 대답에 말문이 막힌 나흘라를 보며 택시기사는 "넌 이집션이 되려면 멀었어" 하는 표정으로 껄껄 웃었고, 그의 웃음에 나흘라도 이보도 그제야 마주 웃었다.

 

이집트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로 인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일 따위는 없었다. 이집트에서는 오히려 "어떻게 알았어?" 하는 뻔뻔함이 더 흔한 반응이었다. 그저 그러고선 어깨를 으쓱하며 마주 보고 웃으면 그만이었다.

 

모든 일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듯, 나는 그들이 가진 우유 뷰단함과 도덕적 가치에서조차 존재하는 모호한 경계가 좋았다. 물론 대개 이집트에서 웃으며 넘어가는 거짓말들은 아주 사소한 '귀여운' 거짓말에 속하는 것들이었지만 가끔은 배신감에 치를 떨게 되는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기도 했다. 내가 이건 심각한 잘못이라며 길길이 날뛸 때도 그들은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별것 아닌 걸로 왜 그래?'라는 표정으로 날 보고 웃기만 했다.

 

모든 것을 흘려 넘기는데 익숙지 못하고 융통성 없이 도덕적 기준을 잣대로 지난 세월을 빡빡하게 살아왔던 나. 어찌 보면 모든 것이 물 흘러가듯 지나가는 이집트에서도 유독 내게만 별의별 일이 일어났던 것은 아마 한국에서 가져온 나만의 기준을 들고선 이집트라는 드센 물살의 한 가운데 선 채로 그 물살을 바꾸려, 혹은 막으려 해서는 아니었을까.

 

반갑다, 카이로의 석양

 

다음엔 이보의 수완 좋은 협상이었다. '야 하비비'(내 사랑이라는 뜻의 아랍어)하며 갖은 방법으로 친근함을 표현해 어떻게든 기사의 마음을 바꿔보려고 애를 썼다. 이보가 남자였기 때문일까, 그의 친근한 애칭은 별로 효과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기사 아저씨의 얼굴에는 관광객을 대하던 사기꾼의 모습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우리를 딱하게 여긴 경찰 아저씨의 설득과 끈질긴 고집에 결국 택시기사는 마침내 '진짜' 로컬가격을 제시했다. 서로 합의하에 65파운드를 주고 마디 역까지 가기로 했다. 아직도 저 가격이 비싼 건 아닌가 의문이 들었지만, 3년 전의 물가를 들먹이며 무조건 깎으려고만 드는 몰상식한 여행자가 될 수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적당한 가격으로 어느 한편의 마음도 상하게 하지 않고 이 난리통인 곳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였다.

 

우리가 탄 검은 택시에는 당연히 창문이 없었다. 게다가 처음엔 한국 차인 줄도 몰랐던 '포니'였다. 70년대 말에서 80년 대 중반까지 이집트는 한국에서 중고차 포니를 대량으로 사들였다. 적은 연료와 튼튼한 차체 때문에 이집트의 택시기사들에게 포니는 여전히 인기순위 중 상위에 머물렀다. 20년도 족히 넘었지만 여전히 아프리카의 최대 도시를 당당히 누비는 한국의 포니. 괜스레 또 어깨가 으쓱해진다.

 

나흘라와 이보는 말없이 새로운 장소를 눈에 담기에 바빴고, 나는 눈을 감고 익숙한 그 냄새와 그 소리와 바람을 만끽하기에 몰두했다. 숨을 가득 들이마신 뒤 눈을 뜨고 그리도 그리웠던 카이로의 풍경을 바라보며 머금었던 숨을 다시 내쉬며 눈을 감았다. 나의 반가움과 설렘을 담아서 그렇게 카이로의 매캐한 공기 속에 나의 날숨을 보태었다.

 


풍경은 여전했다. 해질녘의 카이로는 언제나 아름다웠다. 해가 지면 들려오는 아잔소리가 자동차들의 경적소리를 덮었다. 이슬람에서는 하루에 다섯 번 기도를 하라고 가르친다. 그 기도 시간을 알리는 것이 바로 사원에서 울려오는 아잔소리다. 그리고 원칙대로라면 아잔소리는 언제나 '기도시간을 알리는 사람'인 무앗딘이 육성으로 알려야 했다.

 

처음 이곳에 와서는 스피커에서 여과없이 흘러나오는 그 시끄러운 소리가 그리도 싫을 수가 없었다. 가장 부지런한 무앗딘의 목소리는 새벽 4시쯤 되면 언제나 내 단잠을 깨우곤 했다. 그것도 불과 몇백 미터를 간격으로 서 있는 수십 개의 마스지드(이슬람 사원)에서 돌림노래를 부르듯 일정한 간격으로 아잔이 퍼졌다. 그렇게 시작한 아잔은 가장 게으른 무앗딘이 아잔을 끝낼 때쯤 시계를 바라보면 네 시 반쯤을 가리키곤 했다. 동시에 아잔은 내가 이슬람 국가에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존재였다. 아랍을 떠나면 언제나 그리워했던 그 소리.

 

"It is amazing(정말 놀랍다)." 이보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Yes It is(응 맞아)." 나흘라가 대답했다.

 

요르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거대도시. 다닥다닥 빈틈없이 붙어있는 흙색의 건물들. 그리고 그 사이로 비죽비죽 끝없이 솟아있는 이슬람 사원들. 그 건조하고 텁텁한 풍경에 이집트의 일몰이 더해지면, 그 풍경은 몽환적인 어떤 것이 되었다. 건물들은 모두 색을 잃고서 검은 그림자가 되었고, 그 뒤로 지는 붉은 태양은 피라미드와 이집트의 모든 것들을 품은 채 주홍빛 그리고 황금빛으로 하늘을 물들였다.

 

이집트의 거리는 언제나 자동차 경적소리가 끊이질 않고, 어딜 가나 사람들은 붐볐고, 어디나 시끄럽고 어수선하고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일몰의 그 짧은 시간 동안, 그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내 머릿 속엔 고요만이 맴돌았다. 모든 소리가 제거되고 오직 나의 숨소리, 오직 나의 감정만 내 머릿속에 울려오는 듯한 그 기분. 세상은 빠르게 흘러가는데 나 홀로 시간이 정지한 듯한 그 기분. 그 순간만큼은 기꺼이 낯선 곳의 이방인이 되어 일상에서 제외된 관찰자로 그곳에 있는 것이 행복했다.

 

우리 셋 모두 얼마간 혼자만의 세상에 있었던 것 같다. 이보가 그곳에서 방금 나온 듯, 여전히 꿈에 취한 듯한, 하지만 차분하면서도 벅찬 목소리로 말한다.

 

"Sophie, now I know why you were so sure about me failling in love with Egypt. I think I love here already. Thank you to take me here."

(소피, 나 이제야 네가 왜 내가 이집트를 좋아할 거라고 그렇게 장담했는지 알 것 같아. 나 이미 이집트와 사랑에 빠진 것 같아. 날 여기로 데려와줘서 정말 고마워.)

 

내가 요르단에서 겨울에 이집트를 갈 거라고 말했던 날, 이보는 자기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좀 더 가까워진 후, 나는 그에게 말했다.

 

"이보, 넌 분명 이집트를 사랑하게 될 거야."

"You know me more than anyone else, and you are me. So maybe you would be right."

(넌 나를 그 누구보다, 어쩌면 나보다 더 잘 아니까. 네가 그렇다면 아마 그렇겠지?)

"이보!소피! 나도 갈래! 너희랑 가면 정말 재밌을 것 같아! 꼭 가고싶어!"

 

그렇게 요르단에 이 년 동안 머물면서 이집트에 가고 싶었지만 사실 조금 무서웠다는 우리의 귀여운 할머니, 나흘라까지. 우리는 이집트를 사랑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지금 내 옆엔 수작걸던 그 놈 대신 둘도 없는 친구들이...

 

마디에 내려 숙소를 알아보니 이미 만석이었다. 급한 대로 연락을 위해 유심을 구입하고 우리는 머물 곳을 찾아 카이로의 중심 타흐리르 광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평소에 여행을 할 때 계획을 절대 세우지 않는 이보와 이곳이 처음인 나흘라, 결국 내가 생각해낸 건 3년 전 이집트에 처음 도착했을 때 머물렀던 호스텔 '웨이크 업 카이로'(Wake up Cairo)였다. 타흐리르 주변에는 유명한 여행정보에 실려있을 더 좋은 숙소도 많았을 테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더 이상 걸을 힘이 없었다.

 

다행히 4개의 침대가 있는 방이 전부 비어있었고, 고맙게도 그들은 더블룸의 가격만 받았다. 그들을 그 곳에 데려다주고 나는 얼마간 머물기로 한 분의 댁에 가기 위해 가방을 둘러멨다. 이보가 벌떡 일어선다. "소피? 어디가?" 이제 가보겠다고 내일보자 그랬더니 혼자선 절대 보낼 수 없다며 둘이서 날 데려다주겠다고 따라나선다. 셋 모두 기절 직전 상태라, 결국 나는 하루를 그들과 같이 이 곳에서 보내기로 했다.

 

샤워를 하고 나니 좀 살만 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밀린 일기를 썼다. 이보는 평소처럼 뒹굴거리기 바빴고 꼼꼼한 나흘라는 짐 정리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이집트에서의 첫날밤을 두 번 다 같은 숙소 같은 침대에서 보내다니, 기분이 이상하다. 이보가 장난을 걸어온다. 휴. 하는 짓만 보면 우리보고 넌 누나라고 불러야 된단다.

 

 

3년 전 이곳에 왔을 때 직원이었던 아흐마드는 더 이상 이 곳에 없었다. 카이로에서의 첫날밤, 나는 카이로의 야경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런 내게 그가 다가왔었고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농담을 몇 마디 주고받다 그가 내게 팔을 둘렀다. 왜 그때 내겐 "나 혼자 이 야경 좀 즐기게 내버려 둘래?" 하고 그의 팔을 단호히 쳐낼 만한 '깡'이 없었을까. 그는 내게 수작을 걸었던 첫 이집션이었다. 그 후로 숙소에서 그를 마주칠 때 마다 나는 그를 피해다녔다. 

 

어둠에 잠긴 카이로의 밤은 여전히 한결 같았다. 이보가 다가왔다. 우리는 서로 미소 지은 뒤 다시 각자의 생각에 빠졌다. 잠시 후 그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

 

"네가 없으니 나흘라가 심심해 하던 걸. 그만 들어가는 게 어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곳이든 '누구'와 있느냐이다. 3년 전과 같은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이집트는 더 이상 그 물설고 낯설었던 곳이 아니었다. 가장 편안한 친구들과 가장 사랑하는 장소에 있는 지금. 행복하다 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Wake up cairo Hostel 타흐리르 광장 이집션 박물관 앞에 위치. 문의info@wakeupcairohostel.com


태그:#이집트, #카이로, #가다툰, #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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