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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팔룬시(市)의 정치인이자 내년 EU 유럽의회에 스웨덴 대표로 출마할 브루노 카우프만(Bruno Kaufmann). 그는 스위스와 스웨덴 이중국적자이다.
▲ 브루노 카우프만(Bruno Kaufmann) 스웨덴 팔룬시(市)의 정치인이자 내년 EU 유럽의회에 스웨덴 대표로 출마할 브루노 카우프만(Bruno Kaufmann). 그는 스위스와 스웨덴 이중국적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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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태어나 열다섯의 나이에 정당을 창당하고, 열여덟 살 때는 헌법개정을 위한 시민발의를 시도해 국민투표까지 이끌어냈다. 몇 년 후에는 스웨덴의 시민권까지 취득해 현재 스톡홀름에서 기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팔룬에서 정치인으로 재직하고 있다. 동시에 IRI(Initiative & Referendum Institute Europe, 유럽 시민발의 국민투표 연구소)의 공동설립자이자 대표로 전 세계를 누비며 직접 민주주의를 알리기 위해 일하고 있는 스웨덴 정치인 브루노 카우프만.

당장 다음날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 스페인에서 열리는 총회에 참석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기자와의 인터뷰에 시간을 내주었다. 내년 봄, EU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의 선거에 스웨덴 대표로 출마하는 브루노 카우프만. 그를 지난 15일 용산역에서 만났다.

- 어떻게 서울 지하철 노선도에 이렇게 익숙하나? 한국에 일 주일 동안 머무는 외국인이 이토록 복잡한 서울 지하철을 헤메지 않고 능숙하게 이용한다는 게 놀랍다.(웃음)
"사실 2년 전에 가족들과 함께 두 달 동안 서울에서 지냈다. 그래서 서울 지하철 이용하는 데 익숙하다. 2년 만에 다시 한국에 돌아오게 돼서 기쁘다."

- 팔룬(Falun)이라는 도시에 대해 말해달라. 스톡홀름에서 얼마나 가까운가?
"팔룬은 인구 3만 7000명이 넘는 도시로, 스톡홀름에서는 기차로 두 시간 걸린다. 자동차로는 얼마나 걸리는지 모르겠다. 나는 운전면허증도 없으니까.(웃음)"

스웨덴을 대표해 유럽의회에 출마할 정도의 정치인이지만, 자동차 운전도 안 할 뿐만 아니라 아예 운전 면허증도 없단다. 북유럽의 정치인들은 자가용이 아닌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을 하는 것이 일상화됐다는 것은 언론보도 등을 통해 익히 접했지만, 다른 나라에 가서까지도 택시 대신 전철을 이용해 이동하는 친환경적인 생활습관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기자와의 인터뷰 직후 서울시청 근처에서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그를 위해, 시청역 근처의 한 카페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인터뷰를 진행했다.

- 브루노 카우프만하면 IRI (Initiative & Referendum Institute Europe, 유럽 시민발의 국민투표 연구소)의 공동설립자이자 대표라는 점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IRI는 정확하게 어떤 곳인가?
"12년 전쯤부터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직접 민주주의에 뜻을 둔 일반시민들, 정치인들, 정치학자들 및 전문가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 설립됐다. '직접 민주주의 싱크탱크'라고 봐도 좋다."

그가 대표로 있는 IRI는 직접 민주주의의 확대와 전세계적인 네트워크를 위해 설립된 비당파적 비영리 단체다. 지난 2001년 설립되었으며 독일에 본부를 두고 브뤼셀과 스위스에도 대표부를 두고 있다(www.iri-europe.org).

- 세계 여러 언론들과 인터뷰하면서 이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을 것 같다. 그래도 물어봐야겠다. 왜 직접 민주주의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보호받고 존중되어지기를 원한다. 매일 일상의 삶에서 일반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이상적인 방법이 직접 민주주의이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발의할 권리가 있다"

스웨덴 팔룬(Falun)시의 여권의 모습을 띈 직접민주주의를 설명하는 팜플렛을 들고있는 브루노 카우프만과 오마이뉴스 제은진 시민기자.
▲ 오마이뉴스 제은진 기자와 함께한 브루노 카우프만(Bruno Kaufmann) 스웨덴 팔룬(Falun)시의 여권의 모습을 띈 직접민주주의를 설명하는 팜플렛을 들고있는 브루노 카우프만과 오마이뉴스 제은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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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루노 카우프만의 저서 <직접민주주의로의 초대(Guide to Direct Democracy)>는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출간됐다. 원래 스웨덴에서 발간했는데 호응이 좋아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하게 되었나?
"원래 독일에서 2005년에 영어로 출간됐다. 그리고 한국을 포함하여 12개국의 언어로 번역돼 출간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브루노 카우프만은 <직접민주주의로의 초대>외에도 <Direct Democracy in Europe> <The European Constitution - Bringing in the People> 등 직접민주주의에 관한 여러 권의 저서를 펴냈다.

- 이미 18살 때 시민발의를 해서 국민투표까지 이끌어냈다고 들었다. 어린 나이부터 직접 민주주의에 참여한 셈인데, 당시 무슨 내용의 시민발의를 했나?
"스위스도 한국처럼 군복무가 의무다. 당시 스위스에서는 군대가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일종의 '남자들을 위한 학교'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군복무라는 굉장히 마초적인 시스템을 일방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스위스에는 10만 명의 서명을 받으면 누구에게나 헌법개정을 위한 발의를 할 권리가 주어졌다. 그래서 당시 10만명의 서명을 받아 헌법개정을 주장하는 발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결국 국민투표까지 부쳤으나 반대표가 더 많아 헌법개정을 이룰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의무 군복무제와 군대폐지에 관한 국민적 토론은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직접 민주주의의 한 모습이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발의를 할 권리가 있고, 국민투표에서 결국 통과되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전 국민적 토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리고 3주 전에도 스위스에서 똑같은 주제로 국민투표를 다시 실시했는데, 이번에도 반대표가 많아 통과되지 못했다."

기자가 지난 10월 1일 국군의 날 특집으로, 군대 폐지를 주장한 강의석씨를 단독 인터뷰한 후 쓴 오마이뉴스 기사를 언급하자, 카우프만의 눈빛이 환해지며 급관심을 보인다. 그는 한국에서 한 해에 병역거부를 이유로 수감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대체복무는 허락하고 있는지에 관해 적극적으로 물었다.

그는 이번 방한을 마치면 바로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가 그곳에서도 직접민주주의와 관련한 총회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한다.
▲ 단독인터뷰 중인 브루노 카우프만(Bruno Kaufmann) 그는 이번 방한을 마치면 바로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가 그곳에서도 직접민주주의와 관련한 총회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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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하면, '복지국가'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 국가들은 전쟁을 많이 경험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회분위기상 사회적 불안이나 동요가 적다. 그리고 스웨덴 사람들은 상대방을 의심하는 경우가 잘 없고, 사회구성원들을 서로 서로 잘 믿는다. 복지국가로서 정착할 수 있었던 데 이러한 사회분위기가 일조한 것 같다."

- 스웨덴에서는 어느 정당 소속인가?
"녹색당원이다. 스웨덴 녹색당 소속으로 팔룬시의 정치인으로 일하고 있다."

- 한국에서도 작년 총선 때 녹색당이 선거에 나섰지만, 아쉽게도 원내정당이 되는 데는 실패했다.
"현재 한국의 정치제도는 군소정당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한국의 녹색당과 같은 신생정당이 현재 한국의 정치제도 아래 원내 진입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비례대표로 당선된 의원들에게 배분되는 국회 의석수가 높을수록 군소정당들이 원내 진입하기에 더욱 쉬울 것이다."

- 한국과 스웨덴은 대통령제,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제도부터 다르다.
"스웨덴의 왕실은 상징적인 존재일 뿐이지 아무런 실권력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대통령은 권한이 매우 강하여 마치 제왕적 대통령제를 연상시킨다. 스웨덴의 의원내각제는 비례대표제의 성격이 강해서 사회의 다양한 각기계층의 의견과 목소리가 반영되기 더 쉽다."

- 의원내각제에서는 선거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야당지도자로 남아 정계활동을 계속 유지해 나갈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제 하에서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는 정치적 자산을 상당부분 잃게되고 대선패배 책임론에 자주 거론된다.
"맞다. 대통령제는 한마디로 승자독식이다. 대선 이전에 아무리 많은 정치적 업적을 쌓은 후보라도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그 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반면에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는 행정부를 장악하고, 행정부의 주요 관직을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로 채우게 된다."

"18살인 내 딸, 내년에 스웨덴 의회 선거에 출마할 예정"

- 내년 봄 EU의 유럽의회 선거에 스웨덴 대표 중 한 명으로 출마할 것이라 들었다.
"그렇다. 그래서 EU차원에서도 직접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EU국가의 시민이 유럽의회에서 결정한 법안에 대해 개정을 원하거나, 새로운 법안을 원할 시 직접 발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시민이 발의를 원할 경우 스웨덴 등 다른 유럽국가들의 시민들의 서명을 받는 데 지리적 제한이 있다. 그러므로 온라인 상에서 서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이고, 내일 스페인에 가서도 이를 널리 홍보할 계획이다."

Democracy Passport(민주주의 여권)란 이름을 붙인 팔룬시(市)의 여권. 스웨덴에서 전세계로 직접민주주의가 뻗어나간다는 의미를 담고있다고 한다.
▲ 스웨덴 팔룬시(市)의 민주주의 여권 Democracy Passport(민주주의 여권)란 이름을 붙인 팔룬시(市)의 여권. 스웨덴에서 전세계로 직접민주주의가 뻗어나간다는 의미를 담고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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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직접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열정이 놀랍고 매우 인상적이다.
"사실 18살인 내 딸이 내년에 스웨덴 의회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다. 내가 이렇게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딸이 영향을 많이 받았다.(웃음)"

당장 다음 날 출국하는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를 해준 것도 고마운데, 브루노 카우프만은 이날 기자에게 작은 선물까지 줬다. 바로 스웨덴 팔룬(Falun)시에서 제작한 조그마한 여권이었다. 물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여권은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권을 가지는 것을 좋아한 데서 착안한 아이디어라고 했다.

만약 그냥 팸플릿으로 제작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대수롭게 여기고 말았을 것이다. 직접민주주의를 알리는 팸플릿을 팔룬시(市)의 여권이라는 기념품으로 만든 그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이 가짜(?) 여권의 표지에는 스웨덴에서 시작한 직접민주주의가 세계 여러나라로 뻗어간다는 의미까지 담았다고, 자상한 설명까지 빼놓지 않은 브루노 카우프만씨.

몇 십 년 전부터 이미 스위스에서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발의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던 것에 반해, 우리 사회에서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조차 미비했다. 선거기간 동안에는 달콤한 공약을 쏟아내다가도, 당선 후에는 돌연 공약 이행을 취소해 버리는 정치인들에게 익숙한 우리에게는 브루노 카우프만씨처럼 열심히 일하는 정치인이라는 존재부터 낯설다. 본국에서도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근하고, 다른 나라에 가서도 전철을 이용하는 모습은 우리에겐 그저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다. 솔직히 우리는 해외 출장이라는 명분 아래 해외 관광을 일삼는 정치인들에 더욱 익숙하지 않은가.


태그:#브루노, #카우프만, #직접민주주의, #스웨덴, #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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