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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한다.
▲ 소셜네트워크가 지배하는 세상 현대인들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한다.
ⓒ 김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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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수많은 사용자들은 자신의 생활 일부 혹은 전반을 '담벼락'에 실시간으로 올린다. 서로의 사생활은 담벼락을 통해 재빠르게 공유되며, 친구에게 동조하는 과정은 '좋아요' 버튼을 통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페이스북으로 서로의 실시간 정보를 나누는 동안 그들은 결코 외롭지 않다. 그 순간 고독이란 단어는 그들과는 먼 얘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에 대해 공감하는 시간은 몇 분 아니 불과 몇 초에 불과하며, 오가는 대화 역시 가벼운 농담이나 영양가 없는 내용들일 뿐이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의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인들이 이렇게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교류하면서부터 사회적인 유대관계를 '찰나의 순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지그문트 바우만 저 조은평, 강지은 역
▲ 고독을 잃어버리 시간 지그문트 바우만 저 조은평, 강지은 역
ⓒ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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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는 것은 바로 개인들 상호 간의 관계뿐 아니라 사회적인 유대관계와도 모두 관련되어 있는 '접속'이나 '데이트', '미팅, '의사소통', '공동체', '우정'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개념들이 지시하는 대상들이 온라인 세계라는 새로운 위치로 이동하면서 가장 먼저 나타난 결과 가운데 하나는 바로 현재의 사회적 유대관계와 사회적 약속들을 마치 아주 순간적인 스냅사진 같은 것처럼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page 45

만들어진 나

찰나의 순간을 공유하고 가벼운 관계를 형성하는 페이스북은 나르시즘에 걸린 생산자와 그를 지켜보는 소비자들로 넘쳐난다.

사람들은 셀카로 '보여지고 싶은 나'를 생산하고 페이스북이라는 온라인매장에 무료로 제공한다.

친구들은 페이스북에 올라온 '나'의 모습을 은밀히 들여다본다. 이렇듯 순식간에 업데이트 되는 담벼락의 사진들 속에서 친구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서 '나의 모습'은 점점 더 아름답게, 점점 더 행복하게 치장되는 경우가 많다.

(중략)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을 지금 이 순간이든 그 어떤 때이든지 간에 스스로 아는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알 수 있게 만드는 일이며, 따라서 중요한 것은 '보여져야 한다는' 점이다.-page 49

이제 우리는 특별한 매 순간마다 휴대폰을 꺼내든다. 환상적인 밴드의 공연에서도, 친구들과의 재미난 파티에서도 그 순간 느껴지는 감동보다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데 집중한다.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감탄보다 그 풍경 속에 찍힌 나에 대해 더 감탄하며, 이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반응을 살피는데 집중한다.

이제 모든 생활은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나'를 중심으로 흘러가며, 그 주위에는 순간순간 나의 모습을 관찰하는 발빠른 소비자들만이 존재한다. 이런 관계 속에서 '나와 너'라는 1:1의 진실한 만남은 의미를 잃어버린다.

이제 언젠가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그 유명한 '존재 증명'의 명제는 우리들의 이 매스커뮤니케이션 시대에 맞게 새로운 버전으로 업데이트된 "나는 보여진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에 밀려 쫓겨나버리고 말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보면 볼수록, 즉 사람들이 나를 보려고 선택하면 할수록 점점 더 내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납득시켜주는 증명처럼 여기게 되는 셈이다. -page 51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실시간으로 정보가 공유되는 소셜네트워크는 우리에게 지루한 순간들을 없애주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지루하고 고독한 순간을 참아낼 필요가 없다. 그러한 순간이 찾아오면 친구들과 가벼운 대화를 즐길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로 도피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접속'이 주는 위로의 느낌은 심지어 사람들이 많은 방에 앉아 있거나 군중들로 꽉 들어찬 쇼핑몰 복도를 어슬렁거릴 때, 아니면 함께 어울려 다니는 또래 친구들 무리에 끼어 거리를 방황할 때조차도 잘 유지된다. 당신은 언제든 자신을 정신적으로 '여기'에 없는 사람처럼 만들어서 마치 다른 아무도 없이 '혼자'있는 듯이 있을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신이 지금 당장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싶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통지할 수도 있다.

당신은 사실상 물리적으로는 여기에 없는 그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그저 손가락을 바쁘게 주물럭거리듯 누르는 것만으로도 언제든 그 귀찮은 군중들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고, 이를 통해 지나친 요구가 없기에 별 매력도 없지만 그럼에도 안전한 가상적인 '접속' 상황으로 잠시 동안 도피할 수 있다. 또한 당신은 사람들로부터 받는 메시지들을 잠깐 대충 훑어보는 척하면서 귀찮은 군중들 밖으로 벗어날 수도 있다.

심지어 당신이 그처럼 접속할 수 있는 장치를 손에 쥐고 있다면, 우르르 몰려다니는 무리들 속에서도 언제든 원할 때마다 온라인에 접속해 당신 자신을 혼자 있게 만들 수도 있다. 그것은 아주 즉시, 곧 어떤 친구가 당신에게 지나치게 바싹 붙으려 하는 순간이나 아니면 지나치게 당신 취향을 참견하려는 순간 그 즉시 말이다.-page 29~30

그러나 소셜네트워크가 고독의 순간을 벗어나게 해줌에도 최근 내 주변에는 페이스북을 비롯하여 소셜네트워크 활동을 중지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대부분 소셜네트워크 활동을 하면 할수록 소외감과 외로움을 많이 느끼게 된다는 이유였다.

짧은 대화와 보여주기식 소통, 쌍방향인듯 보이지만 '나'를 중심으로 한 일방적인 관계, 잘난 내 모습을 끊임없이 생산해내야만 하는 피로감이 지배하는 소셜네트워크 안에서만큼은 고독을 느낄 겨를이 없다.

그러나 실시간으로 계속되는 소셜네트워크의 단발적인 관계는 그곳을 벗어나는 순간 고독을 더욱 더 가중시킨다. 매 순간 오로지 혼자 있을 수 있는 고독한 시간을 스스로 박탈해버림으로써 고독을 음미하고 그 실체를 파악할 기회를 놓쳐버리게 만들고, 결국 소셜네트워크에서 벗어나는 순간 친구들과 떨어져 마치 홀로 있는 듯한 불안과 고독이 가중되는 것이다.

Page 31
▲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Page 31
ⓒ 김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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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지금 어떠한가? 소셜네트워크를 벗어나 있는 동안 외로움과 고독함에 사로잡혀 있는가? 그렇다면 이제 잠시 시끄러운 소셜네트워크를 떠나 조용히 생각해보자.

"트위터 팔로우를 늘려가는 동안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동녘(2012)


태그:#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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