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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를 다 먹고도 양이 덜 찼는지 볏짚을 씹어 먹었습니다.
▲ 소와 짚 사료를 다 먹고도 양이 덜 찼는지 볏짚을 씹어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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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도원 다녀 올테니 그리 알아요."

돈벌이가 신통찮아 아내는 늘 근심걱정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스트레스를 3일간 기도원 가서 풀고 오겠다고 합니다. 기독교 신자인 아내는 기도원에라도 안다녀오면 속이 터져 버릴거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가지말라고 이야기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9월 18일 오전 아내와 고등학교 2학년인 딸이 그렇게 기도원 여행을 떠났습니다. 3년전 10여년 잘 다니던 현대차 사내하청을 강제로 정리해고 당한 후 생계가 막연했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여러가지 노력을 해왔으나 40대 후반에다 혈압이 높아 한푼이라도 더 벌수있는 직장 얻기가 어려웠습니다.

3년 전 어느 분의 소개로 들어갈 수 있었던 학교 일용직은 생계비 충당하기엔 많이 허전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나마도 일자리가 없으면 정말이지 저 때문에 만들어진 가정은 파탄날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동네 김밥 값이 1000원에서 1500원이나 오르고 있는 3년. 그렇게 우여곡절 겪으며 다니고는 있지만 일당은 5만 3160원. 3년전이나 지금이나 땡전한푼 더 오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갈수록 힘들어 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물가는 자꾸만 올라가는데 반해 일용직인 제 일당은 매년 제자리 걸음이니 말입니다. 아내는 자꾸만 다른 직장 얻으라고 말하지만 그 말 들을 때마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어 집니다.

돈을 좀 더 벌어 들이려면 울산에선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 사내하청 이라도 다녀야 하는데 이미 오래 전 노조활동 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걸려 있어 제 이름으로 서류를 넣으면 아무리 급한 하청업체에서도 받아 줄 수가 없다는 연락이 와서 취업이 불가능 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사외 하청업체가 많으나 그곳에도 정규직은 뽑지 않고 파견 하청업자를 통해 2차,3차 하청으로 돌려 일을 시키므로 급여는 어디서나 최저시급 이었습니다. 일은 일대로 힘들고 시급은 작으니 차라리 학교나 그곳이나 임금이 비슷하다면 학교 일용직 다니는게 더 나아 보여 지금까지 중단치 못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덩어리가 미네랄 소금입니다. 소들이 핥아 먹어 네모난 모양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 소 여물과 소금 덩어리 오른쪽에 보이는 덩어리가 미네랄 소금입니다. 소들이 핥아 먹어 네모난 모양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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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가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 벌 능력이 부족한 저를 아내가 이해 못하고 있는건 아니지만 가정 경제가 날로 추락하고 있으니 공과금이나 생활비 들어갈 때마다 아내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거 같습니다. 게다가 예민한 성격을 가져서 더 그런거 같았습니다. 우울증을 종교로 간신히 이겨내며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가 잘 풀려서 저에게도 정규직 전환 이라는 해결책으로 다가오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참고 인내하는 것도 한계에 도달했는지 아내는 기도원으로 떠났습니다. 고2 딸과 함께요.

저는 여동생 집으로 갔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랑요. 사전에 여동생에게 연락을 취했었습니다. 추석날 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오라고 했습니다. 돈 없다면서 비용이 어디서 났냐구요? 아내는 10여년 넣던 보험을 하나 해약 했다고 했습니다. 80여만원 넣었는데 해약하니 40여만원 나왔다고 했습니다. 20만원은 기도원 경비로 가져가고 20만원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가정을 책임져야 할 저로서도 매일 고민에 휩싸여 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현대차가 불법파견 인정하고 저처럼 권고사직형 정리해고 된 해고자에게도 정규직 전환 일자리를 제공해주면 모든게 해결될 스트레스이지만 아직 멀고도 험한 여정이 많이 남은듯 느껴졌습니다. 그러니 겉으로 표현을 잘 안해서 그렇지 제가 감내해야할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저는 추석 전날 오후에 아들과 집을 나섰습니다.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았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울산에서 경주, 포항까지 가는데 아들이 차멀미를 심하게 했습니다. 포항 터미널에 내려 멀미약부터 사먹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영덕까지 시외버스로 갔습니다. 날이 밝을 때 영덕 터미널에 도착했었는데 날이 어둑어둑 해져서야 우리를 데리러 왔습니다. 30여분을 달려 여동생이 사는 곳에 도착 했습니다.

"여긴 완전 산속이야. 야생 동물도 많아. 버스 다니는 큰 길에서 내려 걸어오면 30분 정도 걸릴거야."

그동안 영덕에서 여러가지 일을 전전하다 6개월전 취직한 곳이라 했습니다. 그곳은 축산협동조합에서 관리하는 큰 소 목장이었습니다. 200여마리씩 두곳에서 관리되고 있는데 현장 관리자로 취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고 매제는 곧 소 여물을 주러 다녔습니다. 따라가 보았습니다.

"이곳엔 암소와 숫소가 있고요. 키워져 도축되는 소와 종족보존을 위한 소로 분류하여 관리되고 있습니다."

소 여물은 자동화로 주는 곳도 있었고 손수레로 퍼 주어야 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 소 여물주는 여동생 부부 소 여물은 자동화로 주는 곳도 있었고 손수레로 퍼 주어야 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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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 소 사육장엔 어린 송아지부터 덩치가 큰 소까지 다양하게 있었습니다. 낯선지 제가 가니 소들이 눈치를 보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 섰습니다. 먹이를 준다는 걸 아는지 침을 흘리는 소도 있었습니다. 만든지 얼마 되잖았는지 깔끔하게 되어 있었고 자동화 시설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소 전용 사료를 주었고 간식용으로 발효 처리된 짚이 제공되었습니다. 사료는 일정양만 주어졌습니다. 배가 덜 찼는지 사료를 다 먹은후 짚을 먹는 소도 있었습니다. 미네랄 소금도 있었는데 소는 자기가 알아서 소금을 혀로 핥아 섭취하기도 했었습니다. 소 사료는 송아지와 큰소, 암소와 숫소에 주어지는게 조금씩 달랐습니다.

소 사육장 건물 위에 '비육소'라고 쓰여 있는 곳이 있어 매제에게 물어보니 비육소는 키워 식용으로 처리될 소 였습니다. 주로 숫소를 식용으로 키운다고 합니다. 비육소로 키워지는 소는 송아지 때 거세를 해버린다고 합니다. 거세는 기계로 생식기 관을 찝어 사용성 없게 만드는데 일주일 넘게 통증이 있는지 송아지들이 거세후 2주 정도 운다고 합니다. 소는 열이 많은 동물이라 소고기는 몸이 찬 사람들이 먹으면 좋다고 합니다.

다음날 저는 그곳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곳은 흙이 붉었습니다. 여동생은 물에서 녹내가 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못마시고 정수기와 연수기를 설치 했다고 했습니다. 여동생 딸이 아토피인데 시골에 있으면 호전 되려니 했던 아토피는 그대로 였습니다. 딸의 식생활도 문제가 있겠지만 그곳 지하수도 문제가 있는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곳은 특이하게도 계곡이 없었습니다. 비가 내릴땐 온통 진흙으로 변했다가 얼마후면 그 진흙밭이 돌덩이처럼 굳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곳 주변으로 아무도 살지 않았습니다. 아래로 한참을 내려가야 마을이 있었고 그곳 흙은 달랐습니다.

그곳 땅과 돌은 모두 저렇게 붉었습니다.
▲ 붉은 돌 그곳 땅과 돌은 모두 저렇게 붉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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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도 없고 물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찾은 골짜기에서 녹물처럼 보이는 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 골짜기 물 골짜기도 없고 물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찾은 골짜기에서 녹물처럼 보이는 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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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소 사육장 안에 있었습니다. 밤에 자는데 소똥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해가 뜨니 방안이 뜨거웠습니다. 직사광선이 방안으로 하루종일 내리 쬐었습니다. 전에 살던 곳 집주인이 집을 비워 달라고 해서 가족이 모두 들어와 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가족이 살기엔 좀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소 사육장과 좀 떨어진 곳에 가정집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매제는 소 관리가 좋은가 봅니다. 매제는 재주가 많습니다. 보일러도 잘 고치고 기계 쪽에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식물 키우기도 잘 하고, 동물 사육도 관심이 많습니다.

소 사육장과 가정집은 분리되어 있는게 좋을거 같았습니다.
▲ 소 사육장 안에 있는 가정집. 소 사육장과 가정집은 분리되어 있는게 좋을거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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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로서 항상 위태롭게 보이던 여동생이 저보다는 나은 삶을 사는거 같아 마음 놓입니다. 매제는 눈썰미도 있고 일을 잘 처리하니 소 사육하는 일도 잘 할거 같습니다. 한국의 2대 명절 추석과 설. 간만에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보낼수 있는 날 입니다. 하지만 여동생네는 1년내내 그곳을 지켜야 합니다. 동물을 사육하는 일이라 그런거 같습니다. 여동생네가 하는 일에 비하면 연봉 2400만원 별로 많지 않아 보입니다. 게다가 아직 계약직이니 정규직으로 누려야 할 혜택도 거의 없다고 합니다. 축협은 규모도 크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산 협동조합입니다. 말단이긴 하지만 매제는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3박 4일 머물다 다시 울산 집으로 왔습니다. 그곳 소 사육장 문 앞에 어려운 한자가 돌에 새겨져 있어 매제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 한자는 '축산부흥' 이라는 한자라고 했습니다. 그곳을 떠나 오면서 축산부흥 만큼이나 여동생네도 잘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한자의 한글표기가 축산부흥 이라고 합니다.
▲ 축산부흥 한자의 한글표기가 축산부흥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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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여동생, #울산 영덕, #소,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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