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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6일. 저는 학비노조 석식종사원 노숙농성에 하루 참여했습니다. 학비노조에서 특별텐트를 만들어 주어 그 안에서 잤습니다.
▲ 교육청 앞 노숙 지난 8월 16일. 저는 학비노조 석식종사원 노숙농성에 하루 참여했습니다. 학비노조에서 특별텐트를 만들어 주어 그 안에서 잤습니다.
ⓒ 학비노조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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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비노조 조합원 여러분! 석식종사자 투쟁에 연대해주십시오. 더 이상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어 오늘부터 천막농성에 들어갑니다. 오후 5시 집회에 꼭 와주세요."

지난 16일 금요일 오전이었습니다. 학교에 출근해 일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습니다. 문자는 학교비정규직노조(이하 학비노조) 울산지부에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울산시교육청은 외곽지역에 있어 빠른 시간 내에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쪽으로 가는 버스가 잘 없었습니다. 일반버스를 타면 1150원이면 가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결국 3000원이나 하는 직행버스를 타야 했습니다. 그 직행버스는 KTX 울산역이 생기면서 동구에 새로 생긴 고급 직행버스였습니다.

버스로 도착한 곳은 교육청이 있는 바로 옆 정차장. 도착하니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저는 그냥 집에 갈까 하다가 노숙농성하는 조합원과 함께 하룻밤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저것 모자란 일손을 도우면서 조합원에게 인사도 건넸습니다. 농성에 들어간 조합원은 모두 석식종사자들이었습니다.

"교육청에서 인원 뽑을 땐 중식(종사자)과 같은 조건으로 뽑아 놓고 이제 와서 중식종사자와 차이와 차별을 둔다 하니 참을 수가 있어야지요."

학비노조 울산지부는 교육청 청사 계단 아랫길 공터에 천막농성을 시작했습니다.
▲ 8월 16일 오후 5시 학비노조 울산지부는 교육청 청사 계단 아랫길 공터에 천막농성을 시작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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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 앞에서 석식종사자 천막농성을 시작했습니다.
▲ 천막농성 교육청 앞에서 석식종사자 천막농성을 시작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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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중식과 같은 조건으로 입사해 일해왔다고 했습니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넘은 학교급식 종사원들이었습니다. 교육감 직고용 조례가 제정되고 지난 8월 8일 그 세부사항에 대해 통과 시행하려 했는데 학비노조에서 회의장으로 집결하여 막아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약속한 대로 중식, 석식 차별과 차이를 두지 말고 대하라는 것뿐입니다. 중식은 교육감 소속으로 하고 석식은 학교장 관리하에 두게 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교육청에서 꼼수를 부리는 걸 누가 모를 줄 아십니까? 교육청에서 관리하면 국가재정으로 학교 식당이 운영되지만 학교장이 관리하면 그 운영재정을 학교 자체에서 조달해야 합니다.

결국 학부모에게 높아지는 식비를 부담하게 해야 하고 그렇게 될 경우 부식의 질도 떨어지니 이래저래 학생들과 학부모만 피해를 보게 됩니다. 그리 될 경우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우리 종사원을 줄이게 될 겁니다. 지금 두 명이 할 일을 한 명이 담당해야 하는데 그만큼 노동강도가 세어져 더 힘들게 일해야 합니다."

노숙농성에 들어간 석식 종사원과 이야기 나누면서 16일 저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교육청 쪽에서 젊은 여성 두 명이 걸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5층 사무실에 불이 꺼진 후였습니다. 시간을 보니 밤 11시였습니다. 그들은 노조원에게 다가오더니 몇 명이 밤샘 하는지, 어느 학교에서 농성을 맡았는지, 내일 아침엔 어느 학교에서 교대할 것인지를 물어보고 퇴근했습니다. 저분들이 누구길래 물어보냐고 노조원에게 물어보니 교육청 직원들이라 했습니다.

가마솥 더위, 찜통 더위가 따로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농성참여자로 온 여성 조합원들 모두 무더위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시멘트 벽돌로 바닥이 되어 있어 바닥에 앉으니 뜨끈했습니다. 더위를 못 참겠다며 연신 작은 부채를 얼굴 주위에 부쳤습니다.

지나다니는 차량에서 나오는 매연과 열기가 더해져 농성장은 그야말로 불볕더위였습니다.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내고 나면 금세 다시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습니다. 여성 조합원들은 참다 못해 교육청 화장실에 가서 씻고 오겠다며 두어 명씩 짝을 지어 갔다 오기도 했습니다.

낮의 찜통 더위는 열대야로 이어졌습니다. 잠도 오지 않고, 서로 학교에서 일하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밤은 깊어갔습니다. 학비노조 식당종사원은 모두 중년 여성이었습니다. 교육청과 경찰에서 도발할지도 몰라 민주노총 간부와 전교조 간부가 불침번을 서주었습니다.

학비노조 천막 옆에 노조원들이 제 잠자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스티로폼을 깔고 모기장을 설치해 주었습니다. 새벽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교육청은 큰 길 가에 있었습니다. 학비노조 농성용 천막은 도로 바로 옆에 쳐져 있었습니다. 자리에 누워 눈을 감으니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들려왔습니다.

작은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고 길에서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려왔습니다. 그 길은 산업도로로 쓰이는지 대형 트럭과 트레일러가 많이 지나다녔습니다. 탱크가 오는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는 차량도 있었습니다. 그 차량들이 마치 제가 누워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아침에 몸이 뜨거워 일어나니 해가 떠올라 있었습니다. 작열하는 햇살이 농성장을 불태울듯 내리 쬐고 있었습니다.

학비노조 조합원은 이날 많이 모여서 함께 했습니다. 가까운 곳에 사는 분들은 여러가지 물품도 지원했습니다.
▲ 8월 16일 노숙농성 첫날. 학비노조 조합원은 이날 많이 모여서 함께 했습니다. 가까운 곳에 사는 분들은 여러가지 물품도 지원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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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9시. 교대할 다른 학교 석식종사원이 왔습니다. 아래 천막농성장이 뜨거워 우리는 교육청 건물이 있는 곳에 그늘로 갔습니다. 음식물을 준비해와서 어젯밤 수고한 조합원에게 주기도 했습니다. 다음 일정을 기다리면서 휴식시간을 가졌습니다. 학비노조 사무국장이 와서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오전조 20여 명이 오셨는데요. 절반씩 나눠서 일정을 짜겠습니다. 한 조는 이곳을 지키구요. 한 조는 나가서 피켓시위와 방송시위를 할 것 입니다. 날이 더우니 좀 쉬었다가 시작합시다."

시간이 되자 한 조는 교육청 천막농성장에 있고 한 조는 방송용 승합차를 타고 일정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저는 어제 못다 들은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천막농성장에 있었습니다. 밤새 잠을 못 자 피곤하긴 했으나 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그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남아 있는 분들에게 저를 소개하고 저는 그분들에게 질문도 하면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학교장이 운영책임자로 할 게 아니라 교육감이 운영책임을 맡으라는 거죠. 그래야 국비로 학교급식소가 운영되어 급식 질도 높아지고 우리도 적당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어요."

교육감 직고용 지대로 좀 하입시다.
▲ 김복만 교육감님! 교육감 직고용 지대로 좀 하입시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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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에서 학교급식을 책임지면 국비로 모두 운영되지만 학교장이 맡아 하게 되면 학부모가 돈을 내어 운영하게 되므로 학부모 부담이 높아지고, 교육청과 관계가 없게 되어 학교장 맘대로 할 수 있어 문제가 심각해진다고 했습니다. 일은 똑같이 하면서 소속이 달라지니 부당하고 불리한 입장에 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중식과 석식이 다르다고 그럼 처음부터 그러든가요. 처음엔 분명히 중식과 석식은 차이도 차별도 없다고 했어요. 고용할 때 그래놓고 이제 와서 이게 뭡니까?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동안 말 한마디 없다가 이번에 교육감 직고용 조례 만들어지면서 은근슬쩍 중식은 교육감 책임, 석식은 학교장 책임으로 인간차별화 정책으로 나가려 하니 우린 억울해서 이렇게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에도 나올 수밖에 없어요."

그들은 석식종사자가 처한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우리는 오후 2시까지 출근해서 밤 9시가 되어 퇴근합니다. 우리는 월차를 내려 해도 대체인력을 구해놔야 해요. 대체인력 못 구하면 하루 빠지고 싶어도 못 빠져요. 제가 빠지면 다른 동료들이 그만큼 힘들어야 하잖아요. 대체인력으로 올 사람 구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학교 식당 와서 하루 알바 하는데도 보건증과 통장 복사 같은 여러 가지 서류를 준비해 와야 하니 누가 그것 보고 하루 와서 일하겠어요?

4년 전 저는 이런 일도 당했어요. 그땐 노동조합에 가입 안 되어 있었을 때지요. 일하다가 뜨거운 물이 쏟아져 다리를 크게 데인 적이 있었어요. 그러면 산재처리나 공상처리 해야 하잖아요. 교장도 영양사도 외면하더군요. 얼른 자기 승용차로 병원 응급실로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는 저 혼자 택시 잡아타고 병원 갔다니까요. 병원비와 치료비도 모두 제가 물어야 했어요.

이게 무슨 인간 사는 곳인가 싶었어요. 사람을 사람취급 하지 않으니 참 제 처지가 서럽기도 했었습니다. 노동조합에 집단가입 하고 나니까 여러 가지가 좋아졌어요. 저는 노동조합에 잘 가입했다고 생각해요. 노동조합이 사람답게 살게 하고 있잖아요."

똑같이 급식조리원으로 일하는데 왜 중식종사자와 석식종사자의 신분에 차이가 있어야 하는 걸까요? 19일 울산시 교육청에 전화해 대답을 들어봤습니다.

"학교급식법에 의하면 중식종사원은 교육감 직고용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지만 석식종사원은 관련 법이 없으므로 교육감 직고용으로 하기엔 어려운 현실입니다. 중식은 기본적으로 교육청에서 관리하고 있으나 석식은 학부모가 원했을 때 하는 자율권에 해당하므로 학교장이 관리하는 게 맞다고 판단됩니다. 학부모가 돈을 내고 석식종사원을 채용하는데 교육청에서 인원 관리를 하게 되면 학부모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학비노조 석식종사 조합원들은 20일까지 교육청의 답을 기다리며 청사 앞 길가에서 무더위 속에 밤샘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조합원 중에는 어린 아기를 업고 오는 분도 계시고 임신한 지 얼마 안 되는 분도 있습니다. 나이가 사오십 되신 분들은 그나마 자식들 다 키우셔서 괜찮다고 하시면서, 새댁들이 더운데 고생 많다며 오히려 건강 걱정을 하셨습니다.

교육청은 우리 서민들의 애환을 알고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가 교육감 직고용으로 통일되고 또한 무기계약직으로 모두 전환되기를 바랍니다. 폭염의 나날이 계속되는데, 지켜보는 제가 다 마음이 안쓰럽습니다. 그들이 더 이상 무더운 청사 앞에서 노숙하지 않도록 교육관계자 분들이 널리 헤아려주시기를. 

울산시 교육청 돌 아래 놓인 피켓 하나
▲ 노동조합으로 가입합시다! 울산시 교육청 돌 아래 놓인 피켓 하나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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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폭염이야기' 공모 응모글입니다.



태그:#학비노조 울산지부, #석식종사원, #교육감 직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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