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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엊그제까지 머물렀던 야생 초원에서 느꼈던 벅찬 감동들이 아직 채 정리되지도 않았지만 케냐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아주 이른 새벽 이집트 카이로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리적으로 보면 아프리카의 북쪽 끝에 있긴 하지만 아프리카라기 보다는 중동의 느낌이 강한 나라. 그것보다는 수천 년째 전해져 오는 수많은 이야기와 수수께끼로 가득한 나라. 그래서 이집트는 세계여행을 꿈꿔왔던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동화책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신비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그 짜릿한 느낌. 이제 다시 문명의 세계로 돌아와 호기심 상자를 열어볼 시간이다.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수수께끼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하늘에서 바라본 카이로 시티
 하늘에서 바라본 카이로 시티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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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깔끔한 카이로 국제공항에 내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탑승했을 때 처음 느낀 카이로의 인상은 '누렇다'였다. 사막의 특성상 거의 연중 내내 40℃를 훌쩍 넘는 기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건조하지 않은 날씨와 시야를 항상 뿌옇게 만드는 엄청난 모래먼지들. 그래서 그런지 거리도 건물도, 사람들의 색깔도 온통 모래색, 색깔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도시 카이로. 동시에 정신없이 경적을 울려대는 자동차와 거리마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색깔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카이로의 도심
 색깔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카이로의 도심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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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혼잡한 도시 카이로에서 홀로 숙소를 찾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혼라스러웠던 점은 이들의 사용하는 숫자. 이들의 조상이기도 한 아라비안 숫자를 왜 안쓰는지 알 수 없지만 이집트에서는 숫자 '5'를 '0' 으로 표기하는 독특한 숫자 체계를 사용한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지만 숫자를 모르니 버스를 탈 때도 가격을 볼 때도 혼란은 커져만 갔다.

모래와 먼지, 아비규환에 가까운 시내... 여기가 카이로다

카이로의 유일한 녹지, 나일강
 카이로의 유일한 녹지, 나일강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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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년 내내 가득 차는 모래와 먼지, 그리고 신호등과 횡단보도, 차선이 없어 아비규환에 가까운 시내. 카이로에서 길을 건너기란 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한 번은 물어본 적이 있다. 횡단보도가 있는데 왜 신호등이 없고 신호등이 있으면 왜 안 지키냐고. 돌아온 답은 참 간단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반대편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지금 내 눈앞의 길을 가로지르는 일인데 뭐하러 돌아가는 멍청한 짓을 하느냐..."

나는 잠시 할말을 잃고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해야 할지, '이게 무슨 궤변이냐'라고 해야 할지 혼란에 빠졌다.

두어시간 만에 숙소를 찾아 겨우 안정을 취하고 나니 다시 그 혼돈을 뚫고 거리로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숙소의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마냥 쉬기에 카이로는 궁금한 게 너무 많은 도시다.

피라미드를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강했지만 첫날은 천천히 쉬기로 한 나는 이집트 박물관을 떠올렸다. 이집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지만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모든 유물은 이집트 박물관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기도 하니까.

'저주' 투탕카멘의 무덤 앞에 서다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인 이집트 박물관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인 이집트 박물관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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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모든 카메라를 수거하는 등 사진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이집트 박물관 내부는 어찌 보면 그래서 더 극적일 수도 있다. 많은 유물 때문에 박물관 벽도 유물이라는 풍문은 결코 소문이 아니었다.

이집트 각지에서 발견되는 유물의 수에 비해 턱없이 작은 이집트 박물관은 그야말로 유물들의 무덤이다. '세계 3대 박물관'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유물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부족한 공간을 넓히기 위한 공사가 매일 진행중이라 조금은 어수선하지만, 그 어마어마한 규모와 섬세함에 금세 기가 죽는다.

이집트 왕조별로 모여 있는 각종 석상과 조각품들만으로도 고대 이집트에 대한 호기심을 풀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집트 박물관의 또 다른 재미는 바로 미라다. 사람의 내장을 뺀 뒤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무덤 속에 묻었다는 이집트인의 풍습인 미라는 많은 소설과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박물관 2층 한켠에 적당한 온도로 냉장보관되어 있는 고대 미라들을 보고 있으니, 금방이라도 일어서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피부는 썩어서 없어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머리카락은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또 워낙 잘 보존된 탓에 살아있을 때의 얼굴이 연상될 정도로 리얼했다.

이집트 박물관의 외부에도 유물은 끊이지 않는다
 이집트 박물관의 외부에도 유물은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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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이집트 박물관의 백미이자 하이라이트인 투탕카멘의 무덤 앞에 선 나는 묘한 그리움마저 느꼈다. 9살의 어린 나이에 파라오(이집트의 왕)에 올랐다가 열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죽은 기구한 운명도 그렇지만 일대기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발굴된 그의 무덤은 도굴 당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오늘날 알려진 고대 이집트와 관련된 많은 사실들이 바로 이 무덤 연구를 통한 것이다. 결정적으로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저주다. 발굴을 지휘했던 하워드 카터, 자본을 댔던 카나본 등을 비롯 여러 사람들이 발굴 후에 죽음을 맞으면서 사람들을 이를 투탕카멘의 저주라고 부른다. 그런 수수께끼 덕분에 박물관에서 바라보는 그의 무덤과 미라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관이라는 투탕카멘의 석관은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정도의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한다. 게임 속에나 등장하는 보물창고가 실제로 있다면 아마 이집트 박물관이 아닐까?

피라미드를 보러 간 곳에서 만난 스핑크스

"이왕이면 해가 그나마 덜 뜨거운 오전에 다녀오라"는 숙소 관리인의 말대로 다음날 아침 일찍 피라미드를 찾아 나섰다. 굳이 케케묵은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피라미드는 누구에게나 항상 불가사의였다. 그런 피라미드를 보러 갔지만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수수께끼의 대명사 스핑크스다.

수수께끼의 대명사 스핑크스
 수수께끼의 대명사 스핑크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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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머리와 가슴, 사자의 몸,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스핑크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 괴물은 오이디푸스에게 그 유명한 질문을 던진다.

"아침에는 네 다리, 낮에는 두 다리,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

오이디푸스는 정답인 "사람"을 얘기했고 스핑크스는 자살을 한다. 신화에서 그렇게 사라진 스핑크스는 오늘날 길이 57m, 높이 20m 의 거대한 문지기가 되어 고대 이집트 왕의 무덤인 피라미드를 지키고 있다.

가까이서 보면 코도 떨어져나가고 오랜 세월이 흘러 정교함은 사라졌지만 처음 스핑크스를 봤을 때의 전율은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피할 길 없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바라본 그의 표정이 왠지 인자한 미소인 듯 느껴져 사람을 잡아먹는 신화 속 스핑크스와는 상반되어 보이기 때문일까.

스핑크스 앞 발 사이에 위치한 꿈의 비석(Dream Stela)
 스핑크스 앞 발 사이에 위치한 꿈의 비석(Dream St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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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레라는 파라오가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스핑크스의 앞 다리엔 붉은 화강암으로 만든 '꿈의 비석'이 끼여 있다. 젊은 시절 투르모스 4세의 꿈에 스핑크스가 나타나 자기 몸을 덮은 모래를 치워주면 왕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했고 그 말을 듣고 투르모스 4세에 의해 마침내 모래 속에 파묻혔던 스핑크스가 발굴되었다는 이야기. 비석에는 바로 이 이야기가 새겨져 있어 또 하나의 호기심을 해소해준다.

카이로 기자 피라미드
 카이로 기자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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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대 피라미드
 3개의 대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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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스핑크스를 넘어 사막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면 비로소 세 개의 대 피라미드가 나타난다. 호기심의 결정체, 진정한 불가사의. 나란히 우뚝선 세 개의 피라미드는 '먼저 죽은 왕보다 크게 만들어줘'라는 주문에 의해 지어진 고대 왕들의 경쟁의식의 결과물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영화 <트랜스포머2>에서 부숴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던 한 가운데 쿠푸왕의 피라미드.

가운데에 위치한 쿠푸왕의 피라미드
 가운데에 위치한 쿠푸왕의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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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140m, 바닥면적 230m에 이르는 이 쿠푸 피라미드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석조건물이라고 한다. 시기로 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4천년 전에 수백만 개의 돌을 도대체 어떻게 이 높이로 쌓았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피라미드의 각 변이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도 미스터리의 하나.

특히 쿠푸 피라미드의 꼭대기에는 피라미드가 돌출된 계단의 모습이 아니라 겉을 포장하는 외장재로 덮여있었음을 알리는 외장벽이 남아있다. 또 추가로 돈을 내면 내부로 들어갈 수가 있는데 사실 내부에 있는 모든 유물은 이집트 박물관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는 듯했다.

계단식으로 지어진 피라미드의 하부
 계단식으로 지어진 피라미드의 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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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배울 책도 다른 문명을 배울 교통수단도, 고도의 도구도 발견되기 전인 그 시대에 과연 이들은 이러한 건축술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살아있는 역사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게 된다.

낙타 상인
 낙타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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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유적지 내에는 낙타 상인들이 많다. 내가 호기심에 낙타에 관심을 보였더니 그는 그 이후로 집요하게 날 쫓아다니며 내가 지갑을 열 때까지 회유와 협박과 공갈을 멈추지 않았다.

비단 낙타 상인들뿐만이 아니다. 이집트 전역에서는 수많은 호객꾼과 사기꾼들이 항상 여행객의 지갑을 탐하고 있는데, 그들의 집요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많은 여행자들이 이들의 태도와 행동에 불쾌감을 느끼고, 잊고 싶은 기억만을 남긴 채 이집트를 떠나는데 나 역시 피라미드 유적지를 빠져나오는 내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추억으로 남아 있는 지금, 내가 겪은 그러한 혼란은 20년이 넘게 품어왔던 많은 호기심을 해소하는 대가로 기꺼이 지불해야 했던 게 아니었을까. 호기심, 애절함, 신기함, 경회감, 절박함, 혼돈, 탐욕. 오늘도 많은 여행자들은 이 카이로에서 고민에 빠진다.

간편 여행 정보
여행을 떠나기 전 가장 기대했던 나라이지 여행을 다녀온 후 가장 실망했던 나라 이집트. 누구에게나 꿈의 도시이지만 이집트를 혼자여행하기란 쉽지 않다.

4월~10월까지, 여름이 6개월이나 되는 전형적인 사막형 기후인 이집트지만 웬일인지 생각만큼 건조하지 않아서 여름에 방문한다면 엄청난 각오가 필요하다. 낮에는 40도를 우습게 넘는 온도와 좀 처럼 흐린날 없고 습한 날씨는 카이로를 방문한 여행자를 지치게 한다.

피라미드 유적지를 비롯한 카이로의 관광지 대부분은 지하철로 이어져 있지만 서울을 방불케하는 엄청난 인구밀도와 40도를 훌쩍 넘는 더위,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점, 정체불명의 숫자표기도 여행자를 지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불가사의인 피라미드와 아부심벨, 왕가의 계곡 등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이집트를 찾는 것도 사실. 결론적으로 이집트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강한 끈기가 필요하며 이집트의 숫자표기를 외워두면 큰 도움이 된다.



태그:#이집트, #피라미드, #카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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