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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정리해고로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는 건 더 이상의 죽음을 막고 싶기 때문입니다.
▲ 여기 사람이 있습니다. 쌍용차 정리해고로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는 건 더 이상의 죽음을 막고 싶기 때문입니다.
ⓒ 정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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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전화가 왔다. 희망 퇴직했던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쌍용차를 다닐 때 가끔 술 한 잔도 하던 그런 사이였다. 평소 진중하지도, 성격도 원만하지도 않아 썩 친한 편은 아니었지만 가끔 만나 시시껄렁한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의 사이였다.

결정적으로 관계가 틀어진 건 쌍용차 공장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 문제를 이야기하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방패막이'라는 말을 듣고 난 뒤 부터였다. 비정규직 스스로 싸우지 않으면 정규직들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알량한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방패막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정규직의 뻔뻔함에 발끈하는 마음 정도는 있었나 보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1년, 쌍용차는 경영상의 위기라고 3000여 명의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내쫓았다. 그때 싸워보지도 않고 희망퇴직했던, 나조차도 함께 싸워보자고 진지하게 이야기하지도 않았던, 그 친구로부터 늦은 밤 전화가 왔다. 5년 만이었다.

나른하고 피곤한 목소리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냐? 뭐하고 지내냐? 5년 만인데도 반갑지도 들뜨지도 않게, 서로의 처지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건조하게 안부를 물었다. 그 친구는 쌍용차에 관련된 아웃소싱 업체에 다닌다고 했다. 일이 힘들다고 했다. 복직 투쟁하는 내게, 희망퇴직했던 자기가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라는 이야기를 몇 번씩 하면서 사는 게 참 힘들다고 반복했다.

희망퇴직하고 일자리를 구하려고 애썼지만 쌍용차 해고자 출신이라고 한동안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고 했다. 4대 보험이 되는 아웃소싱업체에서 비슷한 이유로 몇 번 해고된 이후에는 4대 보험 안 들어도 좋고, 정규직 안 시켜줘도 좋으니 그냥 일만 시켜달라고 아예 대놓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렇게 5년을 일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는 이야기를 물기어린 한숨과 함께 토해냈다. 4년을 무급휴직하다 몇 달 전에 쌍용차에 복귀한 친구를 만나 술 한 잔 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부러움과 자기 처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든 모양이었다. 그리고 망설이다가 내게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손을 그었다고 했다. 아마도 부모님이 방문을 열어보지 않았다면 죽었을 거라고, 방바닥에 피가 흥건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몇몇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자기 이야기를 잘 안 믿는다고도 이야기했다. 나는 무서울 정도로 그 죽음으로 향하는 순간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지만 난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침착한 목소리로 좋은날이 오겠지, 라고 서둘러 대답했다. 섣부른 희망을 이야기하기엔 내게는 너무 가진 게 없었고, 그 친구도 그렇게 순진하지 않을 나이였다. 한 여름 밤, 우리 둘은 그렇게 나른하고 피곤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대한문 분향소, 쌍용차 해고자에겐 부적

쌍용차 해고자들이 더 이상의 죽음을 견딜 수 없다고 작년 대한문 분향소를 만들고 난 뒤부터 해고된 노동자와 가족들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는 없었다고 이야기해왔다. 대한문 분향소가 이어지는 죽음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많은 이들에게 이야기해왔다.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 같은, 혹은 부적 같은 이야기였다. 또한 알량한 자기위안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두렵다. 또 누군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여전히 그 공포를 이겨낼 방법이 없다. 그래서 미련하게도, 비닐 한 장 못 치는 대한문에서 8월의 태양을, 쏟아지는 폭우를 견디며 버티고 있다.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이 약속했던 국정조사를 실시하라고, 불법적인 회계조작으로 공장에서 쫓겨난 해고자들을 복직시켜야 한다고, 싸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해고 당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같은 이야기를 토해내고 있다.

쌍용차문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 8월 24일 서울역에서 함께 할 쌍용차 범국민대회도 새로울 것이 없다. 다만 함께 할 사람들이 새로워졌으면 좋겠다. 쌍용차 문제로 모인다고 뭐가 해결이 되겠어? 약속했던 국정조사가 이뤄지겠어? 해고자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 갈 수 있겠어? 그런 질문과 의문들을 함께 견뎌냈으면 좋겠다.

그런 질문들을 희망들로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버티고 버텨 죽음을 기필코 막아내겠다는 쌍용차 해고자들의 꿈을, 반드시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새롭지 않을 꿈을 함께 이야기하면 좋겠다. 한 여름 밤, 죽음의 문턱이 아닌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다. 서울역 늦은 4시,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함께 꿈 꿀 모든 이들을 기다리겠다.


덧붙이는 글 | 고동민님은 쌍용차 해고자로 현재 쌍용차범대위 기획팀장입니다.

8.24 쌍용차범국민대회 1만인 조직위원을 모집합니다. 대책위 계좌로 5000원 이상 입금하시면 입금하신 명의로 조직위원에 기명되며 신문광고, 범국민대회 기금으로 쓰일 예정입니다. 전화 문의는 010-5602-6632.



태그:#쌍용차, #범국민대회, #대한문, #정리해고, #국정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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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복직자. 현재 쌍용차지부 조합원. 훌륭한 옆지기와 살고 있는 세아이의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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