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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철인 맛조개.
 요즘 제철인 맛조개.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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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조계산에는 보리밥집이 있다. 그곳에 가면 무청에 젓갈을 올려서 보리밥 한 쌈을 할 수 있다. 보통 조계산 보리밥집에 가려면 선암사나 송광사에서 출발해서 700m가 넘는 굴목재를 넘어가야 한다. 숲이 우거진 숲길이지만 무더운 날에는 땀을 한 바가지는 흘려야 갈 수 있다.

아버지는 오래 걷기가 힘들다. 몇 달 전 넘어져서 병원에 있다가 나오시더니 영 힘을 못 쓴다. 날은 무덥고, 시원한 계곡이나 모시고 가야하는데…. 그래서 차로 갈 수 있는 계곡을 생각하다보니 조계산 보리밥집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는 식사도 하고, 계곡에 발도 담글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든지 달려온다는 긴급서비스, 못 올 수도 있어요

순천 송광면 장안마을로 향한다. 벌교에서 15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송광면 소재지를 조금 못가서 장안마을이 나온다. 장안마을에서는 보리밥집까지 차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장안마을은 옛 돌담이 남아 있는 오래된 마을이다. 조계산 장박골에서 내려온 물이 마을을 가로 질러 흐른다.

시멘트 포장길을 구불구불 올라간다. 차 한 대 겨우 다닐 수 있는 길이다.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한참을 올라가면 비포장 길로 변한다. 비포장 길로 들어서서 가파른 길을 오르려고 가속 페달을 밟는데 차가 힘을 못 쓴다. 내려서 보니 바퀴에 펑크가 났다. 이런! 난감한 일이다.

타이어를 교체하려고 차 안에서 장비를 꺼내고 예비타이어도 꺼내 놓았다. 그리고 바퀴를 고정시키고 있는 너트를 돌려보니 돌아가지 않는다. 차 안에 있는 기본 장비는 너트를 돌릴 만큼 튼튼하지가 않았다. 손잡이도 가늘어서 힘을 쓸 수가 없다. 이곳은 시내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데….

보리밥집 가는 길은 비포장길이다.
 보리밥집 가는 길은 비포장길이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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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 보리밥집은 장안마을에서 차로 올라갈 수 있다.
 조계산 보리밥집은 장안마을에서 차로 올라갈 수 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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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 긴급서비스를 불렀다. 순천에서 전화가 왔다. 장소를 알려주니 관할구역을 확인하고 전화를 주겠다며 끊었다. 전화를 하고 있는 나도 미안하다. 순천에서 출발한다면 50㎞ 정도를 와야 한다. 내가 서비스 기사라도 고민이 되겠다. 잠시 후 벌교에서 전화가 왔는데, 보리밥집까지는 견인차가 못 올라간다며 양해를 구한다.

또 난감. 자동차보험상품 광고에는 어디든 간다며 자랑하던데…. 견인차가 몇 톤짜리냐고 물었고, 1톤 트럭 정도면 충분히 올라올 수 있다고 했지만 여전히 힘들다고 한다. 그럼 시멘트 포장길까지 올라올 수 있냐고 물으니 가보겠다고 한다. 펑크 난 차를 조심스럽게 운전해서 시멘트로 포장된 곳까지 옮겨 놓았다.

거리가 멀어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돗자리를 꺼내 길가에 앉았다. 아버지에게 미안하다. 시원한 계곡에 발이라도 담가드리려고 했는데…. 기다리는 동안 계곡에 발이라도 담글 거냐고 물으니 싫단다. 이런 상황에서 내키지 않으셨나 보다. 길 아래로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지만 발을 담그고 있을 여유가 나지 않는다.

40여분을 기다리니 긴급서비스 차가 도착했다. 힘들게 올라온 서비스 기사 아저씨는 생각보다 친절하다. 꺼내놓은 예비타이어를 보더니, 예비타이어로는 이곳을 못 올라간다며 펑크를 때워 준단다. 감사. 감사. 기사아저씨 친절 덕분에 황당하고 어수선했던 마음들이 다시 되돌아 왔다.

한상 가득 나온 맛조개, 요즘이 제철

펑크를 때웠지만 보리밥집으로 올라가고 싶은 생각은 멀리 달아나 버렸다. 아버지도 굳이 가고 싶지 않단다. 그럼 벌교에 가서 꼬막을 먹자고 했다. 아버지는 밥 생각도 없단다. 다시 벌교로 길을 잡았다. 벌교로 가다가 낙안읍성에 들렀다.

낙안읍성 앞 상가 풍경
 낙안읍성 앞 상가 풍경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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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앞 상가를 두리번거리다 식당 앞에 걸린 커다란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맛조개 정식'. 맛조개는 어렸을 때 가끔 먹어 본 기억이 있다. 조개에서 작은 껍질이나 모래가 씹히던 기억이 난다. 정식은 안 먹어 봤는데….

식당으로 들어섰다. 맛조개가 제철이냐고 물으니, 지금부터 10월까지가 맛있을 때라고 한다. 하! 꼬막을 먹을 게 아니구나. 맛조개 정식은 1인분에 1만5000원이다. 잠시 후 맛조개가 한 상 가득 나왔다. 삶은 맛조개, 맛조개 회무침, 맛조개 전, 얼큰한 맛조개국, 맛조개 비빔밥까지 맛조개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음식이 나온 것 같다.

한 상 가득 나온 맛조개 정식. 부침개, 탕, 회무침, 숙회 등등
 한 상 가득 나온 맛조개 정식. 부침개, 탕, 회무침, 숙회 등등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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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조개 회무침
 맛조개 회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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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조개 탕. 국물이 시원하다.
 맛조개 탕. 국물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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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양이 무척 많다. 둘이 먹을 걸 시켰는데 네 명이 먹어도 될 만큼 많이 나왔다. 너무 맛있어서 조개하나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담백한 맛에서 감칠 맛 나는 회무침까지 다양한 맛조개 음식을 즐겼다. 식당을 나오면서 아저씨에게 원래 이렇게 양이 많이 주냐고 물으니, 아버지를 모시고 다니는 게 보기 좋아서 많이 줬단다.

그러면서 식당 아저씨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다닐 때 돌아가셔서 지금은 같이 다니고 싶어도 못한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손님이 많이 없다고 물었더니 날이 더워서 모두들 금전산 아래 계곡으로 갔다고 멋쩍게 웃는다. 아저씨 표정이 너무나 맑다.


태그:#맛조개, #맛조개 정식, #낙안읍성, #보리밥집, #긴급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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