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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당시 "유신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사과를 표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8월 5일) 자로 김기춘을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김기춘은 이미 학계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명령으로 1970년대 유신헌법 제정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김기춘은 유신헌법 제정 이후 1972년 유신헌법해설서를 집필하면서 유신헌법홍보도 주도한다(김선택, 위헌적 헌법개정에 대한 위헌심사론, 2011, 168쪽 참조).

긴급조치 피해사건 관련 구상권 청구대상 인물이 등용?

1972년 유신헌법은 대통령을 입법·행정·사법부 위의 영도자로 표현한다. 위 이미지는 유신헌법 해설 홍보자료 101쪽을 갈무리한 것이다.
 1972년 유신헌법은 대통령을 입법·행정·사법부 위의 영도자로 표현한다. 위 이미지는 유신헌법 해설 홍보자료 101쪽을 갈무리한 것이다.
ⓒ 유신헌법 해설 홍보자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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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헌법학자 한태연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는 드골 헌법에 대해 강한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당시 법무부 법제과장이던 김기춘을 1년간 파리에 보내 드골 헌법을 연구하도록 지시한 바 있었다고 회고한다.

당시 박정희는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과 비상조치권을 핵심으로 하는 권력구조 구상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긴급조치는 프랑스 헌법 제16조의 비상대권에서 모방한 것이다(한태연, 한국헌법과 헌법학의 회고 2002, 27~28쪽 참조). 유신 헌법 개정은 순전히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밀실에서 진행됐고, 학자들의 자문이나 국민의 여론을 반영하는 절차와 과정이 완전히 배제된 채 성안됐다(최연식, 권력의 개인화와 유신헌법, 2011, 89쪽 참조). 그 밀실의 주역이 김기춘으로 평가된다.

김기춘이 구상한 비상조치권이 유신헌법에서 긴급조치로 현실화된다. 1970년대 유신헌법 시절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법정에서 처벌받은 사건은 589건이고, 피해자는 모두 1140명에 달한다. 지난 3월 헌법재판소는 유신헌법 시절 긴급조치는 헌법상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고 ▲ 표현의 자유 ▲ 영장주의 및 신체의 자유 ▲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 ▲ 학문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결정했다(2010헌바70). 그리고 현재 법원에서는 긴급조치피해자들에게 사과하면서, 재심을 통해서 무죄 선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신헌법에서 긴급조치를 도입한 사람을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하는 건 무슨 생각일까. 군사정권 시절 과거사 청산을 위해서는 진실규명과 가해자 처벌이 중요하다. 이것이 이뤄져야 재발방지대책과 화해가 가능하다. 김기춘이 유신헌법 제정과정에서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 정부 차원에서 옹골지게 규명돼야 한다. 그리고 향후 김기춘은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국가배상청구를 제기할 경우에는 국가로부터 구상권 청구의 대상이 돼야 하는 인물이다. 김기춘의 등용 배경이 설마 '유신헌법에 대한 최근의 헌법재판소와 사법부의 결정에 대한 반감이 아닌가'라는 섬뜩한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여경수 기자는 헌법연구자입니다.



태그:#헌법재판소, #긴급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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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힘이 되는 생활 헌법(좋은땅 출판사) 저자, 헌법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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