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선 후보시절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적대정책과는 다를 것이란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취임 5개월동안 현재까지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고 어떤 정치적 파고에도 끄떡없던 개성공단은 사실상 폐쇄상태다. '남북 간 신뢰를 만들겠다'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정책효용성이 있는 건지, 오히려 불신의 골을 깊게 하는 건 아닌지 짚어볼 때가 됐다. 박근혜정부가, 또 김정은 정권이 서로에게 취한 조치들을 짚어보면서 '한반도 불신 프로세스'의 원인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편집자말]
서호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오른쪽)과 북측 대표인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왼쪽)이 10일 개성공단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개성공단2차실무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서호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오른쪽)과 북측 대표인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왼쪽)이 10일 개성공단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개성공단2차실무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지난 12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3차 실무회담을 사흘 앞두고 우리 측 수석대표가 돌연 교체되는 일이 벌어졌다.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한 1, 2차 실무회담의 수석대표를 맡아왔던 서호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이 물러나고 김기웅 정세분석국장이 이 자리를 이어받은 것. 정기인사에 따른 자연스러운 교체라는 통일부의 설명이 있었지만, 남북회담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내부 인사에 따라 수석대표가 교체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이어서 교체배경에 대해 분분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이와 관련 지난 25일자 <중앙일보>는 서호 전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이 전격 경질된 것은 서 전 수석대표의 발언을 탐탁지 않게 여긴 국정원과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여권 관계자는 "서 전 대표의 교체는 북측 단장인 박철수(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의 주장을 제대로 맞받아치지 못하고 미온적으로 대응했다는 지적에 따른 도중하차"라고 밝혔다. 사실상의 경질이라는 뜻이다.

회담장인 개성공단 내 종합지원센터에서의 남북 협상 내용은 현장중계 라인을 통해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 상황실은 물론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내곡동 국가정보원으로 실시간으로 전달되는데, 오디오 생중계를 들은 정부 내 대북 강경라인은 지난 6~7일 이뤄진 첫 회담 때부터 서 전 대표에게 불만을 제기했다고 알려졌다.

예를 들면 회담에서 북측이 "남측의 5·24 대북제재 조치 때문에 개성공업지구가 파탄 났다"는 주장을 펼치는데도 서 전 대표가 '천안함 폭침 도발에 따른 대응조치'라는 정부의 기본입장을 제대로 제기 못 하는 등 전반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서 전 대표의 유화적인 태도가 회담진행 중 대표 경질이라는 사태를 불러온 것으로 분석된다.

서호 전 대표가 대북 온건파라면, 신임 김기웅 대표는 강경파

서 전 대표가 대북 온건파라면, 신임 김 대표는 상대적으로 더 강경한 입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올해 초 대통령직 인수위에 파견됐던 김 대표는 인수위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였던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과도 가까이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 전 대표를 경질시킨 정부 내 대북 강경라인의 핵심으로는 군 출신인 남재준 국정원장과 김장수 안보실장이 지목되고 있다. 여기에 김관진 국방장관과 박흥렬 경호실장을 포함하면  박근혜정부 외교안보라인의 주축을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와대와 내각에 육군 대장 출신이 4명이나 포진했던 경우는 군사정권을 제외하고는 그 전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인선 직후부터 '육사 전성시대', '박근혜식 선군정치'라는 비판이 나왔던 이유다.

과거에도 국방장관은 대부분 육사출신이 맡아왔지만, 육사 출신 국정원장이 나온 것은 김대중 대통령 당시 임동원 원장 이래 14년 만의 일이고, 신설된 국가안보실장에도 육사 출신이 임명됐다. 

전문가들은 이런 인선의 배경에 박근혜 대통령의 안보관이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취임 초부터 안보를 강조해 온 박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저는 확고한 안보를 바탕으로 한반도에 신뢰를 쌓아 행복한 통일의 기반을 조성할 것"이라면서 "북한은 핵 개발과 도발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고립과 고통만 커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박 대통령의 안보 강조 분위기 속에 '외교'는 설 자리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임기 내내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했던 이명박 정부에 비해 박근혜정부의 대북 정책은 더 유연성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지난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위원인 최대석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인수위원직에서 사퇴하면서 우려하는 시선으로 바뀌었다.

과거 참여정부의 햇볕정책과 이명박 정부가 펼쳐 온 강경정책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최 교수의 시각은 박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구체화한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일찌감치 박근혜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으로 하마평에 올랐던 최 교수는 그러나 지난 1월 13일 일신상의 이유로 돌연 사퇴했다.

최 교수의 석연치 않은 사퇴 배경에 대해 국정원이 최 교수의 활동과 과거 행적을 정리한 보고서를 박 당선인에게 제출했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지만,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최 교수의 낙마가 박근혜 정부의 대북강경 기조를 예고하는 것이라는 우려는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폐쇄 일보 직전인 개성공단을 놓고 북한이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중대 결심도 가능하다는 정부의 입장에도 이런 단호한 태도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절박한 사정은 재발방지 약속과 원칙을 강조하는 대북 강경파의 목소리 속에 묻혀버렸다.

이런 가운데 박 대통령에게 개성공단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6월 22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완제품 및 원부자재 반출이 완료된 만큼 반출된 제품 활로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주문했다. 대통령은 '완제품 및 원부자재 반출을 완료했다'고 파악한 것이다.

하지만 이날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과 달랐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시설점검과 물자 반출을 위해 총 5차례 정도 방북했지만,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완제품과 원부자재를 모두 가져오지 못했던 것.

5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난 5월 14일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개성공단의 완제품이나 원부자재 반출을 남북실무회담에서 북한에 제의하라'고 지시했지만 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기 열흘 전인 5월 3일 북한 측은 이미 '물자 반출 허용 입장'을 우리 측에 전달했던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개성공단 상황이 대통령에게 정확하게 전달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으로, 박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군 출신 대북 강경세력들에게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박근혜정부 외교안보라인, 견제와 균형 무너진 기형적 논의 구조

무엇보다 견제와 균형의 추가 무너진 박근혜정부 외교안보라인의 기형적 논의 구조 속에서는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기를 기대하긴 힘들다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남 국정원장(육사 25기), 김장수 실장(육사 27기), 김관진 장관(육사 28기) 세 사람은, 남 원장이 임관을 앞둔 4학년 생도일 때, 김 실장과 김 장관은 각각 2학년, 1학년 생도로 1년 동안 '화랑대'에서 함께 생활했다. 또 이들은 30여 년의 군 생활 동안 육군참모총장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합참의장 등의 주요 보직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맡아오면서 서로 끈끈하게 얽혀 있는 사이다.

박 대통령의 외교안보분야 최측근 인사들인, 이들 모두 육군대장 출신으로 세 사람의 별을 합치면 12개다. 여기에 김관진 장관과 육사 동기로 역시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박흥렬 대통령 경호실장까지 합치면 박 대통령의 최지근 거리에 16개의 별이 있는 셈이다.

한 안보 전문가는 이들 군 출신 외교안보라인 인사들에 대해 "군 출신 인사들의 사고 체계는 북한과의 경쟁에서 '승리'가 중요하지 '협력'은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특정 군맥의 득세는 그 자체로도 우려할 만한 일이지만, 자칫 '집단사고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961년 4월 17일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미 CIA가 훈련시킨 1500명의 쿠바 망명자들이 미군의 도움을 받아 피그스 만에 상륙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한 지 채 석 달이 안 된 시점에서 단행됐던 피그스만 상륙작전에서 미국은 참담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불과 사흘 만에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1000여 명이 포로가 되는 참담한 결과가 나왔던 것. 그해 12월 카스트로에게 몸값으로 5300만 달러를 지불한 뒤에야 1113명의 포로를 돌려받았던 미국은 전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었다.

피그스만 침공 작전은 집단 사고가 불러온 대표적 실패 사례로 꼽힌다. 대통령과 국방장관, 법무장관, 안보보좌관 등 하버드대학 출신들이 똘똘 뭉쳐 침공 결정을 내리는 동안 반대 의견은 발붙일 틈이 없었다. 케네디 대통령으로 하여금 "도대체 내가 왜 이런 멍청한 일을 저질렀을까"하고 한탄하게 했다는 피그스만의 실패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수한 두뇌집단도 언제든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집단의 결속이 지나치면 오히려 정상적 사고의 과정을 방해하며,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사고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집단사고의 오류에 빠질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나 이러한 집단사고가 군사문화와 결합했을 때는 어떤 결과를 빚어낼지 우려가 적지 않다. 서열을 중시하는 군사문화가 위험한 것은 합리적 토론과 판단을 배제하기 때문인데,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은 바로 이런 군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안정은 군사력만으로 담보되는 것은 아닌데, 안보만을 최우선 가치로 강조하는 현재의 기조는 개성공단의 폐쇄는 물론 자칫 남북관계의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군대를 경제 및 사회개발ㆍ운영의 전면에 내세워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북한의 선군정치와 '박근혜식 선군정치'가 충돌하는 한  남북 어느 쪽이든 온건파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태그:#남재준, #김장수, #김관진, #집단사고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