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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7시 40분 현재 약 30m의 철조망이 뜯겨 있고 사측 경비원들은 방패와 헬멧으로 무장했다.
 20일 오후 7시 40분 현재 약 30m의 철조망이 뜯겨 있고 사측 경비원들은 방패와 헬멧으로 무장했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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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이 거세다. 지난 20일 울산 현대차 철탑농성장에서 있었던 희망버스 사태를 두고 보수진영이 총공세를 펴는 모습이다.

TV를 틀면 마스크를 쓴 채 대나무를 들고 현대차 회사 측을 공격하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모습만이 연일 화면을 장식한다. 신문 지상에는 경제계와 보수단체 등에서 주장한 '폭력 엄단' 문구가 연일 지면을 채우고 있다.

'현대차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3년이 지나도 입도 벙긋 않던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20일 이후 연이어 공식석상에서 '전쟁에서 나올 법한 죽창'과 '폭력으로 무장한 절망버스 더 이상 용납 안돼'라며 사법당국에 엄중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맞춰 사법당국은 '폭력 엄중 처벌'을 연일 언론에 발표한 후 25일에는 희망버스 참가자 4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체포에 나섰다.

시민의 손으로 뽑힌 울산시장은 도로 공해도시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서도 석유화학 대기업들에게 10년 만에 다시 고황유 사용을 허용하는 등의 친기업적인 입장을 보인 반면, 똑같은 한 사람의 시민인 불법파견 판정 비정규직 문제에는 함구하더니, 25일 급기야 '폭력 엄중 대처'를 촉구하는 담화문을 언론에 냈다. 그것도 시민의 세금인 거액의 예산을 들여서.

지난 20일 저녁 울산 현대차공장 울타리 앞에서 있었던 희망버스 참가자와 회사 측의 공방은 결국 비정규직을 돕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폭력집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으로 결론 나는 분위기다. 확인 결과 상당수 일반 시민들은 언론 매체를 통해 희망버스의 폭력이 지나치다는 입장을 보였다. 언론의 영향이 컸다.

지난 20일 오후 7시부터 10시 사이 있었던 희망버스 참가자와 현대차 회사 측, 그리고 경찰의 공방에 대헤서는 다양한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지난 5일 사이 희망버스 참가자의 일방적 폭력만이 우리 사회에 각인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날 현장에 있었던 많은 진보세력들의 침묵이다. 평상시 비정규직 문제나 노사간 충돌 때마다 논평, 성명, 기자회견, 1인시위, 집회 등으로 비정규직 혹은 노동자들을 옹호하던 모습과는 판이하다.

20일 당일날 진보세력은 현장을 목격하고도 왜 침묵하는 것일까? 휘몰아치는 보수언론의 여론조성에 말려 들기 싫은 것은 아닐까? 문득 몇 년 전 울산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언론의 여론몰이 누구에게나 올 수 있어... 진실 규명해야

몇 해 전의 일이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현대차노조) 한 조합원에게 전화가 왔다. 파업 찬반 투표를 몇 일 앞둔 날인데, "조합원과 그 가족들이 모두 겁을 먹고 있다"고 호소했다. 당시는 오후 9시 뉴스와 신문지상에 연일 '현대차노조=귀족노조'라는 보도를 내보냈는데, 심지어 시골에 있는 조합원의 부모가 아들에게 '여론이 안 좋으니 노조에서 탈퇴하라'는 우려의 전화가 오는 사례도 있었다.

높은 연봉에도 파업을 하려는 현대차노조는 그야말로 전 국민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그들이 "주야 맞교대와 빠짐없이 특근을 해서 번 돈이며 과장된 것도 있다"고 하소연해도 그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곳은 거의 없었다. 현대차노조를 향해 휘몰아치는 광풍은 겉잡을 수 없었고, 결국 파업 찬반 투표는 부결됐다.

동병상련일까, 현대차노조는 지난 24일 성명을 내고 "정부와 사측이 필요 이상으로 희망버스를 탄압하는데는 불순한 의도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 준수, 정규직 전환 이행을 요구하는 정당한 목소리를 폭력단체라는 여론몰이를 통해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정부와 현대차 등의 기도에 심각한 우려와 의구심을 가진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1, 1박 2일을 마친 희망버스가 현대차 철탑농성장을 출발하기에 앞서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번 희망버스로 느낀 것은 현대차의 탐욕과, 담장 안에 갖혀서 움직이지 않는 노동자의 양심"이라며 "현대차의 탐욕보다 움직이지 않는 양심에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현대차노조의 소극적인 태도를 질타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성명 하나로 현대차 비정규직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섭섭함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나마 성명이라도 나온 것은 노동당(7월 21일 진보신당에서 노동당으로 당명 개정) 울산시당과 함께 유일하다. 노동당은 희망버스를 폭력집단으로 언급한 새누리당 의원을 질타했다.

희망버스가 울산에 도착하기 전 지역의 진보세력 50개 단체는 '희망버스 울산준비위'를 구성해 희망버스를 맞을 채비를 했다. 하지만 20일 이후 보수언론을 주축으로 한 여론몰이 이후 입장을 밝히는 단체나 인사는 나오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23일 민주노총 울산본부와 현대차비정규직노조가 울산중부경찰서에서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폭행당하고, 경찰도 오히려 사측에 폭행당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할 때, 진보세력으로 기자회견에 참여한 사람은 진보정의당 김진영 시의원 혼자였다.

이번 사태를 부른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질타하던 그 많던 진보세력, 그 당당하던 기세는 어디로 간 것일까? 혹시 말 한 마디 잘못해 보수언론 여론에 도매금으로 넘어갈까 우려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에 휘말려 불이익을 당할까 우려했던 것은 아닐까.


태그:#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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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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