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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Your request has been denied. We don't understand Korean signature. That's neither in Karnataka, Hindi, Tamil or English. Come again tomorrow(서류 못 드려요. 한글 사인은 알아볼 수 없어요. 카나다, 힌디어, 타밀어, 영어도 아니네요. 내일 다시 오세요)." - 인도 남서쪽 카나타카주 뱅갈룰루 시내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의 말

인도 우체국. 현지인에게는 2분이면 뭐든지 해준다.
 인도 우체국. 현지인에게는 2분이면 뭐든지 해준다.
ⓒ 이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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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당신은 또 하루를 낭비했다. 고작 사인 하나 때문에. 조셉 컬리지(St. Joseph College)에 재학 중인 박아무개군이 충고해 줄 때 말을 들었어야 했다. 설마 했다. 간단한 서류를 받기 위해 우체국에서 공들인 지 이틀. 위를 쳐다본다. 하늘 높이 솟은 나무들….

유엔에 의하면 인도는 공해가 가장 심한 나라라 한다. 뱅갈룰루는 그나마 이 나무 덕에 살만하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그러나 작고 힘없게 느껴지는 현실은 어쩔 수 없다. 당신은 왜 사인이 알아 볼 수 있는 말이어야 하나 생각하며 되돌아간다. 하긴, 여기는 인도다.

눈에 모래가 잔뜩... 괜찮다 여긴 인도니까

흔한 인도 도로. 높은 나무, 보이지 않는 차선, 신호 대기를 위해 빼곡히 서 있는 오토바이들.
 흔한 인도 도로. 높은 나무, 보이지 않는 차선, 신호 대기를 위해 빼곡히 서 있는 오토바이들.
ⓒ 이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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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로 나온다. 탈 것을 잡아야 한다. 택시는 오는데 30분 걸리는 콜택시 밖에 없다. 버스는 만원버스. 아니 일억버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결국 세발 오토릭샤를 잡는다. 기본요금이 20루피. 한국 돈으로 500원도 안 되니 탈 만하다.

하지만 운전사는 당신에게 100루피를 요구한다. 원래 가격의 5배나 되는 가격. 선택권이 없다. 당신은 4시에 <타임스 오브 인디아>(Times of India) 신문사 홍보팀원과 약속을 했기 때문. 3발 자동차에 발을 올려놓은 동시에 모래 바람이 앞을 가린다. 눈에 모래가 잔뜩 들어간다. 괜찮다. 당신은 이미 이것에 익숙하다. 여기는 인도기 때문이다.

인도 초등학생. 이런 아이들 8~10면 정도가 한 릭샤에 같이 타고 하교 한다.
 인도 초등학생. 이런 아이들 8~10면 정도가 한 릭샤에 같이 타고 하교 한다.
ⓒ 이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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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조차 없는 도로. 원래 없는 건지, 지워진 건지 당신은 알아볼 수 없다. 10여대의 자동차, 밴, 오토바이, 릭샤들이 뒤죽박죽 엉켜있다. 12여대의 오토바이가 이미 꽉 찬 도로를 더 꽉꽉 채운다. 오토바이 업계가 급성장하고 있다는 데이터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출발한다. 안전장치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릭샤. 학생들 등하굣길엔 한 차에 10명 이상의 아이들이 웃으며 릭샤에 몸을 싣는다. 용기를 내본다. '인도 교통사고 사망률- 중국을 제치고 1위'. 오늘 아침 WHO 홈페이지에서 본 사실. 5~ 29세의 젊은이들이 1시간에 40명씩 죽는 나라다.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해본다. 당신은 운전사를 믿어보려 한다. 불가능하다. 덜덜 떨리는 모터 소음과 쉴 새 없이 울리는 경적소리가 당신을 불안하게 만든다.

"빵~~~~~~~~~~."

쉴 새 없다. 이들은 무조건 빨리 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금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있는데도 말이다. 잊지 말아라. 여기는 인도다.

"늦는 거 싫으면 2~3시간 앞당겨 약속 잡아"

인도의 3발 '택시' 오토 릭샤.
 인도의 3발 '택시' 오토 릭샤.
ⓒ 이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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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이미 미팅에 10분 늦었다. 드디어 도착. 차에서 내리고 500루피짜리 지폐를 지불한다. 운전사는 잔돈이 없다며 바꿔온다고 기다리라한다. 10분 째 기다린다.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당신은 이제 약속장소로 뛰어간다.

이때 마침 또 비가 내린다. 맞다. 7월 장마철이지. 굵다. 기분도 나쁜데 닭똥이 생각난다. 밤낮으로 숨이 막혔던 3~5월을 기억한다. 비도 안 오고 45℃, 50℃를 넘나들던 밤. 그때를 위로삼아 당신은 부지런히 뛴다. 약속장소에 도착. 아무도 없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옷을 대충 말린다. 그리고 기다린다. 기다린다. 또 기다린다. 여기가 바로 인도다.

"늦는 거 싫으면 2~3시간 앞당겨 약속 잡아."

최근 동창회 때 늦게 온 S군의 말이 떠오른다. <타임스 오브 인디아>는 명색이 인도 대표 신문사다. 3시간이 지나서야 당신은 전화해볼 생각을 한다. 그들은 바쁘다며, 8시 이후에 오겠다 말한다. 화가 난다. 문득 방갈로 국제 고등학교 시절 "난 <타임스>에 나오는 기사는 읽어도 믿진 않아"라던 영어 선생님의 말이 기억난다. 이 기억에 힘입어 미팅을 취소한다. 그들은 태연하다. 이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모두 당신의 잘못이다. 시간 약속에 거의 맞춰서 왔기에. 왜냐? 여기는 인도다.

지금쯤, 당신은 후회하고 깨닫는다. 그들의 주머니에 조금만 투자했으면 이 모든 일을 면할 수 있었다는 사실. 적어도 인도에서는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이 해당되나 생각해본다. 여기서 당신은 누구를 탓할 수도 화낼 수도 없다. 잊었는가? 여기는 인도이다.

인도에서 무엇을 하는 것? 참 힘들다. 합법적으로 정직하게 하려면 말이다.


태그:#인도, #인도 생활, #인도 여행, #인도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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