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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 화백은 22일 오전 출판사 '휴머니스트' 사옥에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2003년 7월 1권 '개국'을 펴낸 지 꼭 10년만에 20권 '망국'을 끝으로 작업을 마무리지었다.
 박시백 화백은 22일 오전 출판사 '휴머니스트' 사옥에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2003년 7월 1권 '개국'을 펴낸 지 꼭 10년만에 20권 '망국'을 끝으로 작업을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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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77권을, 직접 손으로 쓴 노트 121권으로 요약했다. 그 노트 내용을 한 번 더 압축한 내용으로 20권짜리 책을 만들었다. 준비부터 완간까지 꼬박 13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박시백(50) 화백이 그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아래 조조록)> 이야기다.

22일 오전, 그는 완간을 기념해 서울시 마포구 휴머니스트 출판사 건물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박 화백은 시사만화를 연재하던 <한겨레> 신문사를 2001년 그만 뒀다. 1990년대 후반 드라마 <왕과 비> 등을 즐겨보던 그는 조선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조선왕조실록(아래 실록)>을 만화로 만들자'는 꿈을 품게 됐다. 이즈음 원래보다 가격이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국역 조선왕조실록> CD가 그의 눈에 띄었다.

이 CD를 구입한 뒤 전업작가로 나선 박 화백은 하루 12시간씩 <실록>을 공부하고, 작품을 구성하고, 습작했다. 2003년 7월, 마침내 <조조록> 1권 '개국'이 세상에 나왔다. 박 화백은 "(그 시기가) 10년 전 딱 이맘 때쯤"이라며 "이 작업을 해오면서 계속 '<실록>이라는 선조들이 남긴 기록이, 말 그대로 정말 위대하구나'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실록>을 누가 기록하건 사실 자체는 거의 그대로 기록됐고, 왕이 당대에 볼 수 없게 차단하는 한편 지금까지 볼 수 있도록 잘 보관하는 데에서 조선왕조 특유의 기록을 대하는 태도가 나온다"고 높이 샀다.

기록을 남기는 일과 그것을 지켜가는 일의 위대함을 중시하는 박 화백의 눈에 최근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둘러싼 상황은 어떻게 비칠까. 그는 "(조선왕조의) 기록과 보존의 태도를 말씀드렸는데, 정말 되새겨볼 때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이어 "(조선왕조가) 500년 동안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기록을 대하는 태도와 정신을 잘 이어받아야 한다면 적어도 이후론 이런 일이 재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실록> 자체를 전하는 일에 방점... 세종이 가장 어려워"

20권을 끝으로 완간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권을 끝으로 완간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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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가치의 발견은 작업 전반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초 역사드라마를 보며 조선사에 흥미를 느낀 박 화백의 <조조록> 집필 초기 목표는 '만화로 조선왕조 정치사를 쉽게 옮겨주자'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눈에 <실록> 속 역사와 알려진 역사의 차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박 화백은 "황희 정승처럼 우리가 아는 충신의 모습과 <실록> 기록이 다른 경우가 많았고, 때때로 유명한 역사서에서도 야사(野史)를 따라 기술한 내용을 많이 볼 수 있어 '정말 <실록>을 제대로 알리는 일 자체가 중요하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책 앞부분을 그리면서 세종편에서 '<실록>과 알려진 내용이 다르구나'하고 많이 느꼈어요. 세종 하면 조선 전기사에서 가장 익숙한 인물이죠. 하지만 제가 작업할 때만 해도, 그 시대를 기록한 대중서들 가운데에 <실록>에 제대로 바탕을 둔 책을 보지 못했습니다.

최만리의 경우도, 누구보다 집현전을 대표했던 실질적 책임자였어요. 그런 사람이 모르게 (다른 집현전 학자들이) 왕의 밀명을 받아 연구했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세종이 워낙 거대하고 대단한 일을 갑자기 내놓으니 당시 유학자들이 반발한 건 사실이지만요. 또 양녕대군이 동생 세종에게 세자 자리를 넘겼다는, 야사식 표현이 여전히 많은 책에 들어가 있죠."

박 화백에게 세종은 여러 모로 얘깃거리가 많은 인물이다. 그는 세종을 "하늘이 내린 인물, 천재라고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가장 극찬한 면은 세종의 리더십이었다. 박 화백은 "전제왕권인데도 민주적 리더십의 소양을 갖춘 사람이었다"며 "세종은 대부분의 일을 혼자 구상하고 진행했는데, 이걸 그냥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신하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토론했고, 일단 결정되면 어마어마한 추진력으로 끝까지 완결했다"고 설명했다. 한글은 물론 음악, 과학 등 다방면으로 업적을 남긴 왕이었기에 "워낙 (그 양이) 방대하고,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서 가장 작업이 힘들었던 게 '세종실록'"이기도 했다.

반면 10권 '선조실록'과 19권 '고종실록', 20권 '망국'은 기록이 적어 애를 먹었다. 선조의 재위기간은 42년에 달했지만, 전쟁으로 많은 기록이 사라졌다. 고종과 순종은 왕조의 운명이 저물어가던 시기였던 만큼 실록 자체가 부실했다. 게다가 흔히 말하는 <조선왕조실록> 2077권에는 두 왕의 실록이 포함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에 편찬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18권(철종실록) 정도로 마무리하면 어떨까도 생각했습니다. 근데 '왕조'에 좀더 방점을 두고 20권까지 하게 됐어요. '고종실록'에 (사실여부 등이) 의심스러운 부분은 없잖아 있지만, 일본 감독 하에 쓰였다고 해서 사료적 가치가 없다고 보진 않아요. 물론 실록이 너무 부실해서 19~20권은 현대에 와서 정리가 된 내용을 많이 따르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망국'으로 끝맺은 조선의 역사 "슬픈 역사만은 아니더라"

박시백 화백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작업을 위해 <조선왕조실록> 내용을 요약·정리한 자필노트와 스케치.
 박시백 화백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작업을 위해 <조선왕조실록> 내용을 요약·정리한 자필노트와 스케치.
ⓒ 휴머니스트, 박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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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 작업에서 자료 수집만 힘든 일이 아니었다. 망국의 기록을 다시 쓰는 일이고, 책을 마무리 짓는 일이라 더 아프고 답답했다. 이사로 환경이 바뀐 탓인지 작업속도조차 더뎠다. 그래도 희망을 말하고 싶어 끝부분에 안중근 의사 내용을 더 넣고, 독립운동과정에 헌신한 사람들이 모인 장면으로 책을 완성했다. 박 화백은 "항상 보면 임진왜란이나 망국 과정 등 우리가 보기에 답답하고 안쓰럽지만, 새로운 가능성이나 희망이 있었다"며 "임진왜란 때 의병과 (조선) 말기 독립군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며 슬픈 역사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약 4000장, 2만 5000컷이란 엄청난 분량의 작업을 13년 만에 끝낸 그는 "속 시원한 마음이 90%, 아쉬움이 10%"라며 웃었다. 성취감 역시 크다. 박 화백은 "초기에 만화적 재미를 더 추구했다면 후반부로 가면서는 '역사서'에 방점을 찍다보니 '글만 많고 재미없다'는 지적도 있었다"며 "예상했지만, 일단 실록을 제대로 알리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명감이 작용했다, 처음 제가 구상한 것에 부족하지 않게 전체를 그려내 굉장히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역사를 좋아하고, 전공은 안 했어도 역사에 관심 많은 이들에게 '조선사 내비게이션'이길 바라고 있다.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등 역사학자들은 <조조록> 완간이 '<실록>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 또한 "<조조록>을 계기로 이제 야사가 아닌 정사(正史)로서의 역사가 소설, 역사교양서는 물론이고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에서 대중과 만나게 될 것"이라며 "내년부터는 해외 유수 출판사들이 스스로 관심을 갖고 번역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휴머니스트는 오는 29일부터 <조조록> 1권당 2회씩 총 40회짜리 팟캐스트 방송도 내보낼 계획이다.

박시백 화백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완간을 기념해 그린 '조선 역대 왕들의 단체 사진.'
 박시백 화백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완간을 기념해 그린 '조선 역대 왕들의 단체 사진.'
ⓒ 휴머니스트, 박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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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시백, #조선왕조실록, #남북정상회담회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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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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