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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민주주의 수호 촛불문화제'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며 촛불을 들어보이고 있다.
▲ 점점 커지는 국정원 규탄 촛불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민주주의 수호 촛불문화제'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며 촛불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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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작가 에밀 졸라가 <여명>지에 '나는 고발한다'를 게재했을 때 그는 환갑이 임박한 노년이었고 작가로서 얻은 부와 명성이 최고조에 달해 인생의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런 유명 노 작가가 대통령을 향해 통보한 공개 서한문이란 다름 아닌, 잠자고 있는 조국 프랑스의 양심을 촉구하는 '내용증명'이었다. 죄 없는 유대인 장교에게 씌워진 스파이 혐의는 이미 진범이 밝혀진 명백한 누명이었다.

묵살 당한 에밀 졸라의 절규

프랑스의 국수주의가 낳은 인종차별의 희생양으로 유대인 청년의 억울한 종신형은 철저하게 묵과 되었다. 국가적 차원의 비열한 범죄였다. 프랑스- 프로이센 전쟁의 패배에 따른 민심의 동요로 위기에 몰린 프랑스 정부에, 이민족 청년의 스파이 혐의는 국면전환용 도구에 불과했다. 에밀 졸라는 자신에게 최고 문화훈장을 수여했던 조국을 향해 소설을 쓰던 붓을 꺾고 분노의 포고문을 작성했다.       

"대통령 각하, 저는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제 의무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공범자가 된다면, 앞으로 제가 보낼 밤들은 유령이 가득한 밤이 될 겁니다."

그러나 에밀 졸라의 절규는 묵살 당했다. 이 서한의 수신인이자 범죄의 몸통인 대통령, '펠릭스 포르'는 국가가 작가에게 수여했던 수훈을 박탈하는 것으로 편지에 대한 회신을 대신했다. 

"저를 단죄하는 것, 그것은 저를 더욱 더 대단한 인물로 키워주는 일일 뿐입니다. 모름지기 진실과 정의를 위해 고통을 감수한 자는 결국 존엄하고 신성한 존재가 되기 마련입니다."

유죄판결이 기정사실화 된 암담한 법정에서 피의자 에밀 졸라는 배심원단을 향해 최후변론을 했다. 존엄하고 신성한 존재로 남기를 원한다는 옹고집스러운 작가에게 배심원들은 유죄판결로 의견일치를 모았다. 그것으로 작가의, 이민족 청년을 위한 구명운동에 냉랭한 적의를 드러냈다.

역사의 공범자가 되지 않기 위해, 진실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 노 작가는 여생을 통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동안 작가로서 이룬 부와 명성을 뒤로하고 망명, 투옥, 수훈 박탈, 가스 질식에 의한 의문사로 생을 마감했다. 

수신인 펠릭스 포르 대통령에게서 거부당한 편지는 그러나 프랑스 국민들의 양심에 접수되었다. '나는 고발한다'는 잠자던 프랑스 지식인, 인민들을 대대적으로 각성시켰고 무려 12년간 프랑스 전역은 드레퓌스파와 반드레퓌스파로 나뉘어 들끓었다. 지난한 싸움 끝에 진실은 승리했다. 드레퓌스 대위가 유배지 '악마의 섬'에서 종신형에서 벗어나던 날, 악마에게 유폐당한 프랑스 국민의 영혼도 함께 자유를 찾았다.

비록, 졸라 자신은 행복한 결말을 보지 못하고 의문사로 진즉 생을 마감했지만 승리의 영광은 고스란히 망자에게 헌정되었다. 그러나 에밀 졸라는 프랑스 국민의 자존심으로 남았다. 현재까지 한 작가가 누릴 수 있는 온갖 찬사와 존경이 그의 무덤에 바쳐지고 있다. 프랑스 국민에게 에밀 졸라는 <나나>, <목로주점>을 쓴 루공 마카르 총서의 저자이기 이전에 비겁한 정부, 대통령을 향해 당당하게 '나는 고발한다', 선언문을 쓴 투사였다.

어느 시인의 죽음을 무릅쓴 '탄핵성명서'

그로부터 반세기 후, 칠레의 상원의회에 또 한 번의 '나는 고발한다'는 제목의 고발장이 접수되었다. 수신인 '곤잘레스 비델라' 대통령을 향해 죽음을 불사한 성명서를 직접 읽어 내려가고 있는 초선의원은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였다.

죄없는 민중을 향해 총구를 들이대는 독재자를 향해 어제까지 사랑의 시를 읊던 펜으로 파블로 네루다는 죽음을 무릅쓴 탄핵성명서를 작성했다. 노동자, 농민, 광부들을 대변하는 공산당에 대대적인 탄압을 자행하는 비델라 대통령의 전횡을 그는 묵과할 수 없었다.

네루다의 '나는 고발한다', 역시 곧바로 그에게 험난한 시련과 고난을 안겼다. 사랑받는 시인이자 촉망받는 상원의원이던 그가 하루아침에 도망자 신세가 되어 천신만고 끝에 안데스 산맥을 넘어야 했다. 기약 없는 망명길의 네루다는 그러나 행복했다. 가는 곳마다 이름 없는 광부, 노동자들의 뜨거운 환대가 있었고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기꺼이 은신처를 제공해 주었다.

비델라 정부의 집요한 추적과 끈질긴 살해위협에 시달리면서도 변함없는 민중의 사랑으로 네루다는 끊임없이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했다. 칠레 국민들에게 파블로 네루다는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를 읊던 시인이기 전에 민중의 편에 서서 '나는 고발 한다'라는 탄핵성명서를 낭독했던 대변인이었다.

국정원의 불법대선 개입이 진행된 가운데 선출된 대한민국 대통령을 향해 선언문을 통보한 이들은 이름 없는 시민들이었다. 해마다 노벨문학상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대작가는 있지만 대통령과 맞장 뜰 노작가가 우리에겐 없다. 대신, 광장의 다양한 구호와 각계, 각층의 시국선언문들이 국가정보원과 최고 책임자를 겨냥하여 날카롭게 조준되고 있다.

광장에 선 '촛불 시민들'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민주주의 수호 촛불문화제'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며 함성을 지르고 있다.
▲ "국정원 선거개입 제대로 된 국정조사 실시하라"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민주주의 수호 촛불문화제'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며 함성을 지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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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단체들의 수위 높은 시국선언문이 계속 이어지고 동참자 수는 계속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대한민국 헌정질서가 유린당하는 참담한 형국에 변화는 아래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에밀 졸라도, 파블로 네루다도 없는 광장에 시민들은 스스로 피켓을 만들고 구호를 적고 그라피티를 뿌린다. 그 구호들이 곧 민중들이 국정원과 몸통인 대통령을 향해 고하는 한국판 '나는 고발한다'를 대신하는 성명서이다.
    
국정원 여직원이 오피스텔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대치할 때 그녀가 믿었던 것은 무소불위의 든든한 직장이었다. 일개 말단 직원인 그녀로 하여금 문틈으로 생수를 공급 받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꿋꿋하게 버틸 수 있게 했던 힘, 그것은 지금 전국민적 저항으로도 터럭조차 건드릴 수 없는 거대한 조직의 막강한 힘이다.

그녀와 동료들의 댓글작업으로 지원을 받은 해당 후보는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완력으로 연약한 여성을 억류한 야당의원들을 비난함으로써 그녀의 외로운 노고에 힘을 실어 주었다. 무사히 오피스텔을 빠져 나온 국정원 여직원 그녀가, 깊이 눌러쓴 모자와 머플러를 칭칭 감은 연예인 포스로 검찰에 출두해서조차 시종일관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할 수 있었던 힘도 역시 듬직한 직장의 힘이었다. 그녀가 몸담은 직장은 야당, 검찰조차 감히 어쩌지 못하는 신의 직장이다.

선거 특수에 채용된 기간제 알바들이 음지에서 양산한 촌철살인의 신조어들은 넷 망을 타고 무작위로 유포되었다. 인터넷 뉴스 기사 밑에 출몰하곤 하던 황당하고 망측한 댓글들은 더러 부동층을 뇌쇄시킬 만큼 창조적이었다. '댓글이 왜 생겼는지 모르겠다', '선거기간에 국정원 도움 받은 적 없다'. 대통령의 무책임한 사후 발언은 저절로 시민들의 발길을 광장으로 불러 모았다.     

백 명, 천 명, 만 명의 대학생, 시민, 청소년들이 지금 광장에 서 있다. 광장을 선점한 이들은 풀뿌리 시민들이다. 학생, 시민, 성직자들이 앞서 선언문을 낭독하고 촛불을 치켜 든 후에서야 슬그머니 지식인, 전문가 집단의 시국선언문이 이어졌다.

가나다라 순, 시국선언 동참자 명단이란 현대판 사발통문이다. 몇백 명 혹은 몇십 명 집단 속의 개체로 이름 석 자를 등재한 것으로 지식인의 의무는 끝나지 않는다. 시국선언 동참 여부를 묻는 메일 답신에 '예스'를 클릭 할 때, 모 대학의 교수들이 의식했던 것은 실명공개에 따르는 외부의 시선이었을까 진실규명의 의지였을까. 단체 시국선언문은 점오하듯 속속 올라오는데 위상에 걸 맞는 강도 높은 성토의 함성 한 번 들리지 않는 신문 지면을 보면서 드는 의문이다. 결국 이 시대에 침묵이란 무언의 투항을 의미한다.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서한문 제목은 원래,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이 온순한 제목을 '나는 고발한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바꿔치기 해버린 사람은 다름 아닌, 그 글이 발표되었을 때 가장 큰 위험에 처할게 뻔한 <여명>지의 편집장이었다. 그 삼엄한 시절, 자신들의 글 한편이 몰고 올 어마어마한 파장을 각오하고 오로지, 글의 호소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비난의 강도를 높여 맞섰던 것이다.

에밀 졸라와 파블로 네루다가 원했던 것은....   

민주주의 위기를 알리는 촛불이 전국 방방곡곡 봉화처럼 타오르고 있다. 호남은 일찍이 지나친 정권교체의 욕망이, 특정후보에게 92% 몰표라는 무지막지한 숫자로 나타나 선거의 뒷담화로 두고두고 희화화 되었던 지역이다. 이른바 댓글 알바들이 악성 댓글을 생산할 때 가장 염두에 두고 작업을 했던 곳도 바로 이곳 호남이다.

국정원의 조직적인 선거개입 행위와 그것의 수혜자인 대통령을 대하는 지역민들의 허탈과 분노는 충격적이다. 전남대학교 시국선언동참교수들은 현재 141명, 전국의 대학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의 교수들이 선언에 동참했다. 그런가하면 시국선언문에 '정권퇴진'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구체화 시켰던 것도 광주의 '조선대학교' 시국선언문에서였다.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를 게재하고 잃은 것은 레지옹 도뇌르 훈장이었고 얻은 것은 진실의 승리였다. 파블로 네루다가 '나는 고발한다' 탄핵문으로 잃은 것은 상원의원 직위였고 얻은 것은 민중의 신뢰와 애정이었다. 죽기 직전까지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을 소재로 하는 소설을 집필중이었다.

미완의 소설로 남은 그 소설 제목은 <진실>이었다. 지금은 망월동에 잠들어 있는, 한국의 에밀 졸라라 일컬어 지는 '리영희 선생'이 죽음을 무릅쓴 정론직필의 의미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둔다는, 조국, 민주주의 그런 것보다 가장 우위에 둔다는 바로 그 '진실'이다. 


태그:#나는 분노한다, #촛불, #진실, #에밀 졸라, #파블로 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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