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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짐머만이 2013년 7월 12일, 미국 플로리다 주 샌퍼드 세미놀 카운티 형사 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세미놀 카운티 조사관 롭 헤머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비무장한 10대인 트레이본 마틴에게 총을 쏴서 죽인 짐머만은 2급 살인혐의로 기소됐다.
▲ 미국 흑인소년 살해 혐의 짐머만 조지 짐머만이 2013년 7월 12일, 미국 플로리다 주 샌퍼드 세미놀 카운티 형사 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세미놀 카운티 조사관 롭 헤머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비무장한 10대인 트레이본 마틴에게 총을 쏴서 죽인 짐머만은 2급 살인혐의로 기소됐다.
ⓒ EPA/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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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배심원들은 조지 짐머만이 무죄라고 평결합니다."

13일(이하 현지시각) 밤, 굳어 있던 짐머만(29)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띠어졌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변호인들과 악수를 나눴다. 그의 부인과 친구들은 눈물을 흘렸고, 부모님은 키스와 함께 포옹을 나눴다. 짐머만(29)의 총에 맞아 죽은 17세 소년 트레이본 마틴의 부모님은 법정에 보이지 않았다.

판결 이후, 세미놀 카운티 법원 데브라 넬슨 판사는 짐머만에게 말했다.

"당신은 더 이상 법정과 관련이 없다."

법원 밖, 수백 명의 항의자들이 꽉 쥔 주먹을 위로 들어 올리며 외쳤다.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

평결이 내려진 지 1시간이 지난 오후 11시 20분, 시위대는 하나둘 법원을 떠났다. 그 중에는 마티 에이큰(33)도 있었다. 정오부터 이곳에 있었던 그녀는 '스키틀(Skittle)'이라는 상표가 찍혀 있는 사탕 봉지와 아리조나 워터멜론 음료 캔을 들고 있었다. 마틴이 짐머만의 총에 맞아 숨지던 날 들고 있던 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그(짐머만)는 감옥에 갔어야 했어요. 그는 유죄, 유죄, 유죄, 유죄를 받았어야 했어요."

'살아 있는 목격자'는 살인혐의 받는 피고인 단 한 사람

사건은 플로리다의 조용한 시골마을 샌퍼드에서 시작됐다. 2012년 2월 26일 비 오던 날 밤, 트레이본 마틴은 회색 후드티를 입고 편의점에서 사탕과 음료수를 사들고 아버지네 집에 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이 지역 자율방범대원인 조지 짐머만은 낯선 얼굴의 마틴을 보고, 그를 범죄자로 의심했다. 샌퍼드 지역 주택단지에 강도가 많았기 때문. 당시 무기를 지니지 않았던 마틴은 범죄 경력이 없었다. 

짐머만은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통화에서 마틴을 "젊은 불량배(Punk)"라고 불렀다. 'Fu******'이라는 비속어도 썼다. 경찰은 자신들이 그곳에 가고 있다면서 짐머만에게 마틴을 따라가지 말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짐머만은 경찰의 말을 어기고 계속해서 마틴을 따라갔다. 마틴의 정확한 주소지를 알고 싶어서였다고 그는 이후에 진술했다.

짐머만은 차에서 내렸다. 허리에는 총을 찼다. 이후 짐머만과 마틴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났고, 짐머만은 마틴을 총으로 쐈다. 그는 마틴을 죽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정당방위'였다고 강조했다. 짐머만이 자신을 먼저 쳤고, 바닥에 눕힌 후 콘크리트 바닥 쪽으로 자신의 머리를 계속해서 때렸다는 것이다. 짐머만의 변호인 측은 그 증거로 짐머만이 얼굴과 코에 부상을 입은 사진을 제시했다. 

문제는 이 사건의 유일한 '살아 있는 목격자'가 짐머만 단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누가 먼저 공격을 했는지, 짐머만이 정말로 꼭 총을 쏴야 할 상황이었는지는 짐머만과 마틴 두 사람만이 안다. 그러나 마틴은 지금 세상에 없다.

짐머만을 '2급 살인혐의'로 기소한 검찰 측은 짐머만이 후드티를 입은 10대 남성에 대한 "악의적 편견"을 가지고 그를 범죄자라고 생각했고, 고의로 싸움을 부추겨 죽음까지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검사 측은 짐머만이 "경찰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플로리다 주 정부 검사인 존 가이는 말했다.

"피고인은 그가 마틴을 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쏘고 싶었기 때문에 쐈다. 그게 핵심이다."   

'악의적 편견' '부실 수사'... 흑인이라서?

여기까지는 '평범한 살인사건'일 수 있다. 하지만 주 정부 경찰의 대응은 이 사건을 단순한 살인사건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했다. 비무장한 10대를 총으로 쏴서 죽인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짐머만을 체포하지 않은 것.

플로리다주에서는 총기사용과 관련해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Stand Your Ground)'라는 법을 적용한다. 이 법은 누군가 신체를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공포'가 있다면 '치명적인 힘'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플로리다 주 경찰은 '합리적인 공포'를 갖고 있었다는 짐머만의 주장만 믿고 그를 내버려뒀다.

또 하나, 짐머만은 백인, 마틴은 흑인이었다. 짐머만은 히스패닉계 혼혈 미국인이다. 흑인단체들은 짐머만이 마틴에 대해 '악의적인 편견'을 갖게 된 것도, 경찰이 이번 살인사건을 유야무야 넘어간 것도 '인종'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봤다. 샌퍼드와 마이애미를 중심으로 반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시위대는 후드티를 입고 행진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역시 "내가 만약 아들이 있었다면 트레이본처럼 생겼을 것"이라면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결국 사건 2개월여가 지난 2010년 4월, 짐머만은 구금된다.

그러나 검찰 측은 짐머만이 1급살인인 '계획적 살인'과 비교되는 의미의 2급 살인인 '우발적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사건을 일부 보거나 들은 사람들은 상반된 주장을 했다. 짐머만의 변호인 마크 오마라는 검찰 측의 변호를 "어림짐작과 감정에는 강하지만, 증거에는 약하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배심원들을 향해 말했다.

"이 (검사가 제시한) 점들이 합리적인 의심을 넘어선다면 선을 연결하지 말아주십시오."

오마라는 "짐머만이 마틴을 정당방위로 쏜 것 이외에는 결코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 "짐머만은 인종주의자가 아니었다"면서 "만약 짐머만이 흑인이었다면 그는 기소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인종차별' 아닌 '증거부족' 문제 의견도

하지만 '인종차별'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6명의 배심원단 가운데 5명은 모두 백인이었다. 나머지 한 명 역시 흑인은 아니었다. 필라델피아 드렉셀대학에서 인종을 가르치는 조지 시카리엘로는 CNN과 한 인터뷰에서 "마틴을 악마로 묘사하는 미디어 캠페인부터, 흑인이 아닌 배심원을 선택한 것까지, 짐머만의 무죄는 이미 예고됐다"고 반발했다.

마틴 가족의 변호인 벤자민 크럼프는 말했다.

"전 세계가 이 사건을 하나의 이유 때문에 지켜봤다. 만약 우리가 이 사건의 인종적 함의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지적으로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 매우 책임 있는 논의를 해야 한다. 이 비극에서 나아가 무엇을 배워야 할지."

'인종' 문제는 '시민권'의 문제로 확대된다. 전미유색인종발전협회(NAACP)는 "그날 밤, 시민권의 가장 기본적인 것인 삶(life)에 대한 권리가 침해됐다"면서 "짐머만은 마틴의 뒤를 밟고, 그의 삶을 앗아갔다"고 비판했다. 온라인 시민권 그룹인 컬러오브체인지 닷 오알지는 "이것은 흑인 부모들에게 또 다른 비극"이라면서 "이번 판결은 어린 흑인 남성들의 생명에 최소한의 가치가 부여된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씁쓸해했다.

반면, 트위터 사용자(@capt*****)는 "이번 판결은 짐머만이 무고하다는 것을 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증거들이 짐머만이 유죄가 아니라고 증명한 것"이라며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였고, @Gree*****역시 "(짐머만이 유죄가 아니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있었고, 사법 시스템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했다"며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14일 성명을 내고, "우리는 법치국가이고, 배심원들도 이를 말했다"면서 "나는 모든 미국민이 이번 사건을 차분히 돌아볼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그는 "개인으로서, 한 사회로서 미래에 이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면서 "그것이 트레이본 마틴을 기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공은 미 연방 법무부로 넘어갔다. 미 법무부는 같은 날 발표한 성명에서 짐머만에 대한 기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계속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태그:#짐머만, #짐머맨, #조지 짐머만, #총기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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