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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주현씨 사망 80일째이던 2011년 4월 1일,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왼쪽)이 경찰, 기자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찰은 당시 미신고 집회를 이유로 해산명령이나 진압 등을 하지 않았다.
 고 김주현씨 사망 80일째이던 2011년 4월 1일,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왼쪽)이 경찰, 기자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찰은 당시 미신고 집회를 이유로 해산명령이나 진압 등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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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도급 의혹이 제기된 이후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들이 노조 설립과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지난달 4일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2011년 삼성전자 노동자 고 김주현씨 사망 당시 서울 서초구 삼성본관 앞에서 미신고 집회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특정 기업에 대해 반대를 계속하고 있는 점이 우려스럽다"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김 위원장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했다.

또 당시 1시간 동안 1인 시위에 참여했던 의사 임아무개씨, 삼성일반노조원 임아무개씨, 반도체 노동자 인권단체인 '반올림'의 활동가는 벌금 400만 원에 약식기소됐다. 이에 당사자들은 "법원의 납득할 수 없는 표적재판"이라고 항변하고 나섰다. 김 위원장은 1심에 불복해 항소했고, 약식기소 된 활동가들은 정식재판을 청구해 현재 재판을 진행중이다.

노동자 자살 후 1인 시위... 법원 "1인시위로 볼 수 없어"

지난 2011월 1월 11일, 삼성전자 LCD 천안공장 기숙사 13층에서 김주현씨가 투신했다. 2010년 1월 삼성전자에 입사한 그는 과로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다. 김씨는 두 달간의 병가를 마치고 현장에 복귀할 예정이었지만 이날 다섯 차례 투신을 시도한 끝에 끝내 사망했다.

이후 회사 측의 사과나 조치가 없자 유가족들은 사망 일주일 뒤인 2011년 1월 17일 삼성전자 천안공장과 천안역에서 '삼성의 사과와 책임 인정'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2월 21일부터는 삼성본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김씨 사망 후 95일만인 4월 15일, 삼성 측은 "고인의 죽음에 대해 사과와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한다"고 유족과 합의했다. 결국 사망 97일째인 2011년 4월 17일, 천안 순천향대 병원에서 김씨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이 과정에서 1인 시위를 한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과 활동가들이 2년 뒤인 지난 6월 징역형 혹은 400만 원의 약식기소를 받은 것이다. 이에 김 위원장은 "당시 유족들과 떨어진 채 삼성본관 앞 길 건너 한 장소에서 계속 서 있는 1인 시위를 했다"며 "그곳에서 내가 항상 1인 시위를 했다는 것이 재판 과정 중 삼성 측이 증거물로 제출한 동영상에서도 확인됐다. 그런데도 법원은 미신고 집회를 했다고 유죄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의사인 한 활동가는 하루, 그것도 한 시간 1인 시위를 했는데 벌금 400만 원으로 약식기소 했다"며 "말도 안 되는 판결이며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1인 시위는 신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김 위원장, 김주현씨의 유가족 등이 서로 보이는 위치에서 시위를 했다"며 "1인 시위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3일 오전 전화로 한 김성환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삼성-유가족 합의했는데... 2년 후 느닷없는 재판"

김주현씨 사망 44일째인 2011년 2월 23일 오후,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삼성본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김주현씨 사망 44일째인 2011년 2월 23일 오후,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삼성본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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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고 김주현씨 사망과 관련해 미신고 집회 혐의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40시간의 1심 판결을 받았는데 기소는 언제 됐고 재판은 몇 차례나 진행됐나.
"그 해(2011년) 4월 검찰이 기소했다. 그러다 2년이 지난 올해 들어 느닷없이 재판이 진행돼 6월 4일 서초법원이 징역형을 선고했다. 납득할 수 없는 표적재판이다."

- 표적재판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있는가.
"2011년 1월 김씨의 자살사건 때 삼성본관 앞에서 미신고 집회를 했다는 죄로 나를 기소했고, 활동가 3명은 벌금 400만 원으로 약식기소했다. 나는 당시, 항상 삼성본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당시 미신고 집회였다면 경찰이 벌써 해산명령이나 진압을 했을 것인데, 경찰로부터 아무런 제지도 당하지 않았다.

나와 삼성일반노조는 1인 시위 기간 중 공공의 질서를 해친 적이 없다. 미신고 집회를 한다고 경찰의 제재를 받은 사실도 없다. (1인 시위를 한) 삼성일반노조와 연대단체, 개인은 집단적인 구호를 외치거나 불법집회를 한 적도 없고, 할 수도 없었다. 단지 삼성본관 앞 1인 시위는 삼성을 난처하게 했을 뿐이다."

- 법원이 유죄를 내렸다면 미신고 집회의 불법성을 인정한 것이 아닌가?
"지난 5월, '용산참사 미신고 집회 해산명령 불응' 혐의에 무죄가 선고된 바 있다. 당시 법원은 '미신고 집회라 할지라도 공공질서를 해치지 않는 한 해산명령 못한다'는 요지의 판결을 내렸다."

- 1인 시위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
"장시간노동과 화학물질노출, 업무스트레스로 투신자살한 김씨의 가족들이 장례투쟁을 할 때 당시 나를 포함한 삼성일반노조는 삼성본관 앞에서 유족들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1인 시위를 했다. 마침내 95일 동안의 장례투쟁 끝에 삼성이 김씨의 죽음에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사과했다. 삼성전자 대표이사와 유족은 문서로 합의해 장례투쟁은 끝났다.

그런데 김씨의 장례투쟁이 끝나고 2년이 지난 지금, 내게 검사는 징역 1년을 구형하고 판사는 유죄를 인정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검사가 증거로 제출한 동영상에도 내가 집회를 했다는 근거는 없었다. 삼성본관 앞에서 혼자 서 있는 모습만 동영상에 나왔다.

당시 삼성본관 길 건너 한 장소에서 내가 항상 1인 시위를 했다는 것이 재판과정에서 삼성 측이 증거물로 제출한 동영상에서도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판사는 내가 무슨 근거로 집회를 했다고 유죄를 선고했는지 알 수가 없다."

- 항상 1인 시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삼성본관 주변은 1년 365일 삼성이 용역을 동원해 집회신고를 선점해 집회를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조건에서 삼성일반노조, 연대단체, 개인, 그리고 유족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1인 시위를 할 수밖에 없었다."

- 항소를 했는데, 지금 심정은 어떤가.
"이번 1심 선고는 삼성이 내게 갖고 있는 적개심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유죄를 전제로 한 표적재판이 아닐 수 없다. 삼성본관 정문을 중심으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1인 시위를 한 것만으로 미신고 집회라며 유죄를 인정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표현의 자유마저 말살하려는 횡포이다.

당시 단지 피켓에 김씨의 영정사진을 붙이고 요구사항을 적어서 들고 삼성의 치부를 폭로했다.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고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을 요구했을 뿐이다. 6월 4일 재판장이 한 질문을 잊을 수 없다. 재판장은 내게 '삼성에 맞서 (시위를) 계속 할 것인가요?'라고 물었고, 나는 '예' 라고 대답했다. 이어 징역형이 선고됐다."


태그:#삼성일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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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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