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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문화제에 참가한 많은 시민들.
 촛불 문화제에 참가한 많은 시민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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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촛불집회를 가다.

어제는 언제가 꼭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미루었던 촛불집회를 드디어 가보게 되었다. 막상 마음은 먹었지만 몸이 가뿐하게 따라주질 않았다. 귀찮고 피곤하고 등등 핑계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이유들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어제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광화문 쪽으로 나섰다.

날씨는 왜이리 덥고 습한지. 96년의 여름이 기억나는 날씨였다. 후텁지근한 것이 어찌나 그리 닮았는지. 29일 저녁 7시 대학생들로 보이는 학생들의 진행으로 촛불문화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하더니,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학생부터 대학생들 그리고 커플로 보이는 사람들, 가족단위로 나온듯한 사람들까지 각양각색의 모습들로 촛불을 들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피곤하지도 않은가봐?'라며 무관심하게 퇴근길을 재촉하며 지나가는 사람들과 퇴근 후에 유모차를 몰고 집회장으로 오는 가족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촛불 문화제 입구 모습.
 촛불 문화제 입구 모습.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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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관련 사진전에 참전국 국기들이 바람에 휘날린다.
 6.25 관련 사진전에 참전국 국기들이 바람에 휘날린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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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장소 입구 쪽에는 진보계열의 신문을 홍보하는 젊은이들이 보였고, 바로 옆에는 6.25관련 사진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수많은 참전국들의 국기가 같이 걸려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지나갔다. 그들의 일상을 마무리 하고 다른 하루를 마무리 하러 가는지 바쁘게 바쁘게 지나갔다. 그 곁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긴 참전국 국기들의 모습이 한없이 무거워 보이기만 했다.

촛불 문화제에 참가한 많은 시민들.
 촛불 문화제에 참가한 많은 시민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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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문화제에 참가중인 많은 시민들.
 촛불 문화제에 참가중인 많은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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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솔직히 촛불집회장에 가기 전 걱정이 좀 되었다. 나야 이런 상황들이 익숙했지만, 가족들과 같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긴 쓰였다. 그리고 TV나 언론 속에 보이는 모습은 평화적으로 보였으나 실상은 아닐 수도 있을 거라는 걱정에서였다.

그 이유는 예전 의경 데모 전담 기동대에서 복무했던 기억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집회나 시위를 하면 당연히 험악한 분위기가 일어났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부 소수의 주최자들의 진행으로 집회가 시작되고 폭력적으로 마무리 되는 것을 보아왔다. 그 시절을 지나온 나에게 결사적인 분위기와 쇠파이프가 난무하는 과격한 폭력 등으로 마무리 되는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어제 겪은 촛불집회의 시위의 모습은 내가 걱정한 것과는 달랐다. 아니 분위기 상으로는 항상 이런 평화적 분위기였던 듯싶었다. 마치 동네 주민들이 같이 즐기는 기분 좋은 축제 겸 토론회하는 듯 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행여 가족들과 같이 가서 예상치 않은 불상사를 겪을까봐 노심초사 했던 마음은 이내 사라졌다.

촛불 문화제 참가자의 피켓구호
 촛불 문화제 참가자의 피켓구호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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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문화제 참가자의 피켓구호
 촛불 문화제 참가자의 피켓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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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뜨거운 무언가는 계속 전해지고 있었다.

전날의 열기가 아직은 식지 않은 듯, 집회 참가자들은 때론 분노하고 한숨을 쉬며, 때론 환호하고 박장대소하며, 마치 축제를 하듯 촛불 집회를 9일째 이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왜 쉬고 놀러가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토요일 저녁시간을 내어준 것일까?'라는 그동안의 질문에 대한 답을 현장에서 찾을 수 있었다. 

참가자들의 신청된 순서 발언 속에서 여고생들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보이고, 커플끼리 손에 깍지를 껴가며 촛불을 든 모습도 보이고, 백발의 모습으로 열정적으로 촛불 집회에 참여하시는 참가자 분들도 보이시고 유모차를 몰고나온 가족들의 모습도 보였다. 한결 같은 공통점은 분노하고 있으나 과격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 기백이 느껴졌다. 집회참가자들은 이미 분노와 절망사이에 희망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 보여지고 느껴졌다.

서울 시청 광장
 서울 시청 광장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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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의구심이 든 것은 서울광장은 개방되어 있었으나 왜 그 협소한 곳에서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서울시에서 승인되어지지 않아서인지, 관할경찰서에서 다른 집회신고가 이미 들어와 있기 때문인지 말이다.

촛불 문화제가 끝난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청소 및 정리하는 모습.
 촛불 문화제가 끝난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청소 및 정리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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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9시경 집회가 정리되고 난후,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아쉬운 듯 담소를 나누며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아직 감정이 추스러지지 않은 분들은 혼자서 자리를 뜨지 않는 분들도 계셨다. 물론 그 촛불집회 장소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이 정리되고 청소되어 있었다.

가족이나 연인이 오기에도 부담 없었던 너무나도 평화적이고 흥이 넘치고 즐거웠던 촛불 집회.

추후 다시 찾고 싶을 만큼, 가족이 와도 될 만큼, 정리되고 교육적이며 흥이 넘치고 즐거운 분위기였다. 가족과 연인끼리 오고 가기 좋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근처에는 경복궁과 덕수궁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시청 앞 광장도 여름 시원한 바람 쐬기에는 좋지 아니한가? 세종문화회관도 바로 옆에 있고 말이다. 그리고 집회 자체의 모습도 예전의 암울하고 결사적이고 우울해 보이는 분위기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집회와 시위도 즐길 줄 아는 것인지, 즐겁게 살기위해 집회와 시위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인지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집회 분위기에 솔직히 기대 이상의 기분 좋은 분위기가 내게 전해졌다.

거대 신문사 사옥 빌딩.
 거대 신문사 사옥 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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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문화제에 참가중인 시민들이 들고 있는 작은 촛불들.
 촛불 문화제에 참가중인 시민들이 들고 있는 작은 촛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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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신문사옥들 앞에서 바라본 작은 촛불들…….

옆으로 부는 바람들을 뒤로하면서 사람들이 들고 있는 작은 촛불들을 보며,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에 닿을 듯 한 높이의 큰 신문사 사옥이 보였다. 마치 작은 촛불들을 내려다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작은 촛불이 더욱 작아 보였다. 하지만 해가지고 점점 더 어두워질수록 촛불은 더 크게 밝아져 보였다.

촛불 문화제에 참가 시민이 들고 있는 촛불 하나.
 촛불 문화제에 참가 시민이 들고 있는 촛불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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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촛불은 자신을 태우고……. 바람은 분다.

96년 여름, 그 더운 날씨가 지나가면 더 이상 집회, 시위가 없는 세상이 올 줄 알았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와서 세상이 바뀔 줄 알았다. 그런데 여름이 더위가 더욱 기승을 부릴 수록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모습이 더 뒤로 가고 있다는 모습이 보인다. 반복되는 여름철의 후덥지근한 날씨처럼 대한민국은 현재 아직도 수많은 집회와 시위가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자신을 태우는 촛불이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바람이 분다.


태그:#촛불 집회, #촛불 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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