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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의 아름다움, 숭고하고 우아하며 비장한 것과 거리 먼 귀엽고 익살스러운 동자석이다
▲ 다산초당 가는 길 옆 묘의 동자석 익살의 아름다움, 숭고하고 우아하며 비장한 것과 거리 먼 귀엽고 익살스러운 동자석이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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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이란 '우스꽝스럽다'라는 말로 미적 범주에 속한다. 그 하위 범주로 풍자와 해학이 있다. 숭고하고 우아하며 비장한 것만 미적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초역사적이고 절대적인 미(美)란 있을 수 없다. 미는 지역이나 시대에 갇혀있는 사회적인 개념이어서 기존의 미에 길들여진 우리의 관념을 반영한 미다. 관념에 길들여진 미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어서 전화과정(轉化過程)을 통해 새로운 미의 기준이 생긴다. 미의 기준은 사회와 역사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생기는 관계론적인 체계다. 

서툰 글씨가 명필이 되고 굽은 것이 곧은 것이 될 수 있다. 우리의 그림과 글씨, 공예나 도자기, 조각과 건축에서 우스꽝스럽고 어리광스러우나 꾸밈이 없이 진실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우아하고 숭고하며 남성다운 부처만이 아름다운 부처가 아니다. 홀로 온갖 시련을 견디며  외아들을 훌륭히 키워낸 남도의 어머니 같은 석불(강진무위사 미륵전 석불)과 조그만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우리 할머니 같은 부처(강릉 신복사터 석불좌상) 얼굴에서 따스하고 친근한 익살의 아름다움이 전해져 온다. 

장난기 어린 미소에 눈이 간다

조그만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우리 할머니 같은 부처얼굴에서 따스하고 친근한 익살의 아름다움이 전해져 온다
▲ 강릉 신복사터 석불좌상 조그만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우리 할머니 같은 부처얼굴에서 따스하고 친근한 익살의 아름다움이 전해져 온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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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함이 지나치면 마음 편히 다가가기 어렵다. 몸은 온데간데없고 얼굴만 남아있는 불두의 합죽한 입가에서 번지는 장난기 어린 옅은 미소에는 숭고한 얼굴에서 절대 기대하기 어려운 정 깊은 훈훈함이 스며있다.

합죽한 입가에서 번지는 장난기 어린 옅은 미소에는 정 깊은 훈훈함이 스며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고려철조 불두(10세기경) 합죽한 입가에서 번지는 장난기 어린 옅은 미소에는 정 깊은 훈훈함이 스며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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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아저씨 같은 불상(철원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좌불상)과 논산 사나이 같은 진한 표정의  미륵(논산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그리고 파주부부(坡州夫婦)가 합장하며 서 있는 듯 한 불상(용미리 석불입상) 등은 완벽한 질서 속에 조화로운 이상세계를 그린 숭고한 신라의 얼굴과는 거리 멀다. 모두 시대정신과 현지 지역사회의 요구에 의해 탄생한 파격적이고, 토속적이며, 익살스러운 얼굴이다. 솜씨가 부족하거나 정성이 부족해 그리 만든 것은 아니다.

<맹호도>에 나오는 호랑이는 보기만 해도 무서워서 삿된 귀신은 얼씬도 못할 것 같다. 이와 달리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힘없는 까치에게 놀림을 받는 우스꽝스런 '바보호랑이'다. 약한 자에게만 약하지 강한 자에게 더 강한 호랑이다. 생긴 건 어눌하게 생겼어도 못된 잡귀를 몰아내는 천부적 재능을 가졌다. 반전의 미가 있다.

나한(羅漢)의 무릎에 호랑이가 자주 등장한다. 나한은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성자이며 수행을 많이 해서 신통력을 가진 분이다. 상고머리에 가늘게 찢어 진 눈을 한 나한은 호랑이를 주시도 하지 않은 채 어르고 다독인다. 나한 앞에 호랑이는 더 이상 맹수가 아니라 나한에게 굴복해 귀여움을 받으려고 애교를 부리는 하룻강아지 같다.

나한 앞에서 귀염을 받으려고 알랑거리는 호랑이가 우스꽝스럽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나한(羅漢)(조선시대) 나한 앞에서 귀염을 받으려고 알랑거리는 호랑이가 우스꽝스럽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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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토우는 섬세하지도 기교를 부리지도 않았다. 과장하기도 하고 생략할 것은 과감히 생략하면서도 말하려고 하는 것은 모두 말하고 있다. 행위예술을 하듯 온몸으로 표현해 처절한 인간 본연의 모습이 남아있다. 익살 이상의 숭고한 아름다움이 있다. 미적 범주에 속하는 '익살'과 '숭고'가 대립하지 않고 융합할 수 있다는 점을 토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처절한 인간 본연의 모습에 익살 이상의 숭고한 아름다움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신라토우 처절한 인간 본연의 모습에 익살 이상의 숭고한 아름다움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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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의 아름다움은 항아리 그림에서도 발견된다. 18세기에 용을 그린 무명도공은 오늘날 재현해 놓은 공룡을 보기라도 한 듯, 공룡처럼 희화적(戱畵的)으로 그렸다. 익살의 운치가 항아리곡선을 타고 흐른다.

맹수 사자도 삽살개로 만들어버리는 미학

희화적으로 그린 용 그림에는 대중들의 미의식이 짙게 반영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청화백자 구름용무늬항아리(18세기) 희화적으로 그린 용 그림에는 대중들의 미의식이 짙게 반영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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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무엇에 홀린 듯 입을 다물지 못해 어리광스럽고 살집이 좋아 둔해 보인다. 5개의 발톱을 가진 용으로 보아 궁궐에서 사용했으리라 짐작되는 이 항아리에는 대중들의 미의식이 짙게 반영돼 있다. 미적 본바탕은 궁궐이나 민간이나 똑같다.

불교에서 사자는 불법을 수호하는 위엄을 가진 존재로 본다. 위엄을 가진 존재라고 해서 사자를 사납게만 그렸을까? 익살맞은 사자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양양신흥사 대웅전 기단면석에 그려진 사자는 순한 새끼 양처럼 보이기도 하고 귀여운 강아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합천 영암사지 금강터 기단면석에 새겨진 사자는 갈기는 영락없는 사자인데 돼지코에 축 늘어진 귀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폼이 영락없는 삽살개다. 

사자는 순한 새끼 양처럼 보이기도 하고 귀여운 강아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 양양 신흥사 대웅전면석 사자상 사자는 순한 새끼 양처럼 보이기도 하고 귀여운 강아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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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보광사 대웅전 판벽에 그려진 사자는 입가에 웃음을 함빡 머금은 채 즐거워하는 모습이 천진무구한 어린애 같다. 홍천 괘석리사사자석탑의 네 마리 사자는 방울을 달고 있는 개와 같다. 사자의 기개는 사라지고 표정 또한 우스꽝스러워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난다.

이쯤 되면 익살이 어엿한 미적 범주의 하나로 봐도 괜찮을 성싶다. 물론 익살이 한국의 미를 통관하는 미적 요소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의 미를 해석하는 한 조각이 될 수는 있다. 익살은 숭고·비장·우아와 같은 미적 범주와 달라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그것을 용인할 마음의 자세와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작가미상의 조선말 작품인 <짝짓기>라는 그림이 있다. 흘레붙는 개를 지그시 바라보는 여인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왼쪽 무릎을 세운 채 나무에 걸터앉은 여인과 붉은 댕기로 머리를 묶은 여인 모두 수줍음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표정이다. 소복 입은 여인의 내숭스러운 자세와 붉은 저고리를 입은 여인의 홍조 띤 얼굴에는 익살에 가려진 조선 여인의 서글픔이 서려있다. 신윤복의 <이부탐춘>과 흡사한 후대의 작품인데 이 당시 이런 그림을 포용한 사회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해학의 재치,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흘레붙는 개를 지그시 바라보는 여인들의 모습에 익살에 가려진 조선 여인의 서글픔이 서려있다 (국립중앙박물관소장)
▲ 작가미상, 무산쾌우첩 중 <짝짓기>(19세기말) 흘레붙는 개를 지그시 바라보는 여인들의 모습에 익살에 가려진 조선 여인의 서글픔이 서려있다 (국립중앙박물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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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은 법궁으로 엄격한 질서 속에 유교적 이상주의를 구현하려 했다. 그러나 숨 막힐 정도의 엄격한 질서만을 강조하지 않았다. 익살과 해학, 인간적인 체취가 곳곳에 배어있다.

경복궁 금천(禁川)인 영제교 사방에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천록(天鹿)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메롱'하면서 혓바닥을 반쯤 내보이며 귀엽게 금천을 쳐다보고 있는데 권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해학이 넘치고 기발하다. 위엄 있고 무섭게만 보여야 사악한 기운을 내몬다는 상식을 뒤집는 역설이 있다.

풀 한 포기 없고 동행각의 열주로 사방이 둘러싸인 근정전 영역은 숨이 막힐 정도로 엄숙하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그리 답답하지만 않았다. 근정전 월대에 해학적인 여러 돌짐승들로 장식함으로써 이런 엄숙한 분위기를 누그러트렸다.

그중에도 특히 근정전 월대 남쪽 동서의 기단에 부부로 보이는 돌짐승은 압권이다. 부부싸움이라도 한 걸까? 서로 마주보지는 않고 제가 보아야 할 곳을 쳐다보고 있다. 분위기 파악을 했는지 새끼는 재롱을 떨며 부모 목에 짝 달라붙어 아양을 떨고 있다. 한 가정이 그려지는 해학적 모습이다. 이런 해학적 재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시대와 왕조를 뛰어넘어 경복궁 석공에게로 전해진 우리의 아름다움이다. 

부모돌짐승과 부모 몸에 짝 달라붙어 있는 새끼가 해학적으로 그려져 있다
▲ 근정전월대기단모퉁이의 돌짐승가족 부모돌짐승과 부모 몸에 짝 달라붙어 있는 새끼가 해학적으로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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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미적 심성과 미적 가치 지향성, 미적 취향과 관계 깊다. 우리의 인생과 전혀 유리된 것이 아니고 인간본연의 깊숙한 곳에 본연적으로 자리 잡아, 무아의 경지에서 마음 가는대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미적심성에 바탕을 두고 만든, 아니 만들어진 익살의 걸작이 있다. 백자철화끈무늬병이다. 뾰쪽하고 얄밉지도 천박하지도 않은 순박·순후·온화·완만·질박한 우리의 미적 심성이 그대로 표현된 작품이다. 기교와는 거리 먼 무심의 경지에서, 천연덕스럽게 만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익살미 중에 최고가 아닌가 생각된다 (국립중앙박물관소장)
▲ 백자철화끈무늬병(16세기) 개인적으로 익살미 중에 최고가 아닌가 생각된다 (국립중앙박물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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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에는 깔끔한 소주보다는 털털한 막걸리가 더 어울릴지 모른다. 노란 양은 주전자 꼭지를 신문지로 틀어막고 막걸리를 받아온 어릴 적 우리네의 추억처럼 이 도공의 추억이 담긴 병일지 모른다.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몰라도 익살의 아름다움이 담긴 최고의 작품으로 나는 생각한다. 어떻게 끈을 병에 그릴 생각을 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pressianplu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익살, #한국미, #익살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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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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