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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6일 부평아트센터 달누리 극장에서 열린 구보댄스컴퍼니의 '춤으로 소통하다' 공연 피날레 모습. 단원들은 1부 '틱-그들의 얘기' 2부 'Do not disturb' 의 무대를 펼쳤다.
 6월 5일~6일 부평아트센터 달누리 극장에서 열린 구보댄스컴퍼니의 '춤으로 소통하다' 공연 피날레 모습. 단원들은 1부 '틱-그들의 얘기' 2부 'Do not disturb' 의 무대를 펼쳤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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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tic disorder)장애를 갖고 있는 한 청년이 무대에 올라 고요 속에 소통의 몸부림을 친다.

"마… 마… 마!"

하지만 관객은 불현 듯 내뱉는 이 청년의 외마디를 도대체 알아챌 수가 없다. 마(魔)는 한자로 악마나 나쁜 예감을 뜻한다. 이로 인해 청년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위화감을 조성하게 해 본의 아니게 화(Anger)를 자초한다. 청년의 소통이 곧바로 위협의 상징이 되기 때문이다.

청년은 억지로 입을 틀어막으며 마를 쫓아보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이내 상대방도 똑같이 청년을 흉내 내며 조롱한다.

"마… 마… 마… (하지) 마(魔)! (병신아)."

청년의 이런 무의식적인 틱 장애로 인해 그는 사회 어디에도 낄 수가 없다. 어떤 부탁을 하려해도 무시당하기 일쑤다. 숨은 재주를 맘껏 펼치고 싶어도 조직이 거부하고 사회가 반대한다. 처절한 혼자만의 고독으로 점철되는 삶이다.

하지만 그를 믿어주는 한 사람, 어머니가 곁에 있기에 그는 두렵지 않다. 청년은 중간 중간 무대에서 화려한 춤사위로 억눌려온 압제와 구속을 풀어낸다. 삶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존재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는 듯 맘껏 날개를 펼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외톨이일 수밖에 없다. 함께 삶을 나누어갖기엔 사회의 울타리가, 불통의 벽이 너무 두텁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은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비록 청년을 둘러싼 모든 세상이 온통 어둠의 커튼으로 드리워져 있다 해도, 자신은 오늘도 희망의 촛불을 환하게 비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불쑥 찾아왔던 틱 장애는 어쩌면 사회가 청년에게 떠민 고립의 굴레일지도 모른다. 비정상적인 대중 권력이 지극히 정상적인 청년에게 박탈한 자유와 평등의 탄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년이 갖고 있는 틱 장애가 병든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흔한 병일 수 있다. 다만 그 모습이 내재돼 있기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현대 물질사회에 만연돼 있는 온갖 병폐에 찌들려온 무기력한 인간들. 그리고 그 처량한 인간 군상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심약한 트라우마의 아우라가 바로 청년에게 돌출된 틱 장애가 아닐까 싶다.

일상의 이야기를 춤이라는 예술로 표현해온 구보댄스컴퍼니는 이번 무대에서 단절과 소통의 단면을 보여줬다. 장 대표는 "1부 공연은 우리 사회의 소통과 불소통을, 그리고 2부는 어떤 상황에서 얻은 깨달음을 스포츠라는 대중적인 매개를 사용해 구현했다"고 전했다.
▲ 공연 포스터 일상의 이야기를 춤이라는 예술로 표현해온 구보댄스컴퍼니는 이번 무대에서 단절과 소통의 단면을 보여줬다. 장 대표는 "1부 공연은 우리 사회의 소통과 불소통을, 그리고 2부는 어떤 상황에서 얻은 깨달음을 스포츠라는 대중적인 매개를 사용해 구현했다"고 전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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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고독한 청년을 따뜻한 가슴으로 마주하려는 마(魔)의 42.195km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마(魔)를 떨쳐내고, 장애를 나눠 갖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한 힐링(Healing)의 올림픽 무대가 청년의 시선을 이끈다. 올림픽은 연대와 화합을 상징하는 축제의 장이다. 결코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힘을 모아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가는 무대다. 때론 넘어지고 구르고 좌절하면서도 우승이라는 하나의 가치를 위해 처절한 경쟁이 펼쳐지는 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축제의 장이 지닌 본래의 가치만큼, 경쟁의 과정은 그리 녹녹치가 않다. 첫 경기인 수영경기를 준비하는 무대 위 선수들의 모습은 불쾌를 넘어 화마가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바로 한 선수의 부정출발 때문이다. 마치 함께하는 선수들을 조롱하기라도 하듯 혼자만의 게임에 푹 빠져버린 (미련)한 선수는, 정작 다른 선수들을 방해하면서 (자신의 게임에)끼어들지 말라며 깔깔댄다.

"DO NOT DISTURB!"

가히 이기(利己)의 역설이다.

무용수들의 춤사위와 군무로 이어지는 유도, 레슬링, 농구 등 각종 스포츠 경기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절제된 조명과 정교한 춤사위, 그리고 실제 운동경기를 배경화면으로 하는 스펙터클한 무대의 조합은 그야말로 천지개벽 그 자체다. 세계 역사를 창조했던 스포츠 경기의 탄생배경이 그러하듯, 세상이 처음 태어났을 때의 신비로움과 역동성이 몸짓을 통해 그대로 투영된다. 무용으로 표현되는 본질적 아름다움의 극치다.

드디어 경기의 클라이맥스. 이전까지는 전초전이었다면 지금부터는 매인 매치(main match)다. 마치 앞선 틱(tic) 청년의 이야기와도 같은 42.195km의 혹독한 레이스가 펼쳐진다. 선수도 제각각이다. 키가 작거나 큰 사람, 가녀린 여자와 우람한 남자, 우등생과 열등생 등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출발점은 동일하다(삶도 처음에는 누구에게나 동일했다).

이내 선수들은 엎치락뒤치락 순위 경쟁을 이어간다. 중간 지점까지는 잘 난 사람도 없고 방해하는 사람도 없다. 오직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뛰어 갈 뿐이다. 하지만 레이스의 정점에 다다르자 이내 한 두 선수들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그대로 주저앉는다. 쓰러져 누워버린다. 경쟁의 낙오자다. 오직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한 선수만이 16비트의 리듬에 맞춰 우승의 심장박동을 땅에 내디딘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쓰러진 사람들이 한 둘 일어나더니 앞선 선수를 향해 비웃는다. 이에 아랑곳 않고 달리던 앞선 선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향해 말없이 검은색 카드를 내보이며 맞수로 조롱한다.

"DO NOT DISTURB!"
"방해하지 마(魔)! 이 암적인 낙오자들아!"

무대가 잠시 소란스럽게 암전된 뒤, 선수들은 이내 다시 일어나 여럿이 함께 모여 16비트의 리듬을 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경쟁은 계속 이어지지만 결국 앞선 선수의 승리로 마라톤 풀코스는 끝이 난다. 우승자는 우승의 기쁨을 누리기라도 하듯 관객의 손을 잡고 승리의 세리머니를 건넨다. 그리고 관객의 손에 작은 메시지 카드를 쥐어준다. 그곳에서 깨달음의 소리인 할(잠든 영혼을 일깨우는 불교 용어)의 울림이 나온다.

"DO NOT DISTURB!"
"진리가 너희를 고통케 하리라!"

진리라고 일컫는 경구가 있다. "지금 가장 고통스러운 자가 가장 먼저 해탈하리라!" 세상은 모든 만물이 인과율(연기)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물질만능주의와 과학에 맹신한 인간의 이기가 결국 모든 것을 부정하고 망쳐놓았다. 그러니 만고의 진리라는 것은 결국 인간이 작위로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인간들의 업보로 말미암아 지구도 병들고, 이웃도 병들어가는 삭막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제 허상의 진리를 버리고 본질적 가치를 추구해야 할 시기다. 인간 본연의 존엄과 자존의식을 되찾고 진정한 해탈의 깨달음 속에 상생의 소통을 이어가야 한다. 진흙 더미 속에서 수려한 꽃을 피우는 연꽃의 미학처럼 고통 속에서 함께 깨닫는 인간 고유의 본성을 회복해야 할 때다.

모든 존재는 이것이 생(生)하면 저것이 생(生)하고, 이것이 멸(滅)하면 저것이 멸(滅)한다.(불교의 연기설 중에서)

덧붙이는 글 | 10년 넘게 인천에서 춤을 추고 있는 구보댄스컴퍼니는 2000년에 창단돼 해마다 정기공연과 기획ㆍ특별공연을 열고 있는 현대무용 전문예술단체다. 특히 다양한 레퍼토리 작품과 실험적인 창작 작품으로 평단과 시민들과 끊임없는 소통을 이어오고 있다.



태그:#구보댄스컴퍼니, #틱 장애, #부평아트센터, #무용,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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