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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시간의 후쿠오카. 바쁘게 출근 발길을 옮기는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저 직장인들은 대부분 하카타역(博多駅) 방향으로 걷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하카타 역에서 800m 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한 신사를 향해 걸었다.

순간,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호텔로 다시 돌아가서 우산을 가지고 나올까도 다시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외국여행에서의 많지 않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눈 앞의 편의점에서 작은 접이식 우산 하나를 샀다.

이른 아침부터 후쿠오카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 후쿠오카에서의 일정이 비 때문에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오후에는 비가 갤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로 했다. 아침은 왔지만 비도 오고 해서 주변이 밝지는 않다. 밤이 길어진 때문인지 아니면 비가 오기 때문인지 아직 어둠이 남아 있고 어둠의 꼬리가 길다.

일본 전역의 스미요시진자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이다.
▲ 일본제일 스미요시진자 일본 전역의 스미요시진자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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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요시진자(住吉神社)의 입구는 여러 곳에 있지만 호텔에서 가까운 신사의 남문을 통해 신사에 들어섰다. 스미요시진자는 일본 전역에 2000여개가 있는데 그 중 후쿠오카에 있는 스미요시진자는 일본 내에서 제일 오래된 스미요시진자라고 한다. 즉 일본 전국의 스미요시진자의 시조로 여겨지는 곳이다. 신사 입구에도 이 스미요시진자가 일본 '제일(第一)'의 스미요시진자라고 홍보하고 있다. 일본식 표현인 '제일'은 우리나라의 '광주제일고'와 같이 아직도 그 흔적이 우리 역사에 남아 있는 익숙한 표현이다. 첫 번째 역사의 장소를 끝없이 숭배하는 일본식 문화의 한 단면이다.

스미요시진자가 창건된 역사는 정확하지 않지만 스미요시 진자는 대략 18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곳이다. 스미요시진자는 후쿠오카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이면서 규슈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 중의 하나다. 현재 스미요시진자는 일본 3대 신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과거의 스미요시 신사는 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곶에 자리잡고 있었다.
▲ 하카타 옛지도 과거의 스미요시 신사는 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곶에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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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신사 안에 세워진 하카타 옛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후쿠오카의 옛 지명인 '하카타고도(博多古'図)'라고 설명된 옛 지도 안에서 현재 후쿠오카의 일부인 텐진(天神), 나카스(中洲)는 물론 하카타(博多) 대부분이 바다 안에 잠겨 있다.

지도를 보면 스미요시진자는 하카타 만을 향해 튀어나온 나카강 하구의 곶이었다. 현재 스미요시 진자 앞은 일반도로로 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바로 앞이 바닷가였던 것이다. 그래서 바닷가 앞에 있었던 신사, 스미요시진자는 항해의 신을 모시고 있다.

스미요시진자에서 모시는 신은 항해의 안전을 돕고 선박을 수호하는 신이다. 현재 스미요시진자의 신은 악운을 제거하고 행운을 부르는 신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그런데 이 스미요시진자가 항해의 신을 모시는 것은 한반도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로 향하는 해로의 전초기지에 위치했던 스미요시진자의 신들은 고대 일본을 개척한 백제 및 신라계 도래씨족들의 해양신이다. 일본의 고대 시대인 야마토 시대(大和時代)에 스미요시 신은 백제와의 해상 교통을 수호하는 신으로 모셔졌다.

이 신사에서 모시는 3명의 신인 미카미(三神)는 일본 역사 왜곡의 사서인 일본서기에 나타난다. 미카미는 일본의 진구(神功) 황후가 신라 원정을 떠날 때 배들을 인도했고, 그래서 항해의 신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진구 황후를 배향하는 곳이라서 신사 곳곳에서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국화 문양을 발견할 수 있다.

빗물이 젖어드는 연못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 신사 연못 빗물이 젖어드는 연못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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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 바로 앞의 연못에는 어른 팔뚝만 한 노란 잉어가 유유히 놀고 있다. 빗방울이 한 방울씩 듣고 있는 연못의 정경이 보는 이의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진 물을 보고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원래 어류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일본의 옛 건축물들은 이런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여 정원이나 사원, 신사의 입구에 항상 연못을 배치하여 놓았다.

어부와 상인의 수호신으로 일본에서 인기가 높다.
▲ 에비스상 어부와 상인의 수호신으로 일본에서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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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어부와 상인의 수호신이라고 불리는 에비스(惠比壽)신의 조각상이 왼손에 물고기, 오른손에는 낚싯대를 들고 있다. 생선을 잡고 있는 에비스 상의 표정이 엄숙한 일본의 신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익살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나는 귀엽게 웃고 있는 에비스 상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복을 빌었다. 에비스 신상의 어느 부분을 만지는가에 따라 기원하는 바가 달라지는데 얼굴을 만지면 집안의 안전을 바라는 것이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를 만지면 질병 퇴치를 원하는 것이고 에비스 상이 손에 잡고 있는 도미를 만지면 장사가 번성하기를 바라는 것이며 팔을 만지면 교통사고가 나지 않도록 기원하는 것이다.

에비스상 뒤에는 스미요시 진자 안의 또 다른 신사인 스미요시 밋까 에비스 진자(住吉三日惠比壽神社)가 있다. 에비스를 모신 이 신사에서는 어업 안전과 장사의 번성, 그리고 행운을 빈다. 장사가 잘 되기를 비는 신사답게 신사의 본전 내부는 아주 밝고 화려하다. 신사 내부의 노란 백열등 불빛이 추적추적 내리는 비 속에서 포근해 보인다.

이곳에서 스모선수가 갓난아기의 건강을 기원한다.
▲ 스모행사장 이곳에서 스모선수가 갓난아기의 건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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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들고 천천히 신사 안을 걸었다. 신사 안에 뜬금없이 스모경기장이 있었다. 이 스모 경기장은 이곳 후쿠오카 스모연맹에 속한 선수들이 연습을 하는 곳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스모경기장을 받치고 있는 네 기둥의 색이 모두 다르다. 기둥의 다양한 색상은 이 스모 경기장이 후쿠오카의 전통 의식에도 이용되기 때문이다. 힘을 상징하는 역사들인 스모 선수들이 갓난아이를 안고 이 모래판으로 입장하면서 갓난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기원하는 의식이 치러진다.

신사 앞에서 마귀를 쫓고 있는 이 짐승은 한반도에서 유래했다.
▲ 코마이누 신사 앞에서 마귀를 쫓고 있는 이 짐승은 한반도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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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회랑을 지나 신사(神社)의 본전이 자리한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신사 앞에는 사자의 갈기를 가진 듯한 짐승의 상이 마주보고 서 있다. 신사 앞에서 마귀를 쫓고 있는 이 짐승은 ' 코마이누(狛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코마'는 한반도를 뜻하는 한반도 계의 고대어이고 '이누'는 개를 뜻하니 결국 고려견(高麗犬)이라는 뜻이다. '코마이누'의 기원은 당나라의 사자상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고대 일본이 문화 선진국이었던 한반도에서 선진문화를 수입하면서 한반도의 언어가 이곳 신사 앞에도 남게 되었다.

신사의 본전에 이르는 신사 마당 중앙의 돌길이 비에 흥건히 젖어 있다.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스미요시진자의 본전은 처마와 기둥의 진한 주황색이 강렬한 원색의 화사함을 뽐내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주황색으로 치장된 기둥은 빗 속에서 묘하게 돋보이고 있다. 본전의 지붕은 우리나라와 같은 기와가 아니라 노송나무 껍질을 모아서 평평하게 얹은 것이다. 주황색 기둥과 짙은 회갈색 지붕이 마치 비 오는 하늘을 떠 받치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도 보수공사를 하고 화려하게 도색을 하여서인지 오랜 신사의 고풍스런 느낌은 느껴지지 않는다.

일본 고대 전통 신사 양식을 따르고 있는 일본의 문화재이다.
▲ 신사 본전 일본 고대 전통 신사 양식을 따르고 있는 일본의 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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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신사는 당시 번주(藩主)였던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에 의해 1623년에 재건된 건물이다. 스미요시진자의 본전은 17세기에 재건되었지만 스미요시 구조라는 뜻의 '스미요시츠쿠리(住吉作り)'라고 하는 일본 고대 전통신사의 스미요시 건축구조를 따르고 있다. 불교 건축이 전파되기 전의 이 양식은 지붕과 처마가 불교 사찰의 곡선과 달리 긴 직선으로만 이어지고 있다. 일본 고대 건축이 백제의 건축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고대 양식의 신사 건물이 우리나라의 기와 건축물과 많이 닮아 있다.

이 신사에는 아침부터 복을 기원하는 일본인들이 많다.
▲ 스미요시 신사 참배 이 신사에는 아침부터 복을 기원하는 일본인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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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본전을 재건한 구로다 나가마사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 제3군을 이끌고 황해도까지 침략했고 정유재란 때도 조선을 재침공했다가 돌아간 일본군의 원흉이다. 그는 조선에서 수많은 포로들을 잡아서 이곳 규슈까지 데려갔고 조선을 약탈했던 인물이다. 비 오는 아침부터 신사에서 경건한 자세로 참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조선의 원수가 자신의 복을 기원하고 조선 침공을 위해 항해의 안전을 빌었던 신사에서 한국인이 머리를 조아려서는 안 될 일이다.

스미요시진자 북쪽에는 으스스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비가 내리는 그늘 속에서 왠지 음산한 기가 느껴진다. 아마도 이 신령스런 기운 때문에 이곳에 신사를 만들었을 것이다. 엄청난 기를 뿜고 있는 것은 어른 여러 명이 손을 뻗어 이어도 둘러 쌀 수 없을 정도로 큰 바위의 무리이다. 큰 나무줄기 하나가 바위의 빈 틈을 비집고 올라서 있다.

집을 짓듯이 큰 바위를 쌓고 그 안에 만든 동굴 같은 공간 안에는 작은 인형 같은 여우상들을 모아 두었다. 그리고 바위의 동굴 앞에 드리워진 금줄은 사악한 기운을 막고 있다. 여우상들 안쪽 어둠 속에는 마치 알 수 없는 신령함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여우상을 보고 있으니 마치 동굴 속에서 살아 있는 진짜 여우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곡식의 번성을 기원하는 여우상이다.
▲ 이나리진자 여우 곡식의 번성을 기원하는 여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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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상이 자리한 이곳은 곡식, 농업, 상업의 신을 모시고 있는 이나리진자(稻荷神社, いなりじんじゃ)다. 이나리는 쌀에 대한 일본 전통 신도의 신이며, 이나리(稲荷)를 모시는 이나리 진자는 일본 전국에 수천 개에 이른다. 스미요시진자 안에는 스미요시 진자 뿐만 아니라 스미요시 밋까 에비스 진자, 이나리진자까지 있어서 마치 일본 신도(神道)의 신사를 모두 모아 놓은 종합 세트같다.

이나리진자 앞에는 여우상이 마치 경호원처럼 서 있다. 이 여우상은 개와 달리 탐스러울 정도로 복슬복슬한 꼬리를 가지고 있다. 이나리진자에 많은 여우 조각상이 모여 있는 것은 여우가 곡식의 신이자 이나리의 사자(使者)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잘 익은 벼의 색깔과 같은 여우의 몸 색깔로 인해 여우는 곡식의 번성을 뜻한다고 한다. 이곳 이나리진자 앞에 서 있는 여우는 마치 일본 만화영화를 보는 듯이 선이 단순하고 익살스럽게 생겼다.

수백년 자란 고목들의 크기가 부럽다.
▲ 신사의 거목 수백년 자란 고목들의 크기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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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앞에는 계속 비가 흩뿌리고 있다. 신사의 사무소 앞을 4백년 동안 지켜온 녹나무, 오쿠스(大楠)는 비를 잔뜩 머금고 있다. 신사 안에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자랑스럽게 '보호수'라는 말뚝을 가지고 있는 오래된 나무들이 많다. 노쇠한 나무들의 너무 긴 가지는 작은 기둥을 세워 받치고 있고, 뭉툭한 나무 위에서는 이끼들이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다. 수백 년 동안 한 자리에서 친구같이 신사를 지켜온 고목들의 크기가 부럽기만 하다. 수백년 된 나무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스미요시진자는 충분히 산책할 만한 곳이다.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흩뿌리고 있었다. 비가 내려서 나무는 더 싱그럽고 신사는 한적하기만 하다. 나는 후쿠오카 도심 한 가운데에서 비 내리는 운치를 즐겼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이 여행기는 2012년 10.15일~10.18일의 일본 여행 기록입니다.



태그:#일본여행, #규슈, #후쿠오카, #스미요시진자, #이나리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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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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