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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히트곡들은 고독이 배어 있다. 실제로 만난 그녀는 유쾌 발랄했다. 이런 '거리'는 그의 가수 인생과 무관하지 않다.

본의 아니게 '나도 모르게'를 부르기까지

가수 유가화를 그녀의 자택(안성 대림동산)에서 만났다. 세상에 알려진 그녀의 노래와는 달리 무척이나 그녀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아니 수다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 유가화 가수 유가화를 그녀의 자택(안성 대림동산)에서 만났다. 세상에 알려진 그녀의 노래와는 달리 무척이나 그녀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아니 수다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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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겐 노래란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말 배울 무렵부터 노래했다. 집안이 온통 노래하는 분위기였다. 다른 집도 으레 그렇게 하고 살겠거니 했다.

이런 그녀가 대중 앞에서 노래한 순간은 의외였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였다. 교장이 예쁘장한 한 여아를 덥석 안아서 단상에 올렸다. 그건 그냥 광화문 네거리에서 갑자기 "여기 좀 봐라"고 외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노래를 시켰다. 웃긴 건 그 여아는 노래를 잘해냈다. 히트였다. 요즘 말로 대박이었다. 운명이라고나 할까.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었다.

대중 앞에서 노래할 그녀의 팔자가 시작된 걸까. 그 후로 학교에서 노래하는 '꼬맹이' 숙녀로 인기를 끌었다. 마산KBS 어린이 합창단에 스카우트됐다. 라디오 음악방송에도 고정 출연을 했다. 경남 일대에선 전설로 자리 잡았다. 고교 시절에는 통기타를 만났다. 그건 또 다른 인생전환점이었다. 성악 쪽으로 빠질 줄 알았던 주위의 기대를 저버리고, 소위 '딴따라'의 길을 가려 했으니까.

그렇게 모든 일은 승승장구처럼 보였다. 부친의 별세 전까지는 말이다. 부친의 별세 후 꺼져가는 촛불처럼 그녀는 메말라 갔다. 집 안에선 비상이 걸렸다. 궁리 끝에 그녀를 가요 오디션에 참가하게 했다. 앉아 있기도 힘든 그녀를 억지로 데려갔다. 신기하게도 노래할 땐 노래가 나왔다. 오디션에서 합격했다. 그렇다. 그녀의 증세는 다름 아닌 '노래 앓이'였던 것이다.  

그 후 노래로 날개를 달았다. 부산을 주름 잡았다. 본의 아니게 서울로 캐스팅되었다. 이때 매니저로부터 본의 아니게 얻은 이름 유가화(본명 박미영). 그건 순전히 매니저가 유씨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화'는 소설 <연개소문>에 나오는 여자 이름이다. 아무런 연계성도 예술성도 없는 이름, 그 이름으로 세상에 고개를 내밀었다.

노래, 노래 그리고 반항

가수 유가화의 데뷔 앨범이다. 데뷔곡 '나도 모르게'는 1980년 인기가요 순위 1위, KBS 신인상을 수상하며 인기몰이를 했다.
▲ 데뷔 앨범 가수 유가화의 데뷔 앨범이다. 데뷔곡 '나도 모르게'는 1980년 인기가요 순위 1위, KBS 신인상을 수상하며 인기몰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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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도 TBC 신인가요제에 데뷔했다. 데뷔곡 '나도 모르게'였다. TBC 시대가 끝나고 KBS 시대가 도래할 무렵이었다. 방송사에 무장군인이 상주하던 격동의 세월에 그녀는 데뷔했다. 그 이듬해 각종 '인기가요 순위 1위, KBS가요 신인상'이란 쾌거를 일궈냈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녀는 '본의 아니게' 여기까지 왔고, 데뷔곡조차 '나도 모르게'라니.

한때 잘 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점차 지쳐갔다. 입에서 신물이 나도록 히트곡만 불러야 했다. 매니저가 지시하는 대로 춤추고, 노래해야 했다. 겉에 비친 화려함이 그녀에겐 보상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노래하는 로봇인가. 자신을 지키고 살기가 어려운 시절이라 했다.

그녀는 외쳤다. 망가지고 말테야. 한국을 떠나 미국을 가려는 것도 좌절되었다. 그 무렵 또 다른 운명인 그룹사운드 '조커스'를 만났다. 거기서 그녀는 미친 듯이 노래했다. 하루의 일과가 '노래 연습, 그리고 노래'가 전부였다. 이때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접했다. 그녀의 노래 내공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때 송골매의 구창모, 김현식, 그룹사운드 불새 등과 같은 무대에 섰다. 그곳 이태원은 음악 정글이었다. 목이 터져라 노래 불렀더니 목이 터졌는지 물혹이 생겼다. 낮엔 주사를 맞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이 앨범은 기존의 앨범과 확연히 다르다. 세월을 돌고 돌아 만든 성숙한 노래라고나 할까. 데뷔 25년 차 가수와 남편이자 작곡가 최율의 사상이 녹아 만든 앨범이다.
▲ 5집 앨범 이 앨범은 기존의 앨범과 확연히 다르다. 세월을 돌고 돌아 만든 성숙한 노래라고나 할까. 데뷔 25년 차 가수와 남편이자 작곡가 최율의 사상이 녹아 만든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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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의 반란 그리고 부부의 열매

지난 16일, 자택 안성 대림동산에서 만난 그녀. "이젠 할 말은 하고 살겠다"며 포문을 열었다. 그녀는 "난, K-POP이 싫다. 트로트도 싫다"고 말했다. 아니 내년이면 예순이 될 가수가 "난 공산당이 싫어요"도 아니고 웬 말. 그녀는 "나이 들면 성인가요, 젊으면 K-POP"이란 고정관념이 싫다고 했다. 그런 획일성이 싫었던 거다.

그렇다. 요즘 사회가 다양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다양성을 상실한 시대다. 사람들은 요즘 가요계를 '싸이 시대'라 칭한다. 한때 '김연아 시대(피겨 스케이팅 선수)', 한때 '박지성 시대(축구 선수)'가 있었던 것처럼. 그런 걸 대세라고 하면서 다양성은 진작에 엿 바꿔 먹었다.

이번에 낸 5집 앨범(생각 PART1, 2013.4.10)은 그런 의미에서 '반란'이라고 했다. 젊었을 땐, 자신에게 지워진 가요계의 관습에 반항했다. 이젠 가요계의 색깔에 대한 반란이라고 했다. 그것도 조용한 반란. 이번에 낸 5집 앨범은 '깃발을 꽂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성을 상실한 가요계에 40~50대가 공감하는 음악을 내놓은 게다. 

지난 세월을 돌고 돌아 나온 노래다. 노래로 인해 아플 만큼 아프고 나온 노래다. 이런 그녀를 보면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그렇게 소쩍새는 울었나 보다"를 떠올렸다. 누님 같은 꽃이 아니라 누님 같은 음반이 세상에 나왔다. 그녀는 이제야 대중의 피에로가 아닌 가수 유가화로 세상에 선다고 했다.

부부가 그들의 자택 앞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이들은 평소 이런 식으로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가진다고 했다. 대화의 내용이 우주, 노래 등이 주라는 게 특별하다면 특별하다 할까.
▲ 남편과 함께 부부가 그들의 자택 앞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이들은 평소 이런 식으로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가진다고 했다. 대화의 내용이 우주, 노래 등이 주라는 게 특별하다면 특별하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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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우리의 대화를 바로 옆에서 진지하게 듣는 이가 있었다. 바로 작곡가 최율이다. 그녀와는 23년 동행한 부부 사이다. 이번 앨범의 편곡, 작곡, 기획 등을 도맡았다. 아하, 이제야 알겠다. 한 송이 국화꽃은 혼자서 피운 게 아니었다는 걸. "노래나 실컷 부르다 죽자"는 그녀와 "노래나 실컷 만들어보자"던 그의 열매였다는 걸. 

이 글을 쓰는 지금, 내 컴퓨터 CD에선 그녀의 노래 '물(5집 수록)'이 흐르고 있다.

"물 굽이 돌아 돌아 이 세상을 이루나니 산 그윽한 골에 물 또한 깊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16일, 안성 대림동산 최율(작곡가), 유가화(가수)부부의 자택에서 이루어졌다.



태그:#유가화, #가수 유가화, #최율, #작곡가 최율, #생각 PAR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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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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