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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츠-브란트 거리와 판코프파크

베를린(Willhelmsruh)역을 지나 오솔길을 걷다가 산업단지를 보게 되었다. 앞에는 독일식 붉은 빛의 산업 건물이 보였는데, 그 너머를 보니 독일 전기회사인 알스톰(ALSTOM)이라는 로고가 보였다. 산업단지 옆에 있는 오솔길을 지나면 오랜만에 차가 다니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장벽길이 연결된다.

이 아스팔트길의 이름은 하인츠-브란트 거리(Heinz-Brandt-Straße)인데, 낯선 이름이긴 하지만, 거리표지 위에 짧게 이 인물이 소개되어 있었다.

위에 하인츠 브란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다. 이 길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특정인물의 이름을 붙인 길이 있는데, 역시 해당인물에 대하여 간단하게 말해준다.
▲ 하인츠-브란트 거리 위에 하인츠 브란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다. 이 길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특정인물의 이름을 붙인 길이 있는데, 역시 해당인물에 대하여 간단하게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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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가 및 노동조합원, 1953년 6월 17일 항쟁에 참여한 동료, 1909년 8월 16일 출생, 1986년 1월 8일 사망."

짧은 글이지만, 1953년 6월 17일은 독일 현대사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사건이다. 바로 동독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정부의 스탈린식 소비에트 정책에 반발하여 일으킨 노동자 저항운동이 이날 일어났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배웠듯이 당시 스탈린식 소비에트 정책은 중공업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통한 급격한 부흥을 바탕으로 하였는데, 이는 오히려 생필품의 부족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일어난 저항운동은 소련의 탱크와 인민경찰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게 되고, 후에 노동자들의 서베를린의 탈출을 막기 위하여 베를린 장벽 건축으로 이어지게 된다.

사실 이 도로는 다른 유명한 거리에 비해 상당히 초라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거리를 따라가면, 멀리서 보였던 ALSTOM사의 입구로 연결되어 있다. 이 지역은 ALSTOM사 뿐만 아니라 ABB와 같은 유명기업들도 입주해 있었다. 산업단지를 걸어가다가 발견한 표지가 판코프 파크(Pankow Park)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고, 이곳이 베를린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산업단지임을 추측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판코프 파크는 20세기 초반에 조성되었다. 하지만 장벽 붕괴 이후 다시 재정비되어 현재 100여개의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반 산업뿐만 아니라, 이벤트 회사 기업인 블랙 박스 뮤직(Black Box Music)도 입주해 있는데, 우리에게 유명한 독일 락 그룹인 람슈타인(Rammstein)이 이 회사의 대표적인 고객이다.) 필자가 지금 작성하는 시점에서 올해는 6월 노동자 항쟁의 60주년이 된다. 소비에트 경제로 짓눌렸던 노동자의 아픔을 상징하는 이 산업단지의 거리가 지금은 베를린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터전이 되었다는 점에서 장벽붕괴 이후 상당히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판코프 산업단지. 현재 100개 기업이 입주하고 있으며, ABB, Alstom 및 이벤트 업체인 Black Box Music등이 있다.
▲ 판코프파크 우리식으로 말하면 판코프 산업단지. 현재 100개 기업이 입주하고 있으며, ABB, Alstom 및 이벤트 업체인 Black Box Music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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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철도를 따라

산업지대를 지나면, 오솔길을 따라 작은 시내를 건너게 되는데, 시내를 건너 오른편에는 산업지대에서 시작된 단선 철로가 놓여 있다. 또한 왼편에는 20층의 고층 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이 거리를 다니며 묘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단선철로가 언제 놓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만약 장벽시대에도 이 철도가 있었다면, 서쪽의 아파트 주민들이 장벽너머로 지나가는 산업열차를 지나가는 광경을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누구나 다닐 수 있는 산책로로 변했고, 필자인 나도 오솔길과 철로를 번갈아 걸으면서 길을 재촉했다.

길을 가다보면 또 다른 4차선 도로를 접하게 되는데, 4차선 도로의 서쪽과 동쪽의 집들의 형태가 매우 달랐다. 서쪽의 경우에는 60년대 이후 새롭게 지어진 아파트들이 즐비했으며, 동쪽의 경우에는 3층 이하의 아기자기한 주택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또한 이 4차선 도로가 버스와 전차의 종점인데, 여기서 M21번 버스를 타면 서쪽으로 향하고, 동쪽으로 좀 더 걸어가 M1전차를 타면, 동쪽 시내로 향하게 된다.

중간에 있는 작은 아스팔트길이 예전 장벽이 놓인 자리이다. 왼편에는 아파트단지가 오른편에는 산업철로가 놓여 있다.
▲ 아파트단지와 철로 중간에 있는 작은 아스팔트길이 예전 장벽이 놓인 자리이다. 왼편에는 아파트단지가 오른편에는 산업철로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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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앞은 바로 장벽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 철로 앞의 베를린 장벽길 표지 철로 앞은 바로 장벽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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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들판길 그리고 바님 자연공원

4차선 도로를 지나 수풀길을 걸어가다 보면, 한 작은 마을이 나온다. 그리고 철로는 왼쪽 편으로 여전히 장벽길을 따라 가고 있다. 이 작은 마을을 지나면, 계속 걸어왔던 오솔길과는 다른 탁 트인 들판길이 나오게 되는데, 독일의 전형적인 시골 들판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3백만 대도시 베를린에도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더욱 놀라운 것은 장벽시대 당시 초소로 가득했을만한 지역이 지금은 이렇게 조용한 시골길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가슴이 트여서 기분이 매우 좋았고, 마침 옆에 벤치가 있어서 초콜릿과 음료수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했다. 내가 쉬었던 곳에는 움집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선사시대 움집과는 다른 구조였으며, 조형물로 구성한 것 같았다.

기존 걸어왔던 빽빽한 오솔길과는 다른 느낌이다.
▲ 탁 트인 들판길 기존 걸어왔던 빽빽한 오솔길과는 다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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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게 핀 노란 꽃들 저 너머로 풍력발전소가 보인다.
▲ 흐드러지게 핀 꽃들 흐드러지게 핀 노란 꽃들 저 너머로 풍력발전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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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벤치에서 쉬는 것도 여정에서 중요하다. 이 장벽길도 순례자들을 위해 일정거리에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 휴식공간 가끔 벤치에서 쉬는 것도 여정에서 중요하다. 이 장벽길도 순례자들을 위해 일정거리에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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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서 일어나서 계속 길을 재촉했는데, 왼쪽에 있던 철로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대신하여 자연보호구역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아니나 다를까 좀 더 걸어가다 보니 바님 자연공원(Barnim Naturpark)라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이 공원은 브란덴부르크 주의 일부 시군들과 베를린을 아우르는 상당한 규모의 자연공원인데, 여기에는 여러 종류의 새들과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사실 필자는 조류에 대해 거의 문외한에 가깝지만, 이 공원의 표지판이 공원에 서식하고 있는 조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상당규모의 조류가 서식할 수 있는 이유는 오른쪽에 있는 호수들과 늪지대가 있기 때문이고, 이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 정부에서 상당히 노력했다는 흔적이 보였다. 조류학자나 생태학자, 도시설계가 그리고 환경단체가 베를린을 일주일간 체류할 기회가 있다면 베를린 주민들에게 생태친화적 공간을 제공하는 이 자연공원을 살피고 오라고 추천하고 싶다.

이 표지판에는 바님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조류 및 동물들을 기술하고 있다. 뱀도 여기서 서식하고 있다.
▲ 바님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조류 및 동물들 이 표지판에는 바님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조류 및 동물들을 기술하고 있다. 뱀도 여기서 서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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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경관이 잘 보존된 호수와 주위의 늪지대는 조류에게 좋은 서식처가 된다.
▲ 바님공원의 호수 자연경관이 잘 보존된 호수와 주위의 늪지대는 조류에게 좋은 서식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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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흐르는 테겔천(Das Tegeler Fließ)은 바로 브란덴부르크와 베를린의 주 경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장벽시대에는 테겔천이 서베를린과 동베를린 그리고 브란덴부르크 주의 경계이며, 하천자체가 장벽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옛 서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 주의 경계를 따라 장벽길이 조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새들만이 자유롭게 드나들던 자연경관에서 지금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자연경관으로 변한 모습을 보며, 언젠가 남북의 사람들이 통일 이후 같이 DMZ에서 야생동물과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걸으며,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의 희망을 바라볼 모습을 여기서 다시금 꿈꾸기 시작했다. 언제쯤 우리가 전쟁과 냉전의 상처에서 벗어나 우리 조상들이 즐겼던 삼천리반도 금수강산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테겔천. 현재는 브란덴부르크주와 베를린의 경계이다. 하지만 이 다리의 서쪽편에 흐르는 테겔천은 한 때 장벽이기도 했다.
▲ 테겔천 테겔천. 현재는 브란덴부르크주와 베를린의 경계이다. 하지만 이 다리의 서쪽편에 흐르는 테겔천은 한 때 장벽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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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독자들 중에 왜 앞으로의 글은 구 서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 주의 경계인가라고 질문하실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베를린에 대해 역사지리적인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독일지도를 구글이나 사회과 부도에서 보면 베를린은 브란덴부르크 주에 둘러싸여 있다. 브란덴부르크 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에 점령당해 후에 동독에 속하게 된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연합국들은 수도 베를린을 분할 점령하게 되는데, 후에 영국/프랑스/미국의 점령지는 서베를린이 되고, 소련의 점령지는 동베를린이 된다. 이를 다시 보면, 서베를린은 당시 동독에 둘러싸인 자유진영의 섬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서베를린으로 가는 길을 막기 위해, 동독정부가 서베를린을 장벽으로 둘러쌌었다고 할 수 있다.)


태그:#베를린장벽길, #베를린,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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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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