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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7년 8월 월북한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이 1일 북한에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일 보도했다. 1929년생인 오 씨는 1989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천도교의 24대 교령을 지냈으며 1995년에는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발기인, 1997년 7월에는 민주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상임위원으로 위촉됐으나 한 달 후 돌연 월북했다. 사진은 지난 1993년 10월 북경에서 회담을 갖고 기념촬영하는 오익제 전 교령과 유미영 북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2012.9.2
▲ 북한에서 사망한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 지난 1997년 8월 월북한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이 1일 북한에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일 보도했다. 1929년생인 오 씨는 1989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천도교의 24대 교령을 지냈으며 1995년에는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발기인, 1997년 7월에는 민주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상임위원으로 위촉됐으나 한 달 후 돌연 월북했다. 사진은 지난 1993년 10월 북경에서 회담을 갖고 기념촬영하는 오익제 전 교령과 유미영 북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20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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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7년 12월 6일, 대통령선거를 12일 앞두고 국가정보원(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는 한 통의 편지를 언론에 공개했다. 겉봉에 북한 평양우체국 소인이 찍힌 이 편지에는 발신인과 수신인으로 각각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과 김대중 국민회의 대선후보 이름이 쓰여 있었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터진 IMF 구제금융 사태의 여파로, 김영삼 정권과의 '경제공동책임론'으로 수세에 몰려 있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은 이 편지를 반전의 기회로 적극 활용했다.

당시 맹형규 한나라당 선대위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김 후보와 오씨와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며 "김 후보는 오씨 서신사건을 용공음해라고 강변하지 말고 안기부 수사에 적극 응하라"고 촉구했다. 맹 대변인은 특히 "편지에는 '김정일 동지도 김 후보의 당선을 기원하고 있다'는 구절이 있는데 김정일이 김 후보의 당선을 바라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국민에게 설명하라"며 '색깔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김대중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이듬해 검찰 수사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오익제 전 교령의 편지는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안기부가 기획하고 실행했던 공작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

북풍사건, 불법감청, 386 외압, 인터넷 댓글... 국정원 사건은 계속된다

97년 북풍 사건으로 징역형을 수형한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로부터 97년 대선직전 발생한 총풍사건과 관련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담담하게 법정을 나서고 있다. 2001.4.10
▲ 권영해 전 안기부장 97년 북풍 사건으로 징역형을 수형한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로부터 97년 대선직전 발생한 총풍사건과 관련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담담하게 법정을 나서고 있다. 20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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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는 북한 당국과 짜고 월북한 오익제 전 교령으로 하여금 김대중 후보에게 편지를 보내게 한 뒤 이를 교묘하게 공개했으며, 이 공작을 총지휘 했던 인물은 바로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었다.

'오익제 편지'뿐 아니라 특수공작원을 김대중 후보 쪽에 침투시켜 북한과의 접촉을 유도하려했던 '흑금성 사건', 재미동포 윤홍준씨를 내세워 "김대중 후보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돈을 받았다"는 기자회견을 열게 하는 등 일련의 '북풍사건' 들이 권 전 부장의 지시아래 실행됐다.

권 전 부장은 안기부법의 정치관여죄와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5년형을 선고받았다가, 이후 안기부 자금을 횡령한 사실 등이 추가로 밝혀져 모두 7년10개월형에 처해졌다. 북풍 공작에 가담했던 안기부 간부 9명도 처벌받았다.

정치공작을 통해 대선결과에 영향을 미치려했던 북풍 사건은 1999년 1월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그 후에도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 여부는 반복적으로 제기되었다.

이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민의 정부 당시 임동원과 신건 전 원장의 경우 불법감청을 지시·묵인하여 통신비밀보호법 위반혐의로 징역형과 집행유예 형을 선고 받았다. 참여정부 아래선 김승규 전 원장이 국정원의 간첩수사에 따른 이른바 '386외압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급기야 지난 해 대선 직전 터진 국정원 직원의 인터넷 댓글 공작 의혹과 최근 확인된 이른바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문건은 국정원이 16년 전 안기부로 돌아간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국가정보기관의 정보활동 남용에 우려의 시선이 다시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경찰 수사가 3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이어서, 지난 1997년 안기부의 북풍 공작이 만천하에 드러났던 것에 극명하게 대비된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사실이라면 그 최대 수혜자가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던 1997년의 상황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독일 연방정보부(BND)에 수사권이 없는 '이유'

전문가들은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정보기관으로서의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정보수집권한과 수사권의 분리, 원장의 임기 보장, 의회 통제 강화 등의 방안을 들고 있다. 그리고 독일의 사례를 눈여겨 볼 만하다고 말한다.

연방국가인 독일의 정보보안기관은 연방총리실 소속의 연방정보부(BND), 연방내무부 소속의 연방헌법보호청(BfV), 국방부 소속의 국방보안국, 연방범죄수사청으로 나뉘어진다. 이외에 연방 대법원에 설치된 연방검찰청은 테러, 반역 및 간첩행위와 같은 국가적 법익침해 사건의 수사와 기소를 담당한다.

연방범죄수사청과 연방검찰청이 범죄수사업무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다른 기관들은 그야말로 정보보안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연방정보부, 연방헌법보호청, 국방보안국 등은 연방경찰관청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직접강제수단과 집행경찰공무원은 없다. 정보수집 권한만 가지고 있을 뿐 수사권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독일 정보기관들이 수사권을 갖고 있지 않은 데에는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지난 1993년 11월 독일 연방정보부를 방문한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에게 연방정보부의 무엔스테르만 차장은 "과거 나지(NAZI) 정권의 정보기관 권력집중 전례를 막기 위해 정보기관에 수사권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연방정보부는 국내 다른 정보기관과 긴밀하게 정보교환을 하고 있다"며 "가령 해외에서 테러관련 정보를 입수했을 경우 국내 경찰에게 정보를 알려주고 수사를 의뢰해 이에 대비토록 한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정보보안기관들이 해외·국내 정보수집기관의 분리, 정보수집과 수사 기능의 분리 등으로 철저하게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 상황은 모든 정보보안기관들이 모두 정보기능과 수사기능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사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국정원의 현주소라면, 독일연방정보부는 미국 CIA나 영국 MI6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실패에 대해 오판한 것과는 달리 독자적이고 정확한 정보수집분석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우수한 정보역량을 과시했다. 또 코소보와 아프리카, 아프가니스탄 등 해외파병지역에서 독일군 활동을 지원해왔으며, 중동지역 정세분석, 이슬람 테러 대처 및 해외 독일인 납치사건 해결 주도 등의 활동을 통해 최고 국가정책 보좌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높였다.

정보부장에 야당인사도 임명... "탈정치화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

정보부장의 임기가 법률상으로 규정돼 있지는 않지만, 관례적으로 5~10년 정도씩 장기간 근무하는 관행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를 통해 정보기관의 직무연속성과 전문성이 확보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방정보부장은 경찰, 연방정보부, 헌법보호청, 내무부, 법무부 등 해당분야 직무 경험자들 가운데 임명되는데, 평균 재임기간이 5년이 넘는다.

또 정권이 바뀌어도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부서책임자를 곧바로 교체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지난 1998년까지 집권한 바 있는 기독민주당 정부에서는 연방하원의원 출신의 야당(사회민주당) 콘라드 포르츠너를 연방정보부장(1990~1995)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슈뢰더 수상 당시 임명된 하딩 연방정보부장(1998~2005)의 경우 정당 소속 없이 콜 수상 시절부터 연방수상실에서 정보기관조정관을 역임하다가 정보부장에 임명되었다. 그가 여야를 막론하고 폭넓은 신뢰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는 퇴임하면서 "재임기간 중 스스로를 정치인이라고 생각한 바 없으며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 적이 없다"면서 "탈정치화는 정보기관의 독립적 활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말을 남겼다.

임기제는 대통령과 정보기관장의 관계를 '사적 의리'의 관계에서 '공적 국익'의 형태로 바꿀 수 있는 하나의 제도가 될 수 있다. 이것을 제도화할 경우 정보기관장은 정보소비자인 대통령의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객관적이고 정직한 정보만을 생산하는 최소한의 정보제공자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회가 통제하는 연방정보부와 간단한 답변조차 거부하는 국정원

독일이 연방정보부의 업무를 다양한 통제 아래 둔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독일의 3대 정보기관인 연방정보부, 헌법보호청 및 국방보안국은 모두 의회의 강력한 통제를 받고 있다. 연방의회는 이들 3개 정보기관의 통제를 위해 하원에 9명의 의원이 참석하는 '정보통제위원회'를 두고 있으며 '특별예산위원회'를 통해 정보기관의 예산을 예산통제를 실시한다. 이와는 별도로 정보기관의 도청·우편검열 등에 대한 통제를 하는 '기본법 10조 위원회'도 존재한다.

특별예산위원회는 최소한 분기에 1회 이상 회의를 열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정보사건 등 특별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와 의회의 요구가 있을 때 정보기관이 수시로 답변해야 하기 때문에 통상 월 1회의 회의가 열린다. 또 예산위원회의 모든 위원은 중요 정보 사안에 질문하거나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994년 국회에 정보위원회가 설치되었지만, 정보기관 통제가 아직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발전하지는 못하고 있다. 국회가 정보기관을 통제하는 이유는 정보기관의 월권을 감시하고, 특정 정파에 이익이 되는 정보를 생산하거나 불법성을 가지게 되는 것을 방지해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인 국가안보를 위해 활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국정원 여직원 댓글 공작 의혹이 터진 직후 국회는 정보위원회를 소집했다. 국정원이 심리정보단을 심리정보국으로 개편해 대대적인 인터넷 댓글 공작을 벌였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던 터였다. 비공개로 진행된 정보위 회의에서 한 야당의원은 여직원이 소속된 부서의 책임자에게 '국장인지, 단장인지 밝힐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의원이 들은 것은 "밝힐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태그:#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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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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