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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길

본홀머 거리의 뜨거운 역사적 정취를 느낀 후 마음을 식히고자 다리 아래 있는 계단으로 내려간 후 시원하게 뚫린 산책로로 향했다. 산책로 좌우에는 가로수가 심어져 있는데, 벚나무와 형태가 흡사했다. 여름에 와서 잎은 이미 푸르스름해져 있었지만, 필자가 살던 고향인 부산 광안리의 벚꽃축제를 연상케 하였다.

대학교 시절, 항상 봄이 오면 친구들과 광안리로 꽃구경 가지고 했었는데, 여기서 사먹기 힘든 번데기 및 솜사탕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또한 벚꽃이 절정에 달하는 식목일에는 아이들이 스케치북과 크레용 혹은 물감을 들고 사생대회에 참가했었다(지금은 식목일이 휴일이 아닌 관계로 4월 첫째 주 주말에 사생대회가 있다). 여름이라서 그런지 여기서는 그림을 그리는 광경을 볼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풍경화에 관심이 있는 친구에게 여기서 한 번 그림을 그려보는 것을 권해주고 싶다.

옛날에는 매우 삼엄한 곳이었지만 지금 이렇게 고요한 것을 보면, 봄날 흐드러진 꽃들에 예술인들의 혼과 감성이 어우러진다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글을 쓰고 있는 현재 기나긴 한파로 인해 3월에도 아직 눈이 쌓여있지만, 따뜻한 봄이 오면 아름다운 광경을 보기 위해 다시금 가보고 싶은 곳이다.

봄에 오면 더 정취있을듯 하다.
▲ 가로수길 봄에 오면 더 정취있을듯 하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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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ahn철로를 따라서: 평범한 오솔길이 말해주는 진실 그리고 놀이터

벚꽃길은 S-Bahn철로 바로 옆에 있다. 이는 S-Bahn철로를 기준으로 서쪽은 서베를린 동쪽은 동베를린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벚나무길을 지나 표지판대로 왼쪽으로 향한 후 기차굴다리 아래를 지나면 평범한 5층짜리 아파트촌이 나온다. 지금은 너무 평범한 곳으로 변해버린 이곳, 마치 평범한 우리 옛 아파트 단지를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면 S-Bahn역 Wollankstraße역이 나온다. 지금은 빵집, 분식집들이 있는 그리고 자동차들이 동서로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길로 변했지만, 아스팔트 위에 자갈은 1989년 11월 9일 이전에는 좌우로 갈라져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역사를 중심으로 우측 편에는 역시 푸르른 오솔길이 나오는데, 재미있는 것은 S-Bahn역의 서쪽의 주택과 동쪽의 주택 사이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이는 옛날에는 오솔길 좌우로 장벽이 놓여져 있었고 그 사이에 감시초소로 운영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금 초소들은 모두 철거되었지만, 이를 공원으로 다시 조성한 베를린 시민들의 지혜를 볼 수 있다. (기사를 작성하다가 Wollankstraße역에 대한 자료를 찾으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동베를린 시민들이 탈출을 위해 이 역을 향해 뚫어놓은 땅굴이 1962년도에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S-Bahn Wollankstraße옆의 오솔길
▲ 오솔길 S-Bahn Wollankstraße옆의 오솔길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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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을 쭉 걸어가다보면, 판커우 공원이 나오는데, 주말이라서 그런지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서 같이 놀아주고 있었다. 필자가 어린 시절만 해도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자주 놀곤 했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놀이터를 보면, 입시전쟁으로 인한 지나친 사교육 때문에 너무 텅 빈 모습만이 보여 매우 안타까웠다. 우리나라의 텅 빈 놀이터만 보다가 베를린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놀고 있는 놀이터를 보면서, 이것이 사교육보다 더 가치 있는 진정한 교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유대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은 어디서나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입시전쟁에서 벗어난 아이들과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세대와 그리고 기성세대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닐까?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놀이터에서 뛰놀고 있다.
▲ 판커우 공원의 놀이터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놀이터에서 뛰놀고 있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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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장벽에 세워진 마켓에서 시원한 초콜릿을 구입하고, 허기진 배를 채운 후에 철로 옆에 있는 오솔길을 향했다. S-Bahn역 Willhelmsruh까지는 오솔길-S-Bahn역사-오솔길-S-Bahn역사로 반복되어 장벽길이 형성되어 있다. 즉 Wollankstraße역에서 이 역까지 옛날에는 동서로 갈려있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당시 S-Bahn역들은 운영되었었는데, 동쪽 출구는 막혀 있었고, 서베를린을 향한 출구만 개방이 되어 있었다. 당시 S-Bahn을 하차하고 역사 밖으로 나왔을 때 서베를린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사진을 자세히 보면, 자갈흔적을 볼 수가 있는데, 이것이 옛 장벽이 세워졌던 곳이다.
▲ S-Bahn Willhelmsruh역 사진을 자세히 보면, 자갈흔적을 볼 수가 있는데, 이것이 옛 장벽이 세워졌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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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개방되어있지만, 장벽붕괴 전에는 폐쇄된 출구였다.
▲ S-Bahn Wollankstraße역 동쪽출구 지금은 개방되어있지만, 장벽붕괴 전에는 폐쇄된 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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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갈은 여기에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음을 상징한다.
▲ 선명한 자갈자국 이 자갈은 여기에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음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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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적인 패턴의 길을 지나면, 매어키쉐스 피어텔(Märkisches viertel)로 향하게 되는데, 여기에도 평범하지만 장벽역사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또한 여기는 바님 자연공원(Naturpark Barnim)으로 향하는 입구가 되는데, 이는 다음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태그:#베를린장벽길, #베를린,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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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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