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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안 치고 농사짓기
 약 안 치고 농사짓기
ⓒ 민족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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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농촌으로 일손을 도우러 갔을 때 일이다. 모두가 땀을 흘리며 일하고 난 후 점심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려 할 때, 함께 내려간 동료가 식용이 가능한 풀이라며 한바가지 뜯어와서는 쌈으로 먹자고 했다가 농촌 아주머니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이유는 먹을 시기가 지난 풀은 독(毒)이 생겨서 탈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을에서 독이 오른 풀을 먹고 탈이 나거나 병원에 실려간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3~4월 초봄에 올라온 풀들은 대부분 식용이 가능하지만 씨앗과 꽃을 맺을 때가 되면 자손을 보호하려는 모성본능으로 외부의 공격을 막기위해 독을 만들어낸다. 식물들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냄새를 풍기거나 열매 속에 방어물질을 갖고 있는데 이것들은 사용방법에 따라서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식물마다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물질은 사람의 병을 고치거나 건강을 위해 오래 전부터 한약 재료나 구전(口傳)을 통한 민간요법으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들이 많다. 그것들 중에는 목숨을 끊는 사약으로 이용되거나 실생활에 유용하게 이용되기도 했다. 예를들면 까만열매를 맺는 자리공풀은 사약의 원료로 이용했고, 여뀌라는 풀은 물고기를 기절시켜 잡는데 이용했다고 한다.

과거 전통농사에서는 식물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성분을 이용하여 병해충을 예방하거나 퇴치했다. 화학농약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풀과 같은 식물을 이용한 농사법이 오래된 관행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농사는 화학농약을 사용하는 것을 관행농사라고 부르고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잘못된 관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자연순환의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농부들은 식물체에서 얻을 수 있는 자연물질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고 있다.

식물성농약, 들녘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민족의학연구원에서 펴년 <약 안 치고 농사짓기>에는 다양한 식물들을 이용하여 병해충을 막거나 영양이 되는 비료를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책에 소개된 내용들은 북한에서 오랫동안 임상경험을 통해 입증된 방법을 소개한 책 <고려 식물성 농약>의 내용도 담고 있다고 하니, 화학농약이 없는 북한의 농사법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기도 할 것이다.

시계방향으로 애기똥풀, 자리공, 여뀌, 돼지감자
▲ 자연농약으로 쓰는 식물 시계방향으로 애기똥풀, 자리공, 여뀌, 돼지감자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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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몇 년간 직접 사용해본 식물성농약의 재료들도 이 책에 실려있으며 들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사용법도 생즙을 내거나 삶아서 사용하는 등 어렵지 않으며 말려두면 오랫동안 사용하거나 보관이 가능하다. 풀만이 아니라 쓸모없이 버려졌던 작물의 줄기와 잎, 뿌리도 자연농약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봉숭아, 코스모스, 국화와 같은 꽃들도 자연농약으로 사용한다.

"여뀌를 넣고 10~30배로 우려낸 추출물은 양배추가루진딧물, 배추흰나비를 잡는데 효과가 있다. 여뀌가루를 천주머니에 넣어 보관하는 알곡 더미 사이사이에 놓아두면 해충의 피해를 막을수 있다." <본문 중에서>

식물성농약은 자연물질이기 때문에 쉽게 분해되어 잔류성분을 남기지 않는다. 또 병해충에 대해 방어적으로 대응하기에 생태계의 혼란을 최소화 한다. 아울러 작물의 면역력을 높이고 생장을 돕는 영양분을 제공하는 등 선(善)순환의 지속가능한 농사를 할 수 있다. 화학농약은 사람이 살고 있는 환경과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간의 건강을 해치는 독극물임이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많이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 유기농업 교육장에서 만난 늙은 농부는 화학농약의 폐해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평생을 농사에 바쳤는데 독한 농약 때문에 흙이 다 죽었어. 그 땅에서 키운 농산물은 독약을 먹고 자란 거야. 그걸 먹은 사람들이 온전하겠어? 내가 죽기 전에 그동안 지은 죄를 갚기 위해서라도 유기농사를 하는 거야. 올해로 몇 년째 땅을 살리고 있는데도 여전히 (사용이 금지된)농약이 검출되고 있지만 죽기 전에 꼭 살려놓을 거야."


약 안 치고 농사짓기

민족의학연구원 엮음, 보리(2012)


태그:#농약, #농사, #흙, #농부, #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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