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하시모토 도루 일본 오사카 시장은 극우주의자다. 자신의 이름과 파시즘을 합친 '하시즘'이 별명일 정도다. 하지만 그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반대 의견을 처음으로 밝힌 일본 정치인이었다. 권혁태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9일 하시모토 시장을 소개하며 "반(反)원전 파시스트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문학의 집'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사고 2주년 기념 토크콘서트 - 두 개의 아토믹 선샤인'에서 최근 일본에 불고 있는 우경화 바람을 언급했다. 이어 "한국 언론이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에선 원전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만, 한국은 달라진 게 없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에 불편하다"고 했다.

"일본 내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70%가 원전 폐기에 찬성한다고 나온다. 또 지금 원전이 1개만 가동 중이다. 그런데도 왜 폐기하지 못할까? 더군다나 2011년 3월 11일 이후 각종 지방선거가 있었는데, 원전 폐기 공약을 내건 후보가 당선되기는커녕 대부분 참패했다. 후쿠시마에서조차 사고 원전을 관리하던 도쿄전력 출신 후보가 재선했다. 높은 원전 반대 여론이 정치지형의 변화 등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권 교수는 그 원인 중 하나를 '전후(戰後)의 종언'에서 찾았다. 일본에서 전후란,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 천황의 항복 선언으로 끝난 '태평양전쟁 이후'을 뜻한다. 권 교수는 "일본에서 전후는 흔히 평화, 민주주의, 경제성장, 풍요로움으로 통하는데, 여기서 경제성장과 풍요로움은 1950~60년대 원전을 시작하면서 가능했다"며 "후쿠시마 사고로 이 두 가지는 위기를 맞이했다"고 설명했다.

전후를 떠받치던 한 축이 흔들리면서 나머지 한 축인 평화와 민주주의 이념마저 위기에 처했다. '이 엄청난 재난을 초래한 것은 핵을 관리한 시스템의 문제'라며 '평화와 민주주의 시대는 갔다'는 보수파의 주장이 나타났다. 당시 집권중이던 민주당 정부의 실패는 여기에 힘을 실어줬다. 민주당은 장기집권한 자민당보다 진보적인 성향을 내세우며 정권을 교체했지만, 정치 개혁은 물론 후쿠시마 사고 수습 과정에서도 허둥댔다. 그 결과 정치의 중심이 더 오른쪽으로 쏠리게 됐다는 것이다.

일본을 지탱해온 두 개의 '아토믹 선샤인' : 미국의 핵우산과 원전

 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 (ISIS)가 지난해 3월 14일 촬영해 공개한 후쿠시마 제1원전 위성사진
 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 (ISIS)가 2011년 3월 14일 촬영해 공개한 후쿠시마 제1원전 위성사진
ⓒ ISIS

관련사진보기


이 때문에 후쿠시마 사고를 '근대과학문명의 한계를 보여줬다', '동북아지역의 안전과 위험은 함께 간다'는 식으로만 바라보면 문제의 본질을 찾기 어렵다는 게 권 교수의 생각이다. 후쿠시마 사고 후 나타난 우경화 현상은 일본사회가 그동안 핵과 평화를 두고 보여온 이중적 태도와 연결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먼저 1945년 이후 일본사회가 강조해온 평화의 역설을 설명했다. 그는 "일본 전후 질서를 지탱해온 평화주의는 일종의 과잉 규정이었다"며 "현실은 못 따라가는데 용어가 앞서나가 실상을 은폐하는 마취효과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마취효과는 첫 번째 아토믹 선샤인 '미국의 핵우산' 속에서 나타났던 일이다.

'아토믹 선샤인(Atomic sunshine)'은 1946년 일본이 미국의 점령 상태에 있던 시절, 민정국장이던 코트니 휘트니 준장이 일본 정부 관리들에게 "우리는 원자력이 내뿜는 햇볕 속에서 해바라기를 즐기고 있다"고 한 것을 뜻한다. 휘트니 준장은 일본에 ▲ 절대주의 천황제가 아닌 상징 천황제를 두고 ▲ 모든 군사력의 보유와 행사를 금지한다는 내용의 '맥아더 3원칙'을
넘기며 이 말을 남겼다.

그후 일본은 '맥아더 3원칙'을 참고해 헌법을 개정한다. 무장금지를 규정한 헌법 9조가 만들어졌고, '일본은 핵무기를 갖거나 수입하거나 개발하지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이 등장했다. 하지만 권 교수는 "그럼에도 자위대와 일본 주둔 미군이 있는 것은 무엇이냐"고 꼬집었다. 또 "일본은 간접적으로 미국의 핵우산 속에 들어가 있는 만큼,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일본 스스로 핵무기를 개발할 이유가 없다"며 '비핵 3원칙'에 감춰진 현실을 지적했다.

"원전 폐기 좌우통일전선? 원전 없앤다면 정치 극우화해도 괜찮은가?"

 권혁태 성공회대 교수는 9일 강연에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내 원전여론이 높아졌지만 정치는 오히려 우경화했다"며 "'일본은 변했는데 한국만 그대로'란 식으로 문제를 바라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권혁태 성공회대 교수는 9일 강연에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내 원전여론이 높아졌지만 정치는 오히려 우경화했다"며 "'일본은 변했는데 한국만 그대로'란 식으로 문제를 바라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 박소희

관련사진보기


전후 일본사회는 '원자력 폭탄의 피해'를 강조하면서도, 두 번째 아토믹 선샤인 '원자력이 가져올 번영'은 다른 것으로 여겼다. 1960년대 큰 인기였던 만화 <우주소년 아톰>의 주인공 아톰은 '우라늄'이란 형제가 있었고, 우라늄이 '신비의 광물'이라며 홍보하던 시절도 있었다. 사람들은 원자력 폭탄과 원자력 발전을 철저히 구분했다. 그리고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사고를 겪은 사람들은 또 다시 이 지점에서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기존 구도로 설명 안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원전에 반대한다면, 극우파여도 어떠냐'는 통일전선 같은 걸 말하더라. 원전 반대가 중요하지만, 좌우에 상관없다면? 원전 폐기를 주장하면서도 정치가 마구 오른쪽으로 간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원전을 없애도 헌법은 개정해 자위대를 군대로 하고, 심지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이 일본과 원전반대운동을 연대할 때, 이런 흐름을 염두에 둬야 한다. 후쿠시마 사고를 일본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게 이 뜻이다."

권 교수는 강연 끝 무렵 "세계에서 피폭자가 가장 많은 곳이 일본이라면, 그 다음은 한국, 북한일 텐데 우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일본의 경험'으로만 말한다"며 조선인 피폭자 이야기를 꺼냈다. 그들이 왜 피폭 당했는지, 핵무기란 무엇인지를 말하며 핵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한국 사회는 그들을 역사에서 사실상 지워버렸다. 권 교수는 "지금도 학생들에게 '합천에 한국인 피폭자가 있다'고 하면 '처음 듣는다'고 반응한다"며 "역사적 경험을 어떻게 남겨놓고 전승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과 '탈핵에너지전환 국회의원모임'은 후쿠시마 사고 2주년을 맞이해 11일부터 '원전을 넘어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로'란 주제로 핵 다큐사진가 모리즈미 다카시의 사진전, 세바스찬 플루크바일 독일 방사선방호협회 회장 강연 등 여러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2주년 기념 주간 행사 일정
 후쿠시마 원전사고 2주년 기념 주간 행사 일정
ⓒ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탈핵에너지전환

관련사진보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