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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시절(時節)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대신 사랑이 생기었다
굵다란 사랑
누가 있어 나를 본다면은
이것은 확실히 우스운 이야깃거리다
다리밑에 물이 흐르고
나의 시절은 좁다
사랑은 고독이라고 내가 나에게
재긍정(再肯定)하는 것이
또한 우스운 일일 것이다

조용한 시절 대신
나의 백골(白骨)이 생기었다
생활의 백골
누가 있어 나를 본다면은
이것은 확실히 무서운 이야깃거리다
다리 밑에 물이 마르고
나의 몸도 없어지고
나의 그림자도 달아난다
나는 나에게 대답할 길이 없어져도
쓸쓸하지 않았다

생활무한(生活無限)
고난돌기(苦難突起)
백골의복(白骨衣服)
삼복염천거래(三伏炎天去來)
나의 시절은 태양 속에
나의 사랑도 태양 속에
일식(日蝕)을 하고
첩첩이 무서운 주야(晝夜)
애정은 나뭇잎처럼
기어코 떨어졌으면서
나의 손 우에서 신음한다
가야만 하는 사람의 이별을
기다리는 것처럼
생활은 열도(熱度)를 측량할 수 없고
나의 노래는 물방울처럼
땅속으로 향하여 들어갈 것
애정지둔(愛情遲鈍)

'사랑' 생겼어도 고독한 상황

시인 김수영. 이미지는 민음사에서 나온 <김수영전집>에 실린 것임을 밝힙니다.
 시인 김수영. 이미지는 민음사에서 나온 <김수영전집>에 실린 것임을 밝힙니다.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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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와 가슴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머리와 가슴이 우리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머리와 가슴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어떤 삶인들 꾸려가지 못할까요. 머리와 가슴으로 사는 삶에 대체 어려움이란 게 있을 수 있을는지요. 그런 삶에서 우리는 마음껏 차가워지고 마음껏 뜨거워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삶은 머리와 가슴이 아니라 손과 발이 이끌어갑니다. 손과 발이 바지런히 움직여야 우리 삶은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힘이 듭니다. 맥이 풀릴 때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삶이란 게 노상 우리 뜻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건 그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 힘든 시간은 아무때나 아무에게나 찾아옵니다.

가만히 보니 지금 이 시 <애정지둔>의 화자가 그렇습니다. 화자가 바라는 삶은 "조용한 시절"(1연 1행)입니다. 말 그대로 시끄럽지 않은 삶이겠지요. 입고 자고 먹는 일을 위해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되는 평화롭고 여유로운 생활 말입니다. 그 누군들 이런 삶을, 이런 생활을 꿈꾸지 않겠습니까. 살아가는 일이 힘들고 팍팍할수록 그런 바람은 더욱 커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지금 살아가는 일이 온통 고통스럽습니다. 그것은 사랑, 곧 애정 때문입니다. "굵다란 사랑"이 생겼는데도 '고독'이라고 다시 힘주어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죽하겠습니까. 사랑을 하면 할수록 고통스럽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위태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수록 생활의 '열도(熱度)'(3연 14행)는 떨어지고 삶의 의지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집니다. "굼뜨고 어리석으며 둔한 사랑", 곧 제목의 '애정지둔(愛情遲鈍)'은 바로 이런 데서 나온 게 아니었겠는지요.

무서운 고독의 절정, 사람은 아름답고

1953년,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서 석방돼 나온 수영은 서울 신당동에 있는 막내 이모네 인쇄소에 딸린 두 칸짜리 방을 얻어 살고 있었습니다. 전쟁 중에 충무로4가 집이 불타 없어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전쟁 못지 않은 피폐함을 가져다주는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수영은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을 칩니다. 하지만 살아가는 일은 자기 뜻대로만 굴러가지는 않는 법. 수영은 거의 매일을 술에 취해 살았습니다. 대취(大醉)해 귀가한 날에는 어머니에게조차 욕을 하며 행패를 부리거나 가재 도구를 박살 내기도 했습니다. 삶을 위해 생활에 매달릴수록 참된 생활이 그립고, 사랑에 빠질수록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 모순에 빠지게 됐습니다.

1953년 12월에 지어진 <낙타과음(駱駝過飮)>이라는 글에 그 자세한 사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해 성탄절 정오께 쓰인 그 글은 전날 밤의 성탄제 잔치에 대한 감회를 적은 편지(수신인은 'Y'로 돼 있습니다. 'Y'가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형식의 수필입니다. 당시 수영을 휘감고 있던 우울과 절망이 짙은 회색의 어조로 그려진 글이지요.

수영은 간밤의 과음으로 쓰라린 속을 즐기며(?) 어느 외떨어진 다방의 구석 쪽 자리에 앉아 이 글을 씁니다. 그는 자리를 잡고 앉은 곳이면 어디나 다 "내 고장"이라며 "쓸쓸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렇게 몹시 쓸쓸하다"고 종잡을 수 없는 소리를 합니다. 짙은 외로움에 휩싸여 있는 수영의 내면이 보이는지요. 수영은 "무서운 고독의 절정 위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겠"냐며 묻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때 수영은 고독의 포로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 글에서 간밤에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B양'(그의 정체도 미상입니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런 자신이 "우습다, 한없이 우습기만 하다"고 조소합니다. 그러고는 말하지요. "이것은 내가 '안다는' 것보다도 '느끼는' 것에 굶주린 탓이라고 믿네, 즉 생활에 굶주린 탓이고 애정에 기갈을 느끼고 있는 탓이야"라고 말입니다.

온전한 생활·따뜻한 사랑 갈구하던 수영

당시 수영은 온전한 생활과 따뜻한 사랑에 갈급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수영 가족의 평범한 일상은 철저하게 파괴됐습니다. 더군다나 아내 현경이 다른 사람, 그것도 수영 자신과 잘 아는 이와 동거한 사실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현경의 동거인은 누구?
수영의 아내 김현경이 동거한 이는 이종구입니다. 이종구는 수영이 다닌 선린상업학교의 2년 선배(나이는 서로 비슷했다고 합니다)로, 수영이 동경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함께 하숙을 했던 친구 같은 존재였습니다.
전쟁 중의 홀로 남은 부인네가 다른 남자의 그늘 아래로 들어가는 일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실질적인 남편이었던 수영에게는 그 사실이 커다란 아픔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을 테지요.

그러니 수영이 '조용한 시절'을 그리워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우습지 않은 사랑과 무섭지 않은 생활, 곧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평온한 삶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가 어려웠지요. 이 시를 좌절과 절망과 우울의 시간을 온몸으로 돌파하던 수영의 몸부림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애정지둔>, #김수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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