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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키울것인가. 이 자그마한 생명이 스스로 먹고 살때까지.
 어떻게 키울것인가. 이 자그마한 생명이 스스로 먹고 살때까지.
ⓒ 임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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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가족이 생겼습니다. 셋째 아이는 아들입니다. 두 아들이 동생이 생겼다고 좋아합니다. 직장에서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예정일을 두 달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징계해고'라는 이유로 실업급여 받기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나이가 있는데다가 수술만 세 번째라 일찍 여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을 들었습니다. 진통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급하게 병원에 갔습니다. 실업급여 자격 인정을 위해 부지런히 고용안정센터를 오가던 때였습니다. 아이를 낳을 즈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마치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실업에 셋째라니...

"잘 키울 수 있을까."
"자기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잖아."

자못 심각한 표정의 대화가 오갑니다. 새 생명으로 우리 가족이 된 아기의 미래가 걱정됩니다. 아내에게 말은 그렇게 하지만 스스로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고정적인 수익이나 직업이 없는 지금 상황 때문입니다. 해고로 2년여 다닌 직장을 떠나 갑자기 백수가 되어버렸습니다. 최저생계비에 가까운 급여이긴 해도 고정적인 수익에 맞춘 절약 지출로 생활을 그럭저럭 할 수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이라 즐기면서 다녔지만, 저축하지 못했던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지난달 26일 아내는 셋째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기쁨을 누리는 것보다 걱정이 더 늘어난 듯해 보입니다. 축복 대신 걱정이 가득한 부모와 주변 사람의 눈길을 받게 되었습니다. 전에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을 가졌던 탓에 읍내에만 나가면 축하해 줍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가장으로서 책임감에 대한 이야기, 위로로 가장 많이 들은 말도 '제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먹을 것 가지고 난다는 말... 믿을 수 있을까요?

막내를 안아보겠다고 두 동생을 둔 형이 안고는 폼을 잡는 모습
 막내를 안아보겠다고 두 동생을 둔 형이 안고는 폼을 잡는 모습
ⓒ 임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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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품어 봅니다.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는 주문을 외워봅니다. 서울에서 혼자 사는 장모께서는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실업급여니, 양육수당이니'하는 나랏돈을 주니 당장 애들 굶기지 않고 잘 키울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당장 병원비와 산후조리원 등으로 200만 원이 지출되었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장모님이 와 계시고, 입원과 산후조리 3주간을 집에서 왕복 100킬로미터 넘는 (군 단위 산부인과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병원을 오가느라 드는 유류비도 만만치 않습디다. '와우. 세상에 낳자마자 벌써 돈이구나.'

둘째를 이미 경험했지만, 그사이 까먹었습니다. 아내에게 "이렇게 돈이 많이 들었느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둘째 때에는 더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둘째 때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졌을 뿐이구나.' 아이를 낳는 것이 아이나 사회에 죄를 짓는 일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때랍니다. 무작정 낳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어디서(지역이 아니라 국가) 낳느냐가 꽤 중요한 문제라는 걸 알았습니다. 얼마 전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다른 선진복지국가의 사례를 보며 우리 부부는 부러워하며 우리나라 상황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실업 상태에서 세 번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와 육아휴직을 쓰는 아빠 마지막으로 육아휴직을 세 번째 쓴다는 프랑스 여성의 사례를 듣고 "(우리나라에서) 저러면 벌써 (직장에서) 짤리지"라며 같이 웃었습니다.

사실 아내는 한차례밖에 육아휴직을 쓰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아이 때부터는 직업을 포기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직장 생활하면서 아이를 세 차례 낳지만, 이 때문에 휴직, 심지어는 휴가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듣자하니 남편도 출산 휴가를 5일 받을 수 있다는 데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은 직장에서 '법'은 쓸모가 없습니다. 그만두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네요. 육아 휴직하는 직장인 아버지가 얼마나 될까요.

갑자기 실업 상태가 돼 버린 가장의 불안감은 더합니다. 선진국 사례와 비교되니 더 처량해집니다. '좋은 나라'에 사는 그들은 실업 상황이 되더라도 재고용의 기회와 실업수당, 양육수당, 주택 월세보조금 등이 가족 수에 비례해 불안감을 벗어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점이 부러웠습니다.

아이들 기르기에서 가장 큰돈이 들어가는 대학, 학교다니는 학생에게도 수당이 나와서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가 없이 충분히 학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은 등록금을 줄이기에도 벅찬 우리 상황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우리 부부, 태생의 장소인 서울에서 살고 결혼해 직장 생활하고 있다면 상황이 아주 달랐을 수 있겠네요. 많은 친구들이 하나를 낳거나 용기를 내어 둘을 기르고 있는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 시골에서 벌지도 못하면서 셋이나 낳게 되었을까요.

7년 전 귀농을 생각해, 결혼한 후 시골에 살고 있습니다. 아직 준공도 못한 집은 여전히 손볼 곳이 많은 상황이고, 주변 밭에도 풀만 가득합니다. 부지런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농사로 벌어 먹고사는 것은 수십 년 농부들도 힘든 것이니 촌에서 다른 일 해서 직업을 가지는 것이 좋다는 말에 동의했습니다. 일 년짜리 임시직을 하며 아이를 하나를 낳고, 기회가 왔습니다. 비록 '박봉'이지만 안정적인 직장을 구했다고 생각했지만, 2년여 만에 안타깝게도 끝이 났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아내는 불안에서 공포로 감정이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태연한척 하지만 미래가 쉽지는 않다는 것을 인지합니다. 주변에서 해고 과정에 대한 질의가 많은 것으로 보아 소문이 퍼졌습니다. 좁은 지역 사회에서 '낙인' 찍힌 경력으로 재취업의 기회를 갖기 어렵다는 판단입니다.

"너희 어떻게 살래... 앞으로"

아이들 교육까지 계획하기에는 당장 코앞의 생계가 걱정입니다. 사실 애초에 시골에서 삶을 시작하면서 그 부분은 포기했습니다. 남들과 같이 경쟁하는 것은 가망이 없다는 판단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산촌인 이곳 시골의 교육 환경과는 잘 맞습니다. 초등학교는 20여 명 남짓이고, 중학교는 더 적어 폐교 위기에 처한 상황입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한 손에 꼽을 정도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학원도 없습니다. 100리 가까이 떨어진 읍내로 가야 겨우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위한 학원이 몇 있을 뿐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아이를 위한 돈을 쓸 일이 없죠. 그래서 혹자는 "어디 가서 (다니던 곳) 그만한 돈 못 벌겠냐"며 위로합니다.

하지만 코앞의 걱정을 떠올립니다. 이곳 지자체에는 출산지원금도 있으니, 마음의 위로가 됩니다. 기저귓값 정도는 나오니 다행입니다. 분유값까지는 아직 되지 않는 수준이라 아쉽긴 합니다만. 더 근본적인 마음의 안정과 가족의 평화를 위해 안정적인 수입이 절실합니다. 당장 '하고 싶은 일'은 있지만, 과연 그것이 다섯 식구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아내는 짐짓 불안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당신이 하고 싶은 일 펼쳐보라'고 응원합니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아자.


태그:#아이키우기, #아들셋, #실업자아빠 아이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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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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