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리에 방송되는 SBS <야왕>, MBC <오자룡이 간다> <백년의 유산> 등의 공통점 중 하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케케묵은 소재임에도 고부 갈등은 여전히 드라마의 흥행을 위해 빠질 수 없는 요소다. 그렇다면 지금껏 한국 드라마 '고부갈등'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1960~70년대 : 엄한 시어머니 Vs 순종적인 며느리

 1960~70년대 드라마 대부분은 엄한 시어머니와 그에 복종하는 며느리의 모습을 담아냈다. <아씨><여로><마부>의 한장면 (왼쪽부터)

1960~70년대 드라마 대부분은 엄한 시어머니와 그에 복종하는 며느리의 모습을 담아냈다. <아씨><여로><마부>의 한장면 (왼쪽부터) ⓒ KBS


1960년~70년대 드라마는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대부분 엄하고 모진 시어머니와 순종적인 며느리의 희생을 부각시켰다. 1964년 가정생활의 일상을 그린 <가정극장>이나, 시청자가 해결하기 어려운 인생문제를 극화한 <나의 경우> 등 초기 한국 드라마를 비롯해 TBC <아씨>, KBS <여로>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1970년 3월 첫 방송 된 TBC 일일극 <아씨>의 선풍적 인기는 후에 방송되는 비슷한 장르의 드라마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씨>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가장 큰 이유는 모진 시어머니의 구박과 억압, 여러 가지 역경을 묵묵히 헤쳐나가는 한국 여성의 모습을 통해 전 연령대의 시청자에게 큰 공감대를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아씨>의 대성공으로 당시 TBC는 KBS, MBC와의 일일극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방송사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이 작품은 1997년 KBS에서 이응경 주연의 <아씨>로 리메이크됐다.

TBC의 선전에 자극받은 KBS는 1972년 '영구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여로>를 방송하며 고부 갈등 드라마의 새 역사를 썼다. 지고지순하고 순종적인 여주인공 태현실과 그녀를 악랄하게 괴롭힌 시어머니 박주아의 연기가 돋보인 <여로>는 여성 시청자의 눈물샘을 쏙 빼놓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KBS는 1973년에도 비슷한 분위기의 <파도>를 제작해 큰 성공을 거뒀다.

1972년 MBC 역시 후취로 들어간 여성이 자식들의 냉대와 고된 시집살이를 극복하고 존재감을 회복하는 내용의 일일극 <새엄마>로 큰 성공을 거뒀다. '언어의 마술사' 김수현 작가의 출세작으로 새엄마 역에는 당대의 미녀 배우 전양자가, 시어머니 역에는 정혜선이, 딸로는 윤여정 등이 열연을 펼쳤다. 당초 정혜선은 주인공인 새엄마 역할로 캐스팅되었지만 연출자인 박철 PD가 전양자를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바람에 시어머니로 급히 교체되었다. 이 일화를 배우 윤여정은 이렇게 회고한다.

"'새엄마' 역할을 전양자 언니한테 뺏기고 의기소침했던 서른 살 정혜선 언니는 그녀 최초의 노역(老役)이었던 시어머니 역할을 너무도 훌륭하게 해서 우리 모두를 감탄하게 했다. 지금도 그 언니는 가끔 '나 그때 어렸을 땐 데도 할머니 역 참 잘했지?' 그런 말을 하고 그때마다 나는 '정말야. 정말 언니 진짜루 참말 잘했다우' 한다." (<김수현 드라마에 대하여> '그이와의 지난 28년 동안의 만남' 중)

앞서 이야기한 드라마 외에도 시어머니로 출연한 여운계가 "잘~하는 짓이다"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KBS <마부>(1974), 김용림이 악랄한 시어머니의 전형을 보여준 MBC <후회합니다>(1977) 역시 큰 인기를 끈 작품이다. 이처럼 1960~70년대 드라마 대부분은 엄한 시어머니 밑에서 순종하고 희생하며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며느리의 모습을 그려냈고, 시청자는 많은 호응을 보냈다.

1980년대 : 사극이 담아 낸 고부갈등

 1980년대에는 사극에도 고부갈등 소재가 등장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KBS <왕과 비>의 김성령, 채시라, SBS <장희빈>의 견미리

1980년대에는 사극에도 고부갈등 소재가 등장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KBS <왕과 비>의 김성령, 채시라, SBS <장희빈>의 견미리 ⓒ KBS, SBS


고부 갈등이 흥행을 위한 주요 소재로 차용되면서 1980년대에는 현대물뿐만 아니라 사극에서도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대립을 그려내기에 이른다. 대표적인 작품이 1984년 MBC <조선왕조 500년-설중매>(이하 설중매)다. 신봉승 극본, 이병훈 연출의 <설중매>는 추존왕 덕종의 비이자 성종의 모후인 소혜왕후 한씨의 일대기를 그려낸 역사극이다. 소혜왕후 한씨는 인수대비로 더욱 잘 알려졌다.

<설중매>의 절정은 역시 시어머니 인수대비와 며느리 폐비 윤씨의 갈등이 극에 달한 시점으로, 인수대비는 결국 며느리에게 사약을 내림으로써 피비린내 나는 연산군의 탄생을 예고한다. 당시 인수대비는 고두심이, 폐비 윤씨는 이기선이 연기했다. <설중매> 이후 인수대비를 다룬 사극 대부분은 이들의 고부 갈등을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흥행 포인트로 활용했다.

KBS <한명회>(1994)의 김영란-장서희, KBS <왕과 비>(1999)의 채시라-김성령, SBS <왕과 나>의 전인화-구혜선(2007), JTBC <인수대비>(2011)의 채시라-전혜빈 등이 각각 인수대비와 폐비 윤씨를 연기했는데 특히 <왕과 비>의 채시라와 김성령은 히스테릭한 시어머니와 당돌한 며느리를 실감 나게 연기해 시청자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이 드라마로 채시라는 1999년 KBS 연기대상을 받았고, 12년 뒤인 2011년에는 JTBC <인수대비>에서 다시 한 번 인수대비로 분했다.

흥행 불패를 자랑하는 소재인 '장희빈'에서도 고부 갈등은 빠지지 않았다. 조선 제18대 왕 현종의 비이자 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 김씨(명성대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살아생전 장희빈을 '남인의 간자'로 간주하고 궁궐에서 내쫓는 등 장희빈에게만큼은 매우 혹독했던 시어머니였다. 결국 장희빈은 시어머니 명성대비가 승하하기 전까지 6년 동안 궐 밖에 나가 살아야 했다.

신봉승 극본, 이병훈 연출의 MBC <조선왕조 500년-인현왕후>(1988)는 명성대비와 장희빈의 고부 갈등을 극대화해 보여준 최초의 작품으로 명성대비로는 김해숙이, 장희빈으로는 전인화가 출연했다. 이후에도 장희빈은 여러 번 극화됐는데 SBS <장희빈>(1995)에서는 견미리와 정선경이, KBS <장희빈>(2002)에서는 김영애와 김혜수가 각각 명성대비와 장희빈을 연기했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 [기획] 한국 드라마가 기록한 고부 갈등의 역사 ====
1.  한국 드라마 55년…시어머니 vs 며느리 변천사 ①
2.  한국 드라마 55년…시어머니 vs 며느리 변천사 ②

여로 아씨 인수대비 채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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