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 구세대 시어머니 Vs 신세대 며느리

 1990년대 드라마 속 고부갈등은 종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전설의 고향-열녀문>의 반효정, <사랑이 뭐길래>의 하희라, <목욕탕집 남자들>의 김희선

1990년대 드라마 속 고부갈등은 종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전설의 고향-열녀문>의 반효정, <사랑이 뭐길래>의 하희라, <목욕탕집 남자들>의 김희선ⓒ KBS, MBC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드라마가 펼쳐내는 고부 갈등은 종전과는 다소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MBC <사랑이 뭐길래>(1991)는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집안에 시집온 신세대 며느리의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며 역대 최고 평균 시청률 59.6%를 기록했다. 이 같은 설정은 순종적이고 희생하는 기존의 며느리 상을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그린 것으로 당시로선 파격적인 시도였다. 시어머니 역시 엄하고 모진 성격이 아닌 가부장의 권위에 눌려 산 힘없는 여성으로 그려졌다.

김혜자가 시어머니 여순자 역할을, 하희라가 며느리 박지은 역할을 연기했고 이 작품을 통해 김혜자는 MBC 연기대상을 받았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한국 드라마는 그동안 반복되어 온 천편일륜적인 시어머니와 며느리 상을 벗어나 다변화된 고부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KBS 주말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1995)이 그 중 하나로, 이 드라마는 <사랑이 뭐길래> 보다 한 발자국 더 나가 구세대 시어머니와 신세대 며느리의 갈등을 본격적으로 보여준다.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X세대'의 전형인 수경 역을 맡은 김희선은 시어머니 정영숙에게 기죽지 않고 할 말 다하는 유쾌 발랄한 며느리를 연기해 기성세대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극 중 김희선은 훈계하는 시어머니에게 "그건 어머니 생각이시고요, 제 생각은 달라요"라는 말을 자주 해서 변화한 시대를 실감케 했는데, 이런 김희선의 행동에 시청자는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했다.

SBS <맛을 보여 드립니다>(1999)의 강성연 역시 당돌한 새색시 역할로 인기를 누렸다. 경쟁작 MBC <허준>에 맞서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는 선전을 한 <맛을 보여 드립니다>의 인기 비결은 며느리 강성연과 시어머니 정영숙의 기 싸움이었다. 일각에서 비현실적 설정으로 왜곡된 가정 상을 그린다는 비판이 있었음에도 드라마는 끝날 때까지 숱한 화제를 모으며 시청자의 관심을 받았다.

물론 예전부터 이어진 무서운 시어머니와 불쌍한 며느리 설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극단적이고, 자극적으로 변화하며 시청자의 구미를 만족시켰다. SBS 아침드라마 <겨울새>(1992)는 속물적인 이중인격자 시어머니 반효정과 그런 시어머니에게 모진 학대를 당하는 며느리 김도연의 고부 갈등을 그리며 아침 드라마로선 이례적으로 48.2%라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작품은 그로부터 15년 뒤인 2007년 MBC 주말극으로 리메이크되어 다시 한 번 전파를 탔는데 시어머니는 박원숙이, 며느리는 박선영이 맡아 열연을 펼쳤다. 1992년 반효정이 인정사정 보지 않고 돈만 밝히는 냉혈한이었다면, 2007년 박원숙은 다소 코믹한 설정을 가미하고 정신 분열에 가까운 이중인격자의 모습을 실감 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시청률은 아쉽게도 그리 좋지 않았다.

1999년 KBS <전설의 고향-열녀문>(이하 열녀문)은 그 해 방송된 <전설의 고향> 에피소드 중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열녀문을 타기 위해 청상과부인 며느리를 강제로 살해하는 비정한 시어머니와 원혼이 되어 집안에 보복하는 며느리의 이야기를 담은 <열녀문>은 탄탄한 캐릭터와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였다. 특히 시어머니 역의 반효정은 서릿발같이 차가운 연기로 시청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2000년대 : 다변화 된 드라마 속 고부갈등

 <로열 패밀리>에서 독한 시어머니의 전형을 보여준 배우 김영애

<로열 패밀리>에서 독한 시어머니의 전형을 보여준 배우 김영애ⓒ MBC


2000년대 드라마들은 다양한 성격의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다변화된 스토리를 만드는데 골몰했다. SBS <불꽃>(2000)의 강부자는 존재 자체만으로 위협적인 시어머니 캐릭터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모진 시집살이를 시키지는 않지만 며느리에 대한 은근한 무시와 혐오를 드러냄으로써 차원이 다른 형태의 시집살이를 보여준 것이다.

대중문화 평론가 조민준은 본인의 칼럼('종편의 구세주' 김수현 작가의 미스터리)에서 "애정 없는 결혼생활에 서슬 퍼런 시어머니 강부자의 등쌀까지 더하여 하루하루 메말라가던 주인공 이영애가 친구 장서희에게 전화로 신세 한탄을 하는 장면인데, 울먹이며 전화통에 매달려있던 그때 그야말로 느닷없이! 시어머니가 나타난다. 나를 포함하여 당시 드라마를 보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그 장면에서 뒤로 자빠질 듯 기겁했다(고 증언했다). 말하자면 <불꽃>에서 묘사된 시댁의 풍경이란 거의 호러 수준이었던 것이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1년 뒤인 2011년에는 MBC <로열 패밀리>의 김영애가 강부자보다 더 차갑고 무시무시한 시어머니를 연기했다. 마땅치 않은 집안의 며느리 염정아를 맞아 이름조차 부르지 않을뿐더러 종국에는 죽음으로까지 이끄는 시어머니 캐릭터를 연기한 김영애는 "저거 치워"라는 임팩트 있는 대사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모질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한 성격의 시어머니들이 대거 등장한 것도 특징이다. 웬만한 스토리에는 시큰둥해 진 시청자들 때문에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자극적인 설정과 캐릭터가 더욱 횡행하게 된 것이다. 이른바 '막장 드라마' 논란이 벌어진 이유다. KBS <좋은걸 어떡해>(2000), SBS <조강지처 클럽>(2007)의 김해숙, KBS <너는 내 운명>(2008)의 양금석, SBS <아내의 유혹>의 금보라, MBC <반짝반짝 빛나는>(2011)의 김지영 등이 바로 이런 케이스다.

 2000년대 드라마는 고부 간의 갈등과 화해를 다룰 뿐 아니라, 시어머니가 약자로 등장하는 등 변화하는 시대상을 반영했다.

2000년대 드라마는 고부 간의 갈등과 화해를 다룰 뿐 아니라, 시어머니가 약자로 등장하는 등 변화하는 시대상을 반영했다.ⓒ KBS


이에 반해 고부간의 갈등과 화해를 인간적으로 그려낸 작품도 많았다. KBS <엄마가 뿔났다>(2008), SBS <인생은 아름다워>(2010), KBS <오작교 형제들>(2011), KBS <내 딸 서영이>(2012), JTBC <무자식 상팔자> 등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여성으로서 서로 이해하는 훈훈한 스토리를 그려냈다.

90년대 등장했던 당돌한 며느리 캐릭터도 진화를 거듭했다. KBS 주말극 <며느리 전성시대>(2007)의 이수경이나 KBS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의 김남주 등은 시댁에 당당하게 맞서는 며느리 캐릭터로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김남주는 '시월드'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며 여성 시청자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 냈고, 시어머니 역의 윤여정 또한 적당히 인간적이면서도 세속적인 시어머니 캐릭터로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김남주는 이 드라마로 2012년 KBS 연기대상을 받았다.

주목할 만한 점은 시어머니를 사회적 약자로 바라보는 시선의 드라마도 부쩍 늘었다는 사실이다. 급격한 사회 변화와 핵가족화로 인해 어른의 존재감이 약화되고 독거노인이 증가하는 사회 현상이 작품에 반영된 것이다. 늘그막에 혼자 버려진 시어머니 김영옥과 그를 돌보는 며느리 고두심의 교감을 그린 MBC 베스트극장 <악연>(2002), 치매 노인을 등장인물 중 하나로 차용한 KBS <꽃보다 아름다워>(2004) 등은 시어머니에 대한 연민을 담아내고 있다.

특히 KBS 일일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2004)는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뺨을 때리는 에피소드를 여과 없이 방영해 논란이 됐다. 이는 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동시에, 항간에서 떠도는 '며느리 살이'의 실체가 무엇인지 보여준 충격적 장면이었다.

한국 드라마가 기록한 55년의 '고부 갈등'

엄하고 모질기만 했던 시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무소불위의 권위를 자랑하는 절대 강자가 아니고 며느리 역시 무조건 희생하고 순종하는 피해자가 아니다. 이렇게 변화하는 시대상에 발맞춰 한국 드라마 속 고부 갈등은 55년의 세월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진화해 왔으며, 지금까지도 시청자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소재로 남아있다.

현실에서 고부 갈등이 사라지지 않는 한, 드라마 속 고부 갈등 역시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 드라마가 해야 할 일은 천편일륜적이고 식상한 고부 갈등 소재를 어떤 식으로 재해석하고, 새롭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다. 막장 논란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자극적 전개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 이해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려내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 [기획] 한국 드라마가 기록한 고부 갈등의 역사 ====
1.  한국 드라마 55년…시어머니 vs 며느리 변천사 ①
2.  한국 드라마 55년…시어머니 vs 며느리 변천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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