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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손자의 운동화
 새로 산 손자의 운동화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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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아, 할머니가 우진이 운동화를 하나 샀는데, 검정색이 없어서 이런 색으로 샀어. 마음에 안 들면 바꿀 수도 있어."

나는 운동화를 찍은 사진과 함께 손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손자가 색깔이나 디자인 등 한 가지라도 마음에 안든다고 하면 영수증을 가지고 교환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터였다.

잠시 후 "신을 때 편하기만 하면 돼"라는 답문이 왔다. 녀석이 정말 기특했다.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되면 유명 상표도 알고, 그런 상표가 달린 제품을 많이 좋아한다는데 신을 때 편하기만 하면 된다니... 괜스레 가슴 한쪽이 찡했다.

지난 6일, 운동이 끝나고 딸아이 집으로 갔다. 전날 내린 눈이 녹아 길은 온통 질척질척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손자들이 오기 전이라 밀린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 준비에 바쁜 딸아이가 설거지를 하지 못하고 나갈 때가 더러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녀석들이 돌아올 시간이 됐다. 학교 앞으로 가 작은 손자를 데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손자도 돌아왔다. 녀석들이 간식을 먹고 학원에 갈 때였다. 큰 손자가 "할머니 나 양말이 다 젖었어"란다. 내가 "그래, 어떤 운동화는 물이 새는 것이 있더라"라고 답했더니 "그게 아니고... 운동화가 갈라졌어"란다. 난 큰 손자의 운동화를 살펴봤다. 과연 물이 들어올만 했다.

"우진아, 다른 운동화는 없어?"
"아니 있어. 엄마가 사준 거 있는데 그건 5학년 올라가는 첫날 신으려고 아끼는 거야."
"그러지마, 발이 젖으면 감기 걸려. 요즘 감기가 얼마나 지독한데"
"안 돼!"

제 엄마가 사준 운동화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녀석은 그날 그 젖은 운동화를 신고 학원에 갔다. 그런 손자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닌데... 두 손자를 학원으로 보내고 집으로 오는 길, 장을 보러 대형마트에 갔다. 혹시나 해서 마트를 가기 전에 손자의 운동화 사이즈를 물어봤다.

오랜만에 구입한 선물이지만, 뭔가 마음에 걸렸다

손자와 주고 받은 메시지
 손자와 주고 받은 메시지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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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보러 카트를 밀고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매장 한구석에 운동화를 기획 판매한다면서 1만9900원 가격표를 붙여놨다. 난 그곳에 가 운동화를 골랐다. 손자는 검정색을 좋아하는데 사이즈가 없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회색 운동화를 샀다.

사오면서도 내내 마음에 걸렸다. '녀석이 이걸 신을까? 괜찮다고 할까?' 그렇다고 딸아이가 손자에게 유명 상표 운동화를 사주는 것은 아니다. 손자들이 하루하루 다르게 자라서 비싼 것은 사줄 수가 없단다. 몇 달 전에 손자가 225mm를 신는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지금은 240mm를 신는다고. 그러니 비싼 신발을 자주 사줄 수는 없을 법했다.

나도 아이들 키울 때, 특히나 아들 아이에게는 두 달에 한 번씩 신발을 사줘야 했다. 발이 부쩍부쩍 자라 비싼 것은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지라 길거리표 운동화를 사준 적도 많았다. 당시 물가로 2000원을 주고 산 기억도 난다. 오래전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들은 좋아라 했다.

그때 그 시절이야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지만, 요즘은 어디 그런가. 요즘 초등학생들은 유명 상표를 꽤나 따진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래서 내심 걱정도 하면서, 손자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다른 것으로 교환해야겠다는 생각도 하며 산 것이다.

그동안 나는 손자들 사줄 게 있으면 딸아이에게 현찰을 주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녀석들에게 뭔가를 사준 기억이 별로 없다.

새 운동화가 좋은 아이 "옛날 운동화는 벌써 버렸어"

우진아! 이거 신고 학원 가거라!
 우진아! 이거 신고 학원 가거라!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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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걱정도 잠시. 큰 손자 녀석이 그렇게 문자를 보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7일, 운동화를 손에 들고 딸아이 집으로 향했다. 조금 일찍. 그리고 운동하러 가면서 메모를 한 장 남겼다. 혹시 내가 오기 전에 녀석이 학원에 미리 갈까봐.

다행히도 내가 운동하고 오니 손자가 집에 있었다. 내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에 손자가 현관 앞에서 새 운동화를 신고 서 있었다.

"할머니 나 이거 신었어!"
"마음에 드니?"
"응 좋아!"
"그럼 그 운동화는 버려"
"벌써 버렸어."

녀석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껑충껑충 뛰어 학원으로 향한다. 그런 녀석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말했다.

"우진아, 할머니가 다음에는 더 멋진 운동화 사줄게!"
"응! 할머니!"


태그:#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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