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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플레이스로 가는 열차 안에서
 마틴플레이스로 가는 열차 안에서
ⓒ 고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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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짐이 많았다. 장구며 북, 꽹과리, 징은 물론이고 입고해야 할 다섯명 분의 옷(민복, 쾌자와 삼색 띠)을 들고 가야했기 때문이다. 덩달아 버스킹(거리 공연)에 대한 걱정 때문에 생긴 마음의 짐도 한몫을 했다. 우리는 어제 긴 회의를 거친 끝에 결정한 첫 번째 버스킹 장소, 마틴 플레이스로 향하고 있었다. 걱정이 앞섰지만, 첫 버스킹인 만큼 호응도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에서 첫 시작을 하자는 데 의견이 모였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마틴 플레이스는 시드니에서 타운홀 다음으로 큰 규모의 버스킹 장소였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마틴 플레이스에는 꽤 많은 사람이 보였다. 어제 타운홀에서 버스킹 허가를 받으면서 받은 버스킹 지도를 살피며 자리를 잡았다. 공간도 꽤 넓었고 앞뒤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있어서 적절한 듯싶었다. 이제 옷을 갈아입을 차례였다. 막상 옷을 갈아입자니 다들 머뭇거린다. 크게 한 번 숨을 쉬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서로가 서로의 옷매무새를 고쳐주는 동안 서로에게 격려의 인사를 흘린다. 긴장하지 말라는 전혀 격려되지 않는 격려의 인사였다. 지금까지 크고 작은 공연들을 해왔지만 이렇게 떨리는 건 처음이었다.

옷부터 갈아입자
 옷부터 갈아입자
ⓒ 강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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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노란색. 형형색색의 우리 옷을 본 많은 이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또 이들에게 우리 국악기는 얼마나 신기한가? 일단 관심을 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은 벌써 근처 벤치에 앉아 있었고 또 다른 몇몇은 그늘에서 우리를 신기한 눈으로 지켜봤다. 많지는 않았지만 옷을 갈아입고 있는 우리에게 말을 건 사람도 있었다.

우리의 버스킹은 두 가지로 이루어질 계획이었다. 사물놀이와 판굿이 그 두 가지였다. 사물놀이가 앉아서 악기를 치는 것이라면 판굿은 악기를 메고 선 채로 이리저리 진(모양)을 만들어가며 악기를 치는 것이다. 다행히 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같은 동아리에서 맞춰온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기에 공연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다만, 우리를 보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걱정이었다.

떨리던 첫 공연, 동전과 웃음으로 화답해준 사람들

첫 버스킹, 마틴플레이스
 첫 버스킹, 마틴플레이스
ⓒ 강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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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옷을 갖춰 입고 각자 사물놀이를 위해 악기를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꽹과리를 잡았고 두 여자 친구, 하영이와 진실이는 각각 장구와 징을 잡았다. 그리고 우리 중에서 가장 북을 잘 다루는 행문이는 북을 잡고 앉았다. 이번 사물놀이에는 참여하지 않는 남은 마지막 멤버 동호는 사진기로 우리를 담고 있었다. 그렇게 다섯 명 모두 제 자리에 있었다. 나름 우리 버스커 팀의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가장 어린 팬과 함께
 가장 어린 팬과 함께
ⓒ 강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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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 덩 더더덩 덩 덩 딱 징~."

마지막 인사 굿을 치고 고개를 들어보니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있었다. 사물놀이부터 판굿까지 앞에서도 옆에서도 또, 뒤에서도 많은 이들이 우리의 공연을 보고 있었다. 정신이 없어 나는 보지 못했지만 다른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몇몇은 스마트폰으로 우리의 첫 버스킹을 동영상으로 기록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신나게 쳤는지 첫 버스킹을 한다고 한껏 멋부리고 왔던 우리들의 얼굴은 어느새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웃음으로 우리의 공연을 함께해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들 역시 우리에게 동전을 던지며 또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리며 우리의 공연에 화답했다. 성공적이었다. 그동안의 걱정은 온데간데없이 말끔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 걱정을 모두 보상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가 느끼는 짜릿함도 짜릿함이었지만 시끄러울 수도 있고 이상해보일 수도 있는 우리의 국악을 좋아해준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 짜릿하게 만들었다.

첫 버스킹 도네이션
 첫 버스킹 도네이션
ⓒ 고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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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달러 쯤이었다. 우리 역시 버스킹을 하는 한 팀으로서 도네이션을 받았고(두 번째 여행기에서도 말했듯이 호주의 버스킹 문화에는 거리 공연을 해준 팀에게 '잘 봤다'는 의미로 돈을 주는 도네이션 Donation이라는 문화가 있다), 그 금액이 무려 30달러가 되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크지 않은 돈이었지만 모든 게 처음인 우리에게는 그저 너무 아름답고 먹먹한 30달러였다. 한국에서 상상으로만 떠올리던 거리 공연을, 시드니에 온 첫 날 구경만 하던 그 버스킹 문화를 드디어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30달러로 콜라를 사 마셨는데 괜히 더 찌릿찌릿한 감이 목을 감쌌던 것 같다.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우리는 기세가 올랐다. 어디를 가든지 더 신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기세를 몰아 두 번째 공연을 바로 이어서 하기로 했다. 지친 것은 둘째 치고 어서 다시 거리로 나가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두 번째 장소로 결정한 테일러 광장에 도착했다. 들뜬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마틴 플레이스 보다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전 공연과 비교했을 때 충분히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돌았다.

눈길 한 번 안주는 갈 길 바쁜 자전거 아저씨
 눈길 한 번 안주는 갈 길 바쁜 자전거 아저씨
ⓒ 강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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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자신감은 금방 수그러들었다. 옷을 입고 앉아 사물놀이를 신나게 시작했지만 사람들은 그저 제 갈 길이 바빴다. 신호등을 기다리던 몇몇 사람들이 눈길을 주는 것이 전부였다. 마치 길거리에서 건네 받는 전단지가 된 신세 같았다. 15분간의 사물놀이를 마쳤지만, 판굿을 위해 악기를 멜 수가 없었다. 그냥 이 상황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Very impressive.(정말 인상적이네요.)"

갑자기 카메라를 든 아저씨가 와서 말을 걸었다. 그냥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이었다. 자기를 사진기사라고 소개하더니 공연을 더 해줄 것을 부탁했다. 관객이 생겼으니 해야 마땅했다. 싸던 짐들을 다시 풀어 악기를 메었다. 한 명을 위한 공연이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테일러 광장에서 벌어진 반전
 테일러 광장에서 벌어진 반전
ⓒ 강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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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마음에 닿아서였을까? 그냥 지나치기만 하던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어 우리의 버스킹에 관심을 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분은 잠시 자전거에서 내렸고 옆 건물에서 일을 보던 분들도 가까이 와 우리에게 관심을 주었다. 관객 한 명 없이 끝날 것 같았던 테일러 광장에서 벌어진 반전이었다. 우리 국악을 통해 보여지는 열정이 그들에게도 전달된 것 같았다. 비록 첫 버스킹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었지만 소소한 박수와 함께 테일러 광장에서의 버스킹도 마칠 수 있었다.

두 번의 버스킹을 마치고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온 우리는 파티를 벌였다. 좁은 방에서 없는 돈을 털어 산 치킨과 피자 그리고 맥주와 함께한 조촐한 파티였지만 첫 버스킹을 했다는 역사적인 순간에 대한 기억과 짜릿함, 감사함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안주로 가득했다.

추억과 함께하는 버스킹 파티
 추억과 함께하는 버스킹 파티
ⓒ 고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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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사랏골 소리사위 26기 상훈, 행문, 동호, 하영, 진실 다섯 명이 사물(꽹과리, 징, 장구, 북)을 들고 호주로 떠난 버스킹 여행 이야기입니다.



태그:#버스킹, #호주, #사물놀이, #길거리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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