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헌법재판소장으로 내정된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이 지난 2008년 11월 13일 열린 종부세 선고에 참여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장으로 내정된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이 지난 2008년 11월 13일 열린 종부세 선고에 참여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이동흡 후보자에게 오늘 내로 자진 사퇴할 것을 권고한다. 만약 21일 청문회가 진행된다면 특정업무경비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 수밖에 없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둔 20일, 민주통합당이 이 후보자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인사청문위원인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이날 이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추가 폭로를 예고했다.

박 의원은 인사청문회에서 공개하겠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큰 문제가 될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정업무 경비는 업무추진비보다 용도가 제한돼 있고 반드시 증빙을 제출하도록 국가재정법과 기획재정부 지침에 규정돼 있다"며 "이 지침을 어기고 단 한 푼이라도 사적으로 유용했다면 업무상 횡령이다"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미 관련 자료들은 확보해 놨다"고 말했다. 인사청문특위 야당 간사인 최재천 의원도 "이 후보자도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특정업무 경비에 대한 의혹을 입증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이동흡에 최후통첩... "특정업무 경비 문제 삼을 것"

이 후보의 낙마를 벼르고 있는 민주당의 공세가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날 민주당은 이 후보자가 헌법재판관 시절 '항공권 깡'을 했다는 의혹이 "명백한 사실"이라며 이 후보자 측에 항공권 탑승 기록을 제출하라고 압박했다.

'항공권 깡'이란 자신에게 배정된 높은 등급의 항공권 좌석을 아래 등급의 좌석으로 바꿔 그 차액을 챙기는 것이다. 이 후보자는 지난 2008년 12월 미국 연방대법원 방문을 위해 16일 일정으로 워싱턴으로 출국할 당시 일등석 좌석을 헌재 담당 연구관에게 프레스티지석(비지니스석)으로 바꾸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서울과 워싱턴 왕복 일등석은 1000여만 원, 프레스티지석은 740여만 원으로 약 260여만 원 차이가 난다. 

박범계 의원은 "이 후보자가 차액을 개인적으로 수령했다는 이야기는 헌재 관계자들에게 모두 알려진 사실이다"라며 "오죽했으면 그 업무를 담당했던 헌재 국제협력과 직원이 항공사에 그런 부탁을 하면서 모멸감을 느꼈다고 이야기했겠느냐"고 말했다.

같은 당 서영교 의원은 전날 또 다른 '항공권 깡' 의혹도 제기했다. 이 후보자가 2009년 독일에서 열린 국제법회의에 초청받아 참석하면서 일반석을 제공받았지만 헌재에 요구해 비지니스석으로 바꾼 뒤 차액을 챙겼다는 것이다.

서 의원은 이날 오전 원내대표단 회의에서 "이 후보자가 제출한 비지니스석 항공권을 조회해 보니 실제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실제로 비지니스 항공권을 이용하지 않았으면서 차액만 챙긴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서 의원은 "이 후보자의 별명이 '깡'이다, 또 어떤 별명이 있는지 확인해 보니 돈을 흡입한다고 해서 '이돈흡'이라고 한다"며 "'이돈흡'의 사퇴를 촉구한다"고 비꼬았다.

"이동흡, 위장전입·증여세 탈루·국가공무원법 위반 인정"

이날 새롭게 제기된 의혹 외에도 그동안 이 후보자의 도덕성과 자질과 관련해 제기된 의혹은 이미 20여 가지를 넘어섰다. 재산 증식 과정에 대한 의혹을 비롯해 잦은 국외 출장, 위장전입, 저작권법 위반, 증여세 포탈,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정치후원금 납입, 외환거래법 위반 등 '의혹 백화점'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특히 이 후보자의 공사 구분없는 부적절한 처신에 법원 직원들과 함께 일했던 판사들의 제보가 빗발쳤다. 2005년 수원지법원장 재직 시절 송년회를 준비하면서 삼성으로부터 경품을 받아오라고 지시한 사건,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 룸사롱에 함께 간 후배 판사들에게 2차(성매매)를 나가라고 권유한 사건, 대전고법 부상 판사 재직시에는 부속실 여직원을 시켜 법복을 벗기게 하고 주말마다 서울에 가면서 관용차를 직원에게 톨게이트까지 운전하게 한 후 고속도로에서 내리게 했다는 의혹 등이 대표적이다.

민주통합당 최재천, 서영교, 윤관석 의원이 18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가 국회인사청문회에 앞서 새누리당과 청문회 질문을 사전 조율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최재천, 서영교, 윤관석 의원이 18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가 국회인사청문회에 앞서 새누리당과 청문회 질문을 사전 조율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박범계 의원은 "이 후보자 의혹은 모두 내부자들로부터 나온 것"이라며 "다른 고위직 청문회에서 볼 수 없었던 내부자 제보가 동시 다발적으로 제기됐다는 것은 이 후보자의 품성과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구체적 증거다"라고 말했다.

특히 제기된 의혹 가운데 이 후보자는 위장전입, 자녀의 증여세 탈루, 정치자금법 위반 등 3대 위법 사항에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 후보자는 박홍근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분당 아파트 취득 당시의 위장전입 의혹과 관련해 "주민등록법 위반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 투기 목적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또 1998년 11세였던 장남에 증여한 것에는 "장남에게 증여한 것으로 기억한다, 증여세가 문제가 되는 것으로 밝혀지면 바로 납부하겠다"고 말했다. 2007년 장윤석 새누리당 의원에게 정치자금을 후원한 것이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는 지적에는 "당시 법 위반 여부를 따로 검토하지 못했다, 헌법재판관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는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박홍근 의원은 "이 후보자는 도덕성 기준으로 대한민국 하위 0.01%에 드는 분이다, 검증하는 우리도 괴롭다"며 "오늘 안으로 자진 사퇴해달라"고 압박했다.

민주당 "반드시 낙마"... 새누리당 반란표 나올까

대선 패배 후폭풍 속에 야당의 존재감 찾기에 나서고 있는 민주당은 이 후보자를 반드시 낙마시킨다는 계획이다. 박기춘 원내대표는 "이 후보자의 엽기적 행각과 비위사실이 점입가경이다.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고 위법, 불법, 탈법을 일삼는 무자격자에게 기본권 수호를 믿고 맡길 수 있겠느냐"며 "새누리당은 국민적 검증에 발목잡지 말고 무적격자를 조속히 사퇴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겉으로는 인사청문회를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는 태도이지만, 이 후보자를 사실상 '적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한구 원내대표와 인사청문특위 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 등은 야당의 의혹 제기에 '결정적 한방은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만 여당 청문위원 중 김성태 의원은 지난 17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후보자의 실정법 위반에는 단호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유보적인 의견을 밝혔다.

주목되는 것은 박근혜 당선인의 태도다. 박 당선인은 이동흡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 철저히 침묵하며 관망하고 있다. 하지만 당선인 측에서는 이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기류도 흘러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지명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박 당선인이 개입한 인사라는 점에서 명백한 결격 사유에도 새누리당이 임명동의안을 밀어붙일 경우 박근혜 정권 초기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게다가 현재 154석을 가지고 있는 새누리당에서 몇 표만 반란표가 나와도 이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은 국회에서 부결될 수 있다.

박 당선인 측 고위관계자는 최근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 후보자가 웬만하면 헌법재판소장으로 올지 모르는데 누가 말을 함부로 하겠느냐"며 "지금까지 나온 이 후보자 의혹을 보니 어지간히 덕이 없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후보자의 거취 문제에는 "갈수록 계속 (의혹이) 나오는데... 글쎄"라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결국 인사청문회에서 당선인 측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서는 의혹들이 쏟아져 나올 경우, 여권이 이 후보자를 낙마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 후폭풍으로 정부조직개편안 1월 임시국회 처리,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과 조각 및 인사청문회 등 새 정부 출범 준비 작업에 차질이 생길 경우 박 당선인의 정치적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21일부터 이틀간 실시되고 23일께 인사청문 보고서를 채택할 예정이다. 이후 24일 개회되는 1월 임시국회에서 임명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실시될 계획이다.


태그:#이동흡, #박근혜, #인사청문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