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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 피었던 흔적, 그 줄기에 피어난 서리꽃
▲ 서리꽃 나팔꽃 피었던 흔적, 그 줄기에 피어난 서리꽃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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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는 말을 참으로 많이 했다. 내가 힘들 때에는 나에게, 다른 이들이 힘들 때에는 다른 이들에게 "절대로 절망하지 마라"는 말도 많이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것이 사람이라고 얼마나 많이 말을 했을까? 힐링(치유)이라는 말이 회자하는 요즘, '힘내라'는 말과 더불어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혹은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이 있으랴' 등등과 유사한 말들이 넘쳐난다.

그런 말들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론 그런 말들조차도 폭력적인 언어일 수가 있다.

구상나무 이파리에 피어난 서리꽃
▲ 서리꽃 구상나무 이파리에 피어난 서리꽃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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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고 싶어 빠졌을까?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그런데도 그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 그 많은 위로의 말들은 자칫 '그렇게 하지 않아서 그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라는 말로 들릴 수도 있다.

나름 잔잔한 희망의 글, 위로의 글들을 사진과 함께 전하면서 누군가는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지 꽤 오래되었다. 하루하루 쓴 짤막한 편지들이 '1000'이라는 숫자를 향해 가고 있으니 매일 쓴다고 해도 3년 가까이 반복되던 행위다.

꽃잎도 아닌 꽃받침이 꽃이 되었다.
▲ 서리꽃 꽃잎도 아닌 꽃받침이 꽃이 되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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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답장을 받았다.

"지금 너무 힘든데, 그래서 힘내려고 하는데 길이 보이지 않는데, 희망을 보라고 하네요. 맞는 말인데, 희망을 봐도 절망밖에 보이지 않는 나에게 희망을 보라는 말이 얼마나 큰 폭력인지 아세요?"

그 답장을 받은 후 한동안 글쓰기를 멈췄고, 한번 멈춰진 행위는 이어 가기가 어려웠다. 그 답장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내내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동안 이어진 침묵에 이번에... 그쪽에서 짧은 편지가 왔다.

"그래도 여전히 그런 말은 필요하지요. 그렇다고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면, 누군가 그런 말이 필요한 사람들은 또 힘들 수도 있겠지요. 세상엔 사람을 죽이는 말과 살리는 말이 있지요. 그런데 그 말이 하나는 아름답고 하나는 추한 것이 아니라, 때론 가장 아름다운 말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며, 그런 경우는 더 큰 폭력일 수 있는 것이지요."

산수국이 바람에 떨어져 눈밭에 누워있다.
▲ 서리꽃 산수국이 바람에 떨어져 눈밭에 누워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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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이 난무하는 세상, 공약 중에 멋들어지지 않은 것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그 멋들어진 공약들이 공염불이 되는 순간을 수없이 목도하면서, 이젠 응원의 단어들이나 문장조차도 의심을 받는 것이다.

이젠 쉽게, 너무 쉽게 힘내라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나에게 다짐하듯이 말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어의 공해가 될지도 모른다.

철쭉의 이파리에 피어난 서리꽃
▲ 서리꽃 철쭉의 이파리에 피어난 서리꽃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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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일주일에 한 번, 5분여의 시간, 서리꽃 외에는 사진을 담을 수 없었다. 단순히 게으름 탓만이 아니라 여러 정황이 그러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정황에 놓인다는 것, 삶의 후 순위로 놓을 수밖에 없다 판단하고 그렇게 살아가자 삶 전반이 퍽퍽해 진다. 그제야 좋아하는 것 이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미련하긴...

"힘내라"는 말, 참 좋은 말이다. 그러나 너무 자주 하지는 말자. 여기저기 넘쳐나는 '힐링', 멀미가 나려고 한다. 그냥 가만히 두면 잊고 일어서는 것이 사람이다. 그냥 가만두는 것이 위하는 것일 때가 사실은 더 많은 것이 아닐까?


태그:#서리꽃, #힐링, #들꽃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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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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