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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차밭 전경. 차밭 사이로 다향을 맡으며 걸을 수 있는 멋드러진 길이 있다.
 보성차밭 전경. 차밭 사이로 다향을 맡으며 걸을 수 있는 멋드러진 길이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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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해의 시작이다. 하지만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계속되는 경기침체 탓이다. 대선 후유증까지 겹쳤다. 차밭이 그리워지는 이유다. 차밭은 언제나 번뇌를 털어준다. 차밭 고랑을 걷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저만치 날려버릴 수 있다.

차밭을 거닐고 마시는 따끈한 녹차 한 잔은 몸과 마음의 피로까지 풀어준다. 보성차밭으로 간다. 몸과 마음이 먼저 반긴다. 밤사이 내린 눈이 그려낸 설경도 운치 있다.

활성산 자락 봇재다. 보성읍에서 회천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사방이 차밭이다. 한 번의 심호흡으로 긴장의 끈이 금세 풀어진다. 차를 두고 아스팔트길을 따라 내려간다. 내리막길이 제법 급하다. 몸이 앞으로만 쏠려 한눈을 팔 겨를이 없다.

차밭 사이로 우편배달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고 있다. 대한2다원에서다.
 차밭 사이로 우편배달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고 있다. 대한2다원에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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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재전망대에서 영천마을로 가는 길이 아름답다. 저만치 영천저수지도 보인다.
 봇재전망대에서 영천마을로 가는 길이 아름답다. 저만치 영천저수지도 보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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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양동마을을 거쳐 영천마을로 이어진다. 차밭 고랑 너머로 보이는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길의 경사가 느슨해지면서 차밭이 여기저기 보인다. 자투리를 이용한 차밭이다. 눈에도 덜 익숙한 짧은 고랑이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다듬어진 것보다 마음에 더 와 닿는다.

차나무가 없는 밭은 배추가 차지하고 있다. 그 위에 하얀 눈이 내려앉아 있다. 쪽파도 자라고 있다. 밭이랑도 구불구불 정겹다. 그 사이 길이 평탄해졌다. 거리도 한산하다. 해찰하는 수꿩 한 마리가 시선을 붙잡는다.

왼편으로 들어앉아 있는 영천저수지가 제법 크다. 겨울바람에 몸 흔드는 하얀 갈대가 저수지와 어우러져 있다. 갈대는 논길에서도 하늘거리고 있다. 저수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만든 개울이 농로를 따라 이어진다. 어릴 적 고향마을 같다. 예쁘다. 풍광도 호젓하다.

길섶에 차를 덖는 집도 있다. 발효시키지 않고 찻잎을 그대로 쪄서 말리고 덖고 있다. 녹차 시음장도 보인다. 봇재에서 양동마을과 영천마을을 거쳐 2㎞쯤 내려온 것 같다. 차밭 전망대인 다향각도 저만치 멀어졌다. 녹차된장을 담그는 집이 보인다. 기와집 앞마당에 장독이 빼곡하다.

도강마을에서 만난 녹차된장 만드는 집. 기와집 앞으로 항아리가 줄지어 놓여있다.
 도강마을에서 만난 녹차된장 만드는 집. 기와집 앞으로 항아리가 줄지어 놓여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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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음정 풍경. 소리꾼들이 수련을 하며 득음을 했다는 곳이다.
 득음정 풍경. 소리꾼들이 수련을 하며 득음을 했다는 곳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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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강마을이다. 보성소리의 탄생지다. 보성소리는 송계 정응민 선생이 만든 독특한 창법이다. 정응민은 서편제의 시조였던 박유전의 창법을 이어받았다. 마을에 서편제보존연구소가 들어서 있다. 정응민 예적지도 자리하고 있다.

내친 김에 득음정(得音亭)으로 간다. 산길로 600여m 들어가서 만나는 정자는 수많은 소리꾼들이 수련하며 득음을 했다는 곳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 물소리가 장쾌하다. 한여름 계곡을 떠올리게 한다. 이 계곡 가에 득음정이 자리하고 있다. 아무리 목청 높여도 소리가 물소리에 묻히고 만다.

영천마을에서 바라본 차밭과 다향각 풍경. 다향각에서 내려다보는 차밭과는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영천마을에서 바라본 차밭과 다향각 풍경. 다향각에서 내려다보는 차밭과는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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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마을 개울에서 올려다 본 봇재 풍경. 봇재 아래로 차밭이 보인다.
 영천마을 개울에서 올려다 본 봇재 풍경. 봇재 아래로 차밭이 보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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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을 돌려 다시 차밭으로 간다. 도로는 여전히 한산하다. 평소에도 지나는 자동차가 많지 않는 길이다. 영천제의 물빛이 더 짙어졌다. 해도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다향각으로 가는 길에 펼쳐진 차밭은 잘 다듬어져 있다.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층계를 이루고 있다. 진초록의 카펫 같다. 그 위에 몸을 던져 누워 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이 차밭이 조성되기 시작한 게 1930년대 후반이다. 기온이 따뜻하고 비가 잦은 자연조건이 차 재배에 맞춤이었다. 바다와 가까워 새벽안개가 자주 끼는 것도 좋았다. 수분을 원활히 공급할 수 있어서다.

보성군의 차 재배면적은 1030㏊. 녹차 생산량은 전국의 40% 가량 된다. 가히 '녹차수도'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차밭 사잇길에서다 내려다 본 보성차밭 풍경. 오른편으로 저만치 보이는 게 영천저수지다.
 차밭 사잇길에서다 내려다 본 보성차밭 풍경. 오른편으로 저만치 보이는 게 영천저수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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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밭 사잇길에서 바라본 차밭길. 길이 이리저리 자연스럽게 구부러져 멋스럽다.
 차밭 사잇길에서 바라본 차밭길. 길이 이리저리 자연스럽게 구부러져 멋스럽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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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밭의 차꽃은 다 떨어지고 없다. 찻잎도 두꺼워졌다. 그래도 산비탈 능선을 따라 자연스레 구부러진 차밭 이랑의 선율은 그대로다. 빼어난 곡선미다. 흡사 판소리 가락의 높낮이처럼 휘감아 돈다.

내 마음결도 그 선율을 닮아 보드라워진다. 몸과 마음도 온통 진녹색으로 물든다. 풍경도 한 폭의 그림이다.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기만 하면 모두 작품사진이 된다. 사철 언제라도, 하루 아무 때라도 아름다운 차밭이다.

어둠이 내려앉으면서 차밭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형형색색의 조명이 하나씩 불을 밝히며 변신을 한다. 봇재다원에 설치된 조명은 연하장을 만들었다. 산등성이 위로 네 마리의 학이 나는 형상이다. 폭이 200m 가량 된다.

보성차밭에 설치된 은하수터널. 그 길을 따라 연인들이 다정하게 걷고 있다.
 보성차밭에 설치된 은하수터널. 그 길을 따라 연인들이 다정하게 걷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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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차밭에 설치된 은하수터널의 밤풍경. 차밭을 찾은 연인이 여기에 소원지를 매달고 있다.
 보성차밭에 설치된 은하수터널의 밤풍경. 차밭을 찾은 연인이 여기에 소원지를 매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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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밭 골골에 은하수를 연상케 하는 터널도 만들어졌다. 차밭이 온통 반짝거리면서 눈꽃이 내리는 것 같다. 새해 소망카드를 적어놓은 소원지의 사연도 감미롭다. 동화 속 마법의 세계가 따로 없다. 황홀경이다.

그 터널을 걷는다. 걷는 사람 모두가 영화 속 출연자들이라도 된 것 같다. 이 길에서 나누는 일상의 대화는 영화 주인공의 대사가 된다. 연인과 함께라면 더 좋겠다. 겨울날 낭만 데이트를 즐기기에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여기서 약속하는 사랑도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다.

아이들이랑 손잡고 와도 좋겠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겨울날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에 차밭만한 곳도 없겠다.

보성차밭에서 불을 밝힌 차밭트리. 황홀경을 연출하는 차밭의 밤풍경이다.
 보성차밭에서 불을 밝힌 차밭트리. 황홀경을 연출하는 차밭의 밤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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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동광주나들목에서 광주제2순환도로를 타고 화순읍으로 가서 29번 국도를 따라 보성방면으로 간다. 보성 초당교차로에서 목포-순천 국도를 타고 장흥·목포방면으로 가다 장수교차로에서 회천·안양방면으로 18번 국도를 타면 봇재에 닿는다. 서해안고속국도를 탈 경우 죽림나들목으로 나가 순천으로 이어지는 남해고속국도를 타고 보성나들목으로 나가면 된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할 경우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 1-7’을 입력하면 된다.



태그:#보성차밭, #차밭트리, #다향길, #봇재, #득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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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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